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돌체 앤 가바나의 인플루언서 활용법

2018.08.11GQ

돌체 & 가바나는 마음 가는 대로 한다. 솔직하게, 대담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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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밀라노 남성 패션 위크 중 어떤 쇼장에 엄청난 소녀 떼가 몰려왔다. 낯선 금발 소년이 나타나 미소를 짓자 소녀들은 전율했다. 누군가는 너무 좋은 나머지 오열했다. ‘저스틴 비버의 보급형’ 같았던 그는 미국 출신의 유튜브 스타 캐머런 댈러스. 돌이켜보면 그때부터다. 셀러브리티의 기준이 SNS의 팔로워 숫자로 바뀌고, 온갖 패션 브랜드가 ‘인플루언서’에게 공을 들이기 시작한 것은. 돌체 & 가바나는 이 흐름을 가장 적극적으로 따랐다. 지난 몇 시즌 쇼는 그야말로 모델이 반, 인플루언서가 반. 그리고 2018 S/S 컬렉션에서 정점을 찍었다. ‘밀레니얼’을 위한 헌사라 할 만했다. 빌 클린턴의 조카 타일러 클린턴, 피어스 브로스넌의 아들 딜런 브로스넌, 이사벨라 로셀리니의 아들 로베르토 로셀리니, 말론 브란도의 손자 투키 브란도 등이 무대에 섰다. 그 중심엔 캐머런 댈러스가 있었고. 이 파격적인 세팅에는 물론 쑥덕거림도 따랐다. “젊은 세대를 등에 업고 주가를 올리려 한다, 매 시즌 옷은 그대로인데 어린 셀러브리티에게만 집착한다”는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한편으로는 일리가 있다. 셀러브리티의 2세 혹은 조카, 혹은 형제라는 게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일 순 없다. 근본적으로는 우주 최고로 화려한 돌체 & 가바나의 옷을 입고 어색하게 워킹하는 소년들 중 ‘내가 왜 이 런웨이에 섰나’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는 이가 몇이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러나 2019 S/S 시즌 컬렉션은 좀 달랐다. 세대와 성별을 아우르는 대단위 군단이 등장한 것. 쇼 시작 전에 나온 짧은 영상을 보면 돌체 & 가바나가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DNA Evolution’이란 제목의 이 영상은 대조를 통해 브랜드의 정체성을 설명한다. 이를테면 ‘신성함 vs. 불경함’, ‘벨벳 vs. 브로케이드’, ‘슈퍼모델 vs. 소셜 미디어 스타’, ‘파스타 vs. 포모도로’라는 식. 신기하게도 모든 개념이 런웨이에 절묘하게 스며들었다. 왕관을 쓴 캐머런 댈러스가 쇼의 문을 열고 슈퍼모델 나오미 캠벨이 마지막으로 등장한 것이 그 예. 그 사이엔 전설의 테니스 선수 보리스 베커의 아들 엘리아스 베커부터 길거리 캐스팅한 할머니들, 배우 남주혁, 중년 모델 폴 코스터 그리고 모니카 벨루치까지 꽤나 다양한 인물이 있었다. 또한 밀레니얼에겐 금색이 물결치는 클래식한 테일러링 룩을, 나이 든 세대에겐 현란한 스트리트웨어를 입혔다. 정반대의 것이 만나니 오히려 괜찮은 화학 작용이 일어났다. 중년의 모니카 벨루치, 골드 브로케이드 수트를 입은 앳된 남주혁을 동시에 바라보며 문득 새로운 힌트도 떠올랐다. 돌체 & 가바나는 마음 먹은 대로 쇼를 꾸민다. 원하는 인물을 런웨이에 세우고, 항상 만들던 풍의 옷을 입힌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 디자이너이자 브랜드의 주인이라서다. 그들이 원하는 건 독창적이거나 획기적인 디자인이 아니다. 이미 완성된 돌체 & 가바나의 스타일에 재미와 젊음의 바이브를 더하고 싶은 것이다. 여기서 심오한 의미를 찾는 것 자체가 덧없다. 돌체 & 가바나는 그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패션 위크를 즐긴다. 우린 그 화려한 파티에 초대된 것뿐이고.

    에디터
    안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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