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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와 블랙박스를 비롯한 비행기에서 내려온 자동차 기술

2018.09.20GQ

비행기에서 내려와 자동차로 파고든 10가지 기술.

1 ACC 전투기에는 전자기파를 발사한 후 되돌아오는 정보를 분석하는 장비가 탑재돼 있다. 주변에 있는 아군과 적기의 움직임, 크기, 진행 방향 등을 계산해 공중전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자동차에선 적기 대신 앞차와의 거리를 계산하는 ACC(Adaptive Cruise Control)가 되었다. 레이더와 조향각, 횡가속도 센서 등을 이용해 앞차와의 간격을 실시간으로 감지하면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엔진과 브레이크를 자동차 스스로 제어하기 때문에 돌발 상황이 발생하거나 졸음 운전 시 사고를 막을 수 있다.

 

2 HUD 음속을 넘나드는 공중전에서 파일럿이 잠깐만 시선을 돌려도 격추당할 위험이 있다. 1980년 프랑스의 전투기 ‘미라지 2000’에 처음 달린 헤드업 디스플레이 Head Up Display는 전방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면서도 비행 정보를 파악할 수 있도록 고안한 장치다. 고급 수입차에는 2천년대부터 활발하게 사용되기 시작했고, 국산차 중에는 2012년 출시된 K9에 처음으로 달렸다. 기술은 점점 발전해 지금은 차량 정보뿐만 아니라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내비게이션 등과 연동되어 주행에 필요한 정보를 운전석 앞 윈드 실드에 띄운다.

 

3 안전벨트 독일의 고속도로 아우토반이 완공되자 자동차 속도 경쟁이 시작됐지만, 그만큼 사고도 빈번히 일어났다. 볼보는 1936년 항공기에서 착안한 2점식 안전벨트를 자동차에 설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체가 운전석에 밀착되지 않아 충돌 시 가슴과 머리가 큰 충격을 받는다는 단점이 있었다. 1959년, 볼보의 연구원 닐스 볼린은 이를 보완한 3점식 안전벨트를 발명했고, 현대적 안전벨트의 기원이 되었다. 이후 볼보는 3점식 안전벨트의 특허권을 완전히 개방했다.

 

4 내비게이션 냉전시대에 미 국방부는 지리, 기상 조건에 관계 없이 미사일을 유도하는 GPS를 개발했다. 지구 주변을 도는 24개의 인공위성 중 4개의 위성과 교신하며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 기능이다. 미국은 1984년에 이미 GPS를 민간에 개방했지만, 적국에서 군사 목적으로 사용할 것을 우려해 정밀도가 떨어지는 수준으로만 사용을 허가했다. 2000년에 사용이 완전히 개방되자 GPS는 자동차 내비게이션을 만드는 데 활용되기 시작했다. 차가 길안내를 받는 원리는 미사일이 표적을 향한 경로를 얻는 과정과 거의 차이가 없다.

 

5 터보 차저 엔진에서 배출한 배기가스로 임펠러를 돌려 외부 공기를 추가로 흡입하는 장치를 터보 차저라고 한다. 빨아들인 공기는 흡기 메니폴드를 통해 엔진으로 보낸다. 가솔린이 완전히 연소되려면 약 14배 공기가 필요한데, 터보 차저가 공급한 공기 덕분에 연료를 더 효율적으로 태운다. 같은 조건의 자연흡기 엔진보다 출력을 더 높일 수 있다. 원래 터보 차저는 1905년 스위스 엔지니어인 알프레드 뷔히가 항공기 엔진용으로 개발했다. 높은 고도에서는 공기 밀도가 낮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엔진에 공기를 공급하기 위해서다. 이제는 거의 모든 디젤 엔진과 배기량을 낮춘 가솔린 엔진에 장착된다.

 

6 ABS 비행기가 착륙할 때 바퀴가 잠기면(Lock-up 현상) 진행 방향을 통제할 수 없이 미끄러지기 때문에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1920년대 프랑스의 엔지니어 가브리엘 브와쟁은 바퀴 잠김 현상으로 인한 사고를 막기 위해 ABS(Anti-lock Braking System)를 개발했다. ABS가 제동 거리를 줄이는 것은 아니지만, 브레이크를 밟는 중에도 방향을 제어할 수 있기 때문에 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자동차에 ABS가 탑재된 건 1978년부터다. 메르세데스-벤츠가 보쉬의 자동차용 ABS를 S-클래스에 넣은 것이다. 항공기에서 시작한 ABS는 자동차와 모터사이클에 필수품처럼 쓰이고 있고, 전기 자전거에도 쓰일 정도로 중요한 기능이 되었다.

 

7 스티어 바이 와이어 항공기에서 사용하는 플라이 바이 와이어 Fly-by wire는 기계 장치 대신 전기 신호로 날개를 제어하는 시스템이다. 파일럿이 전달하는 조종 신호를 컴퓨터가 해석해 날개에 달린 방향타를 조절해가며 비행 방향을 바꾼다. 정확도가 높고 복잡한 연결 장치가 없어서 동체 무게를 줄일 수 있다. 인피니티는 플라이 바이 와이어에서 착안해 Q50에 세계 최초로 스티어 바이 와이어 Steer-by-wire 기술을 도입했다. 운전자가 스티어링 휠을 돌리면 전기 신호를 해석한 컴퓨터가 앞바퀴 각도를 조절한다.

 

8 블랙박스 1950년대, 원인을 알 수 없는 여객기 추락 사건이 발생하자 호주의 항공공학자 데이비드 워런은 속도와 고도, 교신 내용 등의 운항 정보를 기록하는 ‘플라이트 레코더’를 발명했다. 블랙박스라고도 부르는 이 장치는 이후 항공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는 데 꼭 필요한 부속품이 되었다. 항공기의 블랙박스는 자동차로 내려와 영상 녹화 장치가 되었다. 기능은 조금 바뀌었지만, 사고의 자초지종을 복기하는 데 유용하게 쓰이는 역할은 같다.

 

9 모노코크 구조 차체 제작 방법에는 ‘보디 온 프레임’과 ‘모노코크’가 있다. 보디 온 프레임은 차체 하단에 ‘H’ 모양의 뼈대를 두고, 엔진과 변속기 등을 올린 후 외피를 덮는다. 반면 모노코크는 뼈대 없이 일체형 구조 안에 부품을 들여 넣는다. 보디 온 프레임이 척추동물이라면 모노코크는 갑각류의 신체 구조에 비교할 수 있다. 현재 거의 모든 승용차가 항공기 제작 방식인 모노코크 방식으로 제작된다. 프레임을 만들고 붙이는 작업이 필요 없어 대량 생산에 유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10 리어 스포일러 고성능 차의 트렁크 리드엔 비행기 날개를 엎어놓은 듯한 리어 스포일러가 달려 있다. 공기가 빠르게 지나면 떠오르도록 설계된 날개의 원리를 반대로 이용한다. 리어 스포일러를 달면 공기 저항을 받아 차체 뒤를 눌러 안정적으로 달릴 수 있다. 특히 코너를 돌 때 타이어를 땅으로 누르는 효과를 내 접지력을 높인다. 하지만 고속안정감을 얻는 대신 저항 때문에 속도를 내는 데는 방해가 되기도 한다. 때문에 F1 머신은 DRS(Drag Reduction System)를 사용한다. 가속력을 높여 다른 차를 추월해야 할 때, 리어 스포일러의 각도를 눕혀 저항을 줄인다. DRS를 사용하면 시속 15킬로미터 정도의 속도를 더 낼 수 있다.

    에디터
    이재현
    사진
    Gettyimages / Korea,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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