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근대에의 경의

2012.04.06GQ

우리의 근대화는 침탈과 맞닿아 있으나, 당시 지은 건축물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한때는 치욕을 지우겠다며 부수기도 했지만, 암울한 역사도 결국 역사라는 인식 덕분에 보존될 수 있었다. 여기, 열한 곳의 근대 건물은 대부분 비어있다. 오래된 목조 건물엔 손 기름의 윤기가, 차디찬 석조 건물엔 따뜻한 온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건축사무소 여섯 팀은 이들 근대 건물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상상이지만 구체적인 제안이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다. 보존해야 마땅한 근대의 미래로서.

구 공주 읍사무소 외관. 압도적으로 웅장하다. 1. 구 공주 읍사무소 1층. 한때 디자인 카페로 쓰인 흔적이 남아 있다.  2. 구 공주 읍사무소 2층

구 공주 읍사무소

위치 충청남도 공주시 우체국길 8 (반죽동 122-1)
연혁 1920년 충남 금융조합연합회 회관으로 건축, 1930년부터 1985년까지 공주 읍사무소, 1986년부터 1989년까지 공주시청, 2010년 ‘디자인카페’로 개관.

한때 충청남도의 중심이자 백제의 고도古都. 지금은 교육의 도시. 화려한 역사를 가진 공주의 읍사무소가 시청으로까지 활용될 수 있었던 건 그 생김새와 무관하지 않다. 고대 그리스 신전 같은 비범함은 네 개의 기둥과 그것들이 떠받치고 있는 띠 장식, 엔타블레처entablature가 증명한다. 과거 미술학원으로도 사용되었던 흔적은 주홍글씨처럼 이마에 새겨져 있다. 건물 뒤에는 ‘시간이 정지된 음악공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봄이 되면 파란 잔디와 조형 벤치, 조각 분수까지 볼 수 있다. 이곳의 생기는 재작년까지였다. 일시적인 프로젝트로 디자인 카페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비어 있다. 공주시에선 올해 리모델링을 통해 공주고도 홍보관으로 만들어 공주와 관련된 ‘영상 모니터 숲’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이 건물의 조형적인 힘 때문인지, 자꾸만 미술, 디자인과 관련된 공간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기는 걸까? 공주, 아니 충청남도 주민에게 가장 필요한 공간으로 옛 읍사무소와 같이 공공적으로 할 일은 없을까? 충청남도는 전체 도민 가운데 외국인 주민이 차지하는 비율이 서울, 경기 다음으로 높아 자체적으로 다문화 전담부서를 만들 정도다. 그렇다면 타지에 와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이웃들에게 넒은 잔디밭으로 펼쳐진 공원과 그리스식 건물을 빌려준다면 어떨까? 그들에게 앞으로의 1백 년을, 우리의 지난 1백 년으로 약속하는 결혼식이 있다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잠시 잊게 해줄 추억이 되지 않을까?

1. 이치훈의 제안 - 다문화 가정을 위한 예식장. 2층에서 부케를 던지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2. 1층은 예식장. 2층은 피로연 장소로 꾸미는 상상.

이치훈(SOA)의 제안 – 다문화 가정을 위한 예식장

갑자기 시작하는 영화처럼, 현대 건축 사이에 남겨진 근대 건축은 자신의 무대로, 사람들을 관객으로 호출한다. 하지만 변형된 고전주의의 옷을 두른 이 빨간 벽돌 건물은, 더 이상의 이야기를 풀어놓지 않는다.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앞으로 벌어질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으로 충만해 있지만 그 호기심은 해결될 수 없다. 근대 건축물은 우리에게 오히려 호기심을 버리라고 이야기 하는지도 모른다. 애초에 관객은 앞으로 밝혀질 저 등장인물의 과거에는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배경서사는 영화를 즐기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뻔한 스토리에 극장을 박차고 나갈 수도 있다. 관객은 그저 앞으로의 내용이 궁금할 뿐이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온몸의 근육을 바짝 수축시킨 상태로 우두커니 서 있는 이 건물. 마치 가족을 두고 온 큰 눈망울의 청년이나 초콜릿색 얼굴을 한 수줍은 여인 같다. 그들만의 고유함을 간직했지만 타자에 의해서 규정되는 이방인의 시선. 그런 생경한 시선은 타지에서 온 객인이 이 건물을 처음 봤을 때와 비슷하지 않을까. 지나온 시간을 등지고 앞으로의 미래를 펼쳐나가길 바라는 건 이주해온 외국인이나, 뿌리 박은 예전 읍사무소나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이 인상적인 무대 위에 인생의 가장 화려한 막이 올라가길 희망해본다. 우리의 문화와 바다를 건너온 그들의 문화가 한 데 섞여 시작하는 곳, 공주에 있다.

현재는 잠겨 있는 진해 우체국 전경.

진해 우체국

위치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통신동 1
연혁 1912년 건축, 진해우편국이 이곳으로 이전하여 청사로 사용,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일제가 무기 생산을 위해 동판과 난간을 징발하고 아연으로 대체했으나, 1984년 복원. 1986년 신축 우체국이 생겼을 때도 영업 창구로 계속 사용되다, 1999년부터는 영업 창구도 신축 건물로 이전했다.

4월, 진해엔 꽃이 내린다. 그 짧은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군항제를 연다. 군항도시라서 당연히 군인이 많다. 토요일 오전, 외출을 나온 군인들은 가족과 함께 연인과 더불어 원형 광장 앞을 지난다. 편지보다 택배의 비율이 훨씬 많아진 지금, 군대에서 비로소 깨닫는 그리움 때문에 진해 우체국은 한결 애틋해 보인다. 일제가 만든 최초의 계획도시, 진해는 욱일승천기처럼 중원로터리에서 8개로 뻗어 있는 방사형 도시다. 북적거리는 군항제 땐 중원로터리 주변에 먹거리 시장이 열리고, 벚꽃과 어울려 이색적인 풍경을 만든다. 그러나 중원로터리 앞 진해 우체국은 사적 제291호로 등록되어 있는 문화재여서 그런지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현재는 예전 진해 우체국 구사옥 뒤편으로 새로운 진해 우체국 건물이 들어서 있고, 모든 업무는 그곳에서 이루어진다. 가끔씩 진해 우체국의 행사가 있을 땐 구사옥을 강당으로도 쓰기도 한다. 통신동 1번지, 그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진해의 시작이자, 진해의 중심에서, 아치를 올린 둥근 벽기둥(투스칸 오더) 사이 입구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끊임없이 드나드는 모습을 상상할 순 없을까? 푸른빛 동판 지붕 위로 벚꽃이 흩어질 때, 우체국 안에서 보이는 중원광장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양수인의 제안 - 시민 체육관이 된 진해 우체국.

양수인(LIFETHINGS/삶것)의 제안 – 시민 체육관

우리나라에서 가장 급격히 증가하는 현대인은 ‘어르신’들이다.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노후시간도 넉넉해졌고, 그에 따라 ‘어르신 체육활동’도 새로운 영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노령화의 속도에 비해 사회체육시설의 확충 속도는 어쩔 수 없이 미진한 것이 현실이다. 당연히 국가에서도 몇 년 전부터 어르신을 위한 체육활동 예산을 지원하고 있지만, 사회체육시설의 절대적 부족 문제는 쉽게 해결되고 있지 않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이 작년 말부터 국민체육진흥공단은 생활 스포츠 지원 켐페인의 일환으로 전국 232개의 국민체육센터 건립 프로젝트를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새로 건립하는 것만이 능사일까? 도시 곳곳에 버려진 작은 공간들을 재사용하여 동네 탁구장으로, 에어로빅장으로, 요가장으로 활용해보는 것은 어떨까? 주로 기구를 들여놓고 사용하는 가벼운 생활체육시설의 경우, 대대적인 리모델링이 필요하지는 않으므로 근대 건축물의 역사를 잘 보전하면서 활용 가능할 것이다. 상상해봐라. 우리 동네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는 근대 건축물에 손자 손을 잡고 와서 탁구를 치고, 며느리와 함께 요가를 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1.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의 정원. 2. 방과 방 사이를 잇는 복도. 3. 방 내부엔 다양한 물품이 전시되어 있다. 하지만 밖에서 볼 뿐이다. 4.복도의 한 모퉁이.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히로쓰 가옥)

위치 전라북도 군산시 신흥동 58-2번지
연혁 1925년경 건축. 2009년 6월, ‘군산 신흥동 구 히로쓰 가옥’으로 등록문화재가 되었다가 2009년 8월,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채만식의 <탁류>는 군산이 주무대다. 일본인 지주의 땅에서 소작을 하고 반출되는 미곡을 운반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선조의 이야기. 당시 쌀과 곡식 유통업을 하던 히로쓰는 자신이 살 집을 군산에 지었다. 필요한 목재를 전부 백두산에서 가져올 정도로 극성이었다. 일본에서도 보기 힘든 규모의 커다란 저택인데, 정원에 가득 들어차 있는 돌탑과 정원석도 정성껏 고르고 채워서 빽빽할 정도다. 이렇게 호사로운 집은 복원됐지만, 첫 주인의 이름 ‘히로쓰’는 사라졌다. 가옥에 들어서면 으스스하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 따뜻한 게 더 이상하겠지만, 이리도 큰 집을 휘 둘러만 보고 가야 하니 온기가 머물 리가 없다. 복원 이후에도 방 안으로는 못 들어가게 파란색 바리케이트를 세워놓았다. 실내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건 오히려 영화를 통해서다. <장군의 아들>과 <타짜>, 최근 개봉한 <가비>의 촬영지 였으니. 수탈자 히로쓰가 남기고 간 이 가옥을 우리는 아직도 어려워해야만 할까? 비로소 온전히 되찾은 이 호화로운 저택에서 하루라도 살아볼 기회는 없을는지.

최예선 작가의 제안 - 한 팀만 예약하는 게스트 하우스.

청춘남녀, 백년 전 세상을 탐하다> 저자)의 제안 – 한 팀만 예약하는 게스트하우스

군산은 근대 건축 여행자들이 자주 찾는 여행지인데, 숙소가 마땅치 않다. 옛 거리를 걸어 다닐 수 있는 곳에 부끄럽지 않게 드나들 수 있는 숙소가 있다면 반가울 텐데. 마땅한 후보가 히로쓰 가옥이다. 이 대저택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건물로, 집사가 운영하는 멋진 고택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 <남아있는 나날>의 안소니 홉킨스처럼 멋진 집사와 충직한 골든 리트리버가 있는 저택. 관광객에게 집사가 직접 이 오래된 저택의 역사를 설명해주는 상상을 해본다. 건물의 역사는 만들어질 당시의 것만이 아니며, 앞으로도 계속 쌓이고 길어져야 하기 때문에 살아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대저택의 멋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이 집에 많은 투숙객이 오래 머물러서는 곤란하다. 문화재 건물인 만큼 일반 관람객들에게 개방해야 하기 때문이다. 저녁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10시까지 운영하며, 한팀만 예약하는 고급형 게스트하우스로 활용하고 싶다. 오직 한 팀만 예약이 가능하다는 운영 방침은 이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경험을 좀 더 특별하게 해줄 것이다. 투숙객의 목적에 따라 티타임이나 미식 체험도 이루어질 수 있다. 집사는 연륜 있는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은퇴한 호텔리어나 서비스직 종사자 중에서 선발한다. 집사 선발대회는 어떨까? 대저택에서의 하룻밤, 기대되지 않는가!

1. 내부로 들어오는 입구엔 빛이 항상 머문다. 2. 벽난로 등 세세한 부분까지 복원되었다. 3. 구 목포 일본 영사관 전경.

구 목포 일본 영사관

위치 전남 목포시 대의동 2가 15
연혁 1900년 건설, 1907년까지 일본 영사관으로 사용. 1914년부터 목포 부청사로 쓰이다가, 1974년부터 목포 시립도서관으로 활용되었다. 1990년부터 2009까지 목포 문화원이었다.

목포의 항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유달산 언덕에 목포 일본 영사관이 서 있다. 건물은 목포를 개항시킨 일본의 삿된 자취처럼 느껴진다. 창문으론 수탈품을 실은 배가 일본으로 떠나는 게 빤히 보였을 것이다. 오랫동안 시립도서관이었을 땐 꼭 호그와트에서 아이들이 공부하는 모습 같았을 테다. 건물 뒤에는 과거 문서고나 음악 감상실로 쓰이던 석조 건물이 있다. 하지만 거기엔 들어가볼 수 없었다. 누군가 점거하고 있는 듯했지만 알 길이 없었다. 관리인도 작년 비가 많이 오던 여름에 봤을 뿐이다. 그 옆에는 일제가 만든 72미터 방공호가 있다. 영사관 안은 최근 막 보수 공사를 끝냈다. 벽난로의 문양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복원되었다. 그래서 이 큰 건물 안을 비워둔다는 것이 한없이 섭섭하기만 하다. 주변 아파트 사이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석양이 지자 붉은색 벽돌 건물이 주홍빛으로 타오른다.

노은주의 제안 - 어린이 학교.

노은주 (가온건축)의 제안 – 어린이 학교

대여섯 살 무렵 딸아이는 학교에 간다면 ‘호그와트’에 가고 싶다고 했다. 시인이자 건축가인 함성호 소장은 동전을 감추는 마술을 선보이며 ‘호그와트’에서 공부했다고 큰소리쳤다. 오랫동안 아이들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고, 가령 중앙고 같은 근대풍의 건물들을 보게 되면 또 ‘호그와트’ 같다며 친근해했다. 아치와 굴뚝과 첨탑과 빛바랜 벽돌 벽. 고색창연한 옛 건축의 문법은 그런 마법에 대한 상상과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모두가 꿈꾸지만 현실에선 불가능한 일들을 이루어주는 것이 마법이다. 그런데 근대의 시간과 공간에서는 새로운 계급의 등장과 신산업으로 인한 부의 창출 등 이전에는 상상 못했던 방식의 마법들이 해리 포터나 간달프의 지팡이 없이도 이루어졌다. 현대에 와서 모두가 바라는 환상과 꿈을 실현시켜주는 궁극의 마법은 지식과 정보다. 그런 측면에서 목포 일본 영사관이 목포시청을 거쳐 도서관으로 사용된 것은 우연이든 필연이든 제법 합당한 일이었을 것이다. 구 목포 일본 영사관은 조선에 근대라는 마법의 지팡이를 강제로 휘두르며 밀고 들어온 일본이 남긴 흉터 중 하나다. 미워하기엔 아직도 너무 아름답다. 비워둔 채 괴로운 과거만을 기억하는 슬픈 유산이 아니라, 아이들의 꿈으로 가득한, 지식이라는 마법을 가르치는 어린이 학교로 거듭나면 좋겠다.

1. 제천 엽연초 수납 취급소 전경. 2. 눈이 덮인 곳은 전부 잔디밭이다. 건물은 'ㄱ’자로 꺾여있다. 3. 제천 엽연초 생활협동조합 구사옥.

제천 엽연초 수납 취급소

위치 충청북도 제천시 의병대로12길 14-1, 외 1필지 (명동)
연혁 1943년 ‘ㄱ’자형 평면 형태로 재건축. 1982년, 한국자산관리공사로 소유권 이전 후 특별한 용도 없이 보존 중.

제천 엽연초 수납 취급소는 담배의 원료인 엽연초를 사들여 공장으로 보낼 때까지 보관하는 장소다. 삼각형 박공지붕에 비늘판 벽이 있는 목조 건물이라서 한눈에 공장이나 창고인 것을 한눈에 알아챌 수 있다. 건물 길이는 대략 1백 미터 정도지만 ‘ㄱ’자 모양으로 꺾여 있다. 건물로 감싼 정원은 잔디로 덮여 있다. “예전 전매청에서 갑자기 가져간 거예요. 실은 우리 것이었죠.” 제천 엽연초 생활협동조합에서 일하는 직원이 말했다. “복원 된 구사옥은 우리의 소유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수납 취급소는 현재 한국자산관리공사에서 사용하고 있어요.” 그의 말이 안타깝게 들렸다. “구사옥과 뒤편의 수납 취급소 모두 사용하면 좋으련만. 우리는 담배 박물관이든 뭐든 사용하려고 생각도 해봤어요.” 제천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계속 직진을 하면, 이 건물에 닿는다. 제천의 중심이었던 명동에 이리 크면서도 오래된 목조 건물이 있을 줄이야. 담배와 함께 시작되었던 건물의 역사는 담배 생산의 현대화에 맞춰 그 수명을 다했다. 그 사이 한국담배인삼공사는 KT&G라는 이름으로 바뀌었고, 홍대엔 상상마당처럼 눈에 띄는 건물도 세워졌다. 제천에도 KT&G 신사옥이 엽연초 수납 취급소 옆에 자리 잡고 있다. 매년 국제 음악 영화제를 개최하는 제천은 문화 도시가 되고 싶어하지만 영화관은 하나밖에 없다. 제천 시민과 관광객은 갈 곳이 없다고 하소연하는데 제천 수납 취급소는 여전히 비어 있다.

정구원의 제안 - 예술 공장.

정구원(STUDIO DAAL)의 제안 – 예술 공장

STUDIO DAAL은 제천에 주택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30대의 젊은 건축주는 제천에 볼 만한 데가 없다고 늘 이야기한다. 지방 소도시에 사는 젊은이들은 주말마다 인근 대도시나 서울로 가곤 한다. 문화적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때마다 ‘엽연초 수납 취급소’에 젊은 지역민들을 위한 문화 시설이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곳은 길고 넓어서 매력적인 공간이다. 묵직하게 내려앉은 천장과 투명하게 비어 있는 공간에서 예측하기 어려운 울림이 느껴진다. 공간의 매력을 충분히 살리려면 기능별로 구획된 프로그램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카페와 아트숍, 영화관이나 공연장 등 여러 가지 기능을 복합적으로 충족시키도록 가변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생각해보았다. 단순하고 멋진 하나의 구조물을 설치하여 길고 넓은 내부를 조각내지 않으며 이 구조물에 다양한 기능을 담도록 했다. ‘ㄱ’자형으로 꺾인 엽연초 수납 취급소의 구조적 장점을 살린다면 효율적인 관리도 가능하다. 이 장소는 거칠게 마감된 재료의 촉각과 인공적으로 매끈하게 완성된 시각적인 감각이 서로 맞부딪혀서 공간의 매력이 증폭된다. 묵은 담배 냄새를 대신해 커피의 향기로 채워지는 장면을 이 공간에 담고 싶다. 공간의 성격처럼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모이는 협업의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

    에디터
    양승철
    포토그래퍼
    정우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