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보기만 해도 가슴 떨리는 자동차들. 그리고 단 한 대를 위한 명예. 2월엔 2015 혼다 CR-V다.
[2015 혼다 CR-V]
‘수입 SUV 최강자’라는 이름으로 혼다 CR-V를 수식하던 시기도 있었다. 한국 최초 출시는 2004년이었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는 수입 SUV 중 가장 많이 팔렸다. 미국시장의 충성도는 더 굉장하다. 1세대 출시 이후 30년 이상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BBC <톱기어> 제레미 클락슨은 혼다 CR-V를 두고 “지루하다boring” 말했던 적도 있었지만…. 기본기에 충실하고 실용적이며 자극적이지 않은 모든 차는 누구에게나 그런 말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바꿔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충직하다loyal” 혹은 “신의가 있다faithful”. 혼다 CR-V는 그럴 자격이 있다.
CR-V는 도심을 지향하는 SUV다. 이제는 흔해진 그 말, ‘도심형 SUV’를 최초로 지향했던 기아 스포티지에 영향을 받아, 혼다 시빅을 기본 삼아 SUV로 다듬은 게 시작이었다. 네 바퀴를 다 굴리지만 상대적으로 차고가 낮고 운전 감각은 부드럽다. 2,356cc 직렬 4기통 직분사 가솔린 엔진과 무단변속기CVT의 궁합은 의뭉스러울 정도다. 변속 충격이 없으니 가속 또한 매끄럽다. 시속 80킬로미터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의외로 짧다. 예를 들면 골목 어귀를 돌아 나와 편도 4차선 도로에 진입한 후 왼쪽 방향지시등을 켜고 1차선까지 진입, 아무렇지도 않게 일반 도로의 흐름에 동참하기까지의 시간. 고속도로에선 조금 더 빠른 속도로 마음 놓고 오래 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때의 편안한 심정을 두고 ‘지루하다’는 말을 할 수도 있을까? 그런 길을 재밌게 달리려면 어떤 차를 타는 게 좋을까? 패들시프트를 현란하게 조작하면서 차선을 가로지를 수 있는 차? 시속 150킬로미터를 넘어 질주하면서 지붕도 열어놓을 수 있는 차? 그런 차에도 미덕은 있지만, CR-V는 그렇게 타는 차가 아니다.
최대한 많은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차는 얼핏 개성이 부족해 보일 수 있다. 두루두루, 거의 모든 용도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적당한 힘, 적당한 연비, 넉넉한 공간, 부드러운 운전 감각. 내가 운전하던 차를 여자친구나 아내가 운전한다 해도 부담스럽지 않은 차. 부모님이나 장인어른을 모신다고 해도 참 성실한 느낌을 줄 수 있는 차 말이다. 그렇다고 CR-V가 마냥 순한 것도 아니다. 구불구불한 산길에선 마음먹고 밟아도 좀처럼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는다. 다소 괴팍하게 몰아 세워도 득달같이 따라붙는다. 그냥 평범한 SUV라고 생각하기엔 그동안 다져온 혼다의 기술력과 감각이 억울한 실력. 가슴이 뻥 뚫릴 정도로 재미있게 달리기 위한 차는 아니지만 뿌듯한 수준의 안정감…. 오래 곁에 두고, 조목조목 따져보고, 평범한 일상이거나 가끔 하는 여행이거나, 누군가와 같이 할 수 있는 모든 순간에 혼다 CR-V의 장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세대를 거듭해 진화하면서도 가격은 이전 세대 수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잘 쓰지도 않는 옵션 때문에 가격만 올리는 식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런 차를 두고 지루하다, 평범하다, 흔하다는 식의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
[THE HISTORY OF CR-V]
1세대 CR-V는 지금보다 직선을 강조했다. ‘도심형 SUV’를 지향하면서도 전통적인 오프로더로서의 SUV와 비슷한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적당한 크기와 실용성으로 일본은 물론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2세대부터는 조금씩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한국에 혼다 코리아가 설립된 것이 2004년, CR-V가 한국에 수입되기 시작한 것도 2세대 모델부터였다. 지금 도로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모델은 3세대일 것이다. “혼다 CR-V가 그렇게 괜찮대, 아주 그냥 딱 좋대”라는 식의 얘기가 참 흔히 들렸던 시기. 2011년부터는 4세대 모델이 출시됐다. 2015년에 출시한 모델은 4세대 페이스 리프트다.
[EARTH DREAM TECHNOLOGY & CVT]
혼다 CR-V에는 2.4리터 직분사 가솔린 엔진과 무단변속기CVT가 적용돼 있다. 무단변속기는 흔히 ‘변속 충격이 없다’는 말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1단부터 한단씩 기어를 바꿔가며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형식이 아니라 두 개의 원뿔 모양 부품 사이를 연결하는 체인을 통해 동력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이런 궁합으로 CR-V의 공인연비는 리터당 10.4킬로미터에서 11.6킬로미터로 늘었다. 이전 모델에 비해 약 12퍼센트 개선됐다. 최대토크도 약 11퍼센트 향상됐다. 부품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고 제작 단가는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변속 충격이 없어서 무표정할 정도로 부드러운 가속이 가능하다는 점을 무단변속기의 대표적인 장점으로 꼽는다.
[THE WINNER GOES TO…]
2014년 5월 아세안 엔캡NCAP 충돌 테스트 최고 등급, 5월 미국 J.D 파워 선정 ‘가장 믿을 만한 크로스 오버 및 SUV’, 6월 미국 애드먼즈닷컴 선정 ‘가장 확실한 선택의 차The Obvious Choice’, 미국 컨슈머리포트 선정 ‘사커맘, 사커대디를 위한 최고의 차 베스트 10’, 영국 소비자 전문지 <which?> 선정 ‘가장 믿을 수 있는 SUV’, 미국 선정 ‘보유 가치가 가장 높은 SUV’, 미국 켈리블루북 선정 ‘2015년 최고의 구매 가치Best Buy’ SUV 부문, 미국 <모터트렌드> 선정 ‘2015 올해의 SUV’…. 작년 한 해 동안 혼다 CR-V가 받은 등급과 상을 정리해봤다. 혼다 CR-V의 성격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는 목록들. 많은 짐을 편하게 싣고 오랫동안 별다른 후회 없이 탈 수 있는 안전한 차.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YOUR SHOPPING LIST]
폭스바겐 티구안은 ‘이달의 차’에 콤팩트 SUV를 다룰 때마다 언급하는 이름이다. 어쩔 수 없다. 엄청나고 꾸준한 기세로 팔리고 있고, 품질은 안정적이며 여러모로 재미있게 탈 수 있는 SUV니까. 토요타 라브 4 또한 꼼꼼하고 진중한 만듦새로 정평이 나 있다. 쏘렌토는 국산 SUV 중 후회 없이 권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택지 중 하나다. 혼다 CR-V는 차고가 낮은 데다 바닥부터 차체까지의 거리도 짧아서 타고 내리기가 편하다. 결정적이진 않지만 오래 타면 탈수록 고마운 장점이다. 게다가 고속에서나 굽잇길에서도 예상 외로 안정적으로 달릴 수 있다. 이런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가슴 떨릴 일 없이, 그저 마음 편히 오래 탈 수 있다는 건 중요한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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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정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