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담아, 커티스.
복잡하고 시끄러운 맨해튼, 그중에서도 차이나타운. 크고 길쭉한 건물 높은 곳에 커티스 쿨리그 스튜디오가 있다. 커티스 쿨리그Curtis Kulig는 지금 알면 좋은, 모르면 좀 서운한 뉴욕의 아티스트다. 꽤나 유명했던 필기체로 쓴 러브 미Love Me 프로젝트가 바로 커티스의 작품이다. 소란스런 밖과 달리 세상과 단절된 듯 조용하고 청결한 스튜디오, 붉은 소파에 반쯤 누워 있던 커티스를 만났다.
유니스 티셔츠를 좋아하나 봐요? 네. 오랜 친구죠. 유니스. 아, 한국 사람인데?
맞아요. 한국계 미국인이죠. 그리고 오늘 촬영할 때 양말도 유니클로만 신었죠? 아시아를 좋아하나 봐요. 양말은 유니클로죠. 최고예요. 게다가 싸잖아요. 알죠?
긴 코트만 입는 이유는요? 긴 울 코트에 빠졌어요. 로로 피아나 코트처럼 전통적이고 질 좋은 코트가 좋아요.
색깔은? 보통 어둡게 입는 편이라 검정이랑 남색이 많아요. 가끔씩 심하게 추울 땐 두꺼운 후드티에도 입어요. 어울리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오늘 입은 코트 중 제일 맘에 드는 건 뭐였어요? 카멜색 아크네는 내 옷이니까 빼고. 그걸 제외하면 늘씬한 검정색 발렌시아가 코트. 클래식하고 무난하잖아요.
촬영이 참 능숙하네요. 모델처럼 자유롭고 포즈가 다양해요. 촬영을 여러 번 해봤어요. 처음에도 어색한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오늘 명상을 하고 와서 그런가.
명상을 했다고요? 네. 지금 마음이 평온해요.
평온하다 못해 노곤해 보여요. 명상은 언제부터 했어요? 명상은 누구에게나 좋아요. 하루에 20분씩 하려고 노력하죠. 가끔 명상 센터에도 들르고요. 아, 원래 20분씩 두 번은 해야 하는데…. 하루에 한 번은 꼭 하려고 해요. 못할 때도 있어요. 요가도 좋아해요. 뇌를 위한 운동에 흥미를 느껴요. 엔도르핀이 필요하거든요.
그런데 엔도르핀 하면 술 아닌가요? 난 서른네 살이에요. 더 이상 술만 마시고 놀 순 없죠. 예전에 충분히 놀았고요. 그렇지만 좋아하는 술은 있어요. 캄파리 소다라고.
담배는요? 하루에 다섯 개비 정도 피워요. 그러고 보니 오늘 하나도 안 피웠네요. 지금 몇 시죠?
오후 한 시요. 확실히 오늘은 안 피웠어요. 가끔 주구장천 피울 때가 있는데, 그럴 땐 열 개비 이상은 태우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일어나자마자 담배부터 찾는 타입은 아니에요.
원래 스케이트보드를 타지 않았어요? 이제 스케이드보드는 자주 안 타요.
스케이드보드를 탈 때는 뭘 신었죠? 아디다스.
가젤? 아뇨. 삼바. J.M 웨스톤을 신고도 능숙하게 탈 수 있다면 그걸로 하고 싶어요.
왜요? 시즌마다 J.M 웨스톤 매장에 가서 색깔별로 로퍼를 사요. 신사처럼. 쇼핑은 잘 안 하지만 필요한 게 있을 땐 버그도프 굿맨이나 J.M 웨스턴에 가고요. 가면 늘 기본적인 것만 사요. 언제나 필요한 건 기본적인 것들이죠.
커티스 쿨리그 하면 아무래도 러브 미Love Me 프로젝트겠죠? 그걸 누가 제일 먼저 알아봤나요? 그냥 사람들이죠. 처음 시작은 거리 이곳저곳에 ‘Love Me’를 쓰고 다녔어요. 사람들이 나이나 성별에 상관없이 자기만의 기준으로 그 메시지를 받아들이더라고요. 모두 외롭고 공허해요. 그 공감대가 탄력을 받아 지금에 이르렀죠.
제가 그 프로젝트를 처음 본 건 콜레트 인스타그램에서였어요. 매장 셔터에 러브 미란 문구를 연속해서 그리는 사진이었고, 하트 안에 예쁜 색이 칠해져 있었어요. 맞아요. 콜레트의 사라와는 지난 몇 년 동안 꾸준히 함께 작업했고, 앞으로도 할 거예요. 내일 아침엔 파리로 떠나는데, 도착하자마자 사라를 만나는 스케줄이 있죠.
길에서 단속을 피해가며 시작한 러브 미의 협업 프로젝트는 이제 브랜드화된 거 같아요. 패션은 말할 것도 없고, 호텔이나 레스토랑, 술, 스케이트보드에서도 봤어요. 아직 안 해본 분야가 있긴 한가요? 비행기. 내부와 외관을 모두 작업해보 고 싶어요. 어떤 방식으로든. 러브 미 항공사. 어때요?
괜찮네요. 그런데 러브 미는 손으로 쓰는 필기체예요. 늘 같은 필체로 써지나요? 아뇨. 해가 바뀌면 달라지고, 좀 나아져요. 필기체라는 게 그래서 참 재미있어요. 다른 사람 눈엔 같아 보이겠지만, 전 알아요. 저게 몇 년 전 ‘러브 미’인지. 그때 내 기분이 어땠는지. 그렇지만 글씨를 ‘그리게’ 될 때는 제 기분과 상관없이 일관돼요. 그게 펜맨십Penmanship이겠죠.
그렇지만 이 스튜디오엔 러브 미 사인보단 과녁 그림이 많네요? 네. 새로운 프로젝트예요. ‘타깃’ 프로젝트죠. 매달 하나 씩 과녁을 만들어요. 한 달에 하나씩. 영원히.
아까 보니까 어떤 과녁은 실제 총알이 박힌 것처럼 보였어요. 진짜로 총알이 박힌 줄 알고 자세히 봤는데, 그린 거더라고요. 과녁에 제 마음을 표현해요. 실제로 사격장에 가서 활을 쏜 것도 있어요. 그걸 제대로 하기 위해 양궁까지 배웠죠. 아까 그건 그린 거예요. 그 달은 너무 힘들었어요. 6월일 거예요. 아마. 그림 뒤에 날짜가 쓰여 있어요. 마치 여차친구와 이별이라도 한 듯 엄청난 구멍이 그려져 있죠.
원래는 사진으로 시작했죠? 맞아요. 처음엔 사진이 좋았어요. 그렇지만 어릴 때부터 헌신적으로 몰입하는 아티스트를 많이 보며 자랐어요. 한 번도 아티스트가 되리라 생각했던 적은 없는데, 결국 그렇게 됐어요.
아버지는 실크 스크린을 했고, 삼촌이 아티스트 필립 살바토죠? 동생은 타투이스트고요. 네. 하루 종일 작업실에만 있는 삼촌 주변을 맴돌며 놀았고, 거기서 수많은 색을 맛봤어요. 그리고 책과 음악 스케이트보딩에 빠져 살았어요.
무슨 책을 읽어요? 알베르 카뮈와 J.D. 샐린저 책을 좋아해요. 예전엔 파인 아트에 관한 서적을 많이 읽었어요. 느리게 읽는 편이에요. 그저 그런 책에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아요. 친구가 읽어보라고 추천해주는 책 외엔 고전문학을 좋아해요. 아직도 읽어야 할 게 너무 많아요.
지난 주엔 뭘 했나요? 룩북 촬영을 했어요. 톱맨에서 커티스 쿨리그 컬렉션이 나와요. 스무 벌을 직접 디자인했어요. 아까 말한 긴 울 코트부터 팬츠, 코듀로이 수트, 카디건, 스웨터, 스카프, 장갑이 있죠.
거기에 러브 미 고로를 새겼나요? 아뇨. 이건 러브 미 프로젝트와는 다른 방식의 협업 컬렉션이에요. 내 개인적인 취향으로 만든 의류 컬렉션이죠.
룩북은 직접 찍었고요? 사진은 마이클 아베돈, 스타일링은 벤 스투르길, 영상은 데이비드 페레즈가 맡았어요. 모두 오랜 친구들이에요.
모델은요? 내가 모델이에요. 원래는 내가 만나보고 싶었던, 그야말로 뉴욕의 ‘신사’들을 섭외해서 찍고 싶었어요. 하지만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다 톱맨에서 적극적으로 제가 모델이 되길 권했죠. 올겨울에 나올 거예요.
그 겨울이 오기 전 뉴욕의 가을엔 뭘 하고 지낼 건가요? 늘 어딘가 출장을 다니겠죠. 그렇지만 당장이라도 휴식을 취하고 싶으면 떠나요. 그래서 난 휴가도 딱히 없어요. 얼마 전에 뉴욕 롱 아일랜드 아마간셋으로 친구들이랑 놀러 갔었어요.
아마간셋? 천천히 운전해서 갈 수 있어요. 도착하자 마자 바닷가에서 수영을 하고, 나와서 그대로 누워 낮잠을 잤어요.
- 에디터
- 김경민
- 그루밍
- Jessica Ortiz at The Wall Group
- 프로듀서
- In Young Park at Visual 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