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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아트 디렉터의 취향

2020.04.28GQ

<GQ> 아트 디렉터 김기열이 쓰고 찍은 취향에 관한 책.

책 제목 <하찮은 취향>은 반어적 표현 같다. 누군가는 ‘뭐 이런 걸 다 모으고 찍어?’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 꽤 오랜 시간 모아온 물건이 나에게는 소중하지만 타인에게는 하찮은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가지의 후보군이 있었지만 이보다 적절한 제목은 없었다.

분필, 페퍼민트 차, 뮤지엄 입장권 등 소소하고 사소한 물건 101가지를 선별한 기준이 있나? 원래는 2백 개 가까운 리스트가 있었다. 실제로 소장하고 있는 물건은 그보다 훨씬 더 많았고. 원고를 쓰면서 아무리 예뻐도 이야기가 없는 물건은 제외했다.

예쁨과 안 예쁨을 판단하는 기준은 뭘까? 기능적인 부분을 먼저 보려고 한다. 그 기능이 디자인과 잘 어울리는지, 불필요한 요소가 있는지, 너무 화려하고 과하지 않은지.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작가인 안자이 미즈마루의 책 제목처럼 ‘마음을 다해 대충 한’ 디자인을 좋아한다.

하찮은 물건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나? 아마도 이런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물건을 좋아해서 디자이너로 살고 있는 것 같다.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내 취향의 디자인이 아니면 구매를 망설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불필요한 욕심을 덜어내고, 이걸 사게 될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는 디자인에 대해 늘 고민한다.

런던, 베를린, 홍콩, 도쿄 등등 타국에서 모은 물건이 상당하다. 이 책은 여행의 기록이기도 하다. 모아둔 물건을 아카이빙 하는 방법이 궁금하다. 심플한 박스에 물건을 수집한 도시 이름과 날짜를 표기해서 서재에 보관해둔다. 여행을 떠날 때 가볍고 얇은 박스, 파우치, 파일을 준비해서 사이즈별로 구분해 담는다. 혼돈의 카오스처럼 계속 불어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어디에 어떤 물건이 있는지 대부분 찾을 수 있다.

책의 카테고리가 디자인이 아닌 에세이다. 그 흔한 띠지도 추천사도 없다. 하찮은 책이니까.(웃음) 담백하고 꾸밈없는 책인데 화려한 미사여구로 포장하고 싶지 않았다. 추천사를 꼭 받아야 한다면 아들 연우에게 받고 싶긴 했다. 이 책에 가장 많이 개입한 조력자니까.

현미밥, 호밀빵을 먹는 것 같은 심플한 글쓰기 방식이 인상적이다. 평소에 내가 말하듯이 문장을 쓰려고 했다. 나의 모습과 너무 다른 글을 쓰는 건 지양하고 싶었다. 이 책을 읽은 친구들이 내가 옆에서 말하는 것 같다고 말해줘서 다행이었다.

문구점 또는 잡화점을 운영하는 것이 장래희망이라고 했는데, 20년 넘게 잡지를 만들고 있다. 아직까지 마음에 쏙 드는 잡지를 못 만들어서 계속 이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어쩌면 그건 영원히 못 할 수도 있겠지. 그래서 멈추지 못하는 것 같다.

    피쳐 에디터
    김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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