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SNS로 음식 버무리기

2015.12.24손기은

음식, 맛집, 셰프 이야기가 잘 팔리는 시대의 웃지 못할 이야기.

Food판형

지난 12월 10일,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한 블로거의 글이 빠르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제목은 ‘녹차를 마시느니 차라리 걸레 짠 물을 마셔라’이고 ‘최진규 녹차학교’라는 블로그에 게재 된 글이었다. 삽시간에 여러 사람의 뉴스피드를 점령한 이 글은 자극적인 제목만큼이나 내용도 극단적이었다. 녹차에 든 카페인과 불소의 양이 치명적이어서 위장을 깎아내고 뼈를 망가뜨린다, 그래서 카페인은 살충제이며 제초제이고 녹차를 마시는 일은 ‘송장탕’을 마시는 것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결론으로 글을 끝맺었다. 반향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리트윗’과 ‘좋아요’를 타고 해당 글은 빠르게 팽창했다. 어떤 이들은 제목만 읽고 자신의 SNS에 코멘트를 달았고, 한 인터넷 매체는 ‘식약청이 살펴봐야 한다’는 부가 설명을 달고 3일 뒤 블로그 내용을 기사화하기도 했다. 조금만 천천히 뜯어보면 애초에 하나의 팩트만을 가지고 무섭도록 잘못 해석한 부분이 많은 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번져 나가는 글에는 되감기 기능이 없었다.

물론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다. 카페인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일부러 강력한 어조로 쓴 것이라면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독성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 없는 상태에서 쓴 글이 우리 사회에서는 너무나 쉽게 신뢰를 얻고 너무나 빠르게 대중에 노출된다. 녹차에 든 카페인을 무조건 독성물질 취급하기 전에 치사량, 반수치사량, 체내 축적 중에서 하나만을 한 번만이라도 고려했다면 일상적으로 마시는 녹차가 순식간에 ‘독’으로 인식 되는 우를 범하지 않을 수 있었을 테다. 기초적인 팩트도 챙기지 못한 사람의 짧은 글이 이렇게 파장을 일으킨 데는 음식이나 먹거리 이슈에 대해 유난히 휘둘리고 있는, 갈수록 더 편향적이고 획일적으로 변하고 있는 사회가 근간을 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우리는 ‘음식’, ‘맛집’, ‘셰프’로 이슈의 대부분을 소비했다. TV와 잡지 같은 대중매체는 물론이고 SNS상에서도 개개인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이슈가 양산됐다. 그 덕에 문을 연지 한 달도 안 된 레스토랑이 순식간에 예약률이 100퍼센트에 이르는 레스토랑이 되기도 하고 조용했던 식당이 갑자기 스타가 되기도 했다. #foodporn이라는 해시태그를 단 먹방 사진은 이 순간에도 몇백 장씩 올라오는 중이다. 맛집을 추천하는 페이스북 계정도 쉴 틈이 없다. ‘연말연시 모임하기 좋은 맛집’, ‘와인 콜키지가 없는 맛집’, ‘테라스가 예쁜 맛집’ 등의 이슈에 맞춰 카드로 제작된 뉴스는 밀어도 밀어도 또 새로운 뉴스가 나온다. 음식과 미식이 온 국민의 놀잇감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가 화장품의 유행처럼, SPA 브랜드의 인기처럼, 진입 장벽이 낮아진 취미 활동처럼, 새로운 아이돌 팬덤이 형성되는 것처럼, 음식도 그렇게 쉽고 편하게 소비하는 대상이 된 것이다.

그래서 문제될 것이 있나? 물론 정보가 넘치는 자체로는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쉽게 식음료 분야에서 준전문가로 활약할 수 있는 플랫폼과 정보를 얻게 됐다는 점 역시 나쁠 리 없다. 누가 정리해주지 않아도 트렌드를 알아서 체득하고, 몇 번의 클릭으로 맛집 정보를 얻고, 마치 직접 다녀온 듯 생생한 후기까지 확인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하지만 이슈와 정보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오자 소용돌이의 중심이 되고 싶은 이들이 정보를 너무나 쉽게 생산, 재생산한다는 것이 문제다. 음식 정보와 맛집 정보가 잘 팔리고 이 정보를 중심으로 사람과 ‘좋아요’가 몰리는 것을 SNS 생태계가 그냥 놔둘 리 없다. 음식 정보와 맛집 정보를 생산하는 이들은 인터넷 매체가 포털 사이트에서 클릭을 유도하던 과거의 그 방식으로 대중들의 ‘좋아요’를 유도한다. 인터넷 매체가 그랬듯 자극적이고 선정적이고 충격적인 방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우수수 ‘낚인다’.

‘녹차를 마시느니 차라리 걸레 짠 물을 마시라’고 고함치던 그 글이 올라오기 며칠 전에는 양식 연어의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한차례 이슈가 되기도 했다. 주변에 갑자기 많아진 연어 음식점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유전자 조작, 약품, 색소, 기생충을 언급하며 양식 연어를 먹지 말라고 권하는 글이 여러 번 올라왔다. 양식 연어의 규정조차 찾아보지 않고 떠드는, 심지어 몇 해 전부터 계속돼온 케케묵은 이 논란이 또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충격 리포트’처럼 그럴싸한 포장을 입혀 다시 생산하는 루머에 사람들은 또 휘둘렸다. 그렇게 기하급수적으로 이슈가 퍼져나갔다.

시간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지난 11월 말에는 ‘바나나가 헐값이 된 이유’라는 게시물이 한차례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휩쓸었다. 필리핀에서 생산된 농약에 찌든 바나나가 일본 수출길이 막히자 한국에서 대량 수입하기 시작했고, 그 때문에 바나나 가격이 폭락했다는 것이다. 물론 잘못된 정보다. 우리나라에 갑자기 바나나가 풀리기 시작할 당시 바나나 수입국이 전부 필리핀도 아니었고, 수입되기 시작한 것 역시 일본의 재고품을 받은 게 아니라 농산물 수입자유화 조치 때문이었다. 최근엔 아주 귀여운 루머도 발견했다. 달걀을 오래 삶으면 노른자 주위가 회갈색으로 변하는 걸 두고 이는 유전자 변형 달걀, 즉 GMO 달걀이라고 명시한 글이다. 달걀을 너무 오래 삶거나 찬물에 바로 넣지 않으면 황(흰자)과 철(노른자)이 반응해 황화철이 된다는 사실을 정말 몰랐을까?

무엇보다 SNS를 통해 뜨겁게 달궈진 음식 분야지만, 이런 식이라면 발전은 한없이 요원해 보인다. 음식이 누구나 가볍게 즐기는 유희가 된 이 시점에서 진짜 필요한 건 진중하게 경험하고 스스로 검증하는 일종의 자기 학습이다. 계속해서 <먹거리 X파일> 식의 자극적인 오류에 휘둘리다간 이 재미있는 놀이의 기반마저 사라질 수 있다.

음식이 최고로 잘 팔리는 이슈가 된 지금 경계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맛집 유행에 뒤떨어지기 싫어서, 인증샷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믿을 만한 친구가 맛있다고 해서, 5대 천왕이라는 타이틀에 홀려서, 줄이 길게 늘어진 맛집이라는 이유로 식당을 찾는 일이다. ‘유행’이 ‘획일화’의 덫을 벗어나 ‘성장’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위와 같은 동기는 일종의 걸림돌이 아닐까? 정말 맛있는 음식에 대한 경험치를 쌓고 서로의 취향이 제각각 선명할 때 음식 분야는 더 발전할 동력을 얻는다.

전 세계적으로 음식이 화두인 세상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지구 곳곳의 전문가와 셰프도 바뀐 토양이 힘들긴 마찬가지다. 뉴욕에서 ‘모모후쿠’ 레스토랑 타운을 건설한 데이비드 장 셰프는 지난 7월 미국 <GQ>의 한 칼럼을 통해 이런 말을 했다. “인터넷을 통해 사람들이 음식 정보를 쉽고 빠르게 접할 수 있게 되면서 요리사들은 더 이상 공부하지 않아도 경험을 쌓을 수 있게 됐다. 아이폰으로 쉽게 다른 요리를 접할 수 있는 세상이다 보니 레스토랑들이 이제 서로 비슷비슷한 음식을 내기 시작한 것 같다. 갈수록 우리가 먹는 음식이 ‘일반화’되고 있다. 레스토랑의 요리사들이 각자의 생각과 개성을 발굴하지 않으면 이 집이 저 집 같고 저 집이 이 집 같아 보이는 현실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무한히 공유되는 SNS 세상에서 접시 위 음식도 가혹한 세계로 내몰린다. 정신없이 윙윙거리는 ‘좋아요’와 뉴스피드의 홍수 속에서 음식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소통도 하고 재미도 있는데 이런 말들이 괜한 잔소리처럼 보일까? 그래도 잘 팔린다고 마구 찍어내다가 애써 쌓아놓은 식문화의 기반 마저 무너뜨리는 건 아닐까? 음식 이슈가 많으면 요식업이 더 살아날 텐데 괜한 태클일까? 자꾸 물어봐도 답은 하나. 이대로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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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손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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