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팝스타 로살리아 "나만의 진심에서 나온 것만 이야기할 수 있어요" | 지큐 코리아 (GQ Korea)

스페인 팝스타 로살리아 "나만의 진심에서 나온 것만 이야기할 수 있어요"

2022-06-25T21:30:09+00:00 |interview|

로살리아는 자신의 음악 세계가 얼마나 광활한지 보여줄 준비가 됐다.

스페인 팝스타 로살리아가 지난 3월 발매한 앨범 <Motomami>는 “아가씨, 뭐라고요?”라는 질문으로 시작된다. 단순하지만 중요한 질문이다. 로살리아는 그녀가 2018년에 대학에서 진행한 논문 프로젝트 ‘El Mal Querer’(‘나쁜 욕망’)를 위해 개인적으로 구상하고 제작한 스페인어 기록이 그녀를 세계적인 성공으로 이끌 것이라는 예상은 하지 못했다. 로살리아는 리키 마틴, 마크 앤서니, 엔리케 이글레시아스와 같은 아티스트들이 1990년대 후반 영어로 만든 노래로 미국 팝 시장에 입성한 이후, 플라멩코와 모던한 사운드를 독창적인 방식으로 뒤섞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리스너들을 사로잡으며 “제2의 라틴 폭발기”라 부를 만한 유행을 이끌어냈다. 로살리아의 다른 점은 배드 버니, 제이 발빈, 루이스 폰시 같은 음악적 동료들과 함께 그의 모국어인 스페인어로 노래했다는 것이고, 어떤 단일 시장의 성공 조건 같은 것을 거부했다는 부분이다. 거기서 시작해서, 그는 몇 곡은 플라멩코 기반이고 몇 곡은 또 아닌, 레게 톤과 얼바노 장르에서 가장 유명한 트레비스 스콧, 위켄드, 빌리 아일리시 등과 함께 작업한 싱글곡들을 이어 발매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로살리아는 스페인어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글로벌 클럽 음악의 선구자가 됐다.

코스튬, 더 스타일리스트 룸. 보디 슈트,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아무튼, 앞서 말한 그 간단한 질문 안에는 몇 가지 더 복잡한 질문이 숨겨져 있다. 가장 높은 티어의 팝 시장에 도달했다고 가정하면, 즉 지구상의 모든 이가 당신이 시키는 대로 움직일 준비가 되었다고 한다면, 당신은 뭘 하겠나? 당신의 인생을 영원히 바꿔놓을 만한 음악적 결과물을 어떻게 하면 다시 갱신할 수 있을까? 당신을 그 스타덤에 올려놓은 스타일로 또 돌아갈 생각인가,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또 다른 것을 만들 것인가? 로살리아, qué dices?
“프로젝트가 던진 질문은 ‘이 순간을 사진처럼 남기는 방법은?’이었어요.” 로살리아가 말한다. 우리는 수많은 ‘모토마미’가 응집된, 스페인어로 대화가 오가는 뉴욕의 일렉트릭 레이디 스튜디오에 있다. 테라스로 통하는 문이 열려 있고, 햇빛이 들어온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자화상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 경험을-지금 여기, 이 순간에- 음악으로 어떻게 변환할 수 있을까요?”
그는 1990년대식 아이코노그래피-음양 심벌, 이글거리는 광선이 표현된 태양, <비비스 앤드 버트헤드>-패치워크가 그려져 있고 양쪽으로 슬릿을 낸 코페르니의 홀터넥 롱 드레스를 입고, 청키한 검은색 플랫폼 부츠를 신었다. 우리는 빨간 소파에 앉았다. 그는 곡을 연주할 때마다 -글로시한 녹색 아이섀도를 바른-눈을 감고 음악의 바이브를 따라간다. 그녀는 발로 비트를 맞추고 멜로디를 따라 리듬을 타듯이 머리를 흔든다. 그가 슈퍼스타가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우리가 같이 레코드를 듣는 10대들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전 아직도 대부분의 시간을 음악에만 써요. 기본은 변하지 않았죠. 달라진 것은 나를 둘러싼 상황이에요.” <엘 말 케레르> 앨범 발매 이후 세계가 그를 향했다. 로살리아는 글로벌 패션계에도 합류했다. 어떤 날은 버질 아블로와 드레이크 사이 프런트 로에 앉기도 했고, 또 다른 날은 리아나의 브랜드 세비지 x 펜티 행사에서 공연을 했다. 뮤직비디오와 라이브 공연에서 그는 하이패션과 모터사이클에 대한 미학을 진지하게 연마했다.(간단히 설명하자면, 카디 비와 메건 더 스탤리언의 인터넷을 부숴버린 ‘WAP’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사람이 바로 로살리아다.) 그녀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 HBO <유포리아>의 스타 알렉사 데미는 이메일로 이렇게 전한다. “로사와 함께하면 그의 몸과 영혼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어요. 뭔가를 만드는 데 진심으로 접근하죠. 그는 힘이 있을 땐 강하게 행동하고 나약해질 땐 깊이 침잠하는데, 그 두 가지 감정을 우리와 자연스럽게 공유합니다.” 그가 겪은 많은 일에 대해 로살리아는 이렇게 설명한다. “인생이 3년 만에 360도 달라졌어요. 그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내가 찾은 방법은 그것에 대한 음악을 만드는 거였어요.”
그는 미국, 그중에서도 주로 마이애미, 뉴욕, 로스앤젤레스에서 앨범 작업을 하면서 지난 2년을 보냈다. 가족과 스페인을 떠나 있었던 가장 긴 기간이다. 결과적으론 주위의 변화가 도움이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여기 미국에서 2년 동안 일한 건, 중심을 재발견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라고 그는 말한다. “내가 중심에-창조적인 레벨에서의 중심에-있으면, 진심으로 쓰고 진심으로 프로듀싱하고 진심으로 편곡을 하게 되니까요.”
그것은 그가 꼭 연결되어 있다고만은 할 수 없던 다른 종류의 음악을 탐구하는 것을 의미했다. 앨범의 첫 번째 곡인 ‘Saoko’는 <Motomami> 앨범 중 마지막으로 녹음한 곡이다. 그는 이 스튜디오에서 즉흥 연주를 했고, 자신이 레게 톤에 깊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을 거라며 “Saoko, papi, saoko가 나온 거죠”라며 위신Wisin과 대디 양키의 2004년 레게 톤 히트곡 ‘Saoco’를 언급했다. ‘Saoko’라는 가사 이외의 나머지 부분은 철학을 세웠다. 그녀는 정적인 음악적 존재가 되려는 게 아니었다.(나는 나다, 나 자신을 변화시킨다 / 나비, 나는 나를 변화시킨다). 그는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이 자신의 창조적 본능을 방해하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다.(“프랭크는 세상을 호두처럼 열라고 했어요.” 그는 친구 프랭크 오션의 말을 인용해 노래한다. “내가 만약 죽는다면, 물고기가 죽듯이 입으로 죽을 것이다. If I die, may I die by the mouth like a fish dies.”) 프로젝트의 기본을 변형할 만한 이유가 없다면, 트랙의 끝으로 향할수록 분절하는 재즈 피아노가 선언하듯이 최대한 이상하고 실험적인 음악을 선보인다.

스커트, 프라다. 언더 웨어, 캘빈클라인 언더웨어.

“나는 플라멩코에 많은 빚을 지고 있어요. 나의 집이자 언제나 내 음악의 기초가 되어주었죠. 하지만 나에게 다른 장르보다 더 나은 음악이란 건 없어요. 좋은 음악, 나쁜 음악 같은 건 없으니까요.” 그는 말한다. 그건 이 문장만큼이나 단순했다: “나는 그게 완전 ‘구아이guay(멋짐을 의미하는 스페인어)’라 믿었다.”, “새로운 곡의 녹음을 시작하려면 분위기를 잡고 이 프로젝트를 위한 모든 참고 자료, 특히 내가 사랑하는 올드 스쿨 레게 톤을 듣기 시작해요. 나는 레게 톤을 들으면서 유년기를 보냈어요. 돈 오마, 로나, 아이비 퀸 같은 뮤지션의 모든 명곡을 들으며 사촌들과 춤을 춘 것을 기억해요. 그러니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이유가 있겠어요?”
<Motomami>의 음악적 배경엔 바차타, 약간의 뎀보, 그리고 아예 1968년에 나온 쿠바 뮤지션 후스토 베탄코트의 볼레로 곡 ‘Delirio de Grandeza’를 커버한 곡까지 포함해 꽤 많은 레게 톤이 들어 있다. 마치 로살리아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이 있는 정원을 거닐며 여러 꽃을 따서 뭉갠 다음 새로운 하이브리드를 만든 것과도 같다. 이것은 뮤지션들을 절충해서 믹스할 때 어떻게 레퍼런스를 활용하는지에 대한 좋은 예다- 살사 뮤지션 윌리 콜론, 래퍼 릴 킴과 엠.아이.에이., 플라멩코 아티스트 호세 메르세, 니나 파스토리와 마놀로 카라콜이 앨범 전반에 걸쳐 등장한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동안 그는 자신의 앨범을 라디오와 바이오그래피를 합성한 단어 ‘라디오그라피아’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라디오그라피아가 아니라 엑스레이에 가깝다는 것을 알기에 그렇게 부르는 걸 그만두었다. 어쨌든 여전히 복합적인 결과물이란 것엔 변함이 없다. 레퍼런스는 자전적인 이야기 속에서 프로젝트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이게 바로 그녀를 성장하게 해준 음악들이니까 말이다.

예술가의 첫 홍보 일정은 인생을 푸석푸석하게 만든다. 특히 그 뮤지션이 사회적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흥미 요소들을 가진 젊은 여자라면 더욱 그렇다. 로살리아 빌라 토베야의 이야기는 로살리아 신화로 아주 빠르게 불어났다. 그는 바르셀로나 북쪽의 산 쿠가트 델 바예스에서 태어났다. 일곱 살 때 그가 가족 앞에서 노래를 부르자 가족들은 눈물을 흘렸다. 아홉 살에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고 열세 살에 플라멩코와 사랑에 빠졌다. 그는 카탈루냐 음악 대학에서 1년에 단 한 명의 학생만 받는 프로그램으로 음악을 공부했다. 플라멩코 가수와 댄서가 공연하는 스페인의 바 겸 레스토랑 공간을 타블라오스라 부르는데, 그녀는 로컬 타블라오스에서 가끔 저녁밥만 얻어먹고 무료로 공연을 하기도 했다. 그는 기타와 목소리로만 이루어진 단순한 플라멩코로 데뷔 앨범 <로스앤젤레스Los Ángeles>를 발표했다. 곧 성공이 뒤따랐다. 13세기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은 두 번째 앨범 <El Mal Querer>와 스페인 영화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2019년 영화 <페인 앤 글로리Pain and Glory>에서의 연기까지. 이 모든 것이 그녀를 매우 진지한 의도를 가진 매우 진지한 아티스트로 만들었다. 그다음에 무엇이 따라올지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로살리아가 남다른 아이디어를 가졌다는 것 외에는. 그건 진짜로 늘 그의 아이디어였다. 그는 거의 모든 것을 들으며 자랐다. 본 이베르부터 케이트 부시까지. 에이펙스 트윈뿐 아니라 재니스 조플린도. 그는 그녀의 어머니가 준 밥 딜런의 책과 패티 스미스의 가사를 통해 독학으로 음악 만드는 법을 배웠다.
그녀는 인터넷과 함께 성장한 90년대의 아이였다. 한 장르를 선택한다는 건 제한적인 것 같았다. 그녀의 친구이자 뮤지션인 아르카는 “그녀의 음악은 점점 더 커지고 넓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리스너들과 더욱 깊이 영혼으로 연결되어 있어요”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종종 멜로디가 있는 보이스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서로의 창의적인 노력을 격려한다. 아르카는 덧붙인다. “나는 그녀의 별이 밝게 빛나는 게 보여요.”
<El Mal Querer>로 그는 글로벌 팝 신에서 사운드를 통합하기 시작했다. 그다음 그는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가들과 작업을 선보였다. 로살리아는 (그들과) 정말 잘 어울렸다. 제이 발빈, 엘 구인초와 함께한 레게 톤 스타일의 곡 ‘Con Altura’는 유튜브에서 거의 20억 뷰를 기록했다. 인디 세계에서 제일 인기 있는 정도의 인지도는 이제 완전한 글로벌 명성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탱크톱, 루이 비통.

모토마미는 이 기세를 몰아간다. 장비를 바꾸고 모양을 변형해도, 그건 늘 같은 아이디어였던 것이다. 비록 사람들이 따라잡는 속도는 느리더라도. “<El Mal Querer>는 분위기였어요. 사실 매우 진지한 분위기였죠. 기분은 순간이고 순간은 반복될 수 없잖아요. 이 프로젝트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일은 진심으로 마음을 여는 것이었어요.”
마음을 연다는 것은, 이 맥락에선 ‘모토마미’란 캐릭터를 만드는 것을 의미했다. 그가 축적한 작업의 근간은 “많은 에너지를 가진 매우 진취적인 지점과 나약하고 쉽게 무너지는 그 반대편 지점이 있다”는 특정한 퀄리티를 염두에 두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는 오랜 친구의 예전 이메일 주소였던 ‘모토마미’를 떠올렸다. 그 애칭은 여전히 그 친구의 것이지만, 이젠 새로운 아이디어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딱딱해 보이면서 부드러웠다. 여성적이면서도 엄격하지 않았다. 그녀를 생각나게 하기도 하지만, 그녀의 엄마를 떠올리게 만들기도 했다. “엄마는 늘 가죽옷을 입고 할리 데이비슨을 타셨어요.” 그녀는 말한다. 순서상 나중에 떠올랐는데도 불구하고, 모토마미는 어쩐지 그의 앨범보다, 아니 그의 삶보다 앞선 아이디어처럼 느껴졌다. 그건 일종의 믿음처럼 발전했다. 그는 내게 말했다. “나는 모토마미예요. 왜냐하면 나의 엄마도 모토마미였고, 내 엄마의 엄마도 모토마미였으며, 내 엄마의 엄마의 엄마 역시 모토마미였기 때문이죠.”

코트, 슈즈, 모두 프라다.

모토마미에게는 재미있는 면이 있다. 앨범에 있는 수록곡 ‘Hentai’엔 성인 만화에서 레퍼런스를 가져온 성적 욕망이 고이 접혀 들어가 있다. 이게 팬들 중 일부를 기함하게 만들었다. “내가 올해 초 이 곡의 일부를 15초 정도 공개했을 때 많은 사람이 좋아해서 전 아주 행복하고 감사했어요. 하지만 또 많은 사람이 이마를 짚기도 했죠. 전 계속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니 평생 노골적인 가사를 써온 릴 킴도 있는데!” 그는 웃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특정한 기대를 할 수도 있어요. 왜냐면 그 전에 낸 두 번의 내 프로젝트가 매우 진지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번 작업은 날 위한 거였어요. 유머, 아이러니, 내 삶의 일부인 모든 이런저런 주제에 공간을 내어준 거죠.”
모토마미는 이 순간을 위해 존재한다. “여자가 세상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종종 무자비해져요.” 그녀는 말한다. 그래서 그녀는 무자비해지는 법을 배웠다. “마침내 전 이렇게 말했어요: 모토마미하고 계속 나아가라.”
이 특징은 그가 새로운 삶의 복잡함과 마주해야 할 때 그에게 큰 도움이 됐다. 첫째, 그녀는 역사적으로 소외됐던 스페인의 로마 사람들 전통 음악인 플라멩코를 만들지 말라는 비난에 직면했다.(이 비판은 좀 더 정통에 가까운 <Los Ángeles> 앨범 때보다는 <El Mal Querer> 앨범의 세계적인 성공 이후 더 많은 힘을 받은 걸로 보인다.) 그런 다음 <El Mal Querer>가 라틴 그래미상의 여러 부문에 후보로 오르자, 스페인 출신 아티스트가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 및 라틴 아메리카와 이베리아 반도에서 사용하는 기타 언어로 부른 음악을 기리는 상을 수상하는 게 일반적임에도 불구하고 로살리아가 포함된 것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카브리해 지역과 라틴 아메리카의 음악 스타일로 가득 찬 모토마미를 녹음할 때 이런 의문점들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물었다.

선글라스, 발렌시아가.

그게 꼭 옳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저에게 음악을 만드는 건 인간적인 표현이에요. 열정을 가지고 아침마다 일어날 수 있게 해주고, 계속 희망을 갖게 하고, 가장 정직한 의사소통 방식이에요.” 그는 깊이 생각해온 주제에 대해 명확하게 말을 이어갔다. “제가 음악가가 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여행을 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었어요. 그 모든 것이 한 인간으로서 나 자신에게 영향을 주고, 그런 것들이 내 사운드에 영향을 주기를 바라고요. 다르게 느끼시는 분들을 이해하고 공감하지만, 사실은 내가 만약 영감을 받는 방법에 옳고 그름이 있다는 생각을 멈출 수 있다면, 아마 음악을 계속할 수 없을 거예요. 제 음악을 만들 수 있게 해준 많은 것, 많은 사람이 저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음악 스타일로 말하자면 레게 톤, 클라시코, 뎀보, 바차타, 볼레로가 모두 들어 있죠. 그것은 모두 사랑과 감탄과 극강의 존경의 결과예요.”
우리가 만나고 몇 주 후면 커리어의 가치에 대한 음향학적 탐구와 자기 질문의 산물인 <Motomami>가 출시된다. 발매는 로살리아의 레벨 업에 적합하다. 그녀는 지미 팰론의 <더 투나잇 쇼>에 메인 게스트로 출연해 지미 팰론의 (모토마미가 아닌) “모토파피” 에너지를 칭찬한다. 그는 또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에서 수백만 명의 청중을 향해 스페인어로 노래한다. 그리고 정식 발매 바로 전날 밤, 틱톡에 스페셜 퍼포먼스를 올린다. 그녀는 앨범의 전체 곡을 30분 메들리로 축약했는데, 앱의 트레이드마크인 특수 효과를 많이 사용하고 폰으로 소비될 여러 아이디어를 이것저것 집어넣었다. 그가 생각하는 만큼의 청중을 위해 설계한 자신감 있고 확신에 찬 퍼포먼스는, 한 가지만은 매우 확실하게 한다. 로살리아는 첫 두 장의 앨범으로 자신의 세계를 구축했고 리스너들을 끌어들였다. 그리고 이번 신보는 물론 앞으로의 모든 (반항적이고 아름답게 혼란스러운 동시에 틀림없이 로살리아다운) 작업을 팝 뮤직 시장에 맞게, 미묘하지만 지워지지 않게, 자신의 영향력을 담아 릴리즈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