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재가 단단한 이유.
GQ 경기 후 좀 쉬었어요?
SJ 대회 5주 차 일정이 이번 주로 끝났네요. 네, 이제는 가족들과 애틀랜타 집에서 좀 쉴 수 있을 것 같아요. 일주일 정도? 응원해주신 팬들 덕분에 잘 달려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인터뷰를 빌려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꼭 전하고 싶습니다.
GQ 늦은 인사 먼저 전합니다. 결혼 축하드려요! 그러고 보니 신혼 중에 바쁜 일정을 소화했네요.
SJ 고맙습니다.(웃음) 작년 12월에 결혼하고, 아내와 쭉 투어 생활을 함께하고 있어요. 행복한 신혼 시간을 보내면서 또 아내 덕분에 시합 준비도 잘하고 있습니다.
GQ 오늘은 그럼 애틀랜타에 머물고 있나요?
SJ 지금은 플로리다주 잭슨빌에 있습니다. ‘더 플레이어즈 챔피언십The Players Championship’ 준비로 나와 있어요.
GQ 최근 마무리한 ‘PGA 혼다 클래식 PGA The Honda Classic’ 경기 잘 봤습니다. 혼다 클래식은 이번이 마지막 대회였죠?
SJ 혼다 클래식은 제가 PGA 투어 입성 후에 첫 우승을 거둔 대회(2020)라 애정이 남달라요. 그래서 스폰서십을 이유로 올해가 마지막 대회라는 소식을 접했을 땐 굉장히 아쉬웠어요.
GQ 임성재 프로에게 혼다 클래식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나요?
SJ 어렸을 때부터 PGA 투어에서 경기하고, 우승하는 것이 목표였어요. 그리고 PGA 투어 데뷔 2년 차에 혼다 클래식에서 첫 우승컵을 들게 됐죠. 오랜 꿈이자, 목표를 달성한 대회였기 때문에 특별할 수밖에 없죠. 그렇게 첫 우승을 거두면서 더 높은 목표도 새로 세울 수 있었고요. 혼다 클래식을 계기로 한 단계 성장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 골프 커리어에서 혼다 클래식은 하나의 전환점이 된 이벤트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GQ 그래서 이번 대회가 더 아쉬웠을 것 같습니다.
SJ 그렇죠. 마지막이었던 혼다 클래식에서 ‘디펜딩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을 획득하지 못해서 더욱 더 아쉬웠던 것 같아요.
GQ 준비 중인 ‘더 플레이어즈 챔피언십’에 앞서 좋은 경험이 되기도 했을 것 같아요.
SJ 더 플레이어즈 챔피언십이 PGA 투어 5대 메이저 대회인 만큼, 그 명성에 걸맞게 제 기량을 한껏 발휘하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죠. 그런데 경험상 마음이 앞서면 코스에서 오히려 화를 부르는 것 같아요. 이럴 땐 정석대로, 차분하게 바라보며 한 홀 한 홀 최선을 다해야 하겠죠.
GQ ‘임성재 프로’ 하면, 열여덟 살에 프로 카드를 획득한, 당대 가장 주목받는 신예 타이틀이 먼저 떠올라요. 데뷔 첫해인 2019년에는 가장 주목받는 신인 선수에게 주어지는 ‘아널드 파머 신인상’을 아시아 선수 중 최초로 수상하기도 했죠.
SJ 생생해요. 아시아 선수 최초로 ‘아널드 파머 신인상’을 수상했을 때, 한국 선수로서 굉장히 뿌듯했어요. 또 투표권을 선사해준 선배, 그리고 동료 선수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이 굉장히 컸고요. 그때 신인상 받으면서 했던 다짐은 지금도 소중한 동력이에요. 특별한 건 아닌데, ‘열심히 하겠다’고 했거든요. 정말 열심히 하고 있죠.(웃음)
GQ 임성재 프로가 생각할 때, ‘아널드 파머 신인상’을 수상한 직접적인 커리어는 뭐였다고 보나요?
SJ 아무래도 루키 시즌 때 상위 30명만 출전 가능한 ‘투어 챔피언십’에 출전했던 게 컸다고 생각해요. 그때 많은 선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 같아요. 운이 좋았죠.
GQ 임성재 프로의 시간을 따라 좀 더 이야기를 나눠볼까 봐요. 돌아보면 PGA 투어 데뷔 첫해부터 무려 35개 대회에 출전하며 26회 컷 통과라는 훌륭한 성적을 기록했죠. 2018-2019 시즌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어요?
SJ 모든 선수의 루키 시즌처럼 저도 그랬어요. 처음이었던 PGA 투어 시즌 전부가 흥미로웠어요. 참가 자격이 주어진 모든 시합이 궁금했고, 준비하는 과정은 설렘만 있었죠. 그렇게 최대한 많은 대회에, 즐겁게 출전했던 것 같아요. 지나고 보면 빠듯한 출전 스케줄이었나 싶지만, 그때 당시에는 전혀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간절함도 한몫했던 것 같고요. 어쨌든 루키로서 시즌을 잘 마무리한 시간으로 기억되네요.
GQ 정말, 임성재 프로는 ‘아이언맨’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잖아요. 꺾이지 않는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평소 어떻게 운동하는지 궁금합니다.
SJ 올해는 타이거 우즈 선수를 담당하는 트레이너와 함께하고 있어요. 제 스윙에 도움되는 체력 운동과 리커버리 운동을 주로 하고 있죠. 너무 무리한 운동보다는 내게 맞는 운동법을 찾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꾸준함. 꾸준한 운동이 체력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인 것 같아요.
GQ 워낙 닉네임이 많잖아요. 혹시 ‘아이언맨’ 말고 더 좋아하는 별명이 있나요?
SJ 많은 별명을 붙여주셔서 정말 감사하죠. 그런데 저는 역시 ‘아이언맨’이라는 별명이 가장 좋아요. 아무래도 PGA 투어 루키 시즌 때 많은 대회에 출전했고, 또 좋은 성적까지 꾸준히 내면서 생긴 별명이라서 더 마음에 드는 것 같아요. 그렇게 불러주실 때마다 정말 힘도 더 나고요.
GQ 아이언맨답게 많은 필드를 경험했는데, 그럼 그중 어떤 클럽이 단연 좋던가요?
SJ 나름의 이유로 전부 좋지만 베스트 3를 꼽자면,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마스터스), PGA 내셔널 골프 클럽(혼다 클래식), 세미놀 카운티(플로리다 웨스트 팜비치)가 기억에 남네요.
GQ 다시 질문으로 돌아와서. 그럼 멘털과 컨디션 관리는 어떻게 하는 편이에요?
SJ 뻔한 이야기 같지만, 실제로 그래요. 충분한 수면, 풍부한 영양소 섭취, 규칙적인 운동이 다예요. 물론 아내의 내조도 한몫하고 있죠.(웃음)
GQ 정답은 마지막인걸로.(웃음) 그런데 임성재 프로는 골프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어요?
SJ 부모님께서 골프를 하셨어요. 제가 네 살쯤? 어머니를 따라 실내 연습장을 간 적이 있어요. 그때 어머니 옆에서 공을 가지고 놀면서 골프에 재미를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일곱 살부터 정식으로 골프를 배우게 됐고요.
GQ 단순히 재미를 느꼈다고 해서 이렇게 우뚝한 선수가 될 순 없을 것 같아요. 골프를 잘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분명 있었겠죠.
SJ 처음에는 순전히 재미로 쳤어요. 좀 다른 점이라면 어릴 때부터 승부욕이 꽤 있었어요. 지는 걸 굉장히 싫어해서 더 열심히 했죠. 특히 초등학교 2학년 때, 제가 첫 전국 대회에 나가기 전 베스트 스코어가 90타였거든요. 그런데 대회 첫날 77타를 치면서 자신감을 많이 얻었어요. 그때 부터 ‘나는 골프와 잘 맞나 보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고요. 그래서 지금 여기 PGA 투어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GQ ‘승승장구’라는 타이틀이 꼭 어울리는 임성재 프로지만, 분명 고된 시기도 있었겠죠?
SJ 그럼요. 아무래도 프로 데뷔 1년 차 때가 가장 고됐던 것 같아요. 일본 투어로 기억해요. 상금 순위 60위 안에 들어야 풀 시드를 받는데, 시즌 중반까지는 예선 탈락을 많이 해서 결국 시드를 잃을 위기까지 갔어요. 그런데 ‘마이나비 ABC’ 대회에서 극적으로 공동 4위를 기록하면서 시드를 유지할 수 있었고요. 그때가 꽤 힘들었어요. 그래서인지 그때 이후로는 제 골프가 어렵지 않게 잘 풀렸던 것 같습니다.
GQ 그때의 위기는 결국 무엇을 동력삼아 빠져나왔다고 생각해요?
SJ 골프선수에게 슬럼프는 분명 두려운 존재예요. 하지만 두려워하기보다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중요하죠. 저는 운이 좋게도 ‘지난한 슬럼프’ 는 없었어요. 하지만 부상이 올 때도 있고, 연습량과 관계없이 잘 안 될 때도 있죠. 그럴 때 정말 힘들어요. 하지만 결국 극복해야 하는 건 저 자신이니까, 스스로를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긍정적인 사고방식, 스스로에 대한 믿음, 버텨낼 수 있는 인내심. 어려움이 생기면 이런 마음들로 밀어내는 거죠.
GQ 계속 영업 비법을 묻는 것 같아서 눈치가 보이지만(웃음), 임성재 프로의 팬 대부분은 특유의 간결한 스윙을 궁금해합니다. 어떤 연습을 통해 만들어진 폼인지 물어도 될까요?
SJ 굳이 말하자면 매일 연구하며 관찰하고, 또 연습합니다. 프로 선수로 데뷔할 때는 제 백스윙이 빨랐어요. 일본 투어 1년 차 때 백스윙 리듬을 바꾸면서 스윙에 일광성이 생겼고요. 그러면서 성적이 좋아졌고, 그때부터 지금까지는 슬로 백스윙을 제 스윙으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저도 많은 팬이 제 스윙 폼을 기억해주시고, 따라 해주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GQ 임성재 프로의 장타력은 어떻게 완성됐나요?
SJ PGA 투어에서 저는 결코 장타 선수라고 할 수 없지만, 그래도 평균은 되는 것 같죠?(웃음) 아무래도 거리를 늘리려면 근력 운동이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근력이 받쳐준다면 그다음으로는 헤드 스피드를 늘리고, 정타에 얼마나 잘 맞출 수 있는지가 중요하겠죠.
GQ 임성재 프로는 스윙 전, 별다른 루틴 없이 간결한 준비 동작을 하죠?
SJ 네, 저는 스윙하기 전에 등을 조금 피려고 무릎을 살짝 튕기곤 하는데… 그것도 루틴이라면 그럴 수 있겠네요.
GQ 아마도 팬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클럽은 어떤 걸 사용하나요?
SJ 저는 다양하게 사용하지 않아요. 고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쭉 타이틀리스트의 클럽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른 골프 용품도 타이틀리스트만 사용하고 있고요.
GQ 팬들의 최종 꿈이 있다면, 아마도 임성재 프로에게 직접 레슨을 받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팬들께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한 팁을 준다면, 임성재 프로는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요?
SJ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다른 사람의 스윙을 마냥 따라 하지 마시라고 조언해드리고 싶어요. 자신의 스윙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스윙에서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이 지점이에요. 테이크 어웨이가 일자로 잘 빠지고, 또 백스윙 땐 손과 몸이 따로 움직이지 않는 상태여야 한다는 것. 그래야 흔들림 없는 백스윙을 할 수 있거든요. 그리고 임팩트를 치고 나서는 피니시를 끝까지 잡고 있어야 한다는 것. 그래야 좋은 밸런스를 끝까지 유지할 수 있죠.
GQ 요즘엔 어떤 부분을 공들여 연습하고 있어요?
SJ 1백 야드 안쪽 웨지 샷을 더 연습하고 있어요. 그린 주변, 쇼트 게임 세이브하는 능력과 3미터 안쪽 퍼팅 연습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GQ 임성재 프로 같은 정상급 선수도 골프는 여전히 어려운가요, 아니면 이제는 비로소 즐겁게 즐길 수 있을까요?
SJ 아휴, 과찬이세요.(웃음) 제가 아무리 프로여도 마냥 즐겁게 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연습량과 상관없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고, 변수는늘 있으며, 부상도 항상 조심해야 하죠. 그래서 어쩌면 일반인들보다 더 고민이 많을 수도 있고요. 이번 주에 우승했어도, 다음 주 대회에서는 예선 탈락할 수 있는 게 골프니까요.
GQ 이야기한 것처럼 뜻대로 되지도 않고, 변수도 많은 골프. 이 어려운 골프를 통해 임성재 프로는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 중인가요?
SJ 골프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 라운드가 길죠. 무려 4일 동안 대회가 열리고, 그만큼 희로애락도 깊은 스포츠예요. 제가 골프를 통해 무엇을 배웠다면 그건 인내심 같아요. 때론 스스로를 탓하는 상황도 있지만, 그때마다 좌절하지 않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극복하려고 하죠. 말한 대로 골프는 라운드가 길기 때문에 초반 등수는 상관없어요. 시합 중에 아무리 어이없는 실수를 했어도 다시 만회할 순간, 성공할 기회가 몇 번씩은 있죠. 그러고 보면 인생과 비슷한 점이 많아요.
GQ 성숙해질 수밖에 없겠어요.
SJ 골프는 제가 직접 컨트롤할 수 없는 영역이 분명 존재하잖아요. 날씨 같은 자연적인 영향, 불리한 티 타임, 잔디 상태 등등. 그런 예기치 못한 요인들로 분통이 터질 때도 있고, 다른 선수들과의 비교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지만, 중요한 건 골프는 스포츠라는 거죠. 어떤 과정을 지나왔더라도 결과 앞에 순응하고, 인정해야죠. 나아가 상대를 존중하고, 축하해야 하고요.
GQ 사람 임성재 이야기나 나와서 말인데, 골프 말곤 또 뭘 좋아해요?
SJ 결혼하고 나서 아내의 권유로 틈틈이 독서하는 습관을 기르고 있어요.최근엔 송중기 배우가 선물해준 <미션>이라는 책을 읽었어요. 아주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GQ 올해만 두고 본다면 어떤 바람들이 있을까요?
SJ 소위 말하는 ‘톱 랭커’로 가야겠죠. 그러기 위해서는 메이저 대회에서 더 좋은 성적을 내야 하고요. 올해만 두고 본다면 마지막 대회인 ‘투어 챔피언십 Tour Championship’에 출전해서 ‘페덱스 챔피언 FedEx Champion’을 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GQ 스스로에게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일까요?
SJ 90점 이상은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PGA 투어 5년 차를 뛰면서 아시아 최초 ‘아널드 파머 신인상’도 받았고, ‘투어 챔피언십’ 4년 연속 출전과 준우승, 그리고 손꼽히는 메이저 시합인 ‘마스터스’에서는 첫 출전에서 준우승을 거둬냈으니까요. 또 여기에 투어 통산 2승까지 더한다면 현재까지는 아주 좋은 커리어를 쌓아 올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쉬운 점이라면 아직까지 메이저 대회에서 더 강한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한 것 같아요. 더 노력해서 나머지 10점을 채워야 할 것 같아요.(웃음)
GQ 임성재 프로는 결국 어떤 선수이고 싶어요?
SJ 저는 꾸준하게 롱런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쉽게 포기하지 않고, 겸손하며, 올바른 사고를 가진 선수가 되고 싶죠. 그런 선수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고요.
GQ 임성재 프로의 대답을 듣다 보니 단단한 사람이라는 게 느껴져요. 사람 임성재는 어떤 기준을 두고 인생을 살고 있나요?
SJ ‘항상 현재에 충실하고 노력하자. 그렇다면 미래는 바뀔 것이다.’ 이게 제 좌우명입니다. 현재에 충실하고, 노력하는 삶. 정말 미래는 바뀌었고, 또 바뀌고 있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