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유인나, 천천히 보여줄게요

2010.12.29유지성

유인나는 가벼웠다. 목소리는 낮았다. 그리고 자신의 배가 맘에 든다고 말했다.

의상 협찬/ 회색 톱은 쟈딕 앤 볼테르, 구두는 토리 버치, 뱅글은 엠주

의상 협찬/ 회색 톱은 쟈딕 앤 볼테르, 구두는 토리 버치, 뱅글은 엠주

검색 순위 같은 거 자주 찾아보나?
그것뿐만 아니라 인터넷에 내 이름 쳐서 다 찾아본다. 시청자 게시판, 팬 카페, 싸이월드 쪽지 같은 것도 다 본다. 답장도 종종 한다. 회사에서 대신 하는 거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는데 다 진짜 내가 한 거다.

팬 카페에 ‘시크릿 가든’이란 제목으로 올린 글을 봤다. “여러분들이 기대하시는 것만큼 많이 나오지는 않을 수도 있어요”라든가 “지금 저에겐 조금 넘치게, 딱 맞는 역할이에요” 같은 말이 참 진심처럼 들렸다. 당신이 어렵게 여기까지 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울컥해서 썼다. 무슨 말이냐면, 난 사랑한단 말도 그렇게 한다. 사랑한다고 얘기해줘야지 하고 말하는 게 아니라 정말 어떤 순간 감수성이 폭발하면 나도 모르게 사랑한단 말이 튀어나온다. 그럴 때 하는 말이 제일 진실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제작발표회 한 날인데, 모든 상황이 감사해서 그렇게 썼다.

두 작품 모두 당신 역할은 ‘주인공 친구’였다. 주인공 친구 역은 감초 역이기도 하지만 주인공의 감정선을 대화로 풀어내는 것 또한 중요하다. 원래 고민상담 같은 걸 잘하는 편인가?
친한 친구들이랑은 수다스럽지만 원래 내 성향이 그렇게 얘길 잘 들어주거나 하는 편은 아니다. 연기에선 예전부터 제일 어렵게 생각한 게 친구 역할이었다. 일상적인 연기를 제일 못했다. 극단적인 게 더 잘 맞았다. 선생님들도 내게 약간 사이코 같은 여자나 심하게 우울한 여자 같은 걸 잘한다고 했다. “밥 먹었어?”같은 일상적인 대사가 참 어려웠다. 다행히 보는 사람들이 내 연기를 부담스럽지 않게 봐줬다. 내 모습 그대로인 것 같다고.

약점이 될 수도 있다. <지붕뚫고 하이킥>, <시크릿 가든>, <영웅호걸>에서 당신의 연기는 종종 진짜 유인나를 그대로 보는 것 같았다.
맞다. 걱정해주는 사람도 있었고, 나도 신경 쓰였다. 그런데 며칠 전에 우연히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단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난 요즘 너무 행복하다. 너무너무 짜릿하고 재미있다. 사람들이 아직 그런 내 모습밖에 모르니까. 내가 얼마 후에 완전히 돌변해서 정말 우울하거나 못된 캐릭터를 하면 “유인나가 저런 것도 해?”라며 놀랄 테니까. 보여줄 게 많이 남아서 재미있어 죽겠다고 친구한테도 얘기했다. 사람들은 지금 내 모습에 속고 있다.

듣다 보니 갑자기 故 이은주가 떠오른다.
우리 회사 실장님이 나 연습생일 때 그 말씀을 굉장히 많이 하셨다. 넌 참 은주랑 비슷하다고, 은주 보는 것 같다고 얘기했다. 나도 이은주란 배우를 아주 좋아한다. 슬프기도 하고 발랄하기도 하고, 섹시하기도 하다. 그 얘기 듣는 거 좋아한다.

하지원은 어떤 얘길 해줬나?
선배님이 말이 많은 편은 아니다. 얼마 전에 돼지 껍데기 먹는 신이 있었는데, 이전까지 껍데기를 거의 안 먹어본데다 그날따라 배도 불렀다. 그래도 맛있게 먹어야 해서 열심히 먹었다. 끝나고 선배님이 “잘한다 잘해 진짜 잘한다”그러시는데, ‘우와 내가 하지원한테 연기 잘한단 이야기를 듣다니 세상에’ 이런 생각에 너무 기분 좋았다.

촬영 중인 영화 자료를 찾아보니 당신을 ‘엉뚱하고 귀여운 럭셔리 걸’이라고 소개했다. 이제껏 당신이 대중의 미움을 사지 않은 덴 소시민적인 캐릭터가 한몫했다고 본다. 철없는 행동을 해도 밉진 않았다. 당신 외모도 꽤 화려하지 않나? 부잣집 딸 같은 역은 좀 과할지도 모르겠다.
하하 무슨 말인지 안다. 우아하고 비싼 옷 입고 또각또각 걸으면서 발레파킹 맡기고 그런 럭셔리걸이 아니다. 그냥 집만 부자다. 멍청하고 그냥 엄마 아빠가 돈이 많을 뿐이지 아무것도 없는 역할이다. 그냥 좋은 차를 끌고 다니는데 그게 뭔지도 모르고, 그냥 운송수단일 뿐인 애. 그래서 괜찮다.

한편으로 당신 목소리가 잘 어울릴 것 같단 생각도 든다.
나, 다른 목소리도 많다. 목소리 때문에 다른 건 못할 거다, 주연은 못할 거다 같은 말, 많이 들었다. 근데 목소리는 훈련을 통해 만들어지는 거다.

강심장에서 아나운서 흉내 내는 거 봤다.
어릴 때부터 성우도 하고 싶었고, 연습 많이 했다. 실제론 당신도 듣고 있어 알겠지만 좀 더 허스키하다. 연기할 땐 “야, 길탱자!” 이렇게 한 구멍으로 나가는 목소리가 된다. “김비서 여기서 더 예뻐져서 어쩌라구~” 뭐 이런 거. 역할이랑 어울리지 않나? 여러 목소리를 가진 건 내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슬픈 연기를 위한 목소리도 준비되어 있나? 그렇긴 한데, 어렵다. 발성 자체도 밑에서 가져와야 되고 발음도 좀 더 여성스러워야 한다. 근데 뭐 워낙 음악을 좋아해서 괜찮다. 음악이랑 말은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음악엔 굉장히 많은 목소리와 표현이 있으니까. 좀 발라드 감성으로 얘길하면 될 것 같다.

고등학교 때 모던록 밴드 보컬이었다고 들었다. 어떤 노랠 불렀나?
‘Whats Up’이라고 “앤 아이 세이 헤이 예이예~” 이런 것도 하고 ‘난 인형이 아니에요’라고 “아침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죠” 뭐 이런 것도 했다. 김윤아, 에이브릴 라빈, 앨라니스 모리셋 노래 같은 걸 많이 불렀다.

소속사가 YG다. 가수들과 같이 지내면 어떤가? 가수 준비 오래 했는데.
이상하게 안 아쉽다. 선망의 대상이긴 한데 하고 싶진 않다. 아이유가 나 음악 듣는 걸 보더니 나보고 너무 마이너한 성향이 강하다고 하더라.

몇몇 인터뷰에서 가수를 그만둔 이유가 한계 때문이라고 했다. 어떤 한계인가?
인내의 한계. 진짜 음악하는 사람들은 10시간 동안 노래해도 즐겁다기에, 거짓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연기 10시간 해보니까 알겠다. 가수 준비를 10년 했는데, 5-6년까진 즐거웠던 것 같다. 시간이 너무 지나 에너지를 잃은 것 같다.

    에디터
    유지성
    포토그래퍼
    김보성
    스탭
    스타일리스트 / 이지민, 헤어 스타일링/ 지호, 메이크업/ 임은경, 어시스턴트 / 홍서진, 어시스턴스/양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