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집밥과 밥집 사이

2014.05.22손기은

먹는 일이 유행이 아니었던 적이 있나? ‘먹방’이니 착한 식당이니 하는 단어가 늘 주위를 맴돈다. 정확한 뜻보다는 사용되는 행태에 따라 의미는 계속 덧칠된다. 그래선지 요즘, ‘집밥’이라는 말이 좀 허무하다. 이 말의 뜻을 정의하고 곱씹으며 지켜본 집밥의 유행과 밥집의 변화.

‘집밥’은 집에서 먹는 밥을 뜻하는 조어다. 이 단어는 사전에 없다. 하지만 4~5년 전부터 뭉게뭉게 퍼지더니, 최근 들어 ‘먹방’만큼 자주 쓰고 있다. 방송사에서는 ‘집밥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예능의 한 꼭지를 진행하기도 하고, <집밥의 여왕>이라는 간판을 내건 프로그램도 만든다. <저녁 7시 나의 집밥>, <믿을 건 집밥뿐이다>라는 책도 출간됐다.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얼마나 예쁘고 아름답게 집밥을 해 먹는지 보여주는 계간지 <킨포크>의 단행본 <킨포크 테이블> 한국어판은 판매량에서도 이슈 면에서도 눈에 띄는 기록을 남겼다. 이젠 “집밥 고프다” 혹은 “따뜻한 집밥 한 그릇”이라는 말을 일상에서 자연스레 쓴다.

‘집’과 ‘밥’이라는 이 간단한 조합 속에는 생각보다 여러 뜻이 복잡하게 스며 있다. 집밥은 먼저, 단순히 집에서 먹는 밥이라는 의미 외에도 집에서 가족이 해준 밥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아무래도 엄마가 해준 밥일 확률이 높다. 내가 나를 위해 잘 차린 밥이라는 뜻도 물론 가능하다. 그렇다고 집에서 간단히 끓여 먹는 라면이나 누구나 3분 만에 만들 수 있는 카레 같은 건 집에서 먹는 밥이라도 요즘 의미의 집밥에 들지 못한다. 배달시켜 집에서 먹는 피자와 치킨도 집밥의 범주에서 확실하게 튕겨져 나온다. 집밥에는 정성스레 차린 밥이라는 의미가 꼭 포함된다는 뜻이다. 게걸스럽게 먹는 밥이 아닌 ‘가족’과 ‘정성’이라는 정서적인 맥락이 기저를 단단히 받치고 있다.

이런 정의로 다시 생각해보자면, 집밥의 반대말은 집 밖에서 사 먹는 밥이다. 공교롭게도 집밥을 거꾸로 한 말인 ‘밥집’이 그대로 그 반대의 의미가 된다. 누가 누구를 위해 해준다는 의미 없이, 정성스레 차려낸 느낌 없이, 급식소나 대형 식당에서처럼 다수를 위해 차린 밥을 파는 곳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테다. 점심 시간에 우르르 사람이 몰렸다가 1시간 뒤면 다시 손님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회사 근처 많은 백반집을 우리는 흔히 밥집으로 묶는다. 좀 과장해 말하자면 서둘러, 어쩐지 때우는 느낌으로, 차려진 무엇을 받는다는 기분 없이 그저 먹어두는 밥에 가깝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 사이에서 오르내리는 집밥이라는 말은 위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집밥 식당, 집밥 맛집 같은 말에서부터 벌써 기존 정의가 틀어지기 시작한다. 최근 1년 남짓 사이 집밥이라는 뜻 안으로 밥집이라는 개념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치 집에서 차린 밥을 먹는 것 같은 분위기를 두루 뜻하는 말이 되었다. 양식이나 고급 식당이 아니더라도, 나를 위해 신경 쓴 느낌이 드는 따뜻한 밥상을 사서 받는 셈이다. 기존의 밥집과는 분위기나 정서적인 면에서 차이가 난다. 식당 인테리어부터 하루에 일정량만 한정적으로 판매하는 것까지 확실히 선을 그으려고 한다. 집밥과 밥집이 만났다는 명확한 트렌드를 일구기 위해 차별화 전략을 펴고 있는 셈이다. 이런 식의 ‘집밥 밥집’이 최근 외식 업계의 갓 지은 화두다.

외식 트렌드가 늘 그렇듯, 기폭제가 되는 몇 군데 ‘집밥 밥집’이 있고, 그 옆에 나란히 목록에 올릴 수 있을 만한 곳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하나의 경향으로 묶인다. 신사동의 ‘쌀가게 by 홍신애’와 한남동의 ‘파르크’, 서촌의 ‘밥 플러스’, 연희동의 ‘봉쥬르 밥상’ 등이 유행의 지도 에 선명한 핀셋을 꽂았다면, 그 이전부터 영업하던 곳들과 새로 생겨난 곳들이 자석처럼 재빠르게 모여 하나의 거대한 목록을 완성했다. 서교동의 ‘페페로니 부엌’, 금호동의 ‘K’, 한남동 의 ‘일호식’, 청담동의 ‘범스’, 신사동의 ‘달식탁’, 서교동의 ‘시금치 식당’, 내수동의 ‘한성별식’ 등등이 지금 우리가 말하는 ‘집밥 밥집’의 대표 얼굴이다. 그 밖에도 좀 뜨는 동네 골목골목엔 ‘집 밥 밥집’이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 이들 식당을 유행에 편승한, 밥집 콘셉트만 가진 식당으로 몰아갈 생각은 전혀 없다. 이 중 몇 군데에서는 밥그릇 바닥을 긁어가며 맛있게 밥을 먹었고, 다시 찾고 싶은 생각도 물씬 들었다. 밥을 먹으러 간 건지 전쟁터에 나간 건지 헷갈리는 기존 의 많은 밥집들의 고질적인 위생 문제와 불친절도 실마리가 풀리는 것 같아 흡족했다. 하지만 점점 번져나가는 ‘집밥 밥집’ 현상을 지켜보며 심정이 좀 복잡해졌다.

이 복잡한 심정의 원인은 두 개의 단어로 뽑아낼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집밥 유행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단어이자 지금의 ‘집밥 밥집’ 유행을 지탱하는 양 축이며, 이 흐름 의 장점인 동시에 맹점이다. ‘정갈하다’와 ‘담백하다’. 어느 ‘집밥 밥집’을 가든 밥과 국과 반찬 이 개인당 한 벌씩 가지런히 담겨 나오고 맛은 약속한 듯이 연하고 부드럽다. 번잡한 상차림과 자극적인 맛이야말로 지적 사항이지 정갈하고 담백한 것이 왜 문제일까? 다시 말하면 그 경향만 얄팍하게 표방하는 의존성이 문제다. 잘하는 아이를 마저 다그치는 심정으로, 지금이야 말로 작은 결점이 있다면 쿡 찔러 터뜨릴 때다.

‘집밥 밥집’에서 사먹는 밥이 정갈하다는 표현은 많은 곳에서 개인당 한 트레이씩 따로 상차림을 하고 있는 데서 기인한다. 여럿이서 반찬과 찌개류를 공유하지 않고 한 사람에 한 벌씩 음식이 조금씩 제공되는 방식이 유형화됐기 때문이다. 깨끗하고 세련된 방법임에는 분명하지만, 한 그릇 음식이 메인을 차지하고 절임 반찬이 소량 올라오는 것이나 돈카츠나 덮 밥, 카레라이스 같은 메뉴가 많은 건 일본의 가정식을 먼저 떠올리게 한다. 일본식 식기를 그 대로 쓰는 곳도 있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진짜 집밥으로 자주 먹는 찌개류는 정작 찾기 힘든 상황도 벌어진다.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진짜 문제는 아니다. 선진화된 밥상 차림이 라고 생각한다면 오히려 좇는 것이 맞다. 반찬도 남기지 않고, 위생도 챙기고, 보기에도 예쁘니 여러모로 ‘개선’된 형태 아닌가? 지금은 사라졌지만 이런 방식은 과거 우리 전통 상차림에도 있었다. 다만, 꾸밈에만 힘을 준 나머지 집밥의 분위기를 넘어서 ‘카페 밥’처럼 보이는 곳도 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이런 형식만 갖춰놓고 엄마의 정성, 정갈한 밥상을 재현했다고 거드름을 피우는 곳도 없지 않다. 이것이 식문화가 변하는 성장통 같은 것일까? 아직도 많은 식당에서는 식탁만 한 커다란 찌개 냄비에 여러 명이 둘러앉아 숟가락을 꽂아 먹거나 비닐을 바닥에 깔고 미리 만들어둔 수십 개의 반찬 그릇이 포개진 채 식탁에 내어지는 게 일상적이다. 그런데 한쪽에서는 정갈하다 못해 소꿉놀이처럼 보이는 극단적인 모습도 보이니, 이걸 두고 변화라고 쉽게 부를 수가 없다.

정갈하다는 말과 함께 담백하다는 말 역시 뜯어보면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 대부분의 ‘집 밥 밥집’에서는 화학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걸 강력하게 내세운다. 보통 집밥에는 MSG를 쓰지 않으니 벽이나 메뉴판에 이걸 확실히 기재해둔다. 사용하는 식재료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깐깐하게 기록한다. 그런데 MSG를 사용하지 않은 음식이 간이 세지 않은 담백한 음식이라는 뜻과 같을까? 요즘 유행한다는 밥집에서 식사한 후 “싱거운 게 능사는 아니지 않느냐”라는 말을 내뱉은 지인을 최근에 여럿 만났다. 양념이 세거나 간이 센 식당 요리에 MSG가 들어갔을 확률이 높은 것은 맞지만, 반대로 양념이 약해지고 맛이 밍밍해진 것으로 MSG가 빠졌다는 사실을 기어이 드러내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최근 식약청이 MSG가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는 발표를 공식적으로 했건 말건, 오랫동안 이어져온 논란과 좀 떨어져 말하자면, MSG는 가장 손쉽게 맛을 낼 수 있는, 이를테면 요리법의 꼼수다. 이 꼼수를 쓰지 않고 똑같은 맛을 내려면 그만큼의 시간과 재료를 투자해야 한다. 다듬고, 우리고, 담그고, 거르고, 고르고, 찾고, 공수하고, 투자하고, 고민하고, 개발하고, 도전하는 일을 충분히, 오랫동안 해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MSG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말은, 담백하다는 말보다는 손이 많이 간 제대로 된 음식을 낸다는 말과 연결되는 것이 맞다. MSG가 없다고 재료의 맛까지 흐릿하게 퍼져버리는 곳이라면, 하나는 알고 둘은 깨닫지 못한 집일 확률이 높다. 좋은 재료는 맛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시간과 품을 들여 요리하는 접시에서 애매한 맛이 나올 리 없다.

집밥과 얽힌 사회의 또 다른 단면도 있다. 인터넷과 SNS를 기반으로 불고 있는 소셜 다이닝 현상이다. 밥상의 주제와 날짜를 올리면 마음 맞는 사람들이 각자의 음식을 들고 만나서 밥을 먹는다. 따뜻한 밥을 나눠먹고 싶고, 먹으면서 누군가와 교감했으면 좋겠고, 정서적인 배부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일일 테다. 그게 제대로 외식을 하고 싶은 마음보 다 더 큰 이유는 뭘까? 기존의 밥집도 따뜻함을 주는 공간이 될 순 없을까? 집밥이라는 유행을 타야만 밥집이 좀 개선되는 걸까? 질문은 던졌지만 답은 아직 찾지 못했다.

    에디터
    손기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