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포스트 휴먼 시대의 건축

2016.11.06GQ

네덜란드의 슈퍼스타 건축가인 렘 쿨하스는 새로운 매혹에 빠졌다. 첨단 기술 회사에서 디지털 경제의 원동력이 될 거대한 공장을 짓고 있는 도시와 시골 사이의 광활한 공간이 그 대상이다. 그곳은 사람들이 거의 신경 쓰지 않는 새로운 미학의 장이다.

미국 네바다 주 테슬라 모터의 기가팩토리 1 지붕을 따라 그려진 붉은 선이 인상적인 테슬라 공장은 세계 어느 건물보다 지도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그리고 테슬라 모델 3의 성공에 따라 추가 확장도 염두에 두고 있다. 테슬라가 스토리 카운티를 공장 입지로 선택한 이유는 네바다 주에서 제공하는 12억 5천만 달러 규모의 보조금 때문이기도 하다. 네바다 주는 향후 20년 동안 1천억 달러의 경제적 이득을 예상하고 있다.

독일 공군은 1940년에 로테르담을 완전히 파괴했다. 렘 쿨하스는 1944년 11월에 그곳에서 태어났다. 당시 로테르담은 폐허였다. 뿐만 아니라 연합군이 또 다른 타격을 가하는 중이었다. 이 강인하고 번창한 도시(지금은 유럽 최대의 화물항이지만)의 재건은 도시 전체를 유례 없는 건축적 실험과 혁신의 장으로 만들었다. 쿨하스는 이를 “무차별 연구소”라고 부른다.

쿨하스는 로테르담 출신 건축가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이다. 그리고 자하 하디드(친구이자 런던 건축협회 건축학교의 제자)가 사망하면서 그는 지금 건축계의 살아 있는 가장 유명한 별이 되었다. 세월이 흘러 다소 부드러워졌지만 아직 그는 가장 무시무시한 인물로 남아 있다. 그의 사무소인 대도시 건축사무소(The Office for Metropolitan Architecture, 이하 OMA)는 위대한 현대적 극장 중 하나인 포르투의 카사 다 무지카, 공공 건물의 급진적 모델인 시애틀 센트럴 퍼블릭 라이브러리, 솟아오른 곳과 다른 장소에 뒤틀려서 내려앉은 듯한 유리 건물인 CCTV의 베이징 사옥, 로스차일드 은행의 런던 본사이자 지난 10년간 런던시에 등장한 건물 중 가장 지적이고 절제되고 우아한 뉴 코트, 패션계의 거물이 밀라노에 지은 예술 복합 시설로 기묘하게 뒤섞인 건물들이 휘트니 미술관만 한 전시 공간과 두 배의 매력을 제공하는 폰다치오네 프라다 등을 담당했다.

OMA의 사옥은 로테르담의 평범한 구역 중 한 곳에 있다.(홍콩, 뉴욕, 베이징, 도하, 두바이에는 지역 사무소를 두고 있다.) 이곳은 전형적인 업무 공간으로, 근처에 트렌디한 상점도 전혀 없다. 쿨하스는 두 개의 사무실을 사용한다. 하나는 크고 개방된 회의 공간이며, 다른 하나는 작고 인적이 드물고 어두운 그의 집필 장소다. 그는 둘 중 어느 곳에서도 그리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 같지는 않다.

렘 쿨하스

쿨하스는 마르고 키가 크며 사나워 보이지만, 무시무시한 명성에도 불구하고 천연덕스러우며 정중하다. 하지만 그의 대화는 마치 다른 중요한 일이 있는 것처럼 쉽게 단절되기도 한다. 쿨하스는 어느 자리에서든 거의 늘 가장 똑똑한 사람이며 본인도 이를 알고 있다. “렘은 자신이 직면한 문제에 아주 민감하죠. 그는 참을성이 없어요. 가장 지적인 사람들이 그렇듯이 말이죠.” OMA 출신인 JDS 건축사무소의 줄리앙 드 스메트가 말했다(시카고의 스튜디오 강의 비야르케 잉엘스, 올레 스히렌 그리고 잔 강은 또 다른 유명한 OMA 출신이다.) “그는 자신이 존경하고 찬탄하는 사람들에게는 따뜻하지만 자신보다 수준이 한참 낮은 사람들에게는 가혹하죠. 그를 비난할 수 있을까요? 잘 모르겠어요. 그 정도의 규모와 매력을 지닌 건축사무소는 많은 사람을 매혹시키죠.”

세상을 살아가고 활용하는 법을 묘사하는 방식으로서만 건축이 중요하다는 사람들에겐 쿨하스가 저술가이자 이론가일 뿐이다. 쿨하스의 말에 따르면, 물리적 영역에 건물을 짓는 데 드는 시간을 감안하면 건축은 시대정신을 묘사하기에 적절치 않은 예술이다. 그리고 쿨하스는 시대정신의 정상에 서길 원한다. 물론 < 옵저버 >의 건축비평가이자 런던에서 발행한 디자인 서적 < Slow Burn City >의 저자인 로완 무어의 말처럼, 쿨하스는 그가 지은 건물보다 그의 사상과 개념으로 더 기억될 것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쿨하스는 대도시가 아니라 사람들이 아직 ‘시골’이라 부르는 장소에 신경을 쓰고 있다. 쿨하스의 주장에 따르면, 문화, 상업, 기술적 혁신의 고밀도 허브인 도시에 대한 사람들의 맹목적인 집착이 훨씬 더 급진적이고 전환적인 사건을 외면하게 만든다고 한다.

스웨덴 룰레오에 있는 페이스북의 노드 폴 엄청나게 증가한 페이스북의 전자 정보 생성 및 저장을 처리하기 위해 2013년 미국 외부에 처음 만든 정보 센터다. 침엽수림과 호수에 둘러싸인 이 정보 센터는 직원(주로 현지인)이 150명이며 규모는 축구장 네 개를 합친 것과 같다. 해당 지역의 산업 쇠퇴로 인한 에너지 잉여분이 입지를 선택한 이유다.

쿨하스는 여름마다 방문한 스위스 마을의 기묘한 소멸과 확장을 통해 시골의 재편성을 처음 인지했다. “우리는 같은 마을을 20년 동안 방문했고, 그 마을의 생활이 소멸되는 동시에 확장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죠. 집과 마구간은 충실히 복원되었지만 미니멀리즘 인테리어와 엄청난 양의 쿠션이 추가되었다는 점에 주목했어요. 그리고 사실, 내가 정말로 주목한 부분은 냄새였어요. 처음 10년 동안 그 마을에서는 소똥 냄새 같은 게 났죠. 나중에는 그런 냄새가 사라졌어요.”

쿨하스는 이러한 스위스 마을들이 예전 모습 또는 실제로 보이는 모습과 다르다는 점에 주목했다. 마치 오래되고 찌그러진 자동차를 검소하게 몰고 다니는 농부처럼 보이는 늙은 신사가 사실은 프랑크푸르트에서 온 은퇴한 핵물리 과학자인 것처럼…. 비수기에는 그곳의 거주자 대부분이 태국 사람들이며, 이들은 수리된 농가의 주인들이 가끔 시골 기분을 내고 싶을 때를 대비해 항상 집을 정돈해 놓는다. 보존, 현대화, 이주와 같은 일들이 시골에서 새로이 일어나고 있다.

최근 쿨하스는 독일에거 발간하는 아트 잡지 < 032c >에 이렇게 기고했다. “시골은 새로운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유전학적 실험, 산업화된 향수, 새로운 형태의 계절에 따른 이주, 막대한 보조금, 디지털 정보원, 탄력적 농업, 종의 균질화 등의 경연장이다. 이렇게 급진적인 도시의 보급소를 글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미국 유타 주의 NSA의 데이터 센터 유타 호와 그레이트 솔트레이크 사이에 위치한 데이터 시설로 미국의 정보 기관을 위해 지었으며 개인 이메일, 휴대전화 통화, 인터넷 검색 기록 등 모든 종류의 통신 기록을 저장한다. 15억 달러의 비용을 들인 14만 제곱미터 규모의 건물로 2014년에 완공되었다.

로테르담의 거주자들에게 독특하고 반짝이며 새로운 모습으로 변하는 시골은 흔한 광경이 되었다. 로테르담 공항에 착륙하면 수많은 유리판으로 덮인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이는 생산성이 높은 첨단 온실이며 농업의 21세기판 조각보라고 할 수 있다. 쿨하스의 말에 따르면,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도시에 신경을 쓰는 동안 눈앞에서 벌어진 새로운 농업적 혁명을 놓쳤다고 한다.

“어떻게 이 모든 일이 사람들의 눈앞에서 일어난 것인지 놀라워요. 네덜란드 전체가 이와 같은 농업용 온실로 변해왔어요. 그리고 내게는 낯선 건축 양식이었죠. 변화는 당신 또는 다른 건축가들이 모르는 사이에 일어났어요.” 무관심 상태에서 일어난 변화가 쿨하스를 매혹했다. 그의 말마따나 일종의 ‘초-데카르트적 질서’가 일반적인 종합 계획이나 농업 관리를 거치지 않고 시골에 자리 잡았다.

쿨하스는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또 다른 점으로 농업의 자동화, 알고리즘의 적용, 드론을 꼽았다. 농기계 회사 존 디어리는 현재 자동 운전 트랙터를 생산하고 있다. 토지는 제곱미터 단위로 감시된다. 그리고 농업은 현재 도시의 기업만큼이나 생산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많은 농부가 현재 노트북 컴퓨터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로봇이 소를 몰고 먹이고 젖을 짠다.(릴라이 아스트로넛 A4 로봇은 동시에 소 60마리의 젖을 짤 수 있다.)

농업은 이미 거대한 사업이다. 스위스의 거대 화학 기업인 바이엘은 최근 몬산토를 620억 달러(약 70조 1천억원)에 인수했다. 바이엘의 CEO인 베르너 바우만의 말에 따르면, 몬산토는 디지털 농경의 선두 지위에 있기 때문이다. 농업 전문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애그펀더에 따르면, 2015년 디지털 농업 신생 기업에 대한 투자 총액은 46억 달러(약 5조 2천억원)에 달한다.

특별히 쿨하스의 관심을 끈 것은 첨단 농업이 아니라 수많은 데이터 단지, 축전지 공장과 물류 센터, 첨단 기술로 움직이는 현대 대도시의 기반 시설이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그는 어떤 큰 가능성을 발견했다.

미국 아이오와 주의 구글 데이터 센터 카운슬 블럽스는 2007년부터 구글의 데이터 센터를 유치하고 있으며, 2013년에 2단계 공사가 완료됐다. 400헥타르 넓이의 서버 단지가 평야에 둘러싸여 있으며 완공되면 15억 달러의 가치를 지니게 된다. 이곳은 구글의 자체 네트워크 통제실로 외부 데이터 센터 간 초고속 연결고리 기능을 한다.

올해 초, 쿨하스는 네바다 주에 있는 타호-레노 인더스트리얼 센터를 방문했다. 싱가포르 면적만 한 지역이 실리콘 밸리를 위한 서비스 단지로 점차 바뀌어가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130만 제곱미터를 차지하는 상자 모양 건물의 구획이 이곳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훨씬 더 넓은 면적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와 같이 무시무시한 규모로 들어서고 점차 자동화되어가는 텅 빈 건물은, 쿨하스의 말에 따르면 “마천루 이후 처음으로 등장한 새로운 건축 유형”이다.

타호-레노 인더스트리얼 센터는 로버트 스미드슨의 ‘나선형 방파제’, 월터 드 마리아의 ‘번개 치는 들판’, 마이클 하이저의 ‘도시’ 등 70년대의 대지 미술로 유명한 지역이다. 이들은 초대형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공간 때문에 네바다로 왔다. 쿨하스는 새로운 대형 건축물에서 이와 유사한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곳에서 장엄함의 고전적 정의와 유사성한 면을 보았어요. 즉, 건축물의 규모로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죠.”

쿨하스에게 이곳은 건축의 새로운 개척지다. “이러한 종류의 혁신이 탄생할 때 그곳에 있다는 것은 어느 세대에나 일어나는 일이 아니에요. 그리고 이러한 혁신은 과거에는 알아차리지 못한 패러다임 전환의 일부이자 논의된 적이 없었던 새로운 개척지예요. 이러한 상황을 다룬 책은 없었죠.” 물론 쿨하스는 이에 대한 책을 쓰는 중이다. 또한 이곳에 건축물을 세울 계획도 가지고 있다. 만일 실제로 짓게 된다면, 그 건축물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고, 특정한 장소로서 탈-도시의 선언이자 보존 가치가 있는 존재가 될 것이다. 새로운 형태의 도시화, 즉 우리가 알고 있는 도시나 시골이 아니라 포스트 휴먼 문명의 개요다.

테슬라는 이곳에 거대한 규모의 리튬-이온 축전지 공장을 세우는 중이다. 테슬라가 명명한 공장 이름인 ‘기가팩토리 1’은 전체 대지가 126만 제곱미터에 달한다. 지구 상의 모든 건축물 중 가장 큰 족적이다. 그리고 테슬라는 공장을 두 배로 확장하기에 충분한 토지도 매입했다.

태양광 발전판으로 지붕을 덮고 자체 풍력 발전 단지에 둘러싸인 공장은, 엘론 머스크의 예상에 따르면 자체적으로 사용 에너지를 충당하게 될 것이다.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짓게 될 공장은 정북향을 가리키고 있으며, 모든 장비는 GPS에 의해 배치된다. 기가팩토리 1은 2017년에 직원 6천5백 명으로 부분 조업을 개시하고, 2020년 완공 시 직원 수를 약 4천 명으로 줄일 예정이다. 자동화가 심화되면 필요 인력은 당연히 줄어든다. 한편 라스베이거스에 본사를 둔 스위치는 타호-레노 인더스트리얼 센터에 총 60만 3천8백 제곱미터 규모인 7개의 데이터 센터를 계획하고 있다. 첫 번째 센터는 세계 최대 규모로 완공할 예정이다. 그리고 쿨하스의 말대로, 이 데이터 센터에는 보다 적은 인력이 투입될 것이다.

처리 장치의 크기는 계속 줄어들고 처리 속도는 증가하니, 이들이 생산하는 자료는 더 많은 물리적 공간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필요는 인간의 한계를 크게 넘어서는 새로운 건축 양식을 창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건축 양식이 순수하게 기능적인 것만은 아니다. 테슬라의 공장은 토지를 덜 정리하기 위해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지었다. 이는 머스크가 다이아몬드 모양이 멋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미 완공된 일부 건물의 지붕 꼭대기를 따라 빨간 선이 그어져 있지만 여기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 “장식용 띠의 궁극적 축소 형태라고 부를 수 있죠.” 쿨하스가 설명했다. 쿨하스에게 의미있는 것은 우연에 가까운 장엄함을 의도적이고 현대적인 것으로 변화시키는 가능성이다.

렘 쿨하스는 네덜란드의 저명한 소설가이자 각본가인 안톤 쿨하스의 장남이다. 외할아버지는 네덜란드 항공사인 KLM의 본사를 설계한 건축가였다. 렘이 여덟 살 때 안톤 쿨하스는 새로 독립한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제안한 자카르타의 문화 연구소 프로젝트를 받아들였다. 이후 가족이 모두 자카르타에 이사해 살게 됐으며, 이 시절은 렘 쿨하스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대학 졸업 후 그는 네덜란드의 좌파 신문에서 일했고, 1969년의 < 화이트 슬레이브 >를 비롯한 반체제 영화의 각본을 쓰기도 했다. 쿨하스는 이 영화가 개봉되기 전에 건축이 줄거리를 다루는 보다 흥미로운 방식, 즉 구체적 차이를 만들 수 있는 방식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런던에 있는 영국 건축협회 건축학교와 미국의 코넬 대학교에서 수학했고, 1975년 런던에 OMA를 설립했다. 하지만 70년대 후반은 대부분 뉴욕에서 보냈다. 이어서 그는 < 광기의 뉴욕 >을 집필했고, 이 책은 그를 유명인사로 만들었다.

자하 하디드처럼 그 역시 실제로 지어지지 않은 건축물들을 설계하며 세월을 보냈다. 그는 집필을 계속했고 1995년에 < S,M,L,XL >를 펴냈다. < S,M,L,XL >는 이정표가 될 만한 1,376쪽의 두꺼운 책으로 도시의 특성에 관한 사색, 선언, 그리고 에세이를 담고 있다. 그 뒤로도 저서의 발간이 이루어졌고, 드 스메트는 무어와 마찬가지로 쿨하스의 책들이 그의 가장 중요한 유산을 형성한다고 생각한다. “슬프게도 그의 가장 중요한 설계는 현실화되지 않았습니다..”

핀란드 하미나의 수마 밀 데이터 센터 이 거대한 서버 공간은 핀란드 하미나에 있는 구글의 데이터 센터 내부 모습이다. 지금은 첨단 시설로 보이지만, 원래 이 건물은 종이 공장으로 지었다. 지난 2009년 3월, 구글이 매입해 용도를 변경했다. 핀란드 만에서 퍼올린 해수로 서버를 냉각시키며, 구글은 자사의 하미나 시설이 일반적인 데이터 센터에 비해 에너지를 50퍼센트 덜 사용한다고 주장한다.

쿨하스 본인의 생각과는 좀 다르지만 그가 건축가가 아닌 편집자에 가깝다는 전문가들의 견해도 있다. “렘은 직접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의 결과물을 수집하고 가공하죠. 그런 방식은 아주 흥미로우며 예상치 못한 결과가 일어날 가능성을 준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주도자가 어느 정도의 불만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죠.” 드 스메트가 말했다.

쿨하스가 수석 에디터이자 가공자로 있는 OMA는 마침내 실제 건물을 짓기 시작했고, 설립자인 쿨하스는 2000년에 건축계의 가장 반짝이는 훈장인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하지만 OMA의 명성을 확립한 것은 2012년에 완공된 베이징의 CCTV 타워 덕이다. 쿨하스는 맨해튼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 부지 건축 경쟁에 참가하는 대신 이 작업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CCTV 건물이 쌍둥이 빌딩의 뒤틀리고 결합된 재해석이라는 점은 쉽게 알 수 있다.

쿨하스는 종종 OMA 사무소 방문자들을 직접 환대하고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모형을 보여준다. 기자가 방문하던 날 그는 파크 애비뉴 아모리 재단의 이사진을 맞이하는 중이었다. 이 재단은 뉴욕의 랜드마크인 파크 애비뉴 아모리의 복원을 OMA의 경쟁 사무소인 헤르조그 앤 드 뫼롱에게 맡겼다.

쿨하스는 그들에게 현재 건설 중인 타이베이 공연 센터, 그리고 1억 1천만 파운드가 투입될 예술 복합 공간이자 OMA가 영국에 처음으로 짓는 공공 건축물인 팩토리 맨체스터의 모형을 보여주었다. 쿨하스는 펼친 직물 위에 콘크리트를 뿌려 건물을 성형하는 방식으로 창조한 건축 양식을 설명했다.

팩토리의 모형은 아마도 형식 면에서 가장 대담할 것이다. 쿨하스 본인이 인정하는 바에 따르면 그는 일부 건축가들, 그리고 특히 일류 유명 건축가들의 비판을 야기 화려한 “형태 제작”에서 한 발 물러섰다.

얼마 전 잡지 < 와이어드 >와의 대담에서 그는 이러한 반발에 대한 “대비책”을 두 번 언급했다. “사람들은 유명 건축가를 무심한 인간으로 생각하죠. 다들 그런 유형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죠. 일종의 허상이지만 그런 식으로 분류되면 복잡해져요. 그래서 우리 사무소는 항상 다른 상황을 찾아내야 해요.” 타호-레노에 대한 관심은 그런 대비책의 일환으로, 도시를 벗어나 검증과 전후 맥락이 덜 중요한 곳으로의 이동이다.

물론 이는 쿨하스가 의문을 키워가며 도시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쿨하스 생각대로 이제 시골이 무제한의 기묘한 초-질서가 자리 잡은 장소(인간의 영양 소요량과 정보 생성 시설을 조용히 관리하는 평지 위 구획과 거대한 단지)라면, 도시는 엉뚱하고 기묘하며 이상한 모습의 장소로 남겨진다.

쿨하스에 따르면 이제 도시의 환경에 센서가 깔리고 있는 중이다. “2년 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의 감독을 맡았을 때, 우리는 도시의 주된 요소의 역사를 살펴보았어요. 겉으로 보기에 가장 익숙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더 자세히 살펴볼수록 디지털 문화가 거의 모든 것에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진정한 전환점 위에 서 있어요. 건축은 항상 묵묵히 존재했고 이제 어느 정도 우리의 삶을 기록하고 있어요. 온도 조절 장치를 만지고 조절하는 행위 자체가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쿨하스는 도시의 센서화에 대해 낙관적이다. 그는 건축물이 사악해지지 않으면서도 똑똑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투명하면서도 필요할 때 어두워지는 유리를 찾아내기 직전이에요. 기계적 수준이 아니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자유로운 분자 단위에서 일어나는 과정이 존재하죠.”

쿨하스의 객관성은 멋있다. 그는 쉬운 가치 판단을 꺼린다. 또한 보존과 정치적 올바름-그는 이를 보편적 무갈등을 기초로 만든 경제적 기능이라고 생각한다-을 혐오한다. 그에게는 개척자적인 면이 있다. 반항적이고 이상한 장소에서 기회를 찾는 데 몰두한다. 심지어 네바다 사막의 데이터 단지에서조차도.

    에디터
    글 / 닉 컴튼(Nick Compton)
    포토그래퍼
    ABOVE RENO, GOOGLE, ERIC JAMISON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