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나는 왜 ‘남자’를 블락했나?

2017.03.06GQ

나는 왜 트위터에서 수많은 남성 사용자를 즉각 ‘블락’하게 되었는가.

나는 한국 남자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아버지 나 오빠와는 친하지 않았고, 10대 시절은 여중 여고를 다녔으며, 남녀공학 대학에 들어간 다음에도 여학생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전공을 택했기 때문에 또래 남자를 일상의 매 순간 접했다고 하긴 어렵다. 대학 시절 알고 지낸 얼마 안 되는 남자 중 지금까지 연락을 주고받는 극히 적은 숫자의 이들은 다양한 주제에 대한 대화가 가능하고 다정하고 사려 깊다.

그리고 이 극소수 남자 이외의 남자, 아마도 주변에서 훨씬 더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아주 많은 수의 남자를 나는 인터넷에서 접했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인터넷에서 글자로만 알게 된 많은 남자 때문에 경악했다.

무엇보다 남자들이 인터넷에서 논쟁하는 일에 목숨 걸고 애면글면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들은 서로 ‘팩트 폭력’(대개 출처는 ‘내 머릿속’이거나 ‘나무위키’다)을 주고받으며 자신이 이겼다는 걸 입증하고 싶어 하고, 이겼다(고생각되)는 장면을 캡처해서 자신의 ‘본진’인 커뮤니티 사이트에 게시한 뒤 다른 이용자가 우르르 몰려와 “오오 님 좀 짱인 듯”이라고 떠받들면 몹시 우쭐거렸다.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또 자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어떤 추상적인 집단에게 인정받고자 애쓰며 자신이 거둔 승리를 보고하고 과시하고 으쓱거리는 모습이, 패거리 문화에 어떤 식으로든 속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동기부여를 받지 못하는 미숙한 자아를 드러낼 뿐이라는 걸, 정말 모르는 걸까.

그 싸움의 대상은 아주 다양한데, 가장 큰 것은 역시 ‘메갈리아’라는 명칭으로 얼버무려지는 페미니스트(그들의 표현에 따르면 ‘페미나치’)들과의 싸움을 꼽을 수 있다. 지금까지 한국 여성들이 간헐적으로 쏟아낸 ‘불평’(으로 치부되었던 발언들)과는 차원이 다르게 공격적이고 노골적이고 심지어 매우 웃기기까지 했던(한국 여자에게는 ‘남을 웃긴다’는 역할이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일상은 물론 한국의 여성 코미디언만 봐도 그렇다) 메갈리아 지지자들의 욕설과 음담패설이 쏟아지자 남자들의 최초 반응 중 하나는 “저거 여자 아닐 거야, 여자가 저런 말을 할 리 없어”였다. 그리고 그 페미니스트들이 진지하게 한국 사회에서의 남녀 차별과 여성 혐오에 문제를 제기했을 때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 온갖 남초 사이트에서 남자들의 대대적인 저항이 시작됐다. 아무리 그래도 남성 혐오는 안 된다고, 페미니즘이 아니라 양성평등이 중요하다고, 인간은 모두 평등하고 소중하다며 별안간 휴머니즘을 찬양했다.

메갈리아의 시작인 디씨인사이드 메르스 갤러리 사건(메르스 확산 초기, 메르스 감염 의심을 받은 한국 여성이 홍콩행 비행기에서 격리 조치를 거부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메르스 갤러리에서 일제히 그 여성에 대한 욕설이 쏟아졌지만 알고 보니 남자였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일제히 입을 닫았고, 이에 분노한 여성들이 메르스갤러리를 점령한 사건)부터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의 글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하다’에 대해서는 그들은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그 이후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여자들의 태도를 문제삼으며, 드세고 거친 ‘일부’ 여성들이 문제라고 했다. 우리는 잘 모르니까 여자들이 조곤조곤 쉽게 설명해줘야 하는데 ‘남자들이 문제다’라고 벌떼처럼 나오면 당연히 반감이 생기지 않겠냐며 화를 냈다.

일베 회원들만이 별스런 문제일 뿐이라며 논외로 치부하던 이들이 오유에서, 디젤매니아에서, 클리앙에서, 이종격투기카페에서, DVD 프라임에서 갑자기 일베 내 여성 혐오에 결코 뒤지지 않는 발언을 ‘솔직한 심정으로’ 쏟아내며 여자와의 전쟁 앞에 단결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발 더 나아가, 메갈리아 측이 페이스북의 계정 삭제 조치에 반발해 페이스북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며 판매한 티셔츠를 구입하고 인증샷을 올린 여성들 중 성우와 만화가,일러스트레이터들에게 쓴맛을 보여주겠다며 그들이 활동하는 회사나 인터넷 플랫폼에 투서를 넣고 욕설 댓글을 달며 심각한 괴롭힘을 일삼았다. (여기서 그 남성들이 분노한 특정 직종의 여성들이, 자신들이 주 소비자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게임과 웹툰 쪽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도, 그 남성들의 세계가 얼마나 좁은지 극명하게 드러내는 사례다.) 결과적으로 그 여성 성우,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가 일자리를 잃거나 하차하는 모습을 보며 기뻐하고 환호작약했다. 그들은 인터넷에서 자신들의 힘과 목소리가 여전히 통한다는걸 확인하며 으스대기 시작했다. 메갈리아 초기에 “남녀 모두 혐오하지 맙시다”라며 소심하게 반발하던 것과는 사뭇 다르게, 그들은 인터넷에서 여자들을 추방하고 깔아뭉개고 그녀들의 항의를 ‘사소한 불편함을 자꾸 들이댄다’면서 ‘프로불편러’로 치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많은 경우 그에 성공했다고 자평하며 크게 고무되었다.

한편 자신들은 그런 망나니와는 다르다고 여기는 일부 점잖은 남자들은 “여러분이 말하는 그 페미니즘은 진짜 페미니즘이 아니다”라는 말로 입을 열었고, 페미니즘의 정의에 대해서도 학문에서 원래 사용하는 의미에 기반하여 논의를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을 설명하곤 했다. 그리고 여성들이 인터넷에서 ‘한남(한국 남자)’에 대한 비판/비난/조롱을 시작하면 “모든 남자가 그렇진 않습니다”, “초멘 죄송합니다, 제 주변엔 그런 남자가 없는데요, 혹시 님 주변에만 그런 사람이 있는 건 아닐까요?”라고 대답하는 패턴이 이어졌다. 여성들이 불편해하고 화를 내는 부분을 돌이켜보고 고치겠다는 태도가 아니라, ‘나 개인’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며 ‘다른 남자들이 욕먹는 건 잘 모르겠고 내가 욕먹는 건 어쨌든 참을 수 없다’라는 일종의 괴상한 ‘님비’ 태도를 취하는 전형적인 예였다.

그들은 여성의 비판/비난/분노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남자 개개인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이것이 ‘당연한 상태’라고 느끼게 만든 남성들의 공고한 연대와 편안한 농담과 여성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호모소셜한 관계(하지만 그들의 우정과 연대의 자리에 필요한 밥을 짓거나 술시중을 드는 건 또 여자들이다)’에 대한 분노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혹은 일부러 모른척하고) 문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순진한 발언만 일삼는다. 그들은 한글을 읽을 줄 알지만 한글로 쓰인 글을 제대로 읽을 줄 모른다. 그들은 실질적인 문맹이다. 당연히 인터넷상의 모든 여자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며 실제로 페미니즘에 공공연히 반대하는 제스처를 취하기도 하지만, 페미니스트들이 여성의 불평등에 대해 말할 때 그녀들을 제외하지 않는다. 그녀들은 ‘일부 여성들은 불평등한 취급과 성희롱에 시달린다’고 하지 않고, 시공간과 인종을 초월한 모든 여성이 겪는 불평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일부’ 남자들은 페미니스트들의 발언 앞에서 앵무새처럼 “모든 남자가 그런 건 아니다”, “나는 그들 중 하나가 아니다”라고 항변할 뿐이다. 다시 한번 등장하는 인정 욕구의 애처로운 몸부림.

일본의 서브컬처 전문가이자 작가인 오쓰카 에이지는 방한 당시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오타쿠 문화 변화에 대해 “애초 책임이라는 개념을 가지지 않는 인간이 발신권을 가지게 되었고, 그것을 제한하거나 혹은 리터러시(쓰고 정보를 다루는 능력)로서 키워가는 틀이 제공되지 않고 있다”라고 언급했다. 한국에서도 많은 남성 인터넷 사용자들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 아닌가. 그들은 자신에게 불리하거나, 자신에게 불편하거나, 자신에게 귀찮은 내용을 취사 선택해 존재하지 않는 사실인 양 지워버리고, 여자들의 불만을 ‘메퇘지들 (메갈리아를 지지하는 여자들을 비하하는 용어)의 꽤엑거림’으로 치부하고, 대신 이동통신 광고 대리점 유리문에 붙어 있는 여성 연예인(대개 핫팬츠를 입고 있다)의 몸매를 품평하는 쉽고 즐거운 일에, 혹은 소라넷으로 대표되는 음란 동영상과 몰카를 클릭하고 감상하는 일에 자신들의 손가락과 두뇌를 사용한다.

참, 소라넷 하니까 기억난다. 소라넷 폐쇄 결정이 내려지자 많은 남자가 해당 뉴스 댓글창에 몰려들어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라고 소리쳤다. 그 표현의 자유는 여성 혐오 발언에도 아주 편리하게 호명되었다. 일례로 페이스북의 ‘김치녀’ 페이지는 큰 호황을 누리며 ‘좋아요’의 행진을 벌이는 한편 페이스북의 메갈리아 페이지는 연속적으로 폐쇄되었다. 표현의 자유는 인터넷에서 남자들이 여성을 혐오하거나 여성을 성적 대상화할 때만 최대한 보장되어야 하는 종류의 자유가 아님을, 그걸 즐기는 남성뿐 아니라 이 같은 인터넷 플랫폼 운영자 측까지 설득해야 한다니. 인터넷에만 머무르더라도 세상의 너무나 많은 부분과 싸워야 한다는 사실에 지레 피곤해진다.

인터넷에서 옷깃을 스쳐 가는 수많은 남자가 너무 어리석고 비열하고 비도덕적이라 매일 같이 충격의 연속이다. 그리하여 나는 가장 자주 이용하는 인터넷 플랫폼인 <트위터>에서의 많은 남성 이용자들에 대해 “즉각 블락하는 쪽을 선호합니다”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대놓고 ‘페미나치’를 저주하고 증오하는 악다구니에도 지쳤고, ‘너희의 그런 태도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충고하는 점잖은 척하는 목소리에도 질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으며 굳이 “남자들이 전부 그런 건 아니거든?” 이라고 육성으로 발끈하는 남자가 있다면 그들도 현실에서 ‘블락’하고자 한다.

아직 ‘한남’이 한남동을 가리키는 줄 아는 사람이 적지 않을 줄로 안다. 한국 남자를 ‘한남’이라고 부를 때 감지되는 특별히 우스운 뉘앙스는 불과 얼마 전에 생겨났다. 하지만 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남자들의 말과 행태를 돌아보면 돌아볼수록 어째서 ‘한남’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제야 시작됐는지 오히려 의아했다. 20173월, 당대의 한국 남자에 대한 다각도의 비판적인 질문을 던진다. 한국 남자를 정의하려는 시도는 아니다. 페미니즘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한국 남자도 답변해야 할 때다.

    에디터
    김용언( < 미스테리아 > 편집장)
    포토그래퍼
    이승연, 강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