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업계 레거시 속편에서 로맨스는 피어나지만, 종잇장처럼 얇고 지루한 남성 연애 상대들 때문에 대체 왜 그들이 존재하는지 의문만 남는다

*이 글에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에게 정당한 평가를 해주자면, 한 달 전만 해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정도로 꽤 많은 것들을 해낸 영화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재미있고 잘 만들어진 패션 업계 풍자극이다. 즐겁게 복고적인 분위기의 미드버짓 스튜디오 코미디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원작처럼 말이다. 2000년대까지는 이런 영화들이 넘쳐났었다. 앤 해서웨이, 메릴 스트립, 에밀리 블런트, 스탠리 투치는 세련되고 믿음직한 신발처럼 자연스럽게 자신의 역할로 돌아온다. 하지만 동시에 이 영화는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고, 예상 밖으로 어두운 방식으로 오늘날 미디어 산업을 해부한다. 기술 재벌 억만장자 계급이 빠른 돈벌이를 위해 언론의 자유라는 가치를 무시하며 미디어를 갈기갈기 분해해온 현실에 대한 고발인 셈이다. 어쩌면 디지털 시대 속 잡지 산업의 위기를 다룬 영화 중 지금까지 가장 통찰력 있고, 이 업계 사람들에게는 가장 무서운 영화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는 훌륭한 저널리즘 영화다. 누가 이런 걸 예상했겠는가? 하지만 어쩌면 더 놀라운 건, 영화가 가장 분명하게 부족한 부분이다. 이런 종류의 코미디 영화답게 이야기 곳곳에는 몇몇 남성 연애 상대들이 등장한다. 영화의 약 3분의 1 정도가 지났을 무렵, 앤디(앤 해서웨이)는 런웨이의 새로운 피처 에디터로서 성공적인 초반 커리어를 보내고 있다. 그러다 친구에게 끌려 새로 개조된 럭셔리 아파트 단지를 보러 가게 된다. 두 배로 오른 연봉에 어울리는 집이라는 것이다. 곰팡이 핀 욕실과 진흙 같은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를 가진 현재의 좁은 집은 이제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다는 식이다. 그곳에서 앤디는 아파트의 부유한 디자이너 피터(패트릭 브래멀)와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식 첫 만남을 갖는다. 몇 번의 식사와 와인을 거치며 둘 사이에는 사랑이 싹튼다.
물론 그 매력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영화 속에서 드러나는 피터의 모습만 보면 그는 상당히 지루한 인물이다. 지나치게 감성적인 데다, 등뼈라고는 손질된 대구 한 마리 수준밖에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의 주요 성격이라고 해봐야 사실상 “수염 난 건축가” 정도다. 캐릭터로서 그는 런웨이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앤디를 응원하는 역할 외에는 거의 아무 기능도 하지 못한다. 고급 아파트를 잘 판다는 것 외에 개인적인 깊이도 거의 없다. 물론 이런 유형은 영화 역사 내내 여성 연애 상대들에게 반복돼온 이야기이기도 하다. 잘생긴 남자 주인공 곁에 서 있기 위해 존재하는 여자 캐릭터들 말이다. 아주 억지로 좋게 해석하면, 이건 성 역할이 뒤집힌 진보적인 클리셰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피터가 앤디보다 최소 열 살은 많아 보인다는 점은 또 다른 문제다. 이런 성별 기반 나이 차 역시 할리우드에서 꾸준히 반복돼온 요소니까.
브래멀은 주어진 역할 안에서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캐릭터 자체가 대부분 앤디의 일과 삶의 균형 문제를 위한 갈등 요소 정도로만 존재하는데, 그 이상으로 끌어올릴 방법이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첫 번째 영화에서 중요한 축이었던 바로 그 부분 말이다. 확실한 건 그는 2006년 앤디와 환상적인 로맨스를 펼쳤던 저널리즘계 핫가이 크리스천 톰슨(사이먼 베이커) 같은 존재는 아니라는 점이다. 하지만 어쩌면 이것 역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가 전작을 규정했던 밀레니얼식 욕망과 환상을 줄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번의 앤디는 좀 더 현실적인 평범한 남자를 선택한다. 물론 엄청난 돈을 가진 평범한 남자이긴 하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잡지 편집장이 부동산 포트폴리오를 가진 파트너에게 안정감을 느끼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어쩌면 2026년에는 개성이라는 게 훨씬 비싼 사치품이 된 걸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로맨스 서브플롯은 많아야 불필요한 수준이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피터의 등장 장면은 한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다. 앤디가 런웨이 쇼를 위해 이탈리아로 떠나기 전 잠시 헤어지긴 하지만, 그녀의 개인적인 문제는 잡지에 닥친 상황에 비하면 너무 하찮다. 런웨이는 티보어 펠드먼이 연기한 어브의 사망 이후 제국을 물려받은 금융 브로 제이 라비츠(B.J. 노박)와 “이거 완전 베이조스 아니야?” 수준의 억만장자 벤지 반스(저스틴 서룩스) 사이에서 거래될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터와의 관계에는 별로 관심이 가지 않는다. 앤디가 뉴욕으로 돌아와 그와 재회하는 장면은 영화가 말하는 거대한 로맨틱 카타르시스 순간이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냥 피터라는 인물 자체를 잊고 있었다.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 미란다 프리슬리의 새 남편 스튜어트 시먼스(케네스 브래너)도 마찬가지다. 그는 거의 응원하는 남편 역할 이상을 하지 못한 채 뒷자리로 밀려난다. 스크린 존재감은 조금 더 유쾌하고 호감 가지만, 그 역시 없어도 영화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플롯 전체에서 실제로 중요하게 느껴지는 유일한 로맨스 축은, 에밀리 블런트가 연기한 교활한 에밀리와 그녀의 런웨이 쿠데타를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반스 사이의 관계 정도다. 에밀리는 그를 아주 못되게 “내 후원자”라고 부르는데, 그 장면은 꽤 웃기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의 여성 캐릭터들은 정말 훌륭하다. 에밀리의 신랄하고 독한 태도만으로도 10시간은 더 보고 싶다. 미란다 역시 그렇다. 2020년대의 조금 더 친절한 직장 문화에 맞춰 다소 순화되긴 했지만, 그녀 특유의 냉혹함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영화는 그 모습을 다시 119분 동안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다만 영화를 보고 나면 대부분의 남자 캐릭터들이 대체 왜 존재하는 건지 의문만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