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글을 쓸 수 있고 책을 쓸 수 있는 시대. 글쓰는 요령을 가르치는 책의 출판도 덩달아 늘었다. 비아냥 없이 글쓰기 책의 효험을 살폈다.
“사랑을 글로 배웠어요.” 친구의 연애 상담에 선뜻 나선 자칭 연애 고수에게서 이런 고백이 흘러나오면 낮게 탄식이 터질지도 모른다. 사랑을 글로 배웠다고 잠자던 연애 세포가 깨어나지 마란 법은 없고, 요리를 글로 배웠다고 접시에 담긴 음식의 맛이 형편없을 리도 없고, 운동을 글로 배웠다고 매번 헛발질만 하진 않는다. 하지만 ‘사랑을 글로 배웠어요’류의 얘기를 하는 누군가는 못내 의심한다. 흔한 말로, 이론과 실제는 다르니까. 사랑이란, 요리란, 운동이란 그 참뜻을 차마 글로 담을 수 없고, 오직 경험이 쌓이는 만큼, 조금은 알 것 같지만 여전히 모르겠는, 더디게 더듬어가는 과정이니까.
그런데 ‘뭔가를 글로 배웠다’고 말해야 오히려 적절한 예도 있다. 바로, 글쓰기. 글쓰기를 글로 배웠다면 하나마나한 소리가 될 게 빤하지만, 한국에서 자연스럽게 글쓰기를 글로 익히는 교육을 받아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고득점과 대학 진학을 목표로 삼는 교육과정에서는 국어, 논술, 심지어 교내 백일장조차도 글쓰기를 글로 배우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사회에 나가서 업무용 메일을 쓸 때 짧은 글 하나를 제대로 만들지 못해 고민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분명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어째서 간단한 문장 하나를 온전하게 구성하지 못하게 됐을까.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는 심지어 그의 소설보다 좋다는 사람도 많다. 사실 이 책에는 글을 쓰는 구체적인 방법보다는, 일상이나 대화에서 소설의 발상을 얻고 그것을 궁굴리던 날들의 기록이 더 많은데, 무척 흥미로운 내용이다. 게다가 지금은 세기도 어려울 만큼 베스트셀러가 많은 저명한 소설가가 자신의 햇병아리 시절을 자진 폭로하고 있으니 흥미를 넘어 안도감도 준다.
그런데 독자인 내가 이 책의 마지막 쪽을 넘기고 나면, 이제 나의 문장을 쓸 수 있을까. 훌륭한 글쓰기 책을 한 권 한 권 통과할 때마다, 글쓰기의 비결을 깨친 것 같고, 나만 모르고 있던 글쓰기의 비의를 깨달은 것 같고, 급기야는 손가락이 스무 개 백 개로 변해서, 한달음에 대하 장편소설을 뽑아낼 것 같을 것이다. 가슴은 부풀어 오르고 기대에 가득 차 동공도 커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
막상 자판 위에 손가락을 내려놓으면, 하얀 모니터는 평야처럼 넓고 손가락은 오그라든다. ‘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더라?’ 글쓰기 책을 읽기 전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이런 상태로 돌아간다. 부푼 가슴에서 희망의 가스가 슬프게 빠져나가는 경험을 글쓰기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한 번쯤은 겪었을 터다.
그러니까 글쓰기 책은 아무리 잘 읽어봤자 소용없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냐고? 아니다. 그런 얘기는 걸러 듣는 게 낫다. 이런 조언을 건네는 분들은 이미 글쓰기 책이 필요한 단계를 넘어선 경우가 많다. 이미 여행에 익숙하다면 언제든 무턱대고 낯선 곳으로 떠나도 되겠지만, 여행의 초심자라면 안내서든 지도든 펼쳐놓고 떠날 준비를 꼼꼼히 하는 게 좋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글쓰기 책 역시 9할 8푼의 쭉정이와 2푼의 옥석이 뒤섞여 있으니, 옥석을 잘 골라내면 분명 도움이 된다.
다만 여행을 하려고 지도를 가져갔다가 정작 지도를 여행하고 오면 안 된다는 경고는 해두고 싶다. 도구 상자에 충분한 장비를 꾸려야 겠지만, 필요한 모든 장비를 갖추려는 방향은 위험하다. 자신의 글쓰기가 별로인 이유가 부족한 도구, 몰랐던 기법 탓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때부터 글쓰기 책은 덫이자 굴레가 될 뿐이다.
글쓰기 책 시장의 욕망이란 게 있다면 어떤 것일까. 우후죽순처럼 발간되는 이 분야 책들의 재생산이 가능하려면, 사람들이 글쓰기를 강렬하게 원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글쓰기를 계속 지연시키도록 해야 한다. 끊임없이 누군가의 글쓰기 도구와 장비가 부족하다고 경고하고, 새로운 방식과 비법을 갖추도록 자신의 글에서 문제를 발견하도록 부추긴다. ‘아직 준비가 덜 됐다’는 변명을 앞세워 ‘쓰지 않는’ 자신을 편하게 합리화한 후 이 시장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이 쭉정이들의 욕망에 붙들리지 않을 만큼의 현명함이 필요하다. 운 나쁘게 도움이 안 되는 책을 골라도 의외의 효용은 있다. 쓸모없음의 쓸모랄까. ‘아, 이런 방법으로 내 글쓰기가 발전하기는 어렵겠구나’란 깨달음. 그간 들인 노력을 떠올리며 시간 낭비했다는 후회를 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그건 낭비가 아니라 언제든 치러야 할 비용이다. 어디로 갈지 아는 데만 비용이 드는 게 아니라, 어디를 가지 말아야 할지 아는 데도 비용이 든다. 가야 할 곳을 늘리는 해결도, 가지 말 곳을 지우는 해소도, 가고 싶은 곳에 도착하는 데 모두 도움이 된다.
아니면, ‘아, 나도 책을 쓸 수 있겠구나’라는 자신감을 얻어도 좋겠다. 수많은 자기계발서가, 그 책이 약속하는 전망으로 나를 계발시키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자기계발에 가까운 것처럼, 도움이 안 되는 수많은 글쓰기 책도 그 책이 약속하는 비법으로 나의 글쓰기를 이끄는 게 아니라 저자의 글쓰기를 책으로 실현시킨 것에 불과하다. 단적으로 말하면, 그 책을 통해 글쓰기에 성공하는 것은 저자 한 사람뿐이다.
여기에는 어떤 비아냥도 없다. 가령 실제 글을 쓴 경험에서 나온 글쓰기 책 말고, 다양한 기존의 글쓰기 책을 겪고 나서 새로운 글쓰기 책을 쓰면 어떨까. ‘메타-글쓰기’ 라는 이름 정도로. 글쓰기책에 관한 글쓰기책, 에 관한 글쓰기책, 에 관한 글쓰기? 이렇게라도 ‘자기 책’을 쓸 수 있다면 적극 실천해보기를 권한다.
다만, 이런 시도에서는 밀란 쿤데라가 얘기한 그라포마니아적인 욕망, 그러니까 책을 써서 미지의 독자를 갖고 싶어 하는 욕망과 구별되는, 글쓰기에 내포된 수행성의 차원을 놓치면 안 된다. 글쓰기 책이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는 이제까지의 얘기는, 도움이 되는 책 중에선 가장 도움이 안 되고, 도움이 안 되는 책 중에선 가장 도움이 된다, 정도로 줄여도 좋겠다.
얼마 전 출간된 <고종석의 문장>에서는 글쓰기를 ‘음악이나 수학과 달리 충분한 훈련이나 연습으로 크게 개선할 수 있’는 분야로 설명한다. 음악이나 수학, 스포츠, 미술은 신동과 천재가 존재하고 어찌 보면 천재만이 살아남는 세계다. 물론 글쓰기 역시 언어에 대한 감각과 독특한 이야기 방식을 타고난 천재가 존재한다. 그러나 신동은 없다. 아이가 잘 쓴 글은, 아이가 쓴 글이라는 전제 아래에서만 좋은 평가를 받는다. 그 나이치고는 잘 썼네, 같은 칭찬은 가능하지만, 아무리 잘 쓴 아이의 글이라도 한평생 책으로 일가를 이룬 문필가와 비교하지는 못한다. 천재성이 고갈되면 제아무리 천재라도 정체되고 마는 다른 분야와 달리, 글쓰기는 굴곡이 존재하고, 나아가다가도 머물며, 이런 과정을 통해 연륜이 깊어진다. 마치 인생처럼.
글쓰기가 훈련과 연습으로 개선이 가능하다면, 가장 좋은 스승은 좋은 문장으로 이루어진 매력적인 책이다. 어느새 마음을 빼앗겨 읽어나가는 책의 문장 문장이 교본이 되고 표본이 되는 것. 내가 배우고 있다는 것조차 미처 깨닫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미 배워버리는 것.
그런데 글쓰기 환경이 삶과 저만치 먼 한국에서는, 일상에서 좋은 문장을 마주할 일이 갈수록 준다. 평범한 직장인 A씨는 아침에 눈뜨면 스마트폰으로 새로운 뉴스를 재빠르게 살핀다. 출근 버스 안에서 소셜커머스 앱으로 오늘의 딜 상품을 훑어보고 간간이 친구와 카톡을 주고받는다. 몇몇 연예기사를 읽는다. 트위터 타임라인을 훑어본다. 회사에 도착해 메일 함에 쌓인 제목을 빠르게 읽어내려간다. 결재문서 폼을 연다. 빈칸만 채운다. 이런 상황이라면, ‘나의 문장’은 가장 길어도 트위터 창의 140자가 아닐까. 결국 A씨의 주된 글쓰기인 트위터 창은 140개의 ‘ㅋ’를 치는 것으로 파편화될지도 모른다. 글쓰기를 새로 배우려는 A씨의 앞날은 아무래도 밝지 않을 것 같다.
이것은 “휴가를 떠나기에는 마음에 여유로움이 찾아들지 않는 것은… 아마도 그 시간 동안 남아 있는 많은 일들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라는, 몇 번을 읽어도 이해하기 힘든 문장 아닌 문장을 보는 것만큼 슬프다. 이미 문학 원로에게서 “몽테뉴와 베이컨 수필의 전통을 잇는” 수필가로 공인받은 대통령이 쓴 글이라 더 슬프다. ‘대통령을 위한’이란 말머리를 붙인 책이 많지만, 어서 빨리 ‘대통령을 위한 글쓰기’가 나오기를. 필요할 땐 도움이 되고, 훈련이나 연습으로 개선할 수 있으니.
- 에디터
- 글 / 박준석(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