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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파로 보여주는 유재석과 김태호의 자기계발

2020.04.02박희아

[놀면 뭐하니?]는 유재석과 김태호 PD의 권위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 마음 편히 웃을 수 없는 이유다.

‘2019년 5월 2일 카메라 한 대를 유재석에게 전달했다.’ 2019년 6월 12일에 유튜브에 공개된 ‘릴레이 카메라’의 첫 장면이다. 검은 바탕에 흰 폰트로 진지하게 입혀진 자막은 이후에 유재석과 시청자들이 느낄 감정을 요약한 것처럼 보였다. 카메라를 받아든 유재석은 웃음을 터뜨리며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고, 이를 지켜보던 시청자들 또한 웃음과 당혹감을 동시에 느껴야 했다. 김태호 PD가 오로지 유재석 한 명으로 콘텐츠를 이끌어간다는 전제는 끊임없이 “김태호 PD님이 하신다는데”, “유재석 형님이 부르시면 와야죠” 같은 말로 MBC <놀면 뭐하니?>라는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확고히 굳혀갔다.

시작부터 약 10개월의 시간이 흐른 지금, <놀면 뭐하니?>는 오로지 유재석 한 사람만을 위한 서사물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놀면 뭐하니?> 속 유재석의 모습은 자기계발서의 한 장, 한 장을 써내려가듯 시시각각 변한다. 트로트 가수로 활약할 때는 유산슬, 드럼을 연주할 때는 유플래쉬, 하프를 연주할 때는 유르페우스 등 이름도 여러 개다. 처음 릴레이 카메라를 손에 쥐었을 때의 유재석은 자신의 친구들을 한데 모아놓고 수다를 떠는 데에 그쳤다. 그러나 이후 그는 드럼 연주를 하고, 유명하고 실력 있는 뮤지션들이 여기에 합세해 그의 어설픈 비트 하나로 곡을 탄생시키는 과정을 보았다. 트로트 가수에 도전하면서는 아침 방송에 출연하고, 유행가를 탄생시키며 늘 대상을 받던 연말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거머쥐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에 대해 단순히 ‘유재석의 자기계발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하기에는 모자라다. <놀면 뭐하니?>가 시도했던 모든 프로젝트는 그가 유재석이기 때문에, 그와 함께하는 사람이 김태호 PD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즉, <놀면 뭐하니?>는 유재석과 김태호 PD의 권위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 그들은 한국의 모든 유명 뮤지션을 대동할 수 있고, 코로나19 사태에서 서울시를 설득해 세종문화회관을 빌려서 콘서트를 열 수도 있다. 이런 시도를 할 수 있기까지 그들이 들인 노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게스트들이 여전히 “유재석이니까”, “부르면 나와야죠”를 말하는 모습은 <놀면 뭐하니?>가 권위로 인해 누릴 수 있는 그들의 권력을 시험해보는 프로그램이라는 본질을 드러낸다.

1991년 제1회 KBS 대학개그제 장려상을 받은 청년이 2003년에는 같은 방송사의 연예대상에서 TV진행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리고 2005년부터 2019년까지 장장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방송 3사의 연말 시상식에서 대상을 거머쥔, 한국의 유일무이한 방송인. 2006년 MBC 방송연예대상 네티즌이 뽑은 올해 최고의 프로그램상을 시작으로 역시나 2016년까지 쉬지 않고 상을 받아온 유명하고 능력이 있는 PD. 그러나 이런 인물들이 만드는 <놀면 뭐하니?>는 아이러니하게도 유재석과 같은 극적인 이력의 주인공이 탄생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그게 지금 <놀면 뭐하니?>를 보며 마음 편히 박수를 치고 웃을 수 없는 이유다.

    에디터
    글 / 박희아(대중문화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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