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애스턴 마틴이 만들어온 GT와는 전혀 다르다. 그리고 가장 흥미롭다.

프런트 엔진, 후륜 구동. 이 공식은 수십 년 동안 애스턴 마틴에 잘 맞아왔다. 이 브랜드는 넉넉한 크기와 강력한 성능을 지닌 GT카의 대명사가 되었는데, 가죽 홀드올을 뒤 트렁크에 가득 싣고 시동을 걸어 유럽 대륙을 우아하게 가로지르는 데 어울리는 차들이다. 1963년 출시된 DB5가 대표적인 사례였고, 그만큼 인상적이어서 영화 속 007의 선택이 되기도 했다. 원작 소설 속 본드가 선호하던 벤틀리 4½ 리터를 대신한 것이다. 이후 DB 시리즈는 이 계보를 이어가며 점점 더 강력하고 뛰어난 성능을 갖추게 되었고, 최근의 DB12에 이르러서는 한 번에 나라를 가로지를 수 있도록 설계된 강력한 트윈 터보 V8을 탑재했다.
하지만 발할라는 다르다. 양산형 애스턴 마틴 최초로 미드십 구조를 채택했다. 사륜구동이며 긴 보닛도, 짐을 실을 공간도 없다. 차체 후면에서 솟아오르는 Q 브랜치 스타일의 리어 윙, F1에서 영감을 받은 공력 핀, 그리고 1,064마력의 출력을 갖췄다. 지금까지 애스턴이 만들어온 GT와는 전혀 다르다. 그리고 이 브랜드가 만든 차 중 가장 흥미로운 모델일지도 모른다.
기술적으로도 가장 진보했다. 4.0리터 트윈 터보 V8을 기반으로 한 최첨단 하이브리드로, 페르난도 알론소의 데일리카와 많은 부분을 공유한다. 그렇다, 발할라는 애스턴 마틴 F1 팀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개발되었으며, 특히 주행 역학과 공기역학, 그리고 탄소섬유 활용에서 그 영향이 두드러진다. 발키리 프로젝트에서 F1 설계의 전설 애드리안 뉴이와 협업하며 얻은 노하우가 이 차에도 적용됐다. 시속 149마일에서 최고속도 217마일까지 600kg에 달하는 다운포스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는 발할라의 능동형 공력 시스템 덕분인데, 속도가 증가함에 따라 거대한 리어 윙의 각도를 미세하게 조정해 다운포스를 일부 ‘빼내면서’ 항상 균형을 유지한다. 이는 차체 아래에 숨겨진 프런트 윙과 함께 작동하며, 바닥의 그라운드 이펙트 채널을 통해 공기를 유도한다.

또한 애스턴 마틴 퍼포먼스 테크놀로지스가 개발한 새로운 맞춤형 탄소섬유 모노코크 구조가 적용됐다. 이는 F1 머신의 카본 모노코크를 기반으로 하며, 차체 무게를 1,655kg으로 낮추는 동시에 뛰어난 강성과 내구성을 제공한다. 여기에 더해 앞바퀴에는 두 개의 전기 모터가 장착되어 토크 보강과 토크 벡터링, 회생 제동, 전기 단독 주행 모드, 그리고 후진 기어 기능까지 수행한다. 외관 역시 애스턴 마틴 특유의 부드러운 라인과 시그니처 그릴을 유지하면서도, 루프 에어 인테이크와 사이드 포드 같은 모터스포츠에서 영감을 받은 공격적인 디테일을 결합했다.
르망 하이퍼카처럼 보일 수 있지만, 발할라는 운전자를 위협하려는 차가 아니다. 전기 모드로 조용히 출발하면 도심에서도 바로 편안하게 몰 수 있다. 낮고 정밀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다른 최신 차량과 크게 다르지 않은 감각이다. 999명의 행운의 오너가 된다면, 이 차로 소음 없이 작은 마을과 도시를 유유히 지나갈 수 있다. 이웃을 괴롭히는 V8의 굉음도 없다.
트윈 터보 V8 엔진에 시동을 걸면 기존 애스턴과는 다른 사운드를 느끼게 된다. 발할라의 엔진은 플랫플레인 크랭크를 사용해 더 기계적이고 거칠며, 더 빠르게 회전하는 사운드를 낸다. 밴티지나 DB12만큼 개성적인 음색은 아닐지 몰라도, 그만의 매력이 있다. 기어를 올리며 강하게 가속하면 그 사운드는 마치 내구 레이스 머신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가속을 멈추면 터보의 바람 빠지는 소리와 기계음이 실내를 채운다. 이 경험은 중독적이다. 엔진은 더 밀어붙이고 싶게 만든다. 도로 위에서 1,064마력은 사실 필요 이상이지만, 그 출력은 의외로 다루기 쉽고 접근성이 좋다. 차체 크기와 무게 덕분이기도 하다. 많은 최신 차량과 달리 과하게 크거나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출력, 제동력, 코너링 사이의 균형이 잘 잡혀 있다.
이 진가는 트랙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트랙 전용으로 설계된 차는 아니지만, 발할라는 어떤 서킷에서도 완벽하게 어울린다. 이는 강력한 출력뿐 아니라 뛰어난 능동형 공력 성능 덕분이다. ‘레이스’ 모드로 전환하면 평소 차체에 밀착되어 있던 리어 윙이 위로 솟아오른다. 최근 10년간의 F1 머신처럼 DRS 시스템이 적용되어, 공기가 윙을 통과하도록 해 최고 속도를 끌어낸다. 동시에 강한 제동 시에는 에어 브레이크 역할도 하며, 앞쪽 윙과 함께 작동해 차를 감속시킨다. 이 덕분에 고속 코너에서도 차체가 안정적으로 붙어 있으며, 이미 접지력이 뛰어난 맞춤형 미쉐린 타이어에 추가적인 그립을 더해준다.
발할라의 가장 큰 강점은 핸들링일지도 모른다. 앞쪽이 매우 날카롭게 반응하는데, 코너의 정점을 놓쳤을 경우 살짝 가속을 풀면 차가 스스로 더 깊이 파고들며 즉각적으로 수정한다. 이후 코너를 빠져나오며 강하게 가속하면, 폭발적인 출력이지만 매우 선형적으로 전달되며 접지력을 확보한다. 이 모든 요소가 결합되어 운전자에게 즉각적인 자신감을 준다. 차에 올라 두 바퀴만 돌면 이미 최대 성능을 끌어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차의 한계와 자신의 한계를 동시에 밀어붙이게 된다.
발할라의 성능을 완전히 활용하고 있는지 여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이 차는 도심을 조용히 미끄러지듯 달릴 때든, 나바라 서킷에서 코너를 이어갈 때든 특별한 감각을 준다. 가격은 원화 약 14억 원 수준이다. 이 정도면 그럴 만하다고 기대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가장 가까운 경쟁 모델인 페라리 F80은 약 52억 원에 달해 비교하면 오히려 합리적으로 보일 정도다. 애스턴 마틴이 2026년 F1 프로그램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지 몰라도, 로드카 분야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빛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