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불닭볶음면'과 '디진다 돈까스'에 열광할까? | 지큐 코리아 (GQ Korea)

왜 우리는 ‘불닭볶음면’과 ‘디진다 돈까스’에 열광할까?

2019-05-10T16:46:32+00:00 |culture|

혀가 불에 덴 것처럼 따끔거리고 땀이 줄줄 흐르는 멀티 오르가슴.

고백하자면, 유튜브 중독이다. 철 지난 ‘액괴’ 슬라임부터 달팽이관을 녹이는 ‘귀청소’ ASMR까지, 세상 모든 오락과 도락을 유튜브로 간접 체험하고 있다. 요즘 뒤늦게 꽂힌 유튜버는 도로시다. 도로시는 매운 걸 잘 먹는다. 업소용 양념장을 봉지째 들이부은 송주불냉면을 육수도 없이 ‘순삭’한다. 그녀는 얼굴도 예쁘다. 풍문으로는 2000년대 중반 ‘민들레’라는 이름으로 명성을 떨친 인터넷 얼짱 출신이라고 한다. 지금도 민들레처럼 낭창낭창한 도로시가 ‘괄도네넴띤’ 같은 괴식을 우르르 먹어치울 때면 턱 빠진 악어처럼 입이 쩍 벌어진다.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쓰리고 횡격막이 덜덜 떨린다. 한국어와 영어와 일본어가 고루 섞인 댓글에는 경악과 찬탄이 교차한다. 팬들조차 그녀의 건강을 걱정할 정도다. 여하튼 아무나 즐길 수 있는 경지는 아니다.

하나 더 고백하자면, 매운맛 ‘쪼렙’이다. 엽기떡볶이는 얼마 전 출시된 ‘엽떡 초보 맛’으로 겨우 입문했고, 맵기 정도를 10단계로 나눈 코코이치방야 카레는 3단계도 큰맘 먹고 주문하는 수준이다. 도로시의 영상에 달린 댓글을 보면 이런 사람이 꽤 있다. 요즘 말로 ‘맵찐’, 풀어서 ‘매운 거 찐따’다. ‘맵찐’들은 극한의 매운맛을 견디는 철인들을 보며, 자신들이 아는 오르가슴 너머에 자신들이 모르는 멀티 오르가슴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더듬어 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도, 알 듯 모를 듯한 그 미지의 영역을 궁금해하고 조금은 선망한다. 불닭볶음면 한 그릇에 쩔쩔매는 영국 남자들을 보며 ‘난 저 정도는 아니야’라며 뿌듯해하고,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맵다는 ‘디진다 돈까스’에 섣불리 도전했다가 화장실에서 음소거 비명을 지르기도 한다. 매운맛을 즐기는 건 ‘맵찐’들이 가지지 못한 일종의 능력이다.

매운맛이 꼭 ‘빨간 맛’인 건 아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매운맛은 보통 너덧 가지 성분으로 나뉜다. 덴 듯 뜨거운 캡사이신(고추), 찌르르 알싸한 알리신(마늘), 코끝이 간질간질한 피페린(후추), 찡하고 상쾌한 시니그린(고추냉이), 전류가 흐른 것처럼 얼얼한 산쇼올(화자오) 등이 ‘매운맛’으로 통칭되는 서로 다른 자극을 책임진다. 한식의 매운맛은 대부분 캡사이신에서 나온다. 캡사이신이 뇌신경을 자극하면 천연 진통제인 엔도르핀이 분비된다. 엔도르핀은 다시 중추 신경을 자극해 아드레날린 분비를 촉진한다. 통증을 상쇄하기 위해 몸이 그렇게 반응한다. 마라톤 선수가 ‘러너스 하이’에 의지해 고비를 넘기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그리고 지구상의 모든 포유류 중 오직 인간만이 이 쾌감에 중독된다. 우리가 다 아는 이야기이고 그래서 좀 재미없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매운맛은 통증이고, 통증은 맛이 아니다. 세간에 떠도는 이런 시각 역시 지루하기는 마찬가지다. 매운맛은 기계적 화학작용에 의한 쾌감일 뿐이므로 미식의 영역에서 다룰 가치가 떨어진다는 주장도 종종 들려온다. 한국인의 매운맛 사랑이 실은 엔도르핀 중독에 불과하다는 이 주장의 저변에는 ‘통증을 즐기는 건 열등한 식문화’라는 오만한 전제가 깔려 있다.

이런 통념에 짱돌을 던진 형님이 한 분 있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과학 저널리스트 존 매퀘이드다. 그는 자신의 저서 <미각의 비밀>에서 쓴맛과 매운맛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오늘날 커피의 쓴맛이나 고추냉이의 매운맛처럼 불쾌한 맛을 즐기는 건 인류가 그만큼 다양한 미각에 유연하게 적응했다는 증거다. 쓴맛은 몸에 독소가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생물학적 경보 시스템’으로 작용해 인간의 생존 확률을 높여왔다. 매운맛도 마찬가지다. 식물이 내는 매운맛은 본래 식물이 포식자를 피하기 위해 내뿜는 물질이다. 인간의 미각이 얼마나 유연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나이가 들수록 너그러워지는 개인의 입맛만 봐도 그렇다. 어릴 때는 손사래를 쳤던 음식이 훗날 맛있게 다가오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반대로 다섯 살짜리 조카가 얼큰한 대구탕을 먹고 에스프레소로 입가심하기란 쉽지 않다.

이처럼 매운맛을 얕보는 여론의 중심에는 ‘매운맛은 미각이 아닌 통증’이라는 낡은 진실이 견고하게 버티고 있다. 그러나 매운맛의 통증은 그 자체로 물리적 진동과 열을 동반하는 ‘입체적 쾌감’이기도 하다. 흔히 사람들은 맛을 이야기할 때 미각과 후각에만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세 번째 맛감각이 있으니, 바로 촉각(식감)이다. 박하의 시원한 느낌이나 탄산음료의 기포가 주는 짜릿함, 고추를 먹을 때 혀가 불타는 듯한 작열감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촉각이 없는 매운맛은 김빠진 콜라나 마찬가지다.

최근 식당을 넘어 편의점까지 점령한 ‘마라(麻辣)’도 촉각이 열일 하는 요리 중 하나다. 중국 4대 요리 중 하나인 이 쓰촨 중식의 핵심은 고추, 그리고 화자오라 불리는 향신료다. 그중에서도 혀끝에 9볼트 건전지를 가져다 댄 것처럼 얼얼한 자극을 전달하는 건 화자오, 더 정확히는 앞서 언급한 산쇼올의 역할이다. 여기서 ‘얼얼하다’는 건 그저 느낌적인 느낌이 아니다. 영국의 연구원들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화자오의 느낌을 손가락 끝에 전해지는 기계적 진동과 일치시키는 실험을 한 적이 있다. 그 결과 화자오의 윙윙거림이 50헤르츠의 진동과 같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대략 피아노의 왼쪽에서 일곱 번째 흰 건반인 가장 낮은 G의 진동수에 해당한다. 좀 문학적으로 표현하자면 혀의 진동이 곧 맛의 일부인 셈이다. 매운맛 특유의 작열감은 온도와도 관련이 높다. 사람을 포함한 대부분의 포유류가 TRPV1(트립비원)이라 불리는 온도수용체를 갖고 있는데, 이 수용체는 혀에서 열과 압력을 감지하는 역할을 한다. 화끈한 매운맛의 대명사인 캡사이신이 TRPV1에 달라붙으면 신경계가 활성화되면서 약 43도 이상에서 느끼는 뜨거움과 통증을 뇌에 전달한다. 매운 음식을 먹었을 때 혀가 불에 덴 것처럼 따끔거리고 땀이 줄줄 흐르는 이유다. 이 또한 매운맛에 풍요로운 음영을 드리워주는 요소다.

매운맛의 ‘입체적 쾌감’은 우리의 식생활에 이미 녹아 있다. 순한 연둣빛으로 다가와 후각과 촉각을 동시에 후려치는 고추냉이도 일상적인 향신료 중 하나다. 두툼한 한성돈가스를 먹으면서 데미그라스 소스에 고추냉이를 풀지 않는 것은 3D 영화관에서 맨눈으로 멀뚱히 영화를 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뿐인가. 고춧가루를 잔뜩 뿌린 용금옥의 추어탕이라도 산초가루를 더하지 않으면 별무소용이다. 이건 한식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카르보나라에 후추를 뿌리지 않고, 하와이안 피자에 타바스코 소스를 뿌리지 않는 세상은 도저히 상상하기 힘들다. 마늘과 고추, 고추와 화자오가 만나면 매운맛의 입체성은 더 선명하게 두드러진다. 훠궈가 그저 찌릿찌릿하기만 하다면 마라 요리 특유의 황홀함을 느끼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의 매운맛 신드롬을 고깝게 보는 시선에는 전체주의적 사고의 편린이 숨어 있다. 미식의 발전을 위해 무지한 대중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생각. 매운맛 위주의 ‘갖은 양념’이 식재료의 섬세한 맛을 가린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국민 건강 운운하며 엽기떡볶이의 유해성을 걸고 넘어지는 건 좀 다른 문제다. ‘한식 세계화’ 같은 위대한 과업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갈수록 스포츠처럼 변해가는 매운맛 열풍은 분명 걸림돌로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점심으로 스코빌 지수 1만에 달하는 핵불닭볶음면을 먹은 사람이 저녁으로 사찰 음식 전문점에서 심심한 한식을 먹을 수도 있다. 요컨대 우리의 입맛은 그렇게 몽매하지 않다. 매운맛에 중독되어 365일 내내 고추 먹고 맴맴 우는 민족도 아니다. 이런 주장이 다수를 납득시키지 못한다 해도 상관없다. 그러나 매운맛을 즐기는 것이 미식 엘리트들의 계도를 받아야 할 만큼 천박한 문화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최근 들어 사람들이 매운맛에 유달리 집착하는 현상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어째서 집착하느냐고 따질 게 아니라 왜 집착하는지 고민해야 할 시기다. 매운맛을 비난하기는 의외로 쉽다. 싸구려 캡사이신으로 원재료 맛을 덮어버리는 상인들을 희생의 술래로 지목하고, 단맛과 짠맛을 더한 한국식 매운맛이 유발하는 각종 질환들을 무성의하게 늘어놓으면 그만이다. 음식 문화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미디어를 욕하기는 더 쉽다. 하지만 개인의 중독은 사회의 문제다. 매운맛을 즐기는 개인적 기호에 대한 비판은 부질없고 쉬운 일이지만, 매운맛에 집착하는 개인이 많아진 현상을 분석하는 건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다. 왜 유튜버들은 매운 음식에 열을 올릴까? 왜 사람들은 그들의 영상에 ‘좋아요’를 누를까? 왜 식품업체는 더 매운 라면, 더 매운 짬뽕, 더 매운 치킨을 출시할까? 왜 우리는 점점 더 매운맛에 강해질까? 스트레스와 아드레날린의 상관관계를 생각하며, 매운맛이 현대 사회의 박카스라는 어설픈 추측을 해본다. 앞서 ‘맵찐’들이 유튜버에서 도로시에게 열광하는 건 그들이 가지지 못한 능력이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그런 개인이 어째서 많아졌는지는, 똑똑한 사람들이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볼 일이다. 글 / 강보라(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