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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아 “내가 온전해야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어요”

2024.01.24전희란

이지아는 비로소.

그레이 레터링 티셔츠, 블랙 오버핏 팬츠, 피시넷 타이츠, 모두 메종 마르지엘라. 블랙 스니커즈, 뉴발란스.

GQ 한 예능에서 그랬죠. “진짜 웃긴 역할 하고 싶다.” 전 웃을 준비가 되어 있어요.
JA 어쩌죠. <끝내주는 해결사>는 작정하고 웃기는 드라마는 아니에요. 가볍고 웃긴 요소도 분명 등장하지만 소재 자체가 무거우니까요. 복수를 통한 사이다도, 진지한 이야기도, 가벼운 코드도 있어요. 작정한 코믹도 꼭 해보고 싶어요.
GQ 예전부터 저는 감지했다니까요. 이지아가 가진 특유의 유머와 위트를요.
JA 아셨어요?(웃음) 웃기려고 웃기는 건 아닌데, 하여튼 저는 그런 거 좋아해요. 그런데 많은 사람이 제 그런 면을 잘 몰라요. 그나마 <펜트하우스>로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면서 저의 다른 면을 봐주신 덕분에 이번 역할도 들어온 거죠.
GQ 드라마 제목 때문에 ‘끝내주다’라는 의미를 처음 곱씹어봤어요. 꽤 쿨한 말이더군요. 끝을 내주다, 그리고 끝내주다!
JA 저는 (엄지를 세우며) ‘끝내준다!’보다 (두 손으로 X를 만들며) ‘끝을 내준다’는 의미를 더 좋아해요. 후자가 더 멋진 것 같아요. 이 작품도 한 사람의 고통을 끝내주고, 사람의 관계를 끝내준다는 의미에 더 맞는 드라마고요. 제가 이번 드라마에서 (엄지 척) ‘끝내주게’ (끝을 내는 시늉) 끝내주는 사람이에요.
GQ 저는 ‘누가 끝을 내준다고 진짜 끝이 날까?’라는 의문과 호기심이 있어요.
JA 당사자가 마음으로 끝내지 않았는데 해결사가 끝을 내줄 순 없어요, 물론. 그런데 당사자는 끝났는데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했거나 안타까운 사연들도 있거든요. 저는 그런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이혼 전문 변호사 역할이죠. 시청자들이 보면서 후련할 것 같아요. 아우야 속이 다 시원하다! 하고.

화이트 후드 톱, 스커트, 모두 꾸레쥬. 블랙 니삭스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진정한 복수는 뭐라고 생각해요?
JA 복수하고 나서 속이 후련해야죠. 거리낌 없이.
GQ 소재만 놓고 본다면 작품 선택에 망설여지는 지점도 있었을 것 같아요.
JA 왜지? 왜 민감한 소재여야 하지?(웃음) 그런 생각해본 적 없어요. 행복하려고 결혼했다가 이혼하게 되는 사람 많잖아요. 대단한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이잖아요. 그리고 내가 그것을 왜 민감하게 받아들여야만 하지?
GQ 이지아라서 더 잘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을까요?
JA 음···, 아무래도 더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죠. 꼭 결혼과 이혼이라기보다는 만남과 헤어짐, 사람의 관계성에서 저 역시 굉장히 아파해보기도 했으니까요. 한 단 위에 서서 내려다보면서 ‘그래, 나도 다 알지’ 이런 느낌이었달까요.
GQ 이지아가 진행한 다큐멘터리 <XR 우주대기획: 더 홈>에서도 시작과 끝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오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비장하게 말하잖아요.
JA 대본은 줄곧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고 했지만 시작과 끝은 정의할 수 없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물리적인 끝은 있겠죠. 그런데 그게 진짜 끝인가 싶어요. 죽으면 끝인가? 그럼 태어날 때가 시작인가? 그것도 잘 모르겠어요. 우리가 함부로 정의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우리가 무언가를 위해 정한 약속일 뿐, 우주적인 관점에서 시작과 끝이 어떤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데님 팬츠, 스튜디오 니콜슨 at 비이커. 그레이 하이톱 스니커즈, 컨버스. 원석 펜던트 목걸이, 알리기에리 at 비이커.아이보리 슬리브리스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데이 베드, 빌라 드 레코드.

GQ 흔히 사람 간 관계의 시작을 핑크빛으로 표현하잖아요. 어떤 끝이야말로 핑크빛일 수도 있는데. 이지아가 관계의 시작과 끝을 컬러로 칠한다면 어떨까요?
JA 시작은 블랙인 것 같아요. 캄캄한 느낌. 상대방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하는 거니까요. 관계의 중간에서 레드가 되기도 하고, 갖가지 색깔이 될 수 있겠죠? 그러다 마지막, 끝이 될 때는 화이트일 것 같아요. 또 다른 색으로 칠할 수 있는 완벽한 백지 형태가 되면 그게 진정한 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GQ 어쩌면 이별의 그 순간이 끝이 아닐 수도 있네요.
JA 레드 상태로 관계에서 이별을 맞이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내 마음의 끝이라고 생각하는 지점을 컬러로 표현한다면 나는 화이트. 그래야 색칠을 할 테니까요.
GQ 아주 오래전 프로그램에서 자신을 소개하면서 “블랙 앤 화이트. 극단적으로 다른 두 면이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요즘은 어떤 것 같아요?
JA 누구에게나 다른 면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저에겐 유난히 다른 두 부분이 존재하는 것 같긴 해요. 어떤 사람은 저를 굉장히 여성스럽게 기억하고, 어떤 사람은 되게 보이시하고 털털하게 기억해요. 취향도 굉장히 다른 양극의 성질을 좋아하기도 하고요. 그럼 나는 이걸 좋아하는 거야, 저걸 좋아하는 거야? 혼란스러울 때도 있었는데, 그 자체가 저였어요. 그 점은 변함없는 것 같아요.

화이트 롱 셔츠, 발리. 그레이 바이커 쇼츠, 그레이양. 화이트 부츠, 닥터마틴. 화이트 브라 톱은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언젠가 “무언가를 갈망하면 그것을 꼭 잃었다”라는 슬픈 말을 한 적 있죠. 요즘은 어때요? 갈망하지 않게 되었나요, 갈망 않고도 사랑하는 법을 배웠나요?
JA 갈망 안 해요.(박장대소) 진짜 안 하는 것 같아요.
GQ 어떻게 하면 안 할 수 있어요?
JA (잠시 골몰한다) 예전보다 초연해진 것 같아요. 갈망하면, 힘들잖아요. 그다지 갈망하지도 않게 되었지만, 갈망하다가도 나를 다잡고 컨트롤하는 것도 더 잘하게 된 것 같아요. 그래, 이쯤에서 그만해야겠다 하고. 어떻게 가능하냐고요? 글쎄요···. 거시 세계를 계속 생각해서일까? 헤헤헤.
GQ 맞아요. 거시 세계를 떠올리면 미시 세계가 아무렇지 않게 느껴진다고, 자유를 느낀다고 깊은 눈동자로 말한 적이 있죠.
JA 살다 보면 감정적인 소모가 많잖아요. 그럴 때 그 어떤 것보다 거시 세계를 떠올리고, 다큐멘터리를 보면 위로가 돼요. 미시 세계에서 아웅다웅하는 게 다 무슨 의민가 싶고, 별로 의미 없게 느껴져요. 그게 정신 건강에 좋은 것 같아요.
GQ 배우로서 촬영할 때는 이 세계가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지 않나요? 거시 세계를 떠올리면 한 발짝 떨어져 보게 돼요?
JA 작품 할 때만은 달라요. 최대한 그 세계 안으로 들어가려고 노력해요. 비집고 들어가서 이 사람의 감정이 어땠을까, 상상하고 펼쳐 보여야 하는 작업이니까. 그렇지만 보통의 나, 이지아를 묻는다면 저는 그렇지 않아요.

블랙 니트 드레스, 리포메이션. 블랙 부츠, 발렌티노 가라바니. 그레이 볼 캡, 골든구스.

GQ 배우 이지아와 인간 이지아는 다른 사람이에요?
JA 분리되어 있는 것 같아요. 의식적으로 분리한다기보다는···.
GQ 마치 블랙 이지아와 화이트 이지아처럼요. 시상식에서 다른 배우들이 고마운 사람을 나열하는 동안, “진심으로 연기하는 배우가 되겠습니다”라고 짧게 내뱉은 수상 소감도 오래 잔상에 남았어요. 진심으로 연기한다는 것이 이지아에겐 왜, 얼마나 중요해요?
JA 어떤 캐릭터를 연기해 보는 사람을 납득시키려면 진심이어야 한다고 믿어요. 내가 가짜로 울면 보는 사람은 슬프지 않거든요. 그래서 진심을 다해서 하는 연기를 정말 잘하고 싶었어요. 늘 잘되지는 않아요. 그래서, 그러니까, 자꾸만 그런 얘기를 했던 것 같아요. 진심으로 연기하는 배우가 되겠습니다, 되고 싶습니다, 라고. 우리가 지금처럼 대화를 하면 눈빛을 나누고, 상대방이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반응을 하잖아요. 그 리액션이 연기에서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좋은 배우, 경험이 많은 배우일수록 자신이 화면에 나오지 않는 장면에서도 상대에게 감정을 똑같이 써주는 것 같아요.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그렇게 미세한 차이들이 모여 엄청한 힘을 빚는다고 생각해요. “방금 한 연기 계획한 거야? 순간적으로 나온 거야?” 그런 기적 같은 순간들요. 이번 드라마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GQ 저는 결국 모든 인물을 이해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해주는 작품을 좋아하는데, <나의 아저씨>가 그랬어요. 충분히 ‘나쁜 X’일 수 있는 강윤희라는 인물을 이해하는 순간도 맞이했고요. 이지아는 어떤 작품에 마음이 움직여요?
JA 저는 어떤 작품을 보면서 너무 마음이 움직여지면, 힘이 들어요. 동요하면 마음이 힘들고, 스트레스 받고, 지쳐요. 나의 평정심에 자꾸 돌을 던지는 듯한 느낌이에요. 너무 몰입하나 봐. 그래서 아주아주 슬픈 영화는 잘 안 보려고 해요.

그레이 레터링 티셔츠, 메종 마르지엘라.

GQ 요즘도 사인에 “Love Yourself”라고 써요? 요즘은 너무 흔한 말이 되었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그랬다고 알고 있어요.
JA 네, 여전히.
GQ 나를 사랑하려는 실천이 세상을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방식을 변화시켰나요?
JA 나를 먼저 사랑한다는 건 아주 근본적인, 인간의 본능인 것 같아요. 비행기에서도 자기가 먼저 산소 마스크를 쓴 다음 다른 사람을 도와주라고 하잖아요. 내가 살아야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것처럼, 내가 온전해야 누구를 사랑할 수 있어요. 어릴 때는 자기를 돌보기보다 다른 것에 더 신경을 쓰곤 하잖아요. 저 또한 그랬고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걸, 나를 사랑하는 것이 먼저라는 걸 좀 일찍 깨달은 것 같아요.
GQ 러브 유어 셀프 하는 일상의 실천이라면?
JA 잠을 많이 자려고 해요. 어렸을 때는 잠을 많이 자면 그 시간이 아까웠거든요? 근데 아니더라고요. 나를 쉬게 하고 나를 돌보는 일을 해야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더라고요. 건강을 지키는 일. 그래서 꼭 지키려고 해요.

베이지 오버핏 재킷, 팬츠, 모두 와이씨에이치. 니트 브라 톱은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이지아의 사랑은 어떤 얼굴이에요?
JA 사랑? 글쎄···. 모호한 얼굴?
GQ 누군가에게는 갈망이 사랑이기도 할 테니까요.
JA 사실은 사랑에 대해 생각 안 해본 지 오래됐어요.(옅은 미소) 사랑을 꼭 관계에 관한 것으로 국한하지 않는다면, 사랑은 열정인 것 같아요. 사랑하면 원하게 되고, 연구하게 되고, 아끼게 되는 그 모든 것이 열정이 아닐까. 나를 돌보는 것도 열정이 있어야 하고요. 뭐가 되었든 사랑 이퀄 열정.
GQ 다시 돌아와서 ‘Love Yourself’로. 그래서, 이지아는 자신을 사랑하나요?
JA 비로소,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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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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