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무직자 마크 맥네어리의 서울

2014.11.26GQ

마크 맥네어리는 직업이 없다고 말했다. 취미로 하듯 즐겁게 디자인한 울리치 울른 밀스의 새 컬렉션과 함께 서울에 왔다.

 

 

 

약 20년 전, 당신은 울리치 본사에 편지를 보냈다. 그때의 울리치는 내가 알던 울리치가 아니었다. 정체성을 잃은 채 영혼 없이 대량 생산되는 브랜드. 바꿔보고 싶었고, 그래서 편지를 썼다.

 

비로소 지금 울리치 울른 밀스를 만들고 있다. 울리치를 어떻게 바꾸고 있나? 울리치의 잘 알려지지 않은 다른 역사에서 시작한다. 울리치는 군수용품을 납품하기도 했고 프레피 컬렉션도 선보였다. 재미있는 울리치 역사의 면면을 재구성하는 게 마크 맥네어리식 울리치 울른 밀스다.

 

이번 컬렉션은 어떤 역사를 되짚었나? ‘사냥’. 울리치의 헌팅 컬렉션을 내 방식대로 해석했다. 주제는 ‘헌팅 온 더 문’. 울리치를 대표하는 버팔로 플래드 헌팅 재킷도 회색으로 만들었다. 달 표면을 가만 보면 회색 카무플라주 같지 않나?

 

진짜 마음에 드는 옷 두 개만 고른다면? 세 가지 회색을 쓴 크레이지 헌팅 재킷. 그리고 발리스틱 나일론 팬츠. 발리스틱 나일론은 주로 백팩에 쓰는 재질인데 옷감으로 쓰면 꽤 멋지다.

 

항상 당신 룩북의 신발을 유심히 본다. 이번엔 뉴발란스는 990 베이지색을 썼다. 도쿄의 어느 카페에서 누가 이 신발을 신은 걸 보고 착안했다. 이 베이지색 뉴발란스가 딱이었다.

 

당신이 협업한 케즈 트라이엄프를 자주 신는다또 협업해보고 싶은 신발 브랜드가 있나? 컨버스가 불러주길 기다리고 있다. 성사된다면 원스타나 척 테일러가 좋겠지. 

 

당신이 사랑하는 아메리칸 스타일과 스트리트웨어가 지금 트렌드라 불린다. 이 현상을 어떻게 보나? 아무 생각 없다. 그냥 좋아하는 걸 할 뿐이다. 어릴 때는 프레피 룩이 유행이었지만, 우리 동네엔 브룩스 브라더스 매장은 있지도 않았고 살 돈도 없었다. 구제 숍에서 빈티지 브룩스 브라더스나 군용 카키 팬츠를 샀다. 대학생이 되고 나선 스투시와 꼼 데 가르송에 빠졌다. 슈프림도 오랫동안 입었고. 지금도 그런 옷을 즐겨 입는다. 패션은 변하는 게 아니라 쌓이는 거다.

 

입고 싶은 옷을 만들고 알린다는 데 적극 동의한다. 난 직업이 없다. 취미로 돈을 버는 행운아다. 브랜드에 고용된 대부분의 디자이너는 원치 않는 옷을 만들 때도 있다. 난 그럴 수 없다. 돈을 벌기 위한 디자인은 할 줄 모르니까.

 

운이 좋은 걸까? 당신이 ‘쿨’하다고 생각하는 걸 수많은 사람 역시 ‘쿨’하다고 믿는다. 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 가지를 오래 하면 뭐라도 배우기 마련이다. 

 

그렇게 뭘 배웠나? 자신을 만족시킬 수 있으면 다른 사람도 만족시킬 수 있다는 것.

 

당신이 대체 어떻게 하루를 보낼지 점점 궁금해진다. 7시 기상. 커피포트에 물을 올리고 볼일을 본다. 담배 한 대 태우고 커피와 아들이 먹을 아침을 차린다. 아내와 아들을 내보내고 옷을 골라 입고 피트니스센터에 들렀다 출근한다. 옷 더미 사이에서 어시스턴트 두 명에게 이거 해봐, 저거 해봐 지시한다. 10시쯤 출근해 오후 6시면 퇴근한다. 주말과 밤에는 논다. 내 일은 곧 생각하는 거다. 항상 노트를 갖고 다니면 그만이다.

 

출근할 땐 뭘 타고 가나? 1980년대 빈티지 마세라티 두 대 중 하나를 골라 탄다. 

 

지금 당장 사고 싶은 게 있나? 이미 너무 많은 걸 갖고 있다. 미친 게 아닐까 싶도록 쇼핑 중독이었다. 어딜 가도 ‘미친 듯이 살 테다. 길을 비켜라’라는 표정으로 다녔다. 하지만 원하는 걸 찾지 못한 순간도 있었고, 덕분에 디자이너가 될 수 있었다.

 

그래도 이왕 서울에 왔으니, 뭐라도 하나 사야 하지 않겠나? 꼭 사야 한다면 모자를 사겠다. 속이 깊은 플렉스 핏 베이스볼 캡을 찾고 있는데, 어디서 본 적 있나?

    에디터
    박태일
    포토그래퍼
    이현석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