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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이들의 목소리 – 안재훈 감독

2023.11.16김은희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히치콕의 어떤 하루>(1998)

소설이나 시 쓰는 일을 업으로 하고 싶다, 이런 생각을 가졌어요. 그림 그리는 재주를 조금 가지고 있는 게 그 업을 하기 위한 뒷받침이 될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죠. 그때는, 지금도 마찬가지로 변한 게 별로 없지만, 미국이나 일본 애니메이션들을 주문자 생산 OEM 방식으로 작업하는 게 애니메이션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경로였고, 주문자가 있다는 건 급여가 이루어진다는 의미니까 그런 일이 아예 없는 시를 쓰는 일보다는 안정적으로 보였죠. 그래서 1992년 9월 16일에 애니메이션을 시작했어요. 애니메이션 자체에 대해 그렇게 크게 “움직이는 그림을 그릴 테야” 생각하지는 못했어요. 그렇게 애니메이션 회사를 다니던 중 누가 보여준 게 프레드릭 백 감독의 <나무를 심은 사람>(1987)이었어요. 성공이라는 것이 그렇잖아요. 내가 내는 목소리가 어딘가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게 큰 매력 중 하나인 건데, 작품을 통해서 말 그대로 나무를 심고 환경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면 그 작품은 너무 위대한 거죠. 흥미와 재미를 넘어서서 사회에 영향까지도 미칠 수 있다는 게 위대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작업 태도도 그렇고. 그때 또 다른 한편으로 본 게 <반딧불이의 묘>(1988)였어요. 20대 때 저는 역사 의식이 아주 훌륭하지는 못했어요. 그런데 그 작품을 보면서 이상하게 그걸 느꼈죠. 아, 아름답다는 이유로 어디까지 통용되는 것일까? 예쁘게만 그려진다면 누군가는 그걸 통해 역사를 오역할 수 있는 것이구나. 그래서 역으로 애니메이션이 정말 무서운 것임을 느끼게 됐어요. 어쨌든 OEM 작업을 많이 하면서, 그때만 해도 국내에서 창작 작업을 한다는 것은 일어나지 않는 일이었으니까 저도 마음 한 곳에서는 그냥 의아하기만 할 때였는데, 그때 독서가 도움이 됐어요. 이중섭 화가의 일화를 알게 되었거든요. 이중섭 화가는 혜택을 받으며 일본 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조선을 누군가 그리지 않으면 조선은 남아 있을 것인가?’ 스스로 깨달았어요. 그래서 한국의 소를 그리고, 서명은 꼭 한글로 해서 우리 글을 남겼죠. 그러니까 이건, 굉장한 자각인 거잖아요. 그 정도는 아니어도 저도 ‘우리 애니메이션계는 시나리오도 캐릭터도 외국에서 오고, 우리 이야기를 하는 작품은 하나도 없네’ 그런 자각이 생겼던 것 같아요. 짧게라도 애니메이션을 하기로 했고, 그러면 작품을 한번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히치콕의 어떤 하루>(1998)

그래서 만든 게 <히치콕의 어떤 하루>(1998)예요. (우리 이야기를 그려보자 자각했지만) 소재를 그걸로 한 이유가 또 있어요. 1990년대 당시 세계적으로 단편 애니메이션 주제 거의 90퍼센트가 환경, 인권, 전쟁이었어요. 그런 주제로 하면 부각될 거라는 것은 이해했지만, 그 분야에 저는 공부가 너무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어서 하지는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공부하는 와중에 히치콕 감독을 많이 공부하면서 이분은 나하고 완전 다른 사람이구나, 그게 너무 매력 있어서 작품으로 만들게 됐어요. 어떤 면이 다르냐면, 그분은 이런 말을 했어요. “나는 자신이 없을 때만 대사를 넣는다.” 그런데 저는 대사가 없으면 영화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에요. 영화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 좋은 그림을 나열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차이도 있고, 비슷한 점도 있고, 그리고 이 작품을 첫 번째로 하면 ‘어설픈 내가 드러나지 않겠구나’ 이런 것도 있었고. 하여튼 제가 잔머리, 큰머리를 다 쓴 거죠. 7분가량의 첫 단편을 만들면서 하나부터 열까지, 없는 (애니메이션 제작) 구조를 배워가면서 해야 했기 때문에 <히치콕의 어떤 하루>는 하나하나가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죠. 이 작품이 관객을 만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에게서 출발한 나다운 이야기를 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오히려 너무 용기가 없었나?’ 생각도 들고, 또 관객이라는 이름을 정확히 인지하게 된 계기가 된 거니까 다음 작품을 할···, 뭐라 그럴까, 용기를 얻었죠. 어쨌든 조금은 떠밀어준 거잖아요. ‘해봤더니 아무것도 아니네’였다면 다음 걸로 안 갔을 텐데 여러 가지 아쉬움이 다음 걸 또 하게 하는 거죠.

<소중한 날의 꿈>(2011)

<소중한 날의 꿈>(2011)을 만드는 데 10년이 걸린 건 아무도 투자를 안 하셔서. 중간에 <겨울연가>도 하고, 이것저것 많이 하면서 돈을 열심히 벌면서 만드느라. 그 10년 사이 크게 변한 건, 캐릭터를 완전히 뒤엎은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건 이전부터 고민이 많았어요. 중간에 <겨울연가>로 배용준 씨, 최지우 씨 캐릭터를 그렸는데, 누가 봐도 배용준, 최지우지만 저는 한국 사람 같은 느낌이 안 드는 거예요. 계속 찝찝해하다가 어느 날 스태프들과 앉아 난상 토론을 하면서 처음부터 다시 짚어보자 했어요. 아예 그림을 고치게 됐죠. 무슨 인류학 책, 두상에 대한 책 다 읽어가면서 뭔가를 찾고 싶어서 노력을 많이 했는데 <소중한 날의 꿈>이 그걸 완벽히 해내서 너무 좋아요. 눈을 크게 한다든지 그런 애니메이션의 표현 형식을 일본이 이미 이루어놨어요. 아시아 인종을 애니메이션화할 때 나올 수 있는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일본이 다 갖고 있단 말이죠. 그걸 따라 하면 그냥 그거밖에 안 되는 거라서, 어쨌든 노력을 해서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내야겠다고 생각을 집요하게 했어요. 하지만 지금도 마음속엔 그런 게 있죠. 피카소도 훌륭한 데생과 기본기를 바탕으로 나중에는 그런 추상적인 그림을 그렸잖아요. 그러니까 이 추상적이라는 게 어찌 보면 그림 단계에서 생략할 걸 생략하고 극대화시키는 것이고, 그때부터 예술인 것 같아요. 우리가 지금은 피카소 초기처럼 사실에 집중하고 있다면, 언젠가는 우리 스태프들이든 저든 그걸 아시아만의 독특한 것으로 이루어내는 경지까지 가면 너무 훌륭하겠죠. 그래서 지금 작업 중인 <아가미>(개봉 예정)는 거기에 조금 더 다른 형식으로 캐릭터를 바꿔보기도 했고요.

<아가미>(개봉 예정)

<아가미>부터는 스태프들은 온전히 디지털로 작업해요. 한 작품 한 작품 할 때마다 기술 진보를 따라가야 하니까. <무녀도>(2021)까지는 모두 종이와 연필로 그려서 완성했어요. 그래서 <무녀도> 크레딧에 보면 스태프들의 마지막 손 작업이라고 쓰여 있어요. 거기 제 이름은 없고요. 저는 <아가미>도 종이와 연필로 하고 있어요. <아가미>는 종이와 연필, 디지털이 섞인 애니메이션인 거죠. 종이와 연필로 하는 방식을 “고수한다”고 하면은 좋지 않은 게, 마치 이게 저의 편의와 오랜 습관으로 인해 다 죽어가는 것을 붙잡고 있나, 저의 개인적 취향을 위해 작업 시스템을 낙후되게 하는 건가, 이렇게 느낄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게 아니거든요. 우리 스태프들은 정확히 아는데, 해외에서나 눈썰미 좋은 관객분들이 우리 스튜디오에서 만드는 애니메이션이 아류가 아니라고 느끼는 차이가 거기에 있어요. 일본과 미국의 옛날 애니메이터들은 연필로 연출을 하면서 본민만의 타이밍 감각을 가져온 상태에서 디지털로 넘어갔기 때문에 여전히 다양한 빛깔이 있어요. 우리(한국)는 손으로 작업한 기억이 별로 없이 디지털로 넘어가서 그냥 보면 움직이는 데 문제는 없는데 잘 들여다보면 비슷비슷하고 무언가가 없는 거예요. 미세하게 사람이 움직일 때 어딘가에 그림을 넣고, 뭘 주고, 이런 타이밍 감각이라는 게 있어요. 일단 종이에 연필로 해서 그 맥락, 그 독특한 타이밍이 본인의 손과 몸으로 체득되는 과정을 이해하고 겪게 된단 말이죠. 이건 엄청 큰 차이인 거예요. 그래서 제가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조금 불편해도 제가 손으로 그린 걸 스캔해서 (스태프들이) 디지털로 작업하는 과정을 거쳐서 그런 타이밍 감각이 스태프들에게 들어가기를 희망하는 거고, 우리 스태프들이 나중에 극장 영화를 하게 되면 그 감각이 명맥을 유지하면서 아주 훌륭한 작품으로 만나게 되리라는 기대를 갖고 있어요. 그런데 만약 우리 스튜디오가 훌륭한 대작이 많이 나온 상태에서 (이런 작업 방식이) 화두가 된다면 이건 좀 뭉클한 이야기죠. 지금은 아무도 모르는 뭉클한 이야기.(웃음) 하지만 위대한 이야기죠.

<살아오름: 천년의 동행>

그런데 형식은 또 별로 의미가 없어요. 관객분들이 얼마만큼 많이 보시고 행복해하시는지가 중요하지 형식은 그다음 같아요. 내가 작품을 보고 나서 행복했는데 그 이유가 뭔지 궁금해. 알고 봤더니 종이에 손으로 전부 그렸대. 그러면 이게 감동이 되지만, “손으로 그렸대”라는 말을 듣고 나서 봐도 그렇게 감동이 아닐 수도 있잖아요. <아가미> 이후에 개봉할 <살아오름: 천년의 동행>(제작 시기는 <아가미>보다 먼저여서 이 역시 전부 종이와 연필로 그린 작품이다)은 <오래된 인력거>를 만든 이성규 감독의 추모전에 갔다가 떠올렸어요. 다큐멘터리 PD로서 사회에 굉장히 애를 쓰신 분이었는데, 어떤 데서 인사 한번 나누고 집으로 초대를 하셨는데 제가 정신없이 지내다 못 뵌 사이 암으로 돌아가신 거예요. 그게 너무 마음에 남아요. 추모전에 참석했다가 밖으로 나와서 걸었어요. 저쪽에 어둑한 길이 보이더라고요. 정동길이었어요. 그 길을 쭉 걷는데 어떤 나무가 반이 시멘트로 보정돼 있더라고요. 나무가 죽어가고 있으니까. 그때만 해도 제가 판타지 애니메이션을 고민하고 있었어요. 저 나무도 저렇게 몸에 시멘트를 발라가면서까지 살아가려고 애쓰는데 내가 지금 여기서 아이들을 위한답시고 어줍잖은 판타지를 하는 게 진짜 내가 할 이야기일까? 그래서 그날부로 ‘여기서부터 시작하자.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살고 싶은 것을 만들자’ 하게 됐죠.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서는 순간 제목처럼 살아오르고 싶어지도록.

<나무를 심은 사람>(1987)

어제는 <아비투스>라는 책과 <밥정>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근래에는 지구를 구하는 영화를 제가 아예 못 봐요. 좀 딴 얘기지만 우리 스태프들은 다 여성인데 이들이 겪어온 여러 가지 일들을 직접 듣게 되면서 이제 저는 함부로 한국은 밤이 안전한 나라라고 말하지 않아요.(스튜디오 연필로 명상하기에서 안재훈 감독과 프로듀서 1명을 제외하고 10여 명의 스태프가 모두 여성이다. 일부러 그리 구성한 것이냐는 질문에 안재훈 감독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뇨. 그렇게 되더라고요.”) 그런 것들이 좀 늦게 자각되면서, 남들한테 보지 말라고는 못 해도, 저는 이제 액션영화 종류는 5분도 못 봐요. 그냥 그런 거짓말이 너무 싫어요. 내 삶이랑 아무 상관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어제 본 작품들은 너무 좋았어요. 나도 내 주변 사람들에 대한 태도를 좀 더 다르게 가져가야겠구나, 이런 것을 알게 해주는 작품이 나를 조금 더 진보시키고, 내 주변에 관심을 갖게 하더라고요. <아가미>도 고민을 많이 했어요. 원작 소설 속 주인공의 아가미를 극대화시키면 영웅처럼 만들 수가 있어요. 물속에서 누군가를 구하고, 나는 버림받았지만 누군가를 구원해줌으로 인한. 그게 창작의 영역일 수 있는데, 그냥 원작의 느낌을 가져가고 싶더라고요. 히어로처럼 보이게 하는 건 포기···, 포기보다는 스태프들과 함께 수긍했죠. 지구를 구하는 히어로 이야기는 자본이 많이 들어간 영화들이 충분히 하고 있으니까, 우리는 그냥 곧이곧대로 가는 걸로.

안재훈 | 1998년 단편 애니메이션 <히치콕의 어떤 하루>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했다.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2014)과 같이 한국 문학을 애니메이션으로 옮겨왔으며,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도전적인 작품을 꼽는 콩트르상 부문에서 <무녀도>(2018)로 수상했다. 첫 창작 장편 <소중한 날의 꿈>(2011)에 이어 창작 장편 <살아오름: 천년의 동행>, 구병모 작가의 소설 <아가미>를 원작으로 하는 동명의 장편 애니메이션을 작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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