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안타 [MEN OF THE YEAR – 서건창]

2014.12.05정우영

히어로~ 서건창 안타! 서건창 안타! 오오오오오~ (X2). 넥센 히어로즈의 팬이 아니어도 올해 이 노래를 들어본 야구 팬은 많다. 올 시즌 야구선수 서건창은 역대 최다인 201개의 안타를 쳤다.

야구에 관한 드라마는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는 문장으로 시작하기 일쑤다. 그러나 야구는 타석 이전에 시작한다. 타석 이전의 과정을 건너뛴다면, 글쎄, 야구는 좀 우스워 보인다. 타석에 있을 때 빼고, 타자는 대체로 한가로운 듯하며, 수비하는 내야수는 상대편 주자와 농담도 나누는 것 같다. 그런데 한 경기 평균 네다섯 번 정도의 타석에서 두 번만 안타를 쳐도 ‘멀티히트’라는 상찬이 보태진다. 또한 리그와 구장에 따른 요인까지 고려해서 산출하는 WAR(대체선수 대비 기여 승수)처럼 도저히 스포츠의 영역으로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계산하는 주제에, ‘타격감’이라는 비과학적인 용어로 더 많은 부분이 설명되기도 한다.

 

야구는 피학자의 드라마 같다. 타고난 신체를 여느 스포츠처럼 극한까지 단련시키지만, 여기에 첨단의 IT 기술과 전술, 물리학, 심리학을 더하고 소수점 이하의 숫자까지 동원해서 싸워도 간신히 이기는 것. 야구에서는 ‘간신히’라는 부사가 반드시 필요하다. 올 시즌 넥센 히어로즈의 1번 타자 서건창은 간신히 이기기 위해 무릎을 모았다.

 

서건창은 시즌을 치르며 점점 이상한 타격 전 자세가 돼갔다. 개막전만 해도 예년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던 타격 전 자세는 5월을 지나며 양 무릎이 닿을 만큼 가운데로 모였고, 방망이를 쥔 손은 배꼽까지 내려갔으며, 고개는 거의 어깨에 붙었다. 서건창은 “가장 편안한 자세를 찾다보니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넥센 히어로즈의 염경엽 감독은 “이론적으로 완벽한 자세”라고 덧붙였다. 안정적으로 몸의 중심을 가운데 모았다가 공이 오면 예비동작 없이 곧바로 휘두르기에 공을 오래 볼 수 있고 공을 정확히 맞추는 간결한 스윙이 가능한 자세였다.

 

하지만 그렇게 이상적인 자세라면, 지금까지 서건창의 자세를 왜 다른 선수들에게서는 볼 수 없었을까. 올 시즌 두산 베어스의 정수빈 선수처럼 공표하고 따라한 예가 있긴 하지만, 그건 선수들의 얼굴만큼이나 제각각 다른 이유가 있다. 이 자세는 서건창에게만 유효할 수 있다. 다만 그의 자세는 어떤 희생을 더하면서 몸에 맞는 옷이 됐다.

 

서건창의 타격 전 자세는 은행에서 거금을 뽑아 들고 나온 사람처럼, 자신의 소중한 뭔가를 뺏기지 않기 위해, 몸을 잔뜩 움츠리고 품에 안은 듯하다. 많은 사람이 “참 조신해 보이는 타격 자세”라고 일컫지만, 투수와의 승부에서 위압감을 줘도 모자랄 판에 조신해 보이고 싶은 타자는 없다. 더군다나 ‘남자들의 리그’에서 조신한 모습은 웃음거리이기 십상이다. 서건창의 타격 전 자세는 멋있지 않다. 1인 시위를 하는 비장한 얼굴처럼, 무색무취에 가까울수록 안전하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각오한 사람은 우스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스스로 밝혔듯이 타격 폼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희생을 각오한 사람이라는 은유로서만 중요하다.

 

서건창은 200안타라는 대기록을 세우기까지 10여 경기, 20여 개 안타를 남겨두고도 팀을 위해 안타 욕심을 참고 노 스트라이크 볼넷으로 걸어 나갔다(‘가장 완벽한 타자 서건창의 3루타’ 박동희, <스포츠춘추>). 마찬가지로 경기가 얼마 남지 않아 자신의 타석에만 집중해도 모자랄 시점까지도, 실책 7개에 불과한, 신인왕을 탔던 첫 해와 같은 수비력을 보여줬다(‘서건창의 수비엔 대기록의 이유 있다’ 박은별, <이데일리>). 상대 투수의 투구 수를 늘리는 효과까지 따라오는, 출루를 위해 자기 공이 아니면 치지 않고 기다리는 끈질긴 승부, 깨끗한 유니폼이 어색할 정도로 경기 내내 그라운드를 뛰고 미끄러지는 모습은 일부러 기록을 뒤적이지 않아도 보였다.

 

서건창은 야구 선수들이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개인 기록보다는 팀이 더 중요하다”는 말을 긴 시간 동안 가장 신실하게 보여줬다. 서건창이 몸을 잔뜩 움츠리고 품에 안은 건 안타 201개(역대 최다), 득점 135점(역대 최다), 타율 0.370(시즌 1위), 3루타 17개(역대 최다), 멀티안타 66회(역대 최다), 병살타 1개(200타석 이상 기준 역대 최소)의 기록이었지만, 어쩌면 그건 야구일지도 모르겠다. ‘간신히’ 얻었으므로 다시 뺏길 수 없는 것. 올해 서건창은 가장 야구다운 방식으로 싸웠다.
서건창이 야구를 하기 위해 걸어온 과정은 익히 알려져 있다. 홀어머니가 진 생계의 짐을 한시라도 빨리 덜어드리고자 대학을 마다하고 LG에 신고 선수로 입단, 대타로 들어선 유일한 타석에서 삼진 아웃 당한 후 방출, 프로야구 선수들에게 열려 있는 병역특례 입대도 기대할 수 없어 소총수로 군 입대 그리고 제대, 넥센이 연 2011년 공개 트라이아웃을 통해 가까스로 입단. 그렇게 프로야구 무대 첫 타석에 들어서기 전까지의 서건창을 곱씹는다면, 경기장 안에서의 야구는 얼마나 단순해 보이는지. 타석에 들어서기 이전의 야구도 야구다.

 

2014년 11월 8일 한국시리즈 4차전이 벌어지는 목동 경기장, 1회 초 1번 타자로 서건창이 타석에 들어섰다. 그때까지 서건창은 한국시리즈 안타 하나에, 타율 8푼 3리라는, 시즌 중의 그를 떠올린다면 상상할 수 없는 성적을 기록하고 있었다. 게다가 3차전에서는 결정적인 수비 실책에 간접적으로 가담한 터였다. 서건창의 얼굴에는 ‘꼭 살아나가겠다’는 결의가 비쳤다. 볼카운트 2-2에서 좌중간으로 향하는 안타를 쳤다. 놀라운 것은 그 다음이었다. 2번 타자 이택근의 타석에서 2루 도루에 성공하더니, 3번 타자 유한준의 볼카운트가 2-2까지 올라가자 이번에는 3루를 훔쳤다. 이어서 유한준의 희생플라이로 넥센은 이날 승리의 발판이 된 첫 득점을 올렸다. 서건창의 연속 도루가 아니었다면 나올 수 없었던 점수였다.

서건창은 ‘교수님’이라고 불린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누군가가 ‘서건창 왜 이렇게 잘해’라는 글을 올리자 다른 팬들이 ‘이렇게 잘하는 선수한테 서건창이 뭐냐, 서건창 선생님 하자’라는 댓글이 달린 게 시작이었다. 이제는 선생님도 모자라다며 ‘교수님’이다. 2루로 도루하는 서건창을 보면서는 박수만 치고 있었다. 하지만 다시 한번 3루를 훔치는 서건창 앞에서는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이제 ‘교수님’의 강의가 있는 날에는 혼자서 일어나 박수를 치게 될지도 모르겠다.

    에디터
    정우영
    사진 제공
    넥센 히어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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