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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림길에 선 모터쇼의 미래

2021.06.12GQ

코로나 사태 이후 모터쇼가 줄줄이 사라지고 있다. 씁쓸한 상황이지만 무조건 안타깝다는 말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갈림길에 선 모터쇼의 미래.

모터쇼는 완성형 자동차, 혹은 자동차 엔진이나 부품을 전시하는 이벤트다. 그 시작은 19세기 초반으로, 일찍부터 자동차 사업이 발전한 독일이나 프랑스가 중심에 있었다. 처음엔 진귀한 자동차를 자랑하거나 사고파는 귀족들의 커뮤니티 목적으로 개최됐다. 하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거대 자본력을 갖춘 자동차 제조사들이 중심에 섰다. 이후 신제품과 신기술을 세상에 공개하는 효과적인 홍보-마케팅 수단이 됐다.

수십 년을 거듭하며 규모를 키운 모터쇼는 1990년대 절정에 달했다.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에 드는 유명 모터쇼에는 가격을 측정하기도 어려운, 다시 말해 팔지도 않는 콘셉트카가 수십 대씩 등장했다. 당시엔 순수 전기차와 수소 연료 자동차, 자율주행 같은 미래 자동차 기술이 모터쇼에서 발표되면서 세상을 주목시켰다. 당연히 모터쇼에서 공개한 신차는 엄청난 광고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실제로 거대 자동차 회사들이 유명 모터쇼의 개최 주기에 맞춰 신차를 개발하고 출시할 정도였다.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였다. 지구 반대편에서 열린 모터쇼 정보를 잡지나 신문을 통해 접했던 시절, 모터쇼는 최신 자동차 기술과 정보를 한자리에서 접할 수 있는 막강한 매체력을 가졌다. 표면상으론 모두의 잔치였지만, 규모의 경제와 신기술로 싸우는 자동차 회사들의 소리 없는 전쟁이었다. 제품이나 기업을 넘어 국가의 자존심을 건 싸움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 모습이 관객을 더욱 열광시켰다.

위기는 갑자기 찾아왔다. 2020년, 세계를 주도한다고 믿었던 선진국들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힘없이 굴복했다. 사회와 시장이 무너지는 걸 모두가 두 눈으로 확인했다. 모터쇼도 속수무책으로 문을 닫았다. 스위스 제네바 모터쇼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처음으로 취소됐다. 다음은 미국 디트로이트, 그리고 프랑스 파리 모터쇼가 줄줄이 문을 닫았다. 한국에선 2020년 부산 모터쇼가 취소됐다. 올해 5월로 계획된 2021 서울 모터쇼는 11월 25일로 연기됐다.

사실 자동차 시장 전체에 가해진 타격을 생각하면 모터쇼 문제는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코로나 사태의 영향으로 세계 각국 주요 자동차 공장에서 일시적으로 생산이 중단됐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재택근무를 도입하면서 부품이나 서비스 분야는 업무에 차질이 생긴 곳도 많다. 대중에겐 경제적 위기로 인식되며 덩달아 자동차 판매가 크게 줄었다. 돌아보면 자동차 시장의 추락은 지표상으로 아주 찰나였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듯이 자동차 시장은 위기에 맞춰 변했다. (강제로) 새로운 단계로 전환될 순간을 맞이한 셈이다.

전 세계적으로 자동차 판매 규모가 감소한 가운데 전동화 판매 모델의 비중이 눈에 띄게 늘었다. 때마침 전동화 제품과 기술 전환 속도가 탄력을 받으며 관련 시장을 급격히 키웠다. 대중차보다 고급차의 판매 감소 폭이 작다는 것도 흥미로운 사실이다. 불경기로 완성차 판매가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과 반대로 대중교통의 바이러스 감염 우려가 소비자에게 신차 구입을 설득하기도 했다. 고급화 전략을 비롯해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관점에서 자동차가 새로운 형태로 주목받았다. 국경이 굳게 닫혀 여행의 범위가 줄어들자 자동차를 타고 주변 세상을 넓혀나가는 움직임이 생겼다. 캠핑을 위해 큰 차로 바꾸고, 차박을 경험하기 위해 자동차를 샀다. 모든 것이 코로나19 대유행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포스트 코로나, 즉 코로나 유행 전과 다른 형태의 자동차 시장이 생겨났다.
모터쇼가 갑자기 사라진 이유, 그리고 새로운 형태로 계획되는 것도 여기에 속한다. 당장 모터쇼를 진행하기 어려운 이유는 명확하다. 사회적 거리두기 상황에서 대규모 모임이 어렵다. 이건 모터쇼 주최측이나 참가 브랜드의 공통된 의견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브랜드 입장에선 더 이상 모터쇼에 참가하지 않아도 되는 좋은 핑계거리일 수 있다. 경쟁이나 관성으로, 혹은 다양한 이해관계 때문에 지속해왔던 족쇄가 드디어 풀렸다는 말이다.

실제로 자동차 회사들은 모터쇼를 예전만큼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이유는 다양하다. 대표적인 것이 인터넷의 발달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을 거의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다. 인터넷을 통한 제품의 정보 유통은 쉽고, 빠르다. 반면 모터쇼 같은 오프라인 이벤트는 프로세스가 느릴 수밖에 없다. 예컨대 A라는 신차가 발표되는 순간을 가정해보자. 현장에서 제품의 특정 정보를 발표하기도 전에 이미 A 제품의 정보는 전 세계에 e메일로 전달된다. 일부 브랜드는 모터쇼 시점과 상관없이 제품의 정보를 미리 전달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요즘 정보는 시간과 공간을 가리지 않는다. 같은 관점에서 수십 년 전 최신 자동차 정보의 장이었던 플랫폼이 이제는 가장 느린 정보 수단인 셈이다.

관람객이나 소비자 입장에서도 모터쇼가 예전만큼 흥미롭지 않다. 신제품의 등장은 언제나 흥미롭고 반길 만한 소재다. 반면 제품을 홍보하는 수단 외에는 볼거리나 즐길 거리가 나날이 줄어들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콘셉트카의 등장 비중이 예전만큼 높지 않다는 것이다. 콘셉트카는 당장 판매하는 제품이 아니다. 브랜드의 철학이나 미래 관점의 기술, 새로운 디자인을 제품으로 승화한 예술품이다. 요즘 모터쇼엔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당연한 말이지만 돈이 되지 않아서다. 수십, 수백억을 들여서 콘셉트카를 만들어봤자 모터쇼 이후 박물관에 전시되는 게 전부이기에 투자 대비 가치가 낮다고 판단해서다. 그래서 최근의 콘셉트카는 효율을 굉장히 따진다. 가까운 미래에 등장할 제품의 프로토타입에 가깝다. 어떻게든 제품을 판매로 연결해서 투자금을 회수하겠다는 의미다. 그만큼 파격적인 아이디어나 도전적인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각 제조사들은 거창한 설명으로 콘셉트카에 담긴 이야기를 풀어내지만, 보는 이들에게 대단한 영감을 주진 못한다.

이처럼 요즘 모터쇼는 참가하는 이들이 느끼는 홍보 효과도, 보는 이들이 느끼는 즐거움도 예전 같지 않다. 물론 그 현장에는 디지털로 표현할 수 없는 생동감이 있다. 실제 제품을 경험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표면 아래 정보를 나눈다. 그곳엔 이진법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울림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이상 장점이 없다. 모터쇼라는 플랫폼이 과거의 어느 시점보다 규모나 콘텐츠 부분에서 더 이상 발전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게다가 우리는 코로나 사태 속에서 이전에는 없는 새로운 해법을 만들어냈다. 이미 많은 자동차 회사가 포스트 코로나 이후 상황에 대비해 타깃에서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유튜브 실시간 방송 같은 영상 서비스나 각종 SNS를 통해서 신제품과 신기술의 정보를 확산시킨다. 가상현실(VR)이나 증강현실(AR) 같은 기술을 활용해 안방에서 접하는 모터쇼를 제공하기도 한다. 자동차가 인터넷과 연결되고, 최신 전자 장비를 탑재하면서 전통적인 형태의 모터쇼보다는 IT-가전 박람회에서 더 주목받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실제로 일부 자동차 회사는 이미 수년 전부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같은 IT-가전쇼 참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물론 이렇든 저렇든 코로나 유행이 끝나면 모터쇼는 분명 다시 열린다. 모터쇼로 이익을 누리려는 누군가가 있는 이상 쇼는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변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모터쇼의 미래는 없다.

    김태영(자동차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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