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롬 하츠의 셀틱 롤러 벨트를 주문하고 싶다면? 꽤 탄탄한 구매 이력이 필요하다”

서른 번째 생일에 파리로 가서 크롬 하츠의 유명한 ‘세메터리 링’을 사보려 했다. 몽테뉴 거리 매장 앞에 도착했을 때, 카드까지 준비해둔 상태였는데 입구에 있던 직원이 “내일 아침 11시에 다시 오라”고 했다. 그 정도쯤은 괜찮았다. 레드 와인도 마시고 케이크도 먹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다시 갔다.
오픈 15분 전. 이번엔 워크인 자체를 받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이유는 없다. 그냥 “안 된다”는 한마디. 약간 실망한 채 두통을 안고 걸어 내려오다가 근처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도대체 무슨 일이었는지 곱씹고 있었다.
흥미로웠던 건, 그 상황이 그렇게까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내가 그걸 너무 쉽게 받아들였다는 사실. 크롬 하츠는 일반적인 럭셔리 매장과 다르게 운영된다. 하나의 ‘시스템’에 가깝다. 접근은 불균등하고, 정보는 불투명하며, 가장 좋은 제품은 매장에 거의 나오지 않는다.
이건 나만의 경험이 아니다. 틱톡이나 인스타그램, 레딧만 봐도 비슷한 이야기가 넘친다. 매장 앞에 서 있어도 제품을 못 사는 경우. 그래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리셀 시장으로 눈을 돌린다. 그런데 그것도 쉽지 않다. 가격은 계속 오르고, 물량은 줄고 있다. 이건 단순히 한 브랜드가 비싸진 문제가 아니라, 요즘 럭셔리가 어떻게 유통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크롬 하츠는 1988년 로스앤젤레스에서 리처드 스타크, 레너드 캄하우트, 존 보우먼이 설립했다. 현재는 스타크와 그의 아내 로리 린이 공동 소유하고 있다. 처음에는 소수 고객을 위한 가죽 제품을 만들었지만, 수십 년에 걸쳐 크게 성장했다. 두툼한 실버, 고딕 십자가, 단검 모티프, 올드 잉글리시 서체. 세메터리 링이나 페이퍼 체인 목걸이 같은 아이템은 브랜드를 모르는 사람도 알아볼 정도로 상징이 됐다.
가죽과 주얼리 외에도 의류, 가구, 향수, 아이웨어까지 만든다. 몇 년 전에는 드레이크와 함께 맞춤형 롤스로이스 컬리넌을 제작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빌리 아일리시, 티모시 샬라메, 킴 카다시안 같은 셀럽들이 레드카펫에서 커스텀 크롬 하츠를 입고 등장했다.

2021년 기준으로 LA 생산 시설에만 직원이 1,000명 이상이며, 공식적으로 공개되진 않았지만 기업 가치는 약 10억 파운드 수준으로 추정된다.
수요 구조는 계층적으로 나뉜다. 가장 많이 거래되는 건 티셔츠, 후디, 트러커 햇 같은 입문용 제품이다. 그 위에는 실버 주얼리가 있다. 이건 리셀 시장에서도 꾸준히 가격이 오르는, 일종의 ‘안정 자산’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 위에 데님, 더플백, 원오프 커스텀 같은 희귀 제품들이 있다. 이런 아이템은 가격이 수천만 원대까지 치솟는다.
결국 크롬 하츠는 하나의 브랜드 안에서 두 개의 시장을 만들어냈다. 눈에 보이는 시장과, 관계와 타이밍으로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시장. 가격은 제품이 아니라 ‘접근성’으로 결정된다. 그리고 그 접근성은 철저하게 통제된다.

이 구조는 롤렉스와도 비슷하다. 공급은 제한되고, 입고는 불규칙하며, 기존 고객일수록 더 좋은 제품에 접근할 수 있다. 더 많이 쓸수록 더 좋은 걸 살 수 있는 ‘페이 투 플레이’ 구조다. 크롬 하츠 벨트를 주문하려면 구매 이력이 필요하고, 롤렉스 스포츠 모델을 받으려면 다른 모델을 먼저 사야 하는 것과 같다.
다만 차이점도 있다. 롤렉스는 모델 수가 15개 정도로 제한적이지만, 크롬 하츠는 제품군이 훨씬 다양하다. 그래서 평균적인 제품은 여전히 접근 가능하지만, 진짜 원하는 제품은 결국 리셀로 가게 된다.
그래서 리셀 시장이 핵심이 됐다. 리셀 프리미엄은 사실상 ‘접근 비용’이다. 매장에서 못 사면, 줄을 건너뛰는 대가를 내는 셈이다.
스타일리스트 나야브 타니아는 “가능하면 리테일 가격으로 구하려고 노력하지만, 매장에서 못 구하면 리셀이 마지막 선택지”라고 말한다. 특히 데님 같은 희귀 아이템은 구매 이력이나 유명세가 없으면 접근 자체가 어렵다. 결국 대부분에게 리셀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이를 합리적인 소비로 본다. 버버리에서 마케팅을 하는 모볼라지 올라그베기는 “실버 키체인을 샀는데, 가격 대비 가치가 있다고 느꼈다. 단순 소비라기보다 투자처럼 느껴졌다”고 말한다. 반면 다른 사람들은 더 직설적이다. “비싸긴 한데, 가격이 오를 걸 알기 때문에 괜찮다”는 식이다.
이 현상은 크롬 하츠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글로벌 리셀 시장은 2030년까지 약 2700억 파운드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중 럭셔리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다만 크롬 하츠는 조금 다르게 움직인다. 트렌드를 타기보다, 느리게 가지만 오래 남는 브랜드에 가깝다.
물론 이 구조가 계속 유지된다는 보장은 없다. 시장은 언젠가 식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예전 가격으로 돌아가진 않을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세메터리 링은 10년 만에 329% 가격 상승을 보였다.
결국 핵심은 이거다. 크롬 하츠 리셀 가격이 오르는 이유는 하나가 아니다. 희소성, 셀럽, 수요. 그 모든 게 합쳐진 ‘시스템’이다. 접근을 제한하고, 관계를 보상하며, 나머지는 리셀 시장으로 밀어낸다. 지금 이 브랜드에 들어가고 싶다면 조언은 단순하다. “자산처럼 보지 말고, 그냥 좋아서 사라.” 문제는, 그 ‘그냥 사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