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릴 나스 엑스는 팝 컬처에 보란 듯이 충격파를 던졌다. 대담하고 도발적인 곡으로 차트를 재패하고 기괴한 이슈로 대중의 혼을 쏙 뺐다. 전복의 쾌감과 혼돈에 가려진 릴 나스 엑스의 본색.
2020년 11월의 일이다. 래퍼이자 뮤지션이며 소셜 미디어의 거물인 릴 나스 엑스가 새로운 싱글 ‘Holiday’를 공개한 날, 그는 호텔에 체크인했다. 힙합과 컨트리 장르를 뒤섞은 ‘Old Town Road’가 19주 연속 빌보드 차트 1위를 기록하며 그의 인생을 뒤바꿔놓은 지 18개월이 지난 무렵이었다. 앞선 성공은 요행에 불과했던 것일까? 과연 정규 앨범을 완성할 수 있는 역량이 있을까? 그 역시 반짝 스타에 그치려나? 무수한 의문의 답을 확인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스무 살을 갓 넘긴 래퍼의 행보를 주시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그는 공포에 질려 있었다.
“전날 밤 샤워를 하다가 큰일 났구나, 싶었어요.”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나스가 말했다. “갑자기 뭐랄까…, 뭔가 완전히 잘못된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겠더군요.” 신곡 발매를 축하하기 위해 친구들과 조촐하게 모인 자리에서 그는 트위터에 매달려 사람들의 반응을 샅샅이 살폈다. “호평도 있었지만 부정적인 반응이 수두룩했어요. 불안한 마음으로 차트를 확인했죠. 빌어먹을, 빌보드200에 진입하지도 못했더군요. 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건가 싶었죠.”
어디로든 도망치고 싶었다. 도피처가 필요했다. 나스는 무작정 호텔로 향했다. 아마존 뮤직이 제작하는 크리스마스 스페셜 시리즈 <홀리데이 플레이즈>의 리허설이 다음 날 예정되어 있었다. 마일리 사이러스가 함께 출연하는 무대였다. “스케줄을 취소해달라고 매니저에게 울다시피 부탁했어요. 사람들이 제 곡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뭘 하든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이에요. 그런 제 자신이 너무나 싫었어요. 마치….”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스스로에게 실망감을 안겨준 것 같았죠”라고 말을 이었다. “미친 사람처럼 울었어요. 울다 보면 머리가 아픈 상황 아시죠? 딱 그랬어요.”
이튿날 아침, 나스는 컬럼비아 레코드의 CEO 론 페리와 대화를 나눴다.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는 엄청난 성공을 거둔 아티스트가 연달아 똑같은 결과를 얻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눴고, 상황 파악이 됐어요. ‘당연할 수 있으니 크게 흔들리지 말자’고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죠.” 예정대로 나스는 리허설에 참석했다. 4개월 후 ‘Holiday’는 1백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해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다. “의미가 큰 곡이죠. 아무리 최악의 상황이라 해도 낫게 만들 수 있는 힘이 제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지난 3월, 나스는 후속 싱글 ‘Montero(Call Me By Your Name)’을 공개했다. “휴식기를 갖고 싶지 않았고, 딱히 필요하지도 않았어요. 저는 일을 통해 기쁨과 행복을 얻곤 하거든요.” 신곡은 ‘Old Town Road’의 뜨거웠던 행보를 고스란히 재현했다. 공개 직후 차트 상위권에 진입해 1위에 올랐으며 소셜 미디어에선 모든 관심을 독차지했다. 데자뷔 같았다. 이 젊은 청년은 다시 한번 로켓에 올라탔다. 2년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진로와 방향을 스스로 조종한다는 것이다. 나스의 제일 큰 강점이자 약점도 로켓과 똑같다. 멈추기를 거부한다.
뮤직비디오가 공개되고 며칠 뒤 그를 만났다. ‘Montero(Call Me By Your Name)’은 그가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사회적 봉쇄가 이뤄졌을 때 사귄 청년에 관한 곡이다. 가사는 대략 이렇다. “하와이에서 네 엉덩이에 올라타 느끼고 싶어 / 너와 정신없이 즐긴 뒤 시차 적응의 피곤함을 느끼고 싶어 / 서로의 몸을 느끼며 달려보는 거야”. 뮤직비디오를 처음 봤을 때 문자 그대로 말문이 막혔다. 화면 속에서 에나멜 가죽 부츠를 신은 나스는 폴 댄스 봉을 타고 지옥으로 내려가 뿔 달린 사탄의 사타구니에 춤을 추듯 자신의 엉덩이를 요란하게 비빈 다음 사탄의 목을 비틀어버린다.
신곡 발표에 맞춰 나스는 사탄 운동화를 선보였다. 디자인 스튜디오 미스치프 MSCHF와 함께 나이키 에어맥스97에 사람의 피를 담아 커스터마이즈한 제품으로 출시 1분 만에 6백66켤레가 모두 동났다. 괴상하고 기이한 운동화에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이에 발끈한 나이키는 상표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회수 조치하기로 했다. 거센 논란은 금방 가라앉지 않았다. 나스를 향한 백래시가 일어났다. 목사가 등장해 나스를 악마 숭배자로 매도하는 영상이 소셜 미디어에 떠돌았다. 사우스다코타 주지사인 크리스티 노엠도 그를 비난하는 트윗을 여럿 날렸다. 나스가 맞대응하자 그녀는 트위터에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는 성경 구절을 썼다.
로스앤젤레스 허블 스튜디오의 탈의실에서 나스는 상의를 걸치지 않은 채 커피 테이블 주변을 서성였다. 테이블 위에는 드림 팝 듀오 비치하우스가 보낸 어마어마한 크기의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그는 수시로 거울을 들여다봤다. 어찌나 뚫어지게 쳐다보는지 자신을 잊지 않기 위한 행위처럼 보였다. “코로나19 봉쇄 기간 동안 제 내면을 갈고 닦았는데 독서가 큰 도움이 됐어요.” 그러면서 자신이 읽은 책의 제목을 무용담처럼 늘어놨다. 키아나 헨슨의 <로즈 효과: 인생 최고의 퍼포먼스를 위한 8단계 훈련법>,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돈 미구엘 루이스의 <네 가지 약속>, 마크 맨슨의 <신경 끄기의 기술>. 대부분 자아 회복의 지혜에 초점을 맞춘 책들이었다. “본인과 관계없거나 중요하지 않은 일에 과하게 신경 쓰거나 에너지를 쏟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런 걸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웠어요. 이를테면 저에 대한 부정적인 코멘트를 발견했을 때 그게 과연 중요한 사안인지, 사실인지 거짓인지를 판단하는 주체는 바로 저 자신이에요.”
나스와의 대화에선 자신감이라는 단어도 스타카토처럼 들렸다. ‘자신감 찾기’, ‘자신감을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재정립’ 같은 이야기 말이다. 고백 아닌 고백도 이어졌다. 2020 그래미 어워드 시상식에서 그는 베르사체에 주문 제작한 카우보이 수트를 입고 레드 카펫을 밟았다. 이날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와 베스트 뮤직비디오 부문에서 수상했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올해의 노래상에 호명된 빌리 아일리시가 무대에 오르는 장면을 보며 속으로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이건 불공평해! 내 노래가 더 인기가 많았다고!’
그로부터 몇 개월 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락다운으로 나스는 강제 휴식기를 갖게 됐다. 스물한 번째 생일도 집에서 혼자 맞이했다. 지난 그래미 시상식에서 있었던 일도 다시금 돌아봤고, 그제야 자신의 태도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근거 없는 질투심이었어요. 빌보드 역사상 최장 기간 1위 기록을 세운 곡을 가지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이 상을 받는 걸 왜 질투했는지 몰라요. 저는 충분히 많은 것을 가졌어요. 상을 덜 받는다 해도 제 존재나 위치는 흔들리지 않아요. 남을 부러워하고 질투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거죠.”
애틀랜타에서 자란 나스는 가스펠 가수인 아버지를 따라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녔다. 그에게 교회는 “엄청 싫거나 나쁘진 않지만 약간 지루한 곳” 정도였다. 십 대 후반이 됐을 때 마지막 남은 믿음의 조각마저 잃어버렸다. 온라인 세계에 빠져들면서 신앙이 흔들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게이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이겠다는 결심이 섰고, 종교 안에는 그런 자신을 위한 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가 보기에는 그랬다. 다른 성소수자들처럼 그 역시 학생 시절에 겪은 차별적 시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누구도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제 주변에는 늘 불편한 기류가 흘렀어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본연의 정체성이 부정되고 인정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어떻게 자신감으로 가득 찬 작업을 내놓을 수 있을까? 나스의 스타일리스트이자 절친인 호도 무사는 “소년에서 남자로 성장해나가는 슈퍼스타의 여정”이라고 이를 설명했다. “그를 통해 알게 된 게 있어요. 아무리 특별한 재능을 품고 있더라도 그걸 현실화하기 위해선 정성을 들여 가다듬을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2년 전 ‘Old Town Road’가 빌보드 차트를 평정한 뒤 나스는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했다. 이를 기점으로 그는 한계를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최근의 곡은 솔직함과 목적의식이 이전보다 더 뚜렷하다. ‘Montero(Call Me By Your Name)’ 뮤직비디오에서는 힘을 되찾아 두려움의 대상들에 맞서 싸우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나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당히 반항적인 시도였어요. 예전에는 어느 정도 수위를 지키고 PG-13 등급을 받아야 한다는 나름의 규칙을 정했어요. LGBT 아티스트로서….” 그는 적절한 단어를 고민하더니 “부끄럽지 않아야 했거든요”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저는 게이가 맞지만 게이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조금 다르다는 정도라면 모를까, 남들이 저를 이상하게 볼까 봐 두려웠어요.”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팝 컬처를 재패한 그는 뒤로 물러서지 않고 자신을 혐오하고 비난하는 자들에게 경고한다. “내게 화를 내봤자 난 당신들의 얼굴을 보며 비웃어줄 거야”라고.
스타일도 대담해졌다. “패션 그 자체보다 패션을 통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관심이 생겼어요.” 스타일리스트 호도 무사는 그런 나스의 조력자로 자신의 역할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우린 남자들이 건드리지 않을 법한 질감을 주로 활용해요”라고 말하며 나스의 스타일에 항상 등장하는 빅숄더와 크롭트 재킷을 예로 들었다. 또한 파이어 모스, 크리스찬 코완, 크리스토퍼 존 로저스 등의 이름을 언급하며 신인, 유색인종, 성소수자 디자이너가 이끄는 브랜드와 의도적으로 작업했음을 강조했다.
나스의 치솟는 용기와 자신감은 음악에도 여실히 반영됐다.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어요.” 2019년에 발표한 ‘Panini’를 시작으로 나스와 함께 곡을 만들어온 프로듀서 덴젤 밥티스트가 말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숨겨야 했던 소년의 성장 과정이 어땠을지 다들 알잖아요. 그런 시절을 거치면 누구든 소극적인 성향이 될 수밖에 없어요. 그동안 우리는 나스가 아티스트로서, 한 사람으로서 성장하며 자신의 진짜 모습을 되찾는 과정을 지켜봤어요.”
과거에는 별종 취급을 당했을지 몰라도 현재 나스는 특별하고 고유한 존재로 통한다. 소셜 미디어에는 그에게 용기를 얻어 커밍아웃을 했다는 식의 경험담이 올라오고, 과거에는 나스 같은 아이콘이 부재했다는 나이 든 LGBT 팬의 증언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누군가의 롤 모델이나 영웅이 되려는 의도는 없다. “그건 제 역할이 아니에요.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싶지만 저는 누군가를 책임져야 하는 부모는 아니잖아요. 제 자신에 충실할 뿐이에요. 다른 이들도 절 보며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어요.”
2019년 4월 9일, 나스는 인생 최고의 생일 선물을 받 았다. 생일을 며칠 앞두고 공개한 ‘Old Town Road’의 리믹스 버전이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1 위에 오른 것이다. 2년 뒤, 스물두 번째 생일 직후 에는 ‘Montero(Call Me By Your Name)’이 차 트 1위로 데뷔했다. 그간 자신을 옥죄어온 불안감 을 떨쳐낸 나스는 팝스타로서 지위를 확고히 다 질 준비가 됐다. 그가 들려준 지금까지의 이야기 는 곧 발매 예정인 첫 번째 정규 앨범 로 귀결될 것이다. 자신의 본명인 몬테로 라마 힐 에서 제목을 가져온 앨범에 대해 나스는 ‘특정한 순간’과 같다고 정의하며, 곡들의 나열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질 것이며, 단순한 힙 합 앨범이 아니라고 예고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게, 장르는 차트에서나 사용하는 구식 언어가 됐다. 나스를 필두로 새로운 세대의 아티스트들에 의해 장르의 경계와 맥락은 급격히 허물어지는 중이다. 앞으로의 음악에 대해 나스는 장르가 아닌 감정과 기분으로 대답했다. “연약한 나스, 행복한 나스, 사랑에 빠진 나스, 연인에게 퍼주기만 하는 나스, 성깔 부리는 나스 그리고 갱스터 같은 나스!” 그가 팔을 활짝 펼치며 외쳤다. “저의 모든 면을 다 보여주고 들려줄 거예요. 전부 다 말이죠. 최근 몇 달간 너무나 자유로운 상태였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뭐든 할 수 있다는 기분을 느꼈어요.”
- Writer
- Jamal Jordan
- Photographer
- Luke Gilford
- Stylist
- Luke Day
- Hair
- Kendall Dorsey
- Make-up
- Grace Ahn
- Manicurist
- Sojin Oh
- Set Design
- Michael Wanenma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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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ubble 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