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s

반갑지만은 않은 신차

2021.09.08김은희

도로를 갈아치울 것처럼 신차 출시가 잦다. 문제는 필요 이상으로 쏟아진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 일인가 싶다.

피로하다. 피로가 극한으로 느껴지는 시대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은 지나치게 빠르고 복잡하다. 언제부터인가 인류는 발전에 목숨을 건다. 어제보다 나아지지 못하면 마치 의미가 없는 것처럼 여긴다. 문제는 생활의 거의 모든 부분이 지나치게 발전하길 바란다는 점이다.
4차 산업혁명과 미래 지속 가능성의 긍정적인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자. 모든 연구와 개발 활동은 인류에게 분명 도움을 주지만, 한편으로 세상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은 기업들이 물건을 팔기 위한 행위와 전략의 일부이기도 하다. 요즘 출시되는 제품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이런 사실이 분명하게 보인다. 본질적인 접근에서 발전했다기보다는, 발전했다는 사실을 내세우기 위한 발전이다.

1년 주기로 출시되는 스마트폰을 예로 들자. 성능과 디자인은 별반 달라지지 않지만, 전보다 15퍼센트 더 향상된 배터리 효율, 눈의 피로를 20퍼센트 줄여주는 디스플레이, 30퍼센트나 뛰어난 카메라 해상도로 사람들을 현혹한다. 사실 이 정도만 개선해도 대단한 발전에 속한다.
카메라나 배터리 효율은 매번 눈에 띄게 나아질 수 없다. 엄밀히 말해 스마트폰 같은 정밀한 전자 장비는 혁신적인 기술 발전에 최소 2~3년 주기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매년 내놓는 신제품이 이전보다 새롭다고 강조한다. 제품 본체
디자인을 변화시키거나 색깔을 화려하게 바꾼 뒤 컬러감이 발전했다고 홍보한다. 납득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스마트폰이 가진 ‘전화’라는 본질적인 성능을 개선하지 않은 것만 빼면 말이다.

음성 명령으로 문을 열어주는 냉장고도 등장했다. “하이 XX, 문 열어줘”라고 말하면 AI가 명령어를 이해하고 냉장고 문을 자동으로 열어준다. “양손으로 무거운 김치 통을 들고 있을 때 유용하게 쓰이는 기능이에요.” 브랜드의 설명처럼 누군가에겐 꼭 필요한 기능일 것이다. 그런데 지나칠 수 없는 의문도 든다. 엄밀히 말해 이걸 발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러닝화에 심장 박동 측정기를 달고 기술적으로 발전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청소기 모니터에 빨아들인 먼지 입자량을 표시하기 위해 과연 수년에 걸친 기술 개발이 필요한가? 그렇게 쏟아지는 수많은 신제품과 마케팅 활동이 우리 삶에 진정 도움을 줄까? 필요 이상의 발전을 원하는 사회. 반대로 진짜 필요한 만큼 발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고도화되는 마케팅. 그 사이에서 기업의 이윤 추구를 위해 짧아지는 신제품 출시 주기. 이 세 가지 요소가 동시에 맞물리며, 우리는 발전이라고 포장된 기술 개발의 홍수를 경험한다. 그 정점에 있는 제품이 바로 자동차다.

내연기관 자동차의 역사는 150년이 넘는다. 이 기간 동안 인류는 엔진이라는 핵심 기술의 효율을 거의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하드웨어 자체의 내구성과 디자인 완성도는 흠잡을 곳이 없을 만큼 뛰어나다. 1970년 이후 엔진 성능을 끌어올릴 여러 보조적 기술이 생겨났고, 2000년대 들어서는 이것들을 정밀하게 제어하는 전자 장비까지 개발됐다. 아직 일상에서 하늘을 날 수 있는 자동차를 볼 수는 없지만 30년 전엔 상상하지도 못한 결과들이 양산차에 접목된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부터다. 기술을 최대치까지 끌어올린 내연기관 엔진이 발전하는 속도가 우리의 기대보다 더디다.
연료 효율이 기존보다 20퍼센트씩 오르거나 제작 단가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는 공정을 개발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하이브리드나 전기 차처럼 대체 에너지를 향한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 분야도 내연기관 엔진만큼이나 발전 속도가 더디다. 반면 기업의 이윤 추구는 지속적이어야 한다.
신차는 새로운 기술이 완성될 때 등장하지 않는다. 5년 전부터 등장할 시기를 미리 정한 뒤 개발에 착수한다. 이 과정에서 기업들이 추구하는 발전 방향은 근본에서 점점 벗어나기도 한다.

현재 자동차가 추구하는 발전 방향은 편의성 강화다. 인터넷과 연결된 자동차를 스마트폰 앱으로 조작해 시동을 걸고 냉방 장치를 조절하는 기술을 갖춰야 대중의 시선을 잡을 수 있다. 대시보드에 더 좋은 가죽을 쓴 자동차가 더 발전한 제품으로 인식된다. 명품 오디오 회사의 마크를 단 오디오 시스템이 중저가 자동차 시장에 유행처럼 번지는 현상도 같은 맥락이다. 마사지 시트, 자동 주차 등 이동성과 연관되지 않는 부수 기술이 신제품에 더 적극적으로 접목된다. 물론 제품의 올바른 발전 방향이란 애초 정해져 있진 않다. 소비자의 요구와 시대의 유행을 반영하는 것이 제품이 존재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반면 신차 개발 주기가 나날이 짧아지는 현상은 필요 이상의 개발을 부추기는 게 분명하다. 그 배경엔 모듈화가 있다.

과거 완성차 회사의 역할은 다음과 같았다. 엔진이나 섀시 등 핵심 부품의 대부분은 직접 개발하고, 차량용 반도체, 텔레매틱스 같은 전장 기술은 외부 협력 업체에서 공급 받았다. 수만 개의 부품을 조립 일정에 맞춰 수급하고, 관리하고, 완성까지 이끄는 복잡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노하우였다. 반면 최신형 자동차가 만들어지는 공정은 이와 다르다. 디자인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부품이 협력 업체를 통해 모듈로 공급되어 공장에서는 조립 과정만 거친다. 여기서 모듈이란 여러 개의 부품을 부위별로 조립한 집합체를 말한다. 예컨대 운전석 모듈은 대시보드, 스티어링 휠, 에어백, 페달, 계기반 등 관련 부분에 필요한 구성이 세트로 제작된다. 부품 협력 업체가 대형화됨에 따라 하나의 단일 부품이 아니라 관련 부품을 모두 제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이 정도 기술력을 갖춘 일부 대형 부품 개발사의 경우 완성차 회사가 신제품 디자인 작업을 마치기 전에 새로운 기술과 모듈을 먼저 제안하기도 한다.

모듈 납품 방식은 자동차 생산 공정을 획기적으로 단순화시킨다. 부품을 설계하는 단계에서부터 모듈 단위를 구상하기 때문에 조립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최소화된다. 완성차 회사 입장에선 부품의 수급 관리와 조립 공정 에너지가 줄어드니 신차를 개발하고 만들어내는 시간을 그만큼 단축할 수 있다. 최신 자동차의 개발 및 출시 주기가 평균 5년에서 2.5~3년으로 줄어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동차 개발의 기간 단축은 최신 IT 기술을 자동차에 적극적으로 접목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요즘 차들은 그 어느 때보다 노골적으로 전자제어 장비의 편의성 발전에 집중한다. 디스플레이 크기를 키우고, 그 안을 꽉 채우는 화려한 인터페이스로 소비자를 유혹한다. 일부 브랜드는 스마트폰과 연결해 기능을 확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체 온라인 서비스망을 구축하는 과감한 모습도 보여준다.

자율 주행 5단계(완전 자율 주행) 장비를 옵션으로 제공하는 회사가 존재하고, 당장 사용할 수 없는 이런 기능을 수백만 원씩이나 주고 구입하면서 만족을 느끼는 소비자도 있다. 최신 자동차의 발전은 이동성 자체에 목적을 두지 않는다. 이동하는 과정에 더 큰 의미를 둔다. 더 이상 전화 기능이 강조되지 않는 스마트폰처럼, 새로운 단계로 진화 중이다. 세상은 이것을 ‘미래형 모빌리티’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하지만 기존 관점에서 보면 자동차의 발전 방향이 올바른지 판단하기 어렵다. 잘 만든 자동차의 기준이 모호하다. 이 부분에서 피로감이 몰려온다. 기업의 이윤 추구와 경쟁 논리 속에서 쏟아지는 신차가 문제는 아니다. 본질에서 벗어난 자동차를 두고 가치를 논하는 시대가 피로하다. 글 / 김태영(자동차 저널리스트)

    피처 에디터
    김은희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