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김주하에게 묻고 싶은 서너 가지 것들

2008.09.30GQ

요컨대, 김주하에게는 여러 번 검증 후에 만들어 놓은 전략도, 치밀하게 직조된 전술도 없다. 굵으면 굵은 대로, 부으면 부은 채로 그냥 마이크 앞에 앉아 발화할 뿐이다. 그리고 차갑고 날카롭지만 사람의 마음을 만질 진실을 전하면 그게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녹음기 앞에서도 똑같았다.

뉴스 앵커라는 직업은 심지어 공인보다 더 제약이 많을 것 같다. 어떤가?
뭔가 아닌 척하면 오래 못 간다. 실제의 내가 일하는 나와 맞지 않는다면, 그것이 사람들이 원하는 공인이라는 생각에 맞지 않는다면, 생활을 바꾸든지 직업을 바꾸든지 해야 한다.

얼마 전에 강남의 한 백화점에서 여자 앵커가 장을 보는 장면을 목격했다. 편하고 좋아 보였는데, 한 사람이 “슈퍼마켓에 수입품이 너무 많다더니 수입 주스 사네, 웃기네”하는 것을 듣고 좀 놀랐다.
하나하나 다 생각하고 살려 면 미칠 거다. 얼마 전 <박명수의 펀펀라디오>에 나갔는데 <뉴스데스크> 첫 방송에서 했던 인사말을 들려줬다. 너무 예쁜 소리를 내려고 하는데 나조차도 듣기가 민망했다. 아침뉴스 2년을 했는데도 너무 예쁜 목소리를 내는 게 정말 창피했었다. 지금은 아니다. 어느 순간, ‘풀어버려’한 건 아니었지만 가면이 벗겨졌다. 이게 편하다. 예쁜 여자 앵커로 남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더 예쁘게, 더 예쁘게 하 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가면을 썼던 목소리가 드러난 것처럼 사람들 시선 때문에 바르게 사는 것 은 금세 드러날 거다. 그냥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도덕적인 생활을 하려고 할 뿐이다. 그런 부담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로 일부러 그러는 건 있다. 나는 버스 타고 다닌다. 사람들하고 다른 사람이 되기 싫다. 미안한 말이지만 다른 앵커들이 “버스 요금이 10% 올랐습니다.”하면서 모르는 것을 나는 아는 것이다. 이 핸드폰에 걸려 있는 것이 버스 카드인데 3만원 넣으면 얼마 안 간다. ‘몇 번 갈아타고 다 니고 했더니 정말 얼마 안 가네’했을 때와 그냥 기자 리포트를 먼저 보고 쓴 앵커 멘트와는 정말 다르다. 느끼면서 말하는 것과 그냥 읽는 것은 다르다. 공허한 메아리다.

알려질 대로 알려진 얼굴인데 불편하지 않나?
그게 참 슬프다. 버스 안에 서 거의 아는 척하는 사람이 없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방송국 견학 좀 시켜주시죠” 하면서 따라 붙는 것도 곤란하지만 눈을 마주치는 사람이 없다는 건 슬프다. 편하기도 하지만 각박하게 느껴진다.

앵커 멘트에 진심을 담기 위해서라도 직접 하는 게 또 있나?
장 보는 것.

장 볼 시간이 전혀 없는 일상이던데?
몇 년에 한 번 하게 돼도 시간이 나면 꼭 하는 일이 장보기다. 요리는 아예 포기한 상태라서, 장 볼 일이 거의 없기는 한데, 그래도 주부로, 엄마로 해야 할 때도 있다. 요리는 정말 못한다. 10월에 결혼하고 남편에게 첫 밥상을 차려준 게 이듬해 5월이다. 남편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뭐 해줄까 했더니 밥 해달라고 했다. 그때도 못 해주고 결국 5월에 밥을 해줬는데, 준비하는 동안 “아이 씨, 어우 씨”하는 소리가 너무 들려서 남편이 내내 전전긍긍 했다며 나중에 말하는데 나도 놀랐다. 일할 때는 꼼꼼한데 요리할 때는 잘 안 되니까 나도 모르게 그랬었나 보다. 사람에게는 절대 안 되는게 있다. 요리가 그런 것 같다. 남편이 요리 학원을 다니는 게 어떠 냐는 말을 두 번 했는데 처음에는 못 들은 척했고 두 번째는 그 제의만으로도 머리가 아팠다. 절대 못 하는 게 있는 것 같다.

바깥일을 아무리 잘 해도 요리 잘 못하고 집안일 못하면 영 젬병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남자들에겐 그렇지 않다. 슈퍼맨은 없다. 영화에는 있고 그래서 열광할지언정 실제로는 없다. 그런데도 괜찮다. 여자도 같다고 생각한다. 집안일보다 바깥일을 더 잘한다면 그것을 더 열심히 하면 좋은 것 아닌가? 다행히 남편이 다 이해해줘서 스트레스 없이 잘 지낼 수 있다. 러시안 수프까지 끓여내는,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요리를 잘하는 남편 덕을 보고 산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잘하는 것을 열심히 하는 걸로 못하는 것이 상쇄된다면 얼마나 좋겠나? 노력 으로 안되는 것도 있지 않나?
목소리. 방송 초기에는 마이크가 꺼지면 입과 턱이 모두 다 아팠을 정도였다. 목소리를 예쁘게 내느라 그런 거다. 어느 순간부터 내 목소리를 내서 다행이지만 처음에는 정말 굉장했다. 방송 나간 후 게시판이 난리였다. 여자 목소리가 괴물 같다고. 뭐 저런 목소리를 아나운서로 뽑았냐, 그 목소리는 대체 뭐냐 등 등 굉장했다. 심지어 “주하 오빠 사랑해요. 오빠 목소리 너무 멋있어요”라는 팬레터가 왔다. 아나운서국에서 돌려보고 키득거렸다. 내 목소리가 정말 싫었다.

한 음향연구가는 당신 목소리의 주파수가 보통의 여자들과 달라 더욱 신뢰감 있고 지적으로 들리는 거라는 언급도 했다.
고맙다.어쨌든 내 목소리니까. 뉴스를 전달하는 입장에서 더 고마운 일이다.

잘 하는 것에 책 쓰는 것도 넣어야 할 것 같다. <안녕하세요 김주하입니다> 는 유명인의 에세이 같은 종류가 아니라 좋았다. 때때로, 한 분야에서 이름이 높을 뿐 그 사람이 본 영화의 감상이 어떤지, 좋아하는 음식이 무언지 왜 읽고 있어야 하나 싶은 책도 너무 많은데 당신의 책은 읽는 도중 뉴스 멘트가 귀에서 들리는 듯했다.
다행이다. 스물 아홉이었나? <뉴스데스크> 앵커가 되자마자 책을 쓰자는 제의가 너무 많았다. 무조건 내자는 것이 었다. “아니, 뭘 쓰나요? 쓸 게 없는데?”라고 물으면 출판사에서 생각해 오겠다고 했다. 아니, 그게 무슨 책인가? 그래서 절대로 안 쓰겠다고 말했었다. 경험을 쓰기에는 너무 부족했고, 당신의 말처럼 그냥 에세이를 써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에세이는 마흔이 되면 쓰겠다고 했다. ‘불혹’이라는 말처럼, 객관적으로 돌아 보고 미화하거나 과장하지 않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10년을 언론 밥 먹었으니 그것으로는 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책을 쓴다는 것을 알고 뜯어 말린 손석희 선배 말처럼 그건 ‘할 짓이 못 되는 일’이었다. 잘난 척하면서 평론가들의 비평을 사양하겠다고 했지만 독자들의 평가는 두렵기만 했다. 다행히 ‘담담해서 좋았다’ 는 한 네티즌의 평가로 한숨은 돌리고 있는 상태다.

여전히 대학생들이 닮고 싶은 인물 1위다. 그런 통계를 보면 어떤가?
남자는 이건희 회장, 여자는 앵커다. 내가 아니라 내 자리를 뽑은 거다.

자리 때문이라 생각하나?
계속 그 자리는 신은경, 백지연 등이 있었다.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 치열한 뭔가는 있겠지만. 내가 아닌 자리를 뽑은 거니까 무슨 말을 하기는 어렵다. 꿈이 있다면, <뉴스데스크>를 내려와서 언론인으로 사는데도 그렇다면 좋겠다.

앵커라는 자리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중간에 강금실 전 장관도 있었으니까.당신이라는 이미지가 한몫한 것 같다. 당신은 방송인이 되고 싶었던 게 아니라 뉴스가 좋았다고 했다. 하지만 당신을 열망하는 많은 지망생들은 뉴스가 아니라 이미지를 원하는 것일 수도 있다.
대학생들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 이 방송을 하는 50분만 좋아보이니까 그런 것 같다.“여덟시 오십분 까지 뭐 해요?” “월화수목금 뭐합니까?” 하는 질문도 들어봤다. 내가 50분만 일하는 줄 아는 것이다. 그 50분을 위해 종일, 일주일을 일하는 걸 보여주느라고 책을 만들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나머지 것을 보면 포기하거나, 그 뒤에도 좋으면 선택하라고 말한다.

언젠가부터는 소위, 시집 잘 가는 직업으로 보인 영향도 크다.
그런 생각을 하고 원하는 사람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아나운서 중에 재벌가에 시집을 간 사람은 전체를 통틀어 2%도 안 된다. 타이거 우즈 돈 잘 버네, 골프 할까? 그것과 마찬가지다.

같은 맥락에서 사람들은 당신의 결혼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건 개인적인 이유다. 재벌하고 맞으면 할 수 있다. 재벌이 나쁜 건 아니니까. 나는 나하고 생활 수준이 맞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재벌하고 수준이 안 맞으니까 그쪽에서 선도 많이 들어왔는데 아예 안 봤다.

당신에게 뉴스가 주는 의미가 뭔가?
남이 모르는 것을 내가 제일 먼저 아는 것, 제일 잘 아는 것. 내가 깊이 잘 아는 것. 그게 매력이다. 앵커는 겉핥기만 한다. 기자들의 리포트를 먼저 알 뿐이다. 기사가 나오고 나면 시청자랑 똑같다. 하지만 기자는 아니다. 나말고 MBC에서 나 이상 아는 사람이 없다.

기자가 훨씬 매력적이라는 말인가?
그래서 전직했다. 할 게 많아서 이 직업엔 매너리즘이 없다. 안 그런가? 평생 해도 모자란다.

그렇다면 백발의 김주하의 리포트를 볼 수 있나?
그건 내가 약속하거나 장담한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방송사는, 인정하기 싫지만 보이는 일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여성 차별이 있다. 암탉이 우는게 싫다는 편견으로 새벽 뉴스 못했고, 하다못해 새벽에 출근하는 여자 아나운서는 아예 택시도 못 잡던 때가 얼마 전이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으니 기대해볼 뿐이다. 1995년까지 보도국에 여자 화장실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결혼하고도 뉴스하는 게 당연스럽고 임신해서 얼굴이 터질 듯한데도 방송했다. 그리고 그것으로 논란이 되었다는 게 바로 세상이 바뀌었다는 증거다.

사건의 진실은 하나다. 그리고 이미 밝혀진 일이다. 그런데 3개 방송사에서는 똑같은 뉴스를 하고 있다. 그 중에서 MBC를 봐야 하는 이유는 뭔가?
책에도 썼듯 대선 인터뷰 같은 방송은 전파 낭비라고 생각한다. 어느 한 마을에 사건이 있다고 치자. 그 마을을 헬기에서도 볼 수 있고 뒷 동산에 올라가서도 볼 수 있고, 안에서 볼 수도 있다. 다 다르다. 사건, 사고마다 얼마나 적절하게 배치하는가를 보고 채널을 고르게 될 것이다. MBC가 가진 힘이라면, 예를 들어 아테네 갔을 때도 “아무거나 해 와”하는 것이다. 젊고 파릇한 기자들을 현지에 보내 땅을 파고 올라오든 비행기를 타고 뛰어내리든 적절하게 만들어오게 하는데, MBC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런 부분을 좋아하는 것 같다.

당신이 취재 소재를 찾을 때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무엇인가?
예전엔 사건, 사고, 고발이다라고 생각했다. 특종도 많이 해봤고 그것을 취재해서 터뜨렸을 때 제도가 바뀌고 사회가 움직이는 것에 큰 희열을 느꼈다. 그런데 복귀하면서, 일상생활 중에 자세히 보면 뉴스가 되는데 모르고 지나치는 것을 찾으라는 주문이 떨어졌다. 처음에는 못한다고, 그냥 고발하는 거 했는데 무참히 짤렸다. 앞이 깜깜했다. 그런 뉴스가 뭘까 많이 생각했다. 그런데 어렵게 찾아서 해보니 시청자들 반응이 훨씬 좋았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 그것이 진정한 뉴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얼마 전 바바라 월터스가 패리스 힐튼의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다. “내가 인터뷰하기에 그녀는 너무 격이 낮다. 이 인터뷰는 모두에게 나쁜 인터뷰다. 내가 몰아붙이면 패리스는 더욱 멍청해 보일 것이고 나는 성질 고약한 할머니가 될 뿐이다. 모두에게 나쁜 이 인터뷰를 왜 하나?”라고 했다. 당신이 존경한다는 그녀의 말을 어떻게 생각했나? 그 바바라 월터스를 존경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패리스 힐튼에 대해서는 험한 말을 했지만 그녀는 기본적으로 취재원에게 따뜻한 사람이다. 모든 사람이 ‘나쁜 놈’이라고 해도 그녀의 시작은 항상 ‘착한 놈’이다. 내가 이 점을 좋아한다 했더니, 그건 객관적이지 않다라는 말을 듣기도 했는데 나는 그게 오히려 더 객관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이클 잭슨이 “누구와도 인터뷰하지 않지만 바바라 월터스라면 하겠다. 그녀가 나쁘다고 한다면 그건 정녕 나쁜 것일테니 달게 듣겠다”고 말하는 걸 듣고 바바라 월터스에게 완전히 반했다. 시청자에게 인정받는 기자는 있을지언정 취재원에게 인정받는 기자는 정말 어렵다.

월터스처럼 될 수 있을 것 같나?
나는 못 그런다. 난 객관적인 사람이다. 나 자신이나 가족에 관해서도 그렇다. 남편이 “우리 아기가 너무 예쁜 것 같아” 그러면 “쪼금 이쁠 뿐이야” 라고 말해 남편의 김을 빼놓는다. 보이는 걸 어떻게 하나? 평범한데. “우리 애가 벌써 이걸 한다” 그러면 “다른 애도 다 해”그런다. 사실이 그런 걸 어쩌나?

직업 때문인가? 과장된 칭찬으로 사람을 들뜨게 하는 것도 없고, 칭찬으로 들뜨지도 않을 것 같다.
“예쁘다, 너무 좋다” 그러면 가시 방석이다. 너무 불편하다. “화면보다 낫네”정도가 고맙다.

예쁘게 보이는 걸 경계하나? 이번에 낸 책에서 예쁜 사진을 걷어낸 이유는 뭔가?
아니다. 예쁜 거 좋다. 예쁜데 나 같지 않아서 뺐다. 어떻게 보이고자 하는 거 없다.

사실 촬영 전에 당신이, 치마를 안 입는다, 민소매도 안된다 하는 것을 계속 정치적으로 해석하려고 했다.
아까 버스 얘기를 하다 말았는데 생활이 옷차림을 만든다. 버스를 타니까 바지와 운동화가 알맞게 된 것이다. 허리를 강조하는 옷을 좋아하는 사람은 허리가 날씬한 사람이다. 어울리니까 좋아하는 거다. 내가 안 하는 건, 안 어울리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이유 같은 건 없다.

생각보다 당신은 단순하게 보인다.
고민 안 한다. 남편이 나보고 경마장 말이라고 한다. 어떻게 그것만 보냐고 한다.

김주하 앵커가 가진 힘은 무얼까?
경마장 말. 안 보니까 융통성 없는 건 나쁘지만 그것만 보면 끝날 때까지 가야 한다.

프리랜서 제의가 많지 않나?
한 인터뷰에서는 재주가 없어서 조직에 있어야 한다고 했던데. 그 인터뷰를 괜히 했나 보다. 그 뒤로 제의가 전혀 안 온다 하하. 나는 뉴스가 좋은데, 지금 시스템에선 프리랜서로 뉴스를 못한다.

타방송사에서 뉴스 앵커 자리 준다고 하면 어쩌나?
싫다. 사실 그건 핑계고, 지금까지 선배님 선배님 하면서 굽신거리며 산 게 얼만데, 내년에 차장 다는데 이제 와서 왜 그걸 버리고 나가나? 하하, 부족한 사람은 조직에서 보호해야 한다. 앞으로도 MBC 뉴스 하고 싶다.

자, 좋은 앵커가 갖춰야 하는 덕목은 뭔가?
순발력, 판단력, 객관적인 진실보도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애정이다.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은 뉴스가 아니다. 애정 없이 말만 주절거린다면 뉴스가 아니다.

    에디터
    컨트리뷰팅 에디터/ 조경아
    포토그래퍼
    김용호
    스탭
    메이크업/이경민(이경민 포레), 스타일리스트/김봉법
    브랜드
    질샌더, 구호, 에부, 주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