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끓는 유황 온천, 얼음 같은 소금 평원, 폭발하는 용암 호수. 이곳은 바다보다 낮고 적도보다 더운 사막지대, 에티오피아의 다나킬이다.
소금 장수는 나를 설득하려 안간힘을 썼다. “거기는 안 가는 게 좋아요. 지옥만큼 더운 데다 잘못하면 살해당할 수도 있어요.” 에티오피아 고원에 있는 메켈레 시에서 만난 그는 네모난 소금 블록 더미 사이에 앉아 있었다. “이 소금이 바로 거기, 다나킬산이에요. 낙타를 타고 가면 8일이나 걸리는 곳이죠.”
세상의 끝 같은 머나먼 곳을 탐험하는 여행자들에게, 다나킬은 첫 관문과 같은 곳이다. 그곳은 지대가 턱없이 낮고 어마어마하게 더운 데다, 지구상에서 여행자들에게 가장 적대적인 장소라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에티오피아의 북동부, 에리트레아의 남부, 지부티의 북부에 맞닿은 이 국경지대는 삭막하고 장엄한 자연의 세계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지역은 해수면보다 1백 미터 아래. 온도는 섭씨 50도가 넘는다. 신화 속에나 나올 법한 곳이랄까.
다나킬 여행에 관한 기록들 또한 무시무시하다. 네스빗이란 이름의 남자는 1928년, 이곳을 여행했다. 그의 하인 세 명은 살해당했지만, 그는 다행히 모국으로 돌아가 왕립지리학회에서 다나킬에 대한 강연을 했다. 탐험가 윌프레드 테시거는 1930년 에티오피아 제국의 마지막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의 대관식에 참여한 후 다나킬을 방문했다. 그는 냉담하고 가학적인 아파르 부족을 만난 뒤 더욱 강한 호기심에 빠졌다. 사람을 죽여보지 않은 사람은 남자 취급을 받지 못하는 부족. 간신히 결혼은 할 수 있을지언정 정부를 들이는 일은 꿈도 꿀 수 없다.
식사 시간은 지켜보는 것조차 고역이었다. 테시거의 보고서에 따르면, 그들은 인육의 가장 쓸모없는 부분을 잘라 사람들의 손과 옷에 묻은 기름을 닦아내는 냅킨으로 썼다. 외부인과 마주치면 그들을 죽이거나 거세했다. 잘라낸 음낭을 자기들의 집 서까래에 걸어놓기까지. 한 여행자는 그것을 코담배 주머니로 쓰는 것까지 목격했다고 한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전통이 변화하듯, 아파르족은 더 이상 이렇게 반사회적인 살인을 저지르지 않는다.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으나, 현재 다나킬 지역의 살인율이 미국 밀워키보다 낮다고 한다. 물론 그들은 여전히 냉담하지만. 이런 부족의 성격은 지리적 특성 때문이 아닐까? 다나킬은 그야말로 냉혹한 땅이다.
나는 결국 메켈레 시장 상인의 말을 듣지 않았다. 가이드와 짐꾼들을 사륜구동 차에 태운 뒤 다나킬로 출발했다. 에티오피아 고원의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내려가는 동안, 발 아래로 아찔한 협곡이 보였다. 풍경은 점점 삭막해졌고, 식물은 하나둘 자취를 감췄다. 작은 배를 뒤집어놓은 것처럼 생긴 돔 텐트가 저 멀리서 모습을 드러냈다. 밝은 색 텐트 주변엔 가시덤불 울타리를 쳐뒀다. 아파르족의 부락에서 낙타와 염소를 기르는 곳이었다. 찻길 근처로 두 명의 소녀가 다가왔다. 목에는 은 장신구를 둘렀고, 땋아 내린 머리에선 반짝반짝 윤이 났다. 울타리 쪽으로 차를 더 몰고 가자 어깨에 칼라시니코프 소총을 걸쳐 멘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의 뒤로 사막을 향해 내려가는 긴 낙타 상인들의 행렬이 보였다.
베르할레 마을에서 우리는 매연을 내뿜는 트럭들과 울부짖는 짐승 떼를 마주쳤다. 이 마을은 소금 거래의 핵심 지역이다. 고원지대까지 직접 소금을 운반하는 낙타 상인들도 있지만, 트럭을 타고 다나킬 지역을 3일 동안 가로질러 나온 상인들은 대부분 이곳에 소금을 하역한다. 우리는 그들을 지나쳐 해가 완전히 저문 뒤까지 차를 몰았다. 밤중에 누군가 길가에 매어둔 낙타의 얼굴이 헤드라이트에 비칠 때마다 꽤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한 시간쯤 더 달려, 우리는 오아시스 근처의 캠프에 짐을 풀었다. 따뜻한 물로 몸을 씻으며 사막의 먼지를 씻어냈다. 아이스박스엔 시원한 맥주가 있었다. 맛있는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텐트 밖으로 침대를 갖고 나와 달빛 아래서 잠을 청했다.
아무도 현지인의 협조 없이 다나킬을 찾지 않는다. 우리가 캠프를 방문하기 전, 아파르 부족은 계속 자신들이 동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거기에 따르는 비용을 요구했다. 지역 경찰서장은 결국 아파르족의 무장 경호를 승인했다. 캠프엔 부족장 하지 후세인이 미리 배치해둔 남자 몇몇이 있었다. 천막의 말뚝을 박는 사람, 양초 등불을 관리하는 사람, 캠프의 의자를 관리하는 사람 등등.
하지의 경호 아래, 우리는 사막의 신기루를 만끽하며 달로 지역을 찾았다. 세상이 갈라진다는 바로 그 문제적 장소. 화산 활동이 일어나는 가마솥 같은 지질 구조의 다나킬은 아시아 남서부부터 아프리카 동남부까지 이어지는 지구대,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의 최북단 지역이었다. 지면이 워낙 낮게 파인 곳이라 향후 1억 년 사이에 바닷물이 이 불안정한 사막지대로 흘러넘친다면, 언제든 새로운 바다가 생길 수 있다.
우리는 사막의 바람이 세차게 훑고 간 황량한 메사(꼭대기는 평탄하고 주위는 급사면을 이루는 탁자 모양의 대지)를 여럿 볼 수 있었다. 발아래로는 얼음처럼 갈라지는 염전이 깔려 있었다. 마침내 도착한 오래된 칼데라는 형형색색 다양한 광물의 색으로 가득했다. 군데군데 갈라진 틈의 샘에선 뜨거운 간헐천이 흐르기도 했다. 곳곳에서 흘러내리는 유황과 함께, 밝은 녹색과 황색의 연못에서는 기분 나쁜 거품들이 터졌다.
몇 킬로미터쯤 더 지나, 우리는 아프리카의 가장 오래된 무역 중심지인 소금 평원에 도착했다. 1백 명 가까이 되는 사람이 섭씨 40도의 열기 안에서 소금 블록을 자르고 그것을 낙타 등에 실었다. 아프리카 북동부에서 한때 화폐로도 사용된 이 소금 블록은 아모레라고 불린다. 6세기 이집트 역사서엔 이 소금 블록을 금과 교환한 기록이 쓰여 있다. 교활한 아파르족 대신 티그레인들이 소금을 옮긴다. 그들은 우리 캠프 주변 하메드 엘라 마을 근처에 살며, 다나킬에서 최대 10개월을 지낸다. 시끌벅적한 남자들, 매춘부, 도박판, 아편굴 그리고 싸구려 술집으로 가득한 마을을 기대했지만, 그곳은 완전히 기대와 다른 모습이었다. 코카콜라가 술을 대신하고, 텔레비전 시청이 유일한 놀이인 나른한 마을. 뙤약볕 아래서 10시간씩 일을 하고 나면 기운이 쫙 빠지기 때문일까?
마을 중심부에선 매일 밤 20~30명의 티그레족 남자들이 모여 제비뽑기를 했다. 낙타를 부릴 때 쓰는 막대기를 잔뜩 쌓아놓고, 한 사람씩 돌아가며 막대기를 뽑았다. 나는 손님 자격으로 제비뽑기에 참여했다. 자기 막대기가 뽑히는 낙타 몰이꾼들이 다음 날 일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그리고 보증금을 낸다. 알리는 내게 보증금을 받고, 순서를 정하는 일을 맡겼다. 그 옆에선 아파르인들이 공책을 들고 뭔가를 계산했다. 다나킬 소금 무역에 대한 요금과 세금 체계는 웬만한 주식 파생상품보다 복잡해 보였다. 그날 밤, 나는 알리에게 콜라를 한 잔 샀다. “매일 밤 제비뽑기 시간에 당신이 이 일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잘하던데요.” 알리가 말했다.
다음 날, 우리는 캠프를 접고 다나킬의 더 깊숙한 곳, 에르타 알레(연기를 뿜는 산이란 뜻이다)로 출발했다. 그곳은 영원히 끓는 용암 호수가 있는 화산이다. 부드러운 사구, 건조하게 굳은 진흙, 거친 자갈이 제멋대로 섞인 길을 뚫고 남쪽으로 차를 몰았다. 우물에 촘촘히 모인 낙타 무리, 가시나무에 달린 잎을 따먹기 위해 힘겹게 뒷다리로 일어서는 염소 떼가 사막 곳곳에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티그레 지역의 요새 같은 고원지대가 시야에서 멀어지자, 황량한 평지 위에 우뚝 선 세 개의 화산 봉우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는 산 아래쯤에서 저녁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대낮의 열기가 사그라진 뒤 본격적으로 화산을 올랐다.
하늘은 서서히 어두워졌지만, 봉우리 위는 여전히 붉게 빛나고 있었다. 알리는 꽤 빠른 속도로 앞장서서 우리를 안내했다. 행렬 뒤엔 매트리스와 음식을 실은 낙타가 따라왔다. 정상까지는 꽤 먼 길이었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뜨거워지는 열기 때문에 만만찮은 갈증이 밀려왔다. 우리는 20분 정도마다 쉬어야 했다. 알리는 물병을 챙겨오지 않았다. 아파르족답지 않은 실수. 자존심이 센 그는 처음엔 내 물을 거절했다. 후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지만. 알리와 나는 뜨듯한 화산암 위에 나란히 앉았다. “물을 나눠 마시면 형제가 되는 거예요. 적어도 아파르족 내에 선. 갑시다. 이렇게 꾸물대다간 절대로 정상까지 갈 수 없어요.”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하자 짐꾼들이 낙타에서 짐을 내렸다. 우리는 산에서 하룻밤을 보낼 예정이었다. 이미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다. 우리는 칼데라의 가장자리로 올라, 그 안에서 동요하는 바다의 표면처럼 부글부글 끓고 있는 용암 호수를 바라봤다. 그러다 거품이 펑! 터지며 검붉은 용암이 하늘로 치솟았다. 몇 분 간격으로 같은 일이 반복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용암이 떨어진 자리에 새카만 돌이 남아 있었다.
두려웠다. 좀 겸손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우리가 사는 이 행성에서는 아직도 이렇게 불안정하고 위협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 지옥 불을 내가 알고 있는 지구의 모습과 조화시키기는 불가능한 것 같았다. 알리와 나는 서로를 쳐다봤다. 우리의 얼굴은 용암이 비춰 붉게 빛나고 있었다. “이 장소를 기억하게 될 겁니다.” 알리가 근엄한 표정으로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에티오피아식으로 어깨를 부딪쳤다.
화산에서 하루를 지낸 뒤, 우리는 나무와 풀과 시원한 저녁이 있는 티그레 고원으로 향했다. 동행한 아파르족과는 중간 교차로에서 헤어졌다. 그들은 거기서부터 버스를 타고 하메드 엘라로 돌아간다. 작별 인사를 나누고, 사례금을 전달했다. 부족장 하지는 길가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출발을 앞두고, 갑자기 알리가 차창 앞으로 불쑥 나타났다. “꼭 다시 돌아와요.” 이 냉담하고 무심한 남자로부터 들은 최고의 찬사. 그가 웃으며 말했다. “제비뽑기에 언제 또 당신이 필요할지 모르잖아요.”
- 에디터
- STANLEY STEWART
- 포토그래퍼
- ALISTAIR TAYLOR-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