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우드 특수효과는 누가 어떻게 만드나? – 1

영화판을 완전히 뒤집은 곳,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몰라보게 변모시킨 곳. 특수효과 스튜디오 ILM의 이야기다. 그 전설적인 이야기를 43명의 증언을 통해 재구성했다.

조지 루카스(ILM 창업자)가 자신만의 특수효과 스튜디오를 막 꾸릴 때만 해도 <스타워즈>를 만드는 것 외엔 다른 일도, 이름도 없었다.

1970년대 중반, 젊은 조지 루카스는 <스타워즈>를 들고 할리우드를 찾았지만 연일 퇴짜를 맞았다. 당시는 <택시 드라이버>와 <형사 서피코>의 시대였고 제작자들은 진하고 강한 드라마를 원했지, 팝콘이나 먹으면서 볼법한 우주 서사시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루카스에게는 이보다 더 큰 장애물이 있었다.

당시 조지 루카스가 구상한 대로라면 <스타워즈>는 애초에 그 시대의 기술로는 구현이 불가능한 영화였다. 20세기폭스사는 시나리오 고료로 루카스에게 25만 달러를 지불했고, 그가 <아메리칸 그래피티>로 최우수 오스카상에 지명되고 나서야 <루크 스타킬러의 모험에서 전해진 휠스의 수기 그 첫 번째: 스타워즈> 제작을 승인했다. 그러나 당시 폭스에는 특수효과 제작부가 없었기 때문에 루카스는 이 부분을 직접 해결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곧 상황에 적응했고,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특수효과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데 일조했을 뿐만 아니라, 영화계의 판도 자체를 뒤바꿀 전설적인 회사를 창설했다. 인더스트리얼 라이트 앤 매직(ILM, Industrial Light and Magic)사는 1975년 반 누이스 공항 근처의 숨막히게 더운 창고 안에서 태어났다. 인력은 대부분 풍부한 상상력과 탁월한 손재주로 무장한, 대학을 갓 졸업(혹은 중퇴)한 젊은이들이었다.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크리처, 우주선, 계기판, 카메라 등을 이들이 제작했다. 제작 진행은 원만하지 않았고 스케줄도 종종 밀리곤 했지만, ILM의 초짜 아티스트와 엔지니어들은 기어코 관객들을 머나먼 은하 너머로 데리고 가는 데 성공했다. 올해 창업 40주년을 맞는 ILM은 3백17편에 달하는 영화의 특수효과를 담당했지만, 이러한 실적은 시작에 불과하다. 픽사Pixar는 ILM의 내부 프로젝트에서 비롯됐고, 컴퓨터 프로그램 ‘포토샵’ 역시 소일거리로 프로그래밍을 건드려보던 ILM 직원이 일조한 부분이 있다. 수억 줄의 프로그래밍 코드를 ILM에서 개발했다. 컴퓨터그래픽으로 해적의 수염에 촉수를 단 것도, 사람을 액체 금속 모양으로 녹여낸 것도,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든 공룡과 슈퍼히어로 등으로 박스오피스를 지배한 것도 ILM이었다. 그러나 ILM을 독보적으로 차별화하는 부분은 어떤 성향이나 느낌(이런 것들은 프로젝트마다 새로 바뀐다)이 아니라 본 인터뷰에서 만나본 43인이 조각조각 들려주는 끝없는 혁신의 정신이다. ILM을 지탱하는 것은 포스Force 그 자체라고 표현할 수 있다.

 

1 태동기

“산업과 빛도 좋지만 결국 필요한 건 ‘마법’일 거야.”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루카스는 “우주 오페라 판타지류” 작품을 구상했고, 아티스트 랠프 맥쿼리에게 몇 개의 스케치를 의뢰했지만 기술적 한계에 봉착했다.

조지 루카스(창업자) 장면들이 숨가쁘게 움직이고, 패닝샷이 많아야 하고, 막판에는 거대한 우주전쟁이 나오고…. 영화는 이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 시절에는 그런 게 불가능했죠. “어떻게든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결국 제 무덤을 판 거죠.

데니스 뮤렌(크레이티브 디렉터) 영화계에서 이따금 <대지진>이나 <타워링> 같은 특수효과물을 가미한 영화를 내놓긴 했지만, 수도 많지 않았고 딱히 미래가 보이진 않았죠.

스티븐 스필버그(감독, 프로듀서) 조지는 “한 달에 한 가지씩 해결해나갑시다”라고 얘기했습니다.

루카스 먼저 젊은 친구 몇몇을 고용했습니다. 그중에 장편영화를 만들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죠.

존 다익스트라(시각효과 슈퍼바이저) 조지 루카스의 연락을 받고 그와 유니버설사 앞에서 만났어요. 그는 <스타워즈>에서 2차 대전 당시 기관총 사수의 시점으로 본 것과 같이, 액션 한가운데에 있는 느낌을 살리고 싶다고 했어요.

루카스 저는 샌프랜시스코에 작업장을 차리고 싶었지만, 거기엔 필름 처리소가 없다고 존이 극구 말려서 로스앤젤리스에 남았습니다. 결국 반 누이스에 있는, 공항 근처의 공업용 창고를 작업 장소로 정했습니다.

스티브 가울리(모형 제작/슈퍼바이저) 딱히 인테리어라고 할 만한 것은 전혀 없었고, 가로 세로 1미터 길이의 철골에 플라스틱으로 된 벽만 있었습니다. 가끔 우리는 음악을 아주 크게 틀어놓곤 했는데, 당시 플리트우드 맥의 ‘루머스’가 유행이었어요. 벽이 플라스틱이라 도로 볼륨을 내려야 했죠.

루카스 전체 인원이 45명 정도였고, 평균 연령은 스물다섯에서 스물여섯 정도였습니다.

찰리 베일리(크리처, 모형 제작) 인원 모두가 산업디자이너, 건축가, 아니면 엔지니어였어요.

가울리 길 건너편에 중고 군수품 매장이 있었어요. 모델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 그곳에서 별의별 고물을 다 얻어왔어요.

루카스 회사 정관을 작성하면서 “이름을 무엇으로 정하지?”라는 말로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회사는 산업 단지에 자리 잡았고, 촬영을 위해 다익스트라플렉스 시스템을 설치하고 있었으니 ‘빛’도 있었죠. 결국 마지막에 제가 “산업industry과 빛light도 좋긴 하지만 결국 필요한 건 마법magic일 거야. 마법이 없으면 아무도 보지 않을 영화를 만들 것이고 우리는 망하겠지”라고 했죠.

다익스트라 창고는 면적이 약 1천3백 제곱미터였고, 냄새가 지독했으며 정말 지옥보다도 더웠습니다. 촬영 모델에 6천 와트 조명을 치면 온도가 54도를 넘어갈 정도였어요.

론 피터슨(모형 제작, 모형 숍 슈퍼바이저) 누군가가 커다란 물탱크를 들고 와 시원한 물을 채워 넣고 쉬는 시간마다 거기 들어가 몸을 식혔습니다.

다익스트라 고물상에서 727여객기의 비상탈출용 미끄럼틀을 구해왔습니다. 거기에 기름과 물을 칠하고 놀이기구로 활용했지요.

가울리 우리는 가끔 오후에 점심거리를 싸들고 가서 골프도 쳤습니다. 한 시간에 6~7홀 정도 쳤는데, 이동하는 내내 뛰었죠.

피터슨 산소 탱크도 있었습니다. “음, 이거 그냥 냄새만 특이하고 아무 효과 없잖아?” 라고 생각했는데 복도에서 동료들이 저보고 왜 계속 웃고 있냐고 물었어요.

가울리 스튜디오의 재무 담당자들은 우리가 문을 닫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들은 우리에게 ‘컨트리 클럽’이라고 놀렸지요.

다익스트라 룰에 맞춰서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어서 우리는 평판이 그리 좋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새벽 3시까지도 계속 일했지요.

피터슨 촬영은 더디게 진행되었습니다.

다익스트라 그런 영화를 기술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장비나 프로세스가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이었고, 또 그에 비해 촬영해야 할 양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촬영 장비가 제대로 작동하기까지만도 거의 1년이 소요되었어요.

루카스 영화 전체 예산이 9백99만 달러였는데, 그중 시각효과 예산이 2백만 달러였습니다. 카메라 비용으로만 40만 달러가 들었고요.

다익스트라 별의별 희한한 기술을 다 동원해서 촬영 장비를 제작했습니다. 컴퓨터도 만들었고요. 필요한 전자기기는 처음부터 직접 디자인해서 제작했습니다.

가울리 카메라를 굴릴 트랙이 대략 6~8미터 폭에 길이는 1.2~1.5 킬로미터 정도였습니다.

다익스트라 고맙게도 촬영 장비 이름(다익스트라플렉스)에 제 이름이 붙긴 했지만, 거기 있던 사람 모두가 일조했습니다.

피터슨 촬영 후 영국에서 돌아온 조지는 실망했어요.

루카스 그들은 영화 제작에서 시간이 얼마나 결정적인 문제인지 잘 몰랐지요. 하루라도 늦으면 전체 프로세스가 막히죠. 하나의 거대한 모자이크처럼 각 파트가 맞물려야 하는 겁니다.

스필버그 특수효과 장면들이 2차 대전 때 흑백 뉴스처럼 대체된 가완성본을 보았습니다.

루카스 촬영할 장면이 8백 개 정도 있었는데, 1년 동안 1백만 달러를 쏟아 붓고서 대포가 ‘쾅 쾅 쾅’ 하는 장면 하나 달랑 완성했죠. 저는 “어쨌든 시작은 시작이니까” 라고 말했습니다. 이때가 1976년 8월이었는데, 영화는 1977년 5월에 완성되었습니다.

<드래곤 슬래이야>, 1981.

 

2 새로운 보금자리

“이것저것 해보자.”

<스타워즈>는 상영되자마자 대히트를 기록했다. 하지만 개봉 뒤 하와이로 휴가를 떠난 루카스는 영화가 얼마나 대박을 쳤는지를 동료들에게서 전화로 전해 들었다. 성공을 짐작도 못했던 루카스는 휴가에서 돌아와 작업장을 북부 캘리포니아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다익스트라를 비롯한 몇 명은 동행하지 않았다.

루카스 제작 직후 저는 완전히 탈진해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결국 “후편도 내가 제작할 수 있겠어”라는 생각을 품게 되었죠. 산 라파엘에 부지를 정하고 이사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가울리 20명 정도가 그쪽으로 이사했고, 작업장을 다시 만드는 일을 맡았지요.

스필버그 커너 가에 있는 곳이었죠.

베일리 그전에 있던 업체인 커너광학Kerner Optical 간판은 그대로 달아두었습니다. 갑자기 유명해진 터라, 온갖 사람들의 관심이 쏟아졌죠. 심지어는 우리 쓰레기를 뒤지는 사람도 있었고, 꽃 배달원으로 분장하고 안으로 들어오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케리 필립스(R&D 슈퍼바이저) 당시 공장은 거의 쓰레기장이었지만, 우리들은 “이것저것 해보자” 라는 마음으로 충만했지요.

캐슬린 케네디(앰블린 엔터테인먼트 공동 창업자) 뒤에 초콜릿칩 쿠키 공장이 있었는데, 그 냄새가 작업장까지 풍겨왔어요.

머렌 존은 조지와 스타일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전자공학 쪽에는 능했지만 즉흥적으로 일을 때우는 타입이었죠.

다익스트라 저는 샌프랜시스코에 가고 싶지 않았고, 초대를 받지도 않았습니다.

머렌 조지에게서 아무런 연락이 없어서 그의 프로듀서인 개리 커츠에게 전화했어요. 제가 존 쪽 사람인 줄 알고 연락을 꺼린 것인데, 저도 따라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피터슨 그리고 40년 뒤….

스필버그 현재 생존한 사람 중 오스카상 최다 수상자가 바로 데니스 머렌이죠.

머렌 <제국의 역습>은 제가 작업한 영화 중 가장 힘들었습니다. 우리 자신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작업을 직원들에게 가르쳐야 했지요.

루카스 <제국의 역습>에서 관건은 요다였습니다. 우리는 우주선이 나는 모습은 잘해낼 수 있었지만, 60센티미터짜리 외계인을 꼭두각시가 아닌 실물처럼 보이게 하는 건 할 줄 몰랐죠.

론 하워드(감독, 프로듀서) 조지가 쓰던 작업장들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제국의 역습>을 위한 소품들을 보고 넋을 잃었습니다. 산타 할아버지 작업장에 들어간 어린애 기분이었어요.

스필버그 일단 거기 있는 것 자체가 재미있었어요. 정신 나간 음향/시각 효과 전문가들과 함께 지냈고, 간혹 촬영이 없을 때는 M-80 불꽃을 터뜨려 온 동네를 시끌벅적하게 만들곤 했습니다. 당시 제가 30대 초반이었는데, 그처럼 재미난 놀이터는 다시 없었어요.

 

3 컴퓨터 효과의 시대

“그는 도통 알 수 없는 얘기를 했는데, 완전 흥분됐어요.”

루카스와 스필버그 사이의 긴밀한 관계 때문에, ILM은 한동안 스필버그가 감독한 작품들의 특수효과는 무조건 맡게 되었다. <제국의 역습> 이후 몇 년간 스필버그 작품들에 투입되었고, 이때부터 서서히 디지털 효과로의 전환이 시작되었다.

루카스 <인디아나 존스: 잃어버린 성궤를 찾아서>와 <ET>를 제작하고 나서, <스타워즈>뿐만 아니라 다른 영화의 효과도 맡을 수 있는 제대로 된 회사를 차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머렌 그 후 2년간 <스타워즈>가 아닌 영화를 제작했는데, 총 다섯 편을 만들었지요. 디즈니의 <드래곤 슬레이어>를 제작하면서 우리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에 블러 효과를 가미해 더 사실적으로 보이게 하는 방법을 개발했어요.

존 놀(치프 크리에이티브 오피서) 마치 용이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어떻게 한 거죠?

머렌 필 티펫이 제작한 미니어처 용이 있었는데, 그것을 애니메이터들이 매 프레임마다 움직이게 하는 방식이 아니라 느린 속도로 움직이게끔 프로그래밍을 했지요. 그걸로 기술공로상을 받았습니다. 그 기법을 우리는 ‘고 모션go motion’ 이라고 불렀는데, 많은 사람이 지금도 그게 최고의 특수효과 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에드 캣멀(픽사 대표) 조지는 기술적으로 발전한 기법을 도입하고 싶어 했어요. 뜬금없이 받은 연락이 저에겐 일생일대의 기회가 된 것이죠.

루카스 ‘컴퓨터부’ 라는 부서를 만들었습니다. 에드, 알비 레이 스미스 그리고 에드가 알던 MIT 출신 친구들 다수를 영입했지요. 새로운 부서는 ILM 건물 바로 옆에 있었지만, ILM과는 별도로 운영했습니다.

캣멀 저는 1979년 7월에 합류했습니다. 조지가 런던에서 <제국의 역습>을 촬영하던 첫 몇 달 동안은 그의 집무실을 썼지요.

루카스 그에게 필요한 장비의 목록을 제시했습니다. 디지털 에디팅 시스템 그리고 그래픽 전용 컴퓨터. 그러니까 비주얼 컴퓨터인 ‘픽사Pixar’ 였죠. 그것으로 처음 작업한 장면은 <스타트렉 2> 에서 황무지인 행성이 초목이 우거진 모습으로 바뀌는 것이었습니다.

캣멀 컴퓨터로 만든 이미지들을 실사영상과 합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젊은 셜록 홈즈>와 <어비스>에 그런 장면이 들어갔지요.

스필버그 <셜록>에서의 장면은 존 래시터가 창안한 것입니다. 교회의 유리 모자이크에서 템플러 기사단이 뛰쳐나와 신부를 공격하는 장면이요.

빌 조지(시각효과 슈퍼바이저) 유리 모자이크 장면을 통해 우리는 컴퓨터 그래픽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여러 가지 놀라운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CG가 마법과도 같은 장면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루카스는 픽사 컴퓨터로 검술 실력을 뽐내는 요다를 구현하고 싶어 했던 반면 캣멀과 그의 동료들은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어 했고, 결국 픽사는 ILM 본사에서 떨어져 나왔다. ILM은 픽사 측의 기술력을 이전받는 대신 컴퓨터 장비와 개발부를 ‘픽사’ 라는 이름으로 스티브 잡스에게 매각했다. 한편 ILM의 위상은 점점 높아졌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6 : 제다이의 귀환>으로 <스타워즈> 시리즈를 보강하는 한편 <백 투 더 퓨처>, <코쿤>, <구니스> 등 1980년대 히트작들에 연달아 참여했다.

제임스 캐머런(감독, 프로듀서) ILM은 당시 가장 권위 있는 특수효과 스튜디오였습니다. 잘나가는 큰 스튜디오에서 거대한 예산의 영화 제작을 맡았다면 당연히 ILM을 찾아갔습니다.

베일리 <하워드 덕> 제작 중 깃털의 느낌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본격적인 R&D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주당 1백 시간 넘게 일한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수술용 가위로 깃털을 하나씩 조심스레 다듬었어요. 영화 크레딧에 ‘깃털 담당’이 올라갈 정도였죠.

루카스 언젠가는 마블에서 <하워드 덕>을 리메이크 했으면 좋겠습니다. 디지털로 구현한 오리가 주인공으로 나온다면, 원본도 꽤 괜찮은 영화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거예요.

ILM에 신입으로 들어가면 야간 근무를 맡았습니다. 저는 저녁 7시부터 아침 5시까지 근무했는데, 남는 시간에는 미시간대 소프트웨어공학 박사 과정 중이었던 제 형과 이런저런 구상들을 했습니다. 그게 결국에는 포토샵이 되었죠.

머렌 <고스트버스터즈 2>를 마치고 <윌로우>를 시작하기 전쯤, 뭔가 벽에 부딛친 느낌이었습니다. CG 기법은 움켜쥘 수 없는 당근처럼 느껴졌어요. 10년 전부터 이런저런 기대를 부풀려봤지만 제대로 된 결과물은 나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워드 본격적으로 <윌로우> 작업을 진행하면서 아주 큰 변화를 겪었죠.

루카스 그 영화 대본을 보면, 처음에는 염소였던 것이 온갖 동물로 변신했다가 결국에는 노파의 모습으로 변합니다.

하워드 늑대인간 변신 장면과 비슷한 방식(의수나 용해액 같은)으로 접근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데니스 머렌이 회의실로 들어와 이렇게 말했어요. “변신 과정을 좀 더 매끄럽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카메라로 찍는 게 아니라, 전 과정을 컴퓨터 안에서 구현하는 겁니다.” 그는 도통 알 수 없는 얘기를 했는데, 완전 흥분됐어요.

콜린 트레보로우(<쥬라기 공원> 감독) 제가 어릴 적에 아버지께서 저를 <고스터버스터즈 2>에 엑스트라로 출연시키려고 이곳 커너광학에 데리고 오셨습니다. 그때 그게 얼마나 특별한 일이었는지 아마 어린 저는 몰랐겠죠.

캐머론 1988년, 제가 <어비스> 작업을 시작했을 때입니다. 꿈틀거리는 물기둥이 올라오고 거기서 얼굴이 드러나는 장면이었는데, 어떻게 구현해야 할지 참 난감했습니다. 당시 CG는 아직 모험적인 기법이었고, 그것을 필름 영상 속에 녹여낼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캣멀 당시 픽사는 신생업체였는데 ILM과 함께 경쟁 입찰했습니다. 캐머런은 결국 그 작업을 ILM에 맡겼는데, 아마 옳은 결정이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로서는 컴퓨터로 구현이 안 되면 접근할 방법이 없었으니까요.

캐머론 ILM 사람들이 그런 태도를 보일 줄은 몰랐는데, 데니스 머렌은 굉장히 큰 흥미를 보였습니다. 그는 유동적이고 흐물거리는, 아주 복잡한 표현이 가능한 표면체를 만들어냈습니다. 특수효과 역사에 길이 남을 공헌이었죠.

 

4 아웃사이더 군단

“뭐든지 마음 가는 대로 했어요.”

캐머런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비스>는 ILM과의 ‘첫 데이트’ 였다. 그 다음 데이트는 컴퓨터그래픽을 이용해 할리우드가 벌인 최대의 도박이었다. 광기어린 천재성과 록스타급 인지도를 뽐내는 인재들이 모였다.

캐머론 <터미네이터 2>는 당시 제작비 최고액 기록을 갈아치운 영화였는데, 관건은 액체 금속으로 된 악당 녀석이었지요. 10억 달러짜리 영화의 두 주인공 중 한 명을 CG로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심리적 압박이 엄청났습니다.

스티븐 팽메이어(시각효과 슈퍼바이저) 그래픽 개발부는 규모는 작았지만 다들 혁신정신이 충만했습니다. 지금이야 온갖 소프트웨어를 그냥 구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필요한 모든 걸 그때그때 개발해야 했습니다.

캐머런 스티브 윌리엄스와 마크 디페 덕에 문제점을 많이 해결했습니다.

마크 디페(시각효과 프로듀서) 우리는 뭐든지 마음 가는 대로 했어요. 우리가 ILM 소속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조지 정신 나간 것처럼 보이는 스티브 윌리엄스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고 하키도 했습니다. 그는 후배들에게 우상이었죠. 그와 마크 디페는 컴퓨터 앞에 붙어 사는 안경잡이 샌님들이 아니라,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놀라운 아이디어를 쏟아내는 괴상한 친구들이었습니다.

스티브 윌리엄스(시각효과 슈퍼바이저) 컴퓨터 시스템이 제발 멈추지 말라고, 기계에 대고 백파이프 연주를 해줬습니다.

디페 우리가 하도 시끄럽게 굴어서, 그들은 우리를 방음 처리된 음향 믹싱실에 처박았습니다. 우린 그곳을 ‘구덩이’라고 불렀죠.

윌리엄스 거기서 볼륨을 끝까지 올려놓고 베토벤도 듣고 앨리스 쿠퍼의 <러브 잇 투 데스>도 들었죠.

알렉스 예거(아트 디렉터) 매우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면 나오는, 어두컴컴하고 창문이 없는 방이었습니다.

디페 T-1000 역을 맡은 로버트 패트릭은 우리의 꼭두각시가 되는 데 흔쾌히 응해줬습니다.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처럼 가만히 서 있는 동안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그의 몸에 조심스레 격자선들을 칠했지요. 그 선들을 이용해 컴퓨터에서 그의 얼굴을 완전히 재현했습니다. 정말 고생스러운 작업이었지만 그는 불평불만 없이 해주었습니다.

팽메이어 트럭이 박살나고 잔해에서 T-1000이 걸어 나오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의 금속성 피부에 잔해의 불씨가 반사되는 것을 구현하고 싶었어요.

개리 리드스트롬(사운드 디자이너, 감독) 정신병원에서 T-1000이 문 사이로 스르륵 통과하는 장면 기억나요? 그 장면 음향효과는 비용이 75센트 들었습니다. 개밥이 통조림에서 천천히 빠지는 소리가 안성맞춤으로 그 장면에 맞아떨어졌거든요.

캐머런 매번 최후의 5퍼센트를 남겨놓은 상황에서야 제대로 된 장면을 얻는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격자 프레임으로 된 영상을 보면서 “세상에, 이걸 어느 세월에 하지?” 하고, 격자 프레임이 아니라 회색 곡면으로 된 영상을 보면 “음, 이건 그래도 좀 낫나?” 하는 마음이 됐다가, 최종 결과물에서는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좋은 장면이 나오는 거죠.

<어비스>,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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