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솜 "모든 작품 안에 제가 있는 것 같아요" | 지큐 코리아 (GQ Korea)

배우 이솜 "모든 작품 안에 제가 있는 것 같아요"

2019-10-29T10:37:04+00:00 |interview|

이솜이 활짝 웃는다. 혹은 매섭게 카메라를 본다. 그럴 때마다 우리가 좋아했던, 그리워했던 캐릭터가 스쳐 지나간다.

오버사이즈 페이턴트 재킷, 디올. 터틀넥 톱, 플랙. 체크 슬릿 롱 스커트, 메종 마르지엘라. 블랙 롱부츠, 코스.

체크 터틀넥 톱, 튜브 톱 점프 수트, 네트 소재 스커트, 벨트 디테일의 로퍼, 모두 디올.

니트 톱과 플리츠 스커트가 믹스된 드레스, 리스. 심플한 실버 뱅글, 헤이. 스퀘어 토 플랫 슈즈, 레이첼 콕스.

벌룬 슬리브 코트, 가죽 셔츠, 모두 지방시.

체크 수트, 스텔라 매카트니. 날렵한 펌프스, 스튜어트 와이츠먼.

프린지 소재가 포인트로 더해진 롱 니트 드레스, 알렉산더 맥퀸. 포인티드 토 로퍼, 레이첼 콕스.

슬림한 가죽 셔츠, 지방시.

벌룬 코트를 입은 컷에서 묘하게 영화 <소공녀>의 ‘미소’가 생각났어요. 여덟 겹의 옷을 껴입고 겨울을 나던, 집은 없어도 퇴근 후 마시는 위스키 한잔과 담배 한 모금이 무엇보다 소중했던. 미소에게 위스키와 담배가 있다면 이솜에겐 커피가 그런 존재라고 들었어요. 요즘도 ‘고종의 아침’이란 카페에 자주 가나요? 근데 거기 얼마 전에 사라졌어요. 월세가 많이 올랐나 봐요. 괜찮은 다른 카페를 다시 발견해서 요즘엔 거기에 자주 가요. 출근하는 길에 늘 커피 한잔씩 사서 가거든요.

커피에 대한 취향이 확실한 편인가요? 혹은 잊을 수 없는 궁극의 커피 한잔이 있나요? 보통은 제가 직접 내려서 마시는 드립 커피를 좋아해요. 제일 맛있는 커피는 해외여행을 나갔을 때 비행기에서 내려, 푹 자고 일어난 다음날 조식 때 마시는 커피. 그 한잔이 제일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공백기 없이 계속해서 드라마와 영화 촬영을 하다가 오랜만에 틈이 났겠네요. 네, 작품 끝나고 그동안 못 만났던 사람들도 만나고 요즘엔 곧 들어갈 작품 준비하고 있어요. 첫 촬영이 20일도 안 남은 것 같아요. 긴장과 기대가 교차해요. 같이 연기하는 배우들과 만나서 대본 리딩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고아성, 박혜수 배우가 함께 캐스팅되었다고 들었어요. 네, 맞아요. 제가 너무 좋아하는 배우들이에요. 아성이가 선택한 작품은 다 좋았어요. 혜수 씨의 작품 중에는 <스윙키즈>를 좋게 봤어요. 이번 작품이 가장 끌린 이유는 또래 배우들과 함께 연기할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영화에서는 서로 친구 사이로 등장하거든요. 물론 제가 그중에서 제일 언니긴 한데(웃음). 사실 그런 작품이 그동안 많이 없었고, 있더라도 저에게는 제안이 잘 안 들어오는 편이었죠.

세 배우가 모이면 어떤 케미스트리가 일어나요? 아직까지는 주로 대본 리딩에 집중하고 있어서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셋이 만나면 마음이 편해요. 별거 아닌 일에도 재밌어서 잘 웃고요.

영화 <삼진그룹 영어 토익반>은 여성들의 이야기예요. ‘여성 사원들이 힘을 합쳐 회사의 부정과 관련된 의혹을 파헤치는 이야기’라는 한 줄 소개만 읽어도 통쾌한 느낌이 들어요. 영화계에서 보기 드문 시놉시스라서. 시대 배경은 언제인가요?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요. 얼마 전에 영화 의상 실장님과 동묘 앞도 다녀왔어요. 이번 영화를 준비하면서 엄마의 앨범을 자주 펼쳐봤어요. 사실은 집에 엄마 사진이 많지 않아서 이모 집에 있는 앨범까지 찾아봤거든요. 당시의 스타일이나 분위기를 보고 싶어서. 지금 봐도 엄마가 옷을 참 잘 입었어요. 파워 숄더 같은 옷도 과감하게 잘 소화했고. 90년대 옷을 보면 지금보다 더 예쁜 것 같아요. 사진 보여 드릴까요?

엄마와 별로 안 닮았네요. 엄마가 저보다 훨씬 더 예뻐요. 제가 하나도 안 닮았죠.

청바지에 목이 늘어난 흰 티셔츠. 이솜은 작품 속에서 후줄근하게 입어도 언제나 초라하지 않았어요. 오늘 입고 온 톰보이 느낌 수트와 블랙 로퍼도 너무 예쁜데요. 제 옷 같은 느낌이 좋고, 그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주인공의 스타일이 멋있다고 생각한 영화가 있나요? 영화 <피아니스트>의 이자벨 위페르. 그 영화에서 장면마다 옷을 참 잘 입은 것 같아요. 공간에 맞게, 분위기에 잘 어울리게.

촬영을 마친 영화 <출장수사>에서도 의상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나요? 영화 속에서 수트를 주로 입는 배역을 맡았는데, 다른 때보다 신경을 더 많이 썼어요.

<지큐> 2011년 창간기념호 ‘New Face’ 칼럼에 등장한 적이 있어요. 앞장에는 손흥민 선수, 뒷장에는 정은채, 이제훈 배우가 등장하는데 다들 참 새삼스럽고 풋풋해요. 9년 차 배우, 22편의 드라마와 영화 필모그래피, 지치지 않고 멈추지 않고 지속적으로 달려온 원동력이 있을까요? 요 몇 년간은 계속 일을 하고 있지만 영화 <마담뺑덕> 이후에 1년 반에서 2년 정도 쉰 기간이 있었어요. 회사를 다시 알아보던 시기였죠. 작품을 하지 않더라도 서두르지 않았던 것, 급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나름의 오래 일을 할 수 있는 근력이 되어주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날씨, 운동, 수면 시간, 술, 이 가운데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이 있나요? 모두 중요한데 특히 잠을 잘 자는 것이 중요해요. 보통 스캐줄이 없는 날은 12시간 이상 자요. 너무 스트레스 받는 날은 되도록 빨리 잠들죠. 짜증나고 힘들다가도 잠들면 다음 날 기억이 잘 안 나거든요. 그 감정이 반으로 줄어들어요. 오히려 술을 마시면 더 극대화되는 것 같고요.

혹시 <소공녀>의 미소가 위스키 마시던 서촌에 있는 바에 손님으로 다시 가본 적도 있나요? 그럼요. 같이 작업한 전고운 감독님과 몇 번 갔어요. 적은 양으로 금방 취할 수 있어서 감독님이 원래부터 위스키를 좋아했어요. 지금은 그곳이 너무 핫플레이스가 되어 줄을 서야 해서 조금 아쉽기도 해요.

두 분은 작품이 끝나도 친구처럼 가까운 사이로 지내고 있는 것 같아요. 둘 다 물병자리인데 별자리가 같은 사람끼리 잘 맞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제가 한동안 쉬지 못하고 일로 힘들어 하던 시기에 감독님에게 전화를 한 적 있어요. 저한테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운동도 하지 말고 뭔가 만들려고 하지도 말고 청소도 하지 말고 하루만 가만히 있어보래요. 그러면 그 시간 동안 약간은 치유가 된다고. 그때부터 집에서 조용히 보내는 시간의 소중함을 알았어요. 제가 원래 집에 한시도 가만히 못 있는 성격이거든요.

일상 속에서 릴랙스하는 본인만의 방법이 있어요? 힘들면 요가와 명상을 하러 요가원에 가요. 그러면 기분도 몸도 좀 풀리더라고요.

그동안 연기한 역할을 쭉 돌아보면, 작품은 모두 달라도 이런 공통점이 보이더라고요. 할 말은 참지 않고 표출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화를 내야 할 때는 제대로 정확하게 낼 줄 아는 인물들. <이번 생은 처음이라>의 수지, <구해줘 2>의 영신, <나의 특별한 형제>의 미현, <제3의 매력>의 영재 모두 그런 여자들이었어요. 이솜이란 사람 안에 배어 있는 성격이 자연스럽게 역할에도 묻어나오는 거겠죠? 모든 작품 안에 제가 있는 것 같아요. 물론 그런 능동적인 캐릭터가 저에게 많이 주어지는 것도 같고요. 그리고 대본을 볼 때 저를 충분히 이입시켜서 연기하려고 해요. 예를 들어 화내는 장면에서는 저를 잘 아는 주변 사람들이 평소에 제 모습과 똑같다고 하더라고요.

이솜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을 같이 보낸 친구들요. 저 포함 5명인데 친구들 앞에서 가장 저다운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것 같아요. 그 친구들과 만날 때 좋은 에너지를 받아요.

극장에서 보고 좋았던 영화 DVD를 모은다거나, 영화 티켓을 직접 코팅해서 보관한다거나, 영화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진 시네필로 유명해요. 최근에 마음에 훅 들어온 새로운 배우는 누가 있나요? 호아킨 피닉스요. 최근에 <조커>를 봤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그리고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연기의 우열을 가릴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아카데미상은 호아킨 피닉스가 받을 것 같아요.

지금 읽고 있거나 혹은 최근에 산 책이 있어요? 박완서 작가의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를 읽고 있어요. 1977년에 출간된 산문집인데 좋더라고요. 그리고 최근에 갑자기 만화책에 푹 빠졌어요. 사람들이 왜 만화책을 보는지 이제야 알겠더라고요. 순정 만화책 <호텔 아프리카>를 읽고 있는데 너무 재밌어요. 장바구니에 읽고 싶은 만화책이 가득해요.

이솜이 읽어주는 오디오북 <쇼코의 미소>는 완벽한 캐스팅 같았어요. 사실 사연이 있는 소설이에요. <소공녀> 촬영 끝나고 전고운 감독님이 힘들어 하던 시기에 같이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어요. 묵었던 숙소에 책이 정말 많았는데, 감독님 추천으로 읽은 책이었어요. 너무 재미있게 읽었는데 저에게 오디오북 제안이 와서 뭔가 의미가 있구나 싶었죠. 감정을 담지 않고 최대한 또박또박 철자를 정확하게 읽어야 하는 작업이라 굉장히 어려웠어요.

녹음된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면 누구나 낯설고 생경하게 느껴지는데 어땠어요? 생각보다 내 목소리 톤이 높구나, 그런 생각?

목소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배우가 있나요? 애덤 드라이버, 그의 작품 중에서 <패터슨>을 제일 좋아해요. 스칼렛 요한슨과 두 사람이 부부로 나오는 영화 <결혼 이야기>가 11월에 개봉한데요. 벌써부터 기다려져요.

잠, 밥, 사랑 중 사랑이 제일이라고 말한 적 있어요. 제일 좋아하는 멜로 영화는 뭔가요? <퐁뇌프의 연인들>!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보는 편이 아닌데, 이 영화는 정말 특별해서 쌀쌀해지면 집에서 혼자 다시 돌려보곤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