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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트기 시작한 젊은 예술가 여덟 명의 이야기

2024.03.20김은희

누군가는 배고프다고 말하는 예술, 그 시리고 긴 나날을 통과해 잎을 피우려는 어느 젊은 예술가들에 대하여.

이예진 홍익대학교 | 회화과 | 19학번

 학교 과정은 모두 마쳤으나 졸업 유예 신청을 해서 올해 8월 졸업 예정입니다. 현재 집 근처 컴포즈 커피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취직 준비 중입니다. 희망 직종은 웹툰 PD, 미술학원 강사, 영화 수입사 사원 등 미술과 관련 있다고 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짧게는 유학 자금을 모은 후 유럽권 학교로 미술품 복원을 배우러 가는 것, 길게는 작가로 이름을 알리는 것이 목표입니다.

‘보여져선 안 되는 것’ 전시 전경.

어린 시절 장래희망은 무엇이었나요? 언제나 일러스트레이터였습니다. 회화과라니 어렸을 때부터 화가가 되고 싶어 했을 거라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어릴 때 저에겐 화가 하면 빨간 베레모를 쓴 아저씨가 떠올라서 내키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단순히 그림이라고 표현하기엔 회화라는 장르는 보다 넓은 범위의 조형예술로 압니다. 회화라는 단어를 이루는 한자를 살펴보면, ‘그림 회’와 ‘그림 화’의 조합이라 그림을 그린다는 뜻을 가지고 있죠. 다만 현대로 오면서 평면 안과 밖에서 다양한 시도가 있었고, 그것을 토대로 개념의 경계를 발전시킨 것이 현대 회화라고 생각합니다. 학교는 회화과라는 이름 아래 현대 예술을 배우는 곳이기 때문에 대체로 작품이 어떻게 예술의 관점에서 의미를 가지는지 설명할 수만 있다면 어떤 재료로든 무엇이든 할 수 있었습니다. 영상, 아카이빙, 퍼포먼스, 조형 등 그린다는 행동이 수반되지 않더라도 말이죠. 제가 정의하는 회화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어떤 표면 위에 무언가를 그린다면 모두 회화라고 생각합니다. 인쇄 전까지 데이터로만 존재하는 디지털 드로잉도요.
배경지가 된 아세테이트지라는 소재 특성상 보일 듯 말 듯 투명한 느낌, 거기에 더해진 색과 선과 그것이 이루는 나체 같은 모호한 형상, 그에 붙인 ‘보여져선 안 되는 것’이란 타이틀이 감각적이고도 직관적으로 와닿았어요. 투명한 물체를 매우 좋아합니다. 분명 존재하지만 그 존재를 잠시 잊거나 무시할수록 높은 평가를 받는 점이 언제나 마음을 끌었습니다. 존재하지 않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아서요. 그리고 남에게 절대 보여주지 않는 그림들이 있었는데, 3학년쯤 되니 과감하게 이걸 소재로 써볼까 싶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보일 수 있지만 당시엔 꽤나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부모님에게 검열당했던 이미지, 자해나 살해 같은 폭력적인 것, 비현실적으로 변형된 신체나 구토같이 역겨운 것, 우울함 같은 키워드들 말이죠. 이 작품을 시작한 지 벌써 2년이 되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초기의 드로잉은 절박함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시원하기도 하지만 너무 날것 같아서 보기 힘들기도 합니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고, 요즘은 그때만큼 감정이 날뛰지 않아서 드로잉의 제목 중 일부처럼 한없는 바닥으로 가라앉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일단은 고요함을 즐기려 노력하는 중입니다.
작업하며 스스로 무엇을 되묻습니까? 아이디어를 어떻게 구현해낼지를 가장 많이 생각하고, 지금의 방식이 최선인지를 스스로에게 질문하곤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기법을 배우고 찾아내는 데 많은 관심을 기울입니다. 저는 물질로 존재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대부분 제가 손으로 제작할 수 있는 더 많은 방식을 배우는 것이지만요. 또 제 개인적 경험에서 작품 구상을 시작하는 편이라 ‘너무 신변잡기적 이야기를 주제로 삼았나?’란 고민도 자주 하는 편입니다. 더불어 그 경험과 주제를 어떻게 보편적으로 확장할 수 있을지도요.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봤을 때 작품이 제 신세 한탄처럼 느껴지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보여져선 안 되는 것’이란 작품을 남긴 작가 이예진이 보여주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역설적이게도 보여져선 안 되는 것들을 보여주고 싶어 이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기에, 앞으로도 분명 그리고 당연히 존재하지만 쉬쉬하며 못 본 척하는 것들에 주목하고 보여주고 싶습니다.
당신에게 예술이란 무엇입니까? 도피처이기도 하고 소통장이기도 합니다. 소통장이라 한 것은 작품에 작가의 생각이 담겨 있고 그걸 보는 사람은 또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해하며 주변 사람과 의견을 나누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쌍방향으로 이루어지는 소통은 아니지만요. 그리고 도피처라 한 것은 분명 현실과 연결되어 있지만 한 걸음 뒤에서 찬찬히 볼 수 있도록 하는 곳, 그래서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최우진 한국예술종합학교 | 예술사 영상원 영화과 | 17학번

학교에서 진행한 단편 작업을 마치고, 여전히 배울 것도 부족한 것도 한참 많지만 다음 단계로 상업 장편 데뷔를 준비 중입니다.

영화 <정동> 스틸.

어린 시절 장래희망은 무엇이었습니까? 열여섯 살 때 이런 항목을 만들어 생각을 정리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잘할 자신은 있지만 하고 싶지 않은 일, 내가 정말 좋아하지만 잘할 자신은 없는 일, 내가 잘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럭저럭 즐겁게 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일···. 열한 살 때 처음 빅터플 레밍 감독의 영화 <오즈의 마법사>(1939)와 조지 루카스 감독의 <스타워즈 에피소드6: 제다이의 귀환>(1983)을 보고 영화라는 매체에 마치 마법에 홀리듯 흠뻑 매료된 후부터 언제나 가장 좋아하는 건 영화였어요. 하지만 당시엔 슬프게도 ‘정말 좋아하지만 잘할 자신은 없는 일’ 항목에 영화가 속했어요. 반면 제일 적당하리라 여긴 장래희망은 건축설계사였습니다.
그럼에도 영화를 만들어야겠다, 결심한 어느 순간을 떠올려본다면요? 성인이 되고도 영화 관람에 할애하는 시간과 애정은 오히려 점점 더 커져갔고, 1만 편이 넘는 영화를 보아오며 쌓인 ‘덕력’에 내가 가진 장점과 단점을 모두 합쳤을 때,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 결국 영화 만드는 일이구나, 여전히 난 아티스트는 될 수 없는 사람이지만 재미있게 스토리텔링을 하는, 영화에 진심을 다하는 장인은 될 수 있겠구나, 이런 확신이 들었던 그 어느 날 하던 모든 걸 그만두었어요. 그리고 다시 입시 준비를 시작해 한예종 영화과에 입학했습니다.
그리하여 스스로 정의하는 영화란 무엇입니까? Motion Picture. 말 그대로 움직이는 그림, 영상을 컨테이너로 삼아 스토리텔링을 하는, 120년간 그 활용 방식과 형식이 무수히 확장되고 변화해온, 역사상 인류와 가장 가깝게 밀착한 대중 예술이자 오락.
추위를 타는 히어로 이야기 <크리스마스가 따뜻한 이유는 말이죠,>,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 <정동> 모두 지루할 틈 없는 템포와 스토리가 흥미롭습니다. 스토리는 초기 아이디어에서 구상을 시작하면 바로 전체 구조에 이르기까지 한 번에 빌드업이 되는 편인데, <크리스마스가 따뜻한 이유는 말이죠,>는 전 여자친구와 <스파이더맨>을 보고 집에 가던 길에 “쟨 겨울에 얼마나 추울까” 농담처럼 주고받다가 여자친구에게 들려줬던 이야기를 그대로 만들었습니다. 반면 <정동>은 조금은 기능적인 이유로 쓴 시나리오인데, ‘이런 신을 이렇게 연출하면 이런 감흥이 나올까?’라는 걸 테스트하고자 하는 목적이 더 컸습니다. 그 목적에 맞춰 전체 이야기 골격을 만들었고, 다만 캐릭터와 에피소드를 만들다 보면 결국 개인적 경험과 트라우마가 일부 들어갈 수밖에 없다 보니 그런 면에서는 과거의 내가 영감을 줬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크리스마스가 따뜻한 이유는 말이죠,>에서는 ‘함께 돕고 사는 기쁨’이라는 온화하고 긍정적인 기운이 느껴지고, <정동>에서는 등장인물 모두에게 각기 다른 트라우마가 숨겨져 있지만 그것이 해소되지 않은 채 끝맺는다는 점에서 냉소가 느껴지기도 해요. 최우진의 아이덴티티에 더 가까운 이야기라면 역시 <크리스마스가 따뜻한 이유는 말이죠,>예요. 실제로 ‘어떤 분야든 ‘덕후’들의 연대가 곧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된다’라는 생각이 항상 베이스에 있기도 하고, 더 넓게는 언제나 연대와 유대의 힘을 믿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만들며 스스로 되묻는 질문은 무엇입니까? 언제나 매 순간 반복하는 질문이에요.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이게 지금의 내가 구상할 수 있는 최선의 장면이 맞는가? 어느 순간 관습대로 쉽게 채우고 있지는 않은가? 지금 오만한 마음이나 경솔한 행동은 없는가?
당신에게 예술이란 무엇인가요? 영화적 양식으로 채워진 영상을 통해 감상의 대상이 되는 스토리를 표현하는 활동, 그리고 그를 가능하게 하는 아름답고 높은 경지에 이른 숙련된 기술입니다.
영화에 싫증이 날 때는 없던가요? 정말 곰곰이 냉정하게 생각해봐도, 그런 때는 없습니다. 영화를 어느 정도 사랑하느냐고요? 영화를 위해서 죽을 수는 없지만, 영화가 사라진 세상이라면 단 하루도 살 의미가 없다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지금의 영화와 동시대를 살며 함께 호흡할 수 있음을 축복으로 여깁니다. 즐거운 순간, 쉬고 싶은 순간에도 영화를 보지만, 힘들고 심란한 순간에도 영화를 봅니다.

송민규 중앙대학교 | 사진전공 | 20학번

현재 장교로 군복무 중이며, 감정평가사 준비도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제 작업들을 돌아보면서 스스로 공간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느꼈는데, 감정평가사라는 직업도 그 연장선 같습니다. 물론 사진 작업은 계속할 예정입니다.

주관적으로 정의하는 디지털 미디어란 무엇인가요? 예술의 장벽을 부수고 있는 돌멩이.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즐기는 입장이나 만드는 입장에서도 장벽이 많이 낮아졌습니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아카이빙된 많은 자료를 찾아서 볼 수 있고, 아날로그를 디지털로 변환하기도 쉬워졌습니다. VR 같은 것으로 전시장과 같은 환경을 만들 수도 있고요. 그래서 예술을 향유하려면 필요한 시간과 돈의 제약에서 조금 자유로워지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저도 작업에 스마트폰을 사용하곤 합니다. 새로운 경우의 수들이 마구 생겨나고 있어요.
와중에 작품명이 <I Hate (Some) Video>죠. “나는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라는 작품 소개 첫 문장이 호기롭습니다. 하나 디지털 미디어가 디지털을 플랫폼으로 해서 생동하는 시각 자료를 만드는 것이라고 드넓게 여긴다면, 영화와 디지털 미디어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요?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것을 전제로 구석구석 많은 의미와 이야기를 쌓아 올리는 정성을 다해 만들어야 하지만, 디지털 미디어 작업은 의도적으로 보다가 꺼버리고 싶은 영상을 만들거나 애초에 부분만 볼 수밖에 없는 작업을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 다른 점 같습니다. <I Hate (Some) Video>는 2022년에 3학년 2학기 디지털 미디어 프로젝트 수업에서 만든 영상입니다. 영상 작업을 만들어 함께 보고 이야기하는 수업이었고, 작품 제작 전 영감을 위해 여러 다른 작가의 작업을 함께 보거나 영상 매체에 대한 토론을 하기도 했습니다. 토론을 하면서 제가 영상을 싫어하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요, 수업 중 누군가가 “영상 매체는 폭력적이다”라고 한 말에서였습니다. 정해진 시간 동안 만든 이의 속도와 순서로 보게 강제된다는 설명이 덧붙여지면서요. 그 이야기를 듣고 내가 싫어하는 이유가 이것이었구나, 알게 됐습니다. 내러티브가 담긴 영상은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이 뭐든 간에 그들만의 속도로 제공합니다. 그래서 저의 이 작업은 정지 영상 속에 동영상을 숨겨 관객으로 하여금 강제된 시간 속에서 계속 시선을 돌리게 하는, 마치 숨바꼭질이나 두더지잡기처럼 만들었습니다. 소리도 없이 지루하게, 그러다가 관객이 영상을 꺼버리도록요. 제가 영상을 싫어하는 이유를 과장과 비약을 더해 표현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 과정에서 영상이라는 넓은 범주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지고 영상의 영화적인 표현 방식을 넘어선 다른 방식의 활용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 같습니다. 저는 “절대”라는 말에 징크스가 있어요. “절대 안 해”라고 하는 것들을 다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Some)’이라는 여지를 두었는데, 결국 영상을 싫어한다고 외치며 작업을 하고 이런 영상을 남기게 되었네요.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속도는 어떠한가요? 특히 지난 몇 년간 저의 느린 부분을 뼈저리게 느끼는 중이라서 내가 다른 사람에게 너무 빠른 사람은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작업을 하며 스스로 되묻는 질문이 있다면요? 이게 논리에 맞나? 설득력이 있나? 이해가 될까? 신선할까? 누군가를 무의식 중에 따라 하진 않았나? 너무 교훈적인가? 너무 예쁘기만 한가? 너무 나만 이해할 수 있는 사적인 이야기인가? 너무 튀려고 노력하는 걸까? 다른 목적을 포장하려는 건 아닐까? 가르치려고 드는 건 아닐까?
당신에게 예술이란 무엇입니까? 세상과 소통하는 도구입니다. 처음 사진을 시작할 때는 인물 사진을 찍으며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는 게 좋았고, 학교에 들어와서는 내 생각을 표현하는 작업물로 대화가 시작되는 게 좋았습니다. 말로 하면 따분한 것들이, 작업물을 보여주며 의미를 설명해주면 자연스럽게 내 생각도 보여줄 수도 있어서 의견을 피력하는 데 미숙한 저에게 그러한 욕구를 채워주기도 합니다.
지금 고개 숙여 바라보는 나의 모습, 내면의 거울과 마주해보는 나의 모습은요? 윤동주 시인의 시 ‘자화상’ 속 화자가 현재 제 모습과 비슷한 것 같네요.

함서진 서울예술대학교 | 문예창작전공 | 19학번

문예창작전공을 졸업하고 전공심화 과정인 미디어 창작학부에 진학했습니다. 1년 더 학교에 머물 수 있게 된 만큼 직업적인 미래보다는 열심히 읽고 쓰는 일에만 집중하려고 합니다.

어린 날의 꿈은 무엇이었나요? 어린 시절에는 줄곧 공주가 되고 싶었습니다. 공주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뒤로는 얼짱이 되고 싶었습니다. 얼짱의 시대가 지난 뒤로는 아이돌과 대통령을 꿈꿨습니다.
소설을 써야겠다 결심한 순간을 떠올려본다면요? 저는 꿈이 많은 아이였지만 동시에 꿈이 없는 아이였습니다. 친구들이 진로를 고민할 때, 하고 싶은 것이나 되고 싶은 것을 상상만 하다가 끝내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친구들의 얼굴과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무언가가 되고 있는 친구들 사이에서 아무것도 되지 못한 채로 있는 게 불행하게 느껴질 때쯤, 이모의 권유로 소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종이에 새겨진 이야기는 허구인데 도무지 허구 같지가 않았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의 삶을 구경하는 게 즐거워서 소설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소설가의 일이 친구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저와 비슷하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무언가가 되는 것보단 무언가가 되는 중인 사람들의 삶을 담고, 새기는 쪽이 되고 싶었습니다. 처음으로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열여섯엔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하고 싶은 말이 생길 때마다 배워야겠다고, 써야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리하여 학교에서는 무엇을 배우고 있나요? 시와 소설, 아동문학, 평론을 배우고 있습니다. 장르마다 다른 구성과 구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여기까지가 작법적인 배움이고 결과적으로는 사람과 세계를 다양한 측면으로 들여다보는 법을 배웠습니다.
스스로 정의하는 소설이란 무엇입니까? 타인의 이름을 빌려 쓴 나의 일기장이기도 하고, 때로는 타인을 대신해서 써주는 타인의 일기장이기도 한 것.
‘다른 세계’라는 소설에 엎치락덮치락 젖혀지며 빠져들었습니다. 지난해 여름, 소설 쓰는 게 힘들어 2년간 휴학하고 돌아온 해에 소설창작 수업에 제출한 소설이었습니다. 써야지 마음먹은 시간이 두세 달, 쓰기 시작해서 제출을 하기까지는 한 달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아직 완성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시간이 아주 오래 지난 뒤에도 그럴 것 같습니다.
‘다른 세계’의 시작점이 궁금해져요. 눈 쌓인 공원을 보는데 문득, 유령은 겨울엔 안 보이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형체가 없는 건데도 흰 것을 보니 그런 생각이 떠올랐어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사유가 소설로 이어졌습니다.
소설을 쓰며 스스로에게 무엇을 되묻습니까? 이야기를 위해 상처를 만들어낸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묻습니다. 이는 입학하고 첫 소설 수업 시간에 소설가 윤성희 선생님께 들은 질문이기도 합니다. 인물이 저를 만나 받지 않아도 될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깨달았습니다.
소설이란 장르를 선택하며 기대한 나의 미래는 어떠한가요? 저보다는 세상의 미래를 기대하는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사람들이 타인에게 조금 더 관대한 미래. 실수나 미움에 한 번쯤은 눈감아주는 미래. 그러기 위해선 저부터 실수나 미움에 한 번쯤 눈감아주는 다정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예술, 그중에서도 소설은 인간의 심리, 삶, 정서에 가장 깊숙이 맞닿아 있는 장르가 아닐까 싶습니다. 함서진이라는 소설가가 집요하게 파고들어 보고 싶은 인간의 한 조각, 삶의 단면이 있다면요? 가해자의 피해자성과 피해자의 가해자성을 파고들어 보고 싶습니다. 관점과 사정에 따라 때로는 가해자, 때로는 피해자가 된다는 것이 참 이상한 것 같습니다. 저 역시도 어느 순간에선 그랬을 테고요.
당신에게 예술이란 무엇입니까? 지금은 표현의 제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발 붙이지 못하고 부유하는 생각이나 상상의 자리를 자신만의 표현 제재로 마련하는 것이 예술이지 않을까, 하고요.

김희수 동국대학교 | 문예창작전공 | 22학번

지속적으로 시를 쓰며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유지하고 싶고, 그것이 저에게 가장 중요한 미래입니다.

어린 시절 장래희망은 무엇이었나요? 스스로 사유 할 수 있는 자아가 형성된 때부터 문학 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문학이 무엇인지도 잘 알지 못하면서 너무나도 쓰고 싶었어요. ‘문학가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은 머리 위에서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아주 강한 빛의 레이저 같아요. 도대체 누가 쏘고 있는지, 제가 소설을 넘어 시를 만날 때까지 유효했어요. 그 빛은 이제 시를 오래 쓰고 싶은 마음으로 변환되었어요. 
본격적으로 시를 써야겠다, 결심이 선 어느 순간을 기억해본다면요? 고등학생 당시 시를 쓰던 언니를 짝사랑했는데, 그녀를 이해하고 싶어 한국 시집을 읽기 시작했어요. 김혜순 시인의 <불쌍한 사랑 기계>, 송승언 시인의 <철과 오크>, 김승일 시인의 <에듀케이션>, 김이듬 시인의 <히스테리아>, 이혜미 시인의 <뜻밖의 바닐라>, 김민정 시인의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양안다 시인의 <백야의 소문으로 영원히> 등 훌륭한 시집들을 만났어요. 특히 양안다 시인의 시집을 읽었을 때, 마음먹고 말았어요. 시는 이럴 수도 있구나. 나의 말을 시로 만들고 싶다. 
시란 무엇인가요? 저에게 시는, ‘개인전인 줄 알았는데 단체전이었던 것’입니다. 시 쓰는 친구들과 서로의 시를 읽고, 시를 읽다가 친구 생각이 나면 엽서에 필사해서 건네주고, 돌아가며 서로의 위기를 달래주고, 시를 무서워하는 친구에게 “곧 너에게 시가 와줄거야” 말해주어요. 시를 쓸 때는 시와 일대일로 마주하지만, 쓰지 않는 동안과 쓰고 난 동안은 친구들과 나란히 있어요. 상냥하고 강인한 미래의 시인들이 저의 시 앞뒤로 있어요. 저뿐만 아니라 모두의 시가 그럴 것이에요. 주변 사람들과 사소하기도 풍성하기도 한 영향을 주고받으며 시는 완성되니까요. 모든 시 안에는 내밀어진 얼굴이 여럿 있어요. 따라서 시는 개인전일 수 없어요. 절대로 단체전입니다. 
‘안전벨트를 풀고’ 중 “풀려 나간 벨트. / 만원 버스는 픽 엎어질 사람을 태우지 않아” 구절이 맴돕니 다. 이 시는 작년 9월 말에 쓰였습니다. 그로부터 반 년쯤이 지났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아요. 자취방에서 본집으로 이동하던 길이었어요. 서울에서 경기도로 가는 광역 버스에 타 있었고, 이동하는 동안 시를 쓰기 위해 허벅지 위로 노트북을 펼쳐두었어요. 서울에서 경기도를, 경기도에서 서울을 수없이 오가며, 내가 왜 여기 있지? 생각하곤 해요. 어쩌다 여기까지 온 거지. 과거에는 나 여기 없었는데. 시공간에 대해 묘한 기분을 느껴요. 현재의 저는 오래전의 제가 모르는, 결코 상상할 수 없었던 미래여서요. 그런 생각 을 하다 보면 안전벨트는 저를 옭아매어 과거로부터 멀어지지 못하게 하는 끈으로 느껴져요. 당장 벨트를 풀어버리고 싶었고, 버스에서 하차해 두 발로 걸어 나가고 싶었어요. 그런 마음으로 시가 시작된 것 같아요. 제가 자주 타고 다니는 1403번 버스는 대교를 건너는데요, 다소 과격하지만, 대교를 지나며 아래로 한강이 보일 때마다 물에 빠져 죽는 상상을 해요. 상상하다 보면 저는 정말 물속에 있는 사람처럼 숨을 참고 있더라고요. 대교 위에서 물 없이 잠수하는 습관은 어쩐지 너무 아프게 자각되어요. 그 통증은 화자가 바라보는 ‘너’라는 대상으로 해설된 것 같아요. 이 외에도 어지러울 만큼 다양한 마음이 모여 ‘안전벨트를 풀고’라는 모양으로 형성되었어요. 버스를 탄 시점으로부터 본집과 가까운 정류장에 도착하기까지 약 40분이 소요되는데, 초고를 마치고 버스에서 내렸던 기억이 납니다. 
당신에게 예술이란 무엇인가요? 저는 스스로 예술을 하고 있다는 자각이 희미한 편입니다. 예술학도라는 말도 저의 정체성 중 하나겠지만 그보다 생활자라는 말이 저와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는 생활로부터 길어 올려지고 전개되는 것 같아서요. 친구, 가족, 애인과의 대화나 관계성으로, 실제로 맞닥뜨린 기이하거나 슬프거나 빛나는 경험으로 대개의 작품이 시작되어요. 물리적·감정적으로 저와 멀리 떨어져 있는 사물 혹은 현상으로 시를 시작해보아도 저라는 필터를 거쳐서 나온 문장과 사유는 저의 생활 전반을 반영해요. 무엇을 보고 냄새 맡고 만지고 듣는지, 어느 집에 누구랑 사는지, 벽이 소음을 곧잘 막아주는지, 창문을 통해 볕이 잘 드는지 같은 사소하거나 큰 영향을 입고 벗으면서요. 작품 안팎으로 작가가 영위하는 생활의 측면이 엿보이거나 훤히 보이기 때문에 저에게 예술은, ‘생활’이라는 말로 충분한 것 같습니다. 지나치게 쉬운 말이더라도요. 
앞으로 가시적인 계획은 어떠한가요? 이국으로 워킹 홀리데이 다녀오려고 합니다. 한국이 아닌 나라에 도착해 지내게 된다면, 처음 보는 풍경을 마주하며 들뜨기도 하겠지만, 겁먹은 채 몸을 크게 떨면서···, 형언할 수 없는 기분으로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울어보는 일도 하고 싶어요. 시 안팎으로 도움될 시간이리라 확신하고 있어요. 이것이 실질적인 계획이고, 그보다도 더 근미래라면, 졸업이 가장 커다란 관문이지요. 학교는 안전한 공간이지만, 저를 서울에 가만 묶어두어요. 학교 바깥으로 빠져나가고 싶어요. 더 멀리 가고 싶어요. 

박수현 서울대학교 | 동양화과 | 17학번 | 석사 21학번

여덟 살 때 초등학교에서 처음으로 장래희망을 적으라 해서 해바라기 형태의 종이 위에 화가라고 적은 게 아직 집에 있어요. 그림 작업을 꾸준하게 하고 싶어요.

‘꼬집기’, 2023, 견에 채색, 32.5x59cm.

동양화의 어떤 점에 매료되었나요? 고등학생 때 수업에서 처음 접한 동양화 재료와 기법들이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저는 평소에 그림을 비교적 완성도 있지만 딱딱한 느낌으로 그려서 개인적으로 회화적인 특성을 더 살리려고 노력해야 했는데, 동양화 재료의 물성들은 번짐 같은 우연적인 효과를 자연히 발생시켜서 제 그림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강렬하고 채도가 높은 색 보다는 좀 더 차분하고 단정한 색감들을 좋아하는 성향과 잘 맞았어요.
스스로 정의하는 동양화란 무엇입니까? 동양화는 한국 전통 기법과 재료를 통해 그려낸 그림이에요. 이 명칭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선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단순히 서양화와 대립되는 그림이 아니라 재료 기법과 함께 인간은 자연의 일부라는 동양의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해요. 동양화를 그린다고 하면 대개 먹으로 사군자를 그리는 것이냐고 물어보시거나, 또 현대 동양화 작품을 보시고는 색깔이 들어가 있다면서 서양화와 구분이 안 된다고 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현대 동양화 작가들은 지필묵의 전통 재료를 이용해 회화의 새로운 표현 방법을 모색하고 있어요. 제가 정의하는 동양화 역시 학문적 정의의 동양화와 같아요. 그걸 재현하는 방식에 발전이 있을 뿐이죠.
특히 자화상을 주 소재로 활용하는 듯합니다. 작가의 사적인 이야기만 담는 작업보다 좀 더 포괄적인, 현대인들이 많이 공유할 수 있는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한 작업을 하고 싶어요. 제가 삶에 대해 고민하며 느꼈던 감정들을 작품 속 인물을 통해 드러내고 있어요. 작품 속 인물을 통해 불확실성으로 이루어진 삶에서 우리가 느끼는 심리적 상황을 표현하려고 했어요. 저는 저와 같은 걱정에 사로잡힌 세대를 화면에 담고 싶었어요. 그 과정에서 인물을 대상으로 그리면서 인물 사진을 매번 찾는 것이 좀 번거로워서 제 얼굴을 직접 찍어 그린 그림이 많은 것 같아요. 제가 원하는 미묘한 표정들을 표현하기에 제가 직접 연출하고 그리는 게 가장 편하기도 하고요.
그림 ‘꼬집기’ 속 인물은 왜 꼬집고 있는 것일까 상상해보게 돼요. 웃음을 참는 꼬집기라기보다는 스스로에게 고통을 가하는, 혹은 고통을 감내하기 위한 꼬집기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제 개인적인 습관을 담은 그림이에요. 저는 뭔가 풀리지 않는 일이 있거나 고민을 할 때 정신을 차려보면 팔이나 입술, 목 등 제 신체를 꼬집는 습관이 있더라고요. 좀 전에도 작업을 구상하면서 이마를 꼬집고 있었어요. ‘꼬집기’(2023), ‘Moonlight’(2022)는 직물인 견에 제작한 작품인데요, 이전에 계속 작품 내용부터 소재, 재료를 다르게 시도해보다가 지속하게 된 작업이에요. 작업 방식에 대해 고민하면서 잠깐 작품 창작에 대한 회의를 느꼈어요. 계속해왔던 미술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지는 데서 비롯돼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생겼어요. 석사 과정을 마칠 때쯤이라 더욱 그런 생각이 든 것 같아요. 그림에 대한 회의가 오히려 그림의 출발점이 됐어요. 그때의 지친 감정을 동시대를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도 겪고 있을 거라고 봤어요. 특히 ‘Moonlight’에서 제가 느꼈던 삶과 주변 사이의 공백 같은 기분을 가상의 공간 속 인물로 그려냈어요. 인물이 바닷가에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배경은 바다가 아니라 바닥 위에 설치된 이미지고, 달의 음영으로 보이는 빛이 인물 위에도 투과되고 있어 빔 프로젝터를 쏜 것처럼 보이게 해서요. 그림을 그리면서, 그림 자체가 너무 우울해 보이지 않았으면 했어요. 어두운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리고 실제 제 감정이 그렇다고 슬프거나 무서운 느낌은 아니었거든요. 하지만 그림의 출발점부터 밝진 않았고, 제가 낮은 채도의 색을 좋아하다 보니 그래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당신에게 예술이란 무엇입니까? 삶을 탐구하는 수단. 작품을 제작하기 전 생각을 돌아보고 정리할 수 있고, 작품이 완성되면 성취감과 살아 있는 기분을 느끼고요. 사람들과 완성된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그들의 가치관과 경험을 공유할 수도 있고요.
그림을 그리며 스스로 되묻는 질문이 있다면요? 내가 이걸 계속할 수 있을까? 특히 힘든 시기를 겪으면서 그런 질문을 스스로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배고프다는 예술”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안정감 없는 이 일을 지속할 정도로 내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가? 이런 생각들요. 그렇지만 좋아하니까 계속 이겨내야죠. 옷에 묻으면 지워지지 않는 먹물처럼 미술사에 흔적을 남기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이유수 경일대학교 | 사진영상학부 | 20학번

3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사진 작업을 하면서 작은 플레이리스트 채널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까운 미래 계획은 구상 중인 작업을 여름이 오기 전에 완성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오브제로 과거 디지털 세계 무드를 구축해보는 작업이에요.

어린 시절 장래희망은 무엇이었나요? 여덟 살 때 생물학자가 되고 싶었어요. 동물·생물을 엄청 좋아해서 동물도감을 닳도록 봤어요. 특히 도마뱀 같은 파충류의 비늘이 신기하고 그런 질감이 좋아서 이들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생물학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사진이라는 장르를 선택한 연유는요? 처음 카메라를 손에 쥔 때는 2018년 가을이었습니다. 당시 특성화고등학교 취업 연계를 통해 타지 페인트 회사에 재직했는데, 우연히 사진 찍는 것에 흥미를 느낀 제게 아버지가 카메라를 사주셨어요. 그렇게 퇴근하면 자전거 타면서 풍경 찍고 돌아다녔어요. 사진은 현실을 보여주지만 눈으로 보는 것과는 다르잖아요. 그 간극을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점이 재미있었습니다. 나만의 세상을 만드는 것 같아요.
만나보고 싶은 사진가가 있나요? 독일 사진가 볼프강 틸만스를 만나보고 싶어요. 틀에 갇히지 않은 특유의 추상적인 표현법이나 분위기가 좋아서 그의 사진집을 모으고 있거든요. 사진을 계속 보다 보니 사람 자체가 궁금해져서 만약 만난다면 요즘은 무엇에 재미를 느끼는지 묻고 싶어요. 저는 요즘 짐 정리하다 우연히 아버지가 젊은 날 구매한 너바나 2집 초반 CD를 발견해서 즐겨 듣고 있거든요. 특히 5번 트랙 ‘Lithium’. 볼프강 틸만스는 어떤 걸 좋아할까요?
이유수 씨가 남긴 ‘Face To Face’ 사진은 무엇을 찍은 것인지 들여다보게 만들어요. 이 시리즈는 2020년에 작업한 제 첫 작업이에요. 학교에 입학하니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도, 다른 사람도 많다 보니까 제 세계가 넓어졌어요. 이 작업의 시작은 ‘생각’입니다. 가령 사과라는 단어를 들으면 대부분 빨간 사과를 떠올리듯이 어떤 단어를 들으면 일반적이거나 대표적인 형태를 떠올리는데, 여기서부터 출발해 카메라라는 특성을 이용해서 사람의 형태를 이형적으로 표현했어요. 생각이란 것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이질감이 주제이기도 합니다.
사진 작업을 하며 스스로에게 무엇을 되묻나요? 이게 맞을까? 더 좋은 게 있지 않을까?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해야 하는 작업이다 보니까 본인한테 끊임없이 되묻습니다.
지금 고개 숙여 바라보는 나의 모습, 내면의 거울과 마주해보는 나의 모습은 어떠한가요? 저는 단단한 사람 같아요. 예전에는 나 자신을 보려고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인지 무척 불안정한 상태였던 것 같아요. 어느 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니까 자연스럽게 스스로가 단단해졌어요. 그러면 무너지지 않는 것 같아요.
당신에게 예술이란 무엇입니까? 새로운 세계.
사진으로 꼭 담고 싶은 것이 있다면요? 아버지를 담고 싶어요. 오랫동안 떨어져서 살다 이제는 같이 살고 있어요. 아버지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더라고요. 그래서 아버지라는 사람을 알고, 담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잘 담을 수 있을까요? 아버지와 대화를 많이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아버지라는 사람에 대해 본질적으로 접근한 뒤 담아내고 싶어요. 대화하고 더욱 가까운 거리가 돼야만 가능할 것 같아요. 겉으로 보기에 아버지는 늘 웃음도 많으시고, 취미도 즐기시고, 행복하게 삶을 보내고 계신 것 같은데, 그건 겉보기이니까 아버지 내면에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요. 그러려면 제가 용기를 내야 할 것 같아요.

김예은 국민대학교 | 임산생명공학·공간디자인 | 18학번

지금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쉬어가는 중입니다. 작년 졸업 전시를 치열하게 끝낸 이후 1년간의 휴식기를 다짐했기 때문에, 이번 연도를 20대 가장 알찬 휴식기로 보내기 위해 준비하는 중입니다. 여행하는 동안 공간적인 영감을 많이 받기도 하고, 제 직업에 대한 시야를 넓힐 수 있어서 여행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고 있어요.

‘월주 Pouring Moon’

공간 디자인을 배워야겠다, 흥미와 결심이 선 계기는 무엇인가요? 건축, 가구 디자인에 활용할 수 있는 임산생명공학과를 전공으로 결정했어요. 임산생명공학과에서는 이미 다 자란 목재를 어떻게 활용할지 다방면의 방법을 연구하는데, 특정한 목재를 판별하고 가공할 수 있는 지식이 목조 건축과 가구 디자인에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목재가 아닌 바이오 기술에 편향된 커리큘럼에 갈증이 있었고, 복수 전공 제도를 활용해 실내 인테리어, 건축 디자인, 심지어 가구나 조명 디자인도 할 수 있는 공간 디자인과 수업을 듣기 시작했어요. 목조 건축과 가구 디자인을 배우고 싶었던 제게는 최고의 선택지였어요.

둘을 위한 가구라는 주제, 각각은 초승달을 닮은 듯 합쳐지면 보름달이 되는 것 같은 ‘월주’라는 조명 콘셉트가 자꾸 들여다보게 만들었어요. 졸업 전시 주제가 주거 공간 가구를 디자인하는 것이었어요. 주방, 욕실 등 각 팀별로 주거 공간 내 세부적인 공간을 선택하고 그 공간의 기능과 형태를 고려해서 새로운 가구를 디자인하고 공간의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전시 목표였는데, 저희 팀은 그중 거실을 선택했습니다. 기능은 가장 없어 보이지만 비어 있음으로 쉼의 기능을 한다고 생각했고, 거실이 동거인과의 소통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기를 바랐어요. 그것을 시작점으로 가장 긴밀한 관계인 부부를 선정했고, 함께 살아가는 부부가 소통을 조금 더 원활하게 해낼 수 있는 가구들을 디자인하게 되었어요. 공간 디자인은 주어진 공간 안의 모든 요소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공간을 형성하는 기둥과 벽, 평면적인 구조뿐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가는 가구를 비롯한 공간에 영향을 끼치는 모든 것, 그리고 사용자가 그 공간에서 행하는 행동과 경험을 위한 프로그램 등 말 그대로 공간의 모든 것을 배워요. 이러한 관점에서 조명 또한 공간의 요소예요. 조도를 통해 공간의 분위기를 조절하고, 조명의 부피로 공간을 채우기도 하죠. ‘월주 Pouring Moon’는 부부라는 관계에서의 소통은 조금 더 자연스럽게, 우연하게 시작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조명입니다. 모빌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는 ‘월주’는 각자의 선택들이 만드는 결괏값들의 중첩을 빛과 그림자를 통해 시각화해 거실을 여러 조각으로 나눕니다. 잘게 나뉜 조각들로 두 사람의 시선이 모여서 채워질 때 소통이 시작됩니다.

만나보고 싶은 예술가에게 무엇을 묻고 싶은가요? 건축가 이시가미 준야를 만나보고 싶습니다. 그의 건축에는 불규칙한 요소들이 나열되는 경우가 많은데, 하나하나 어떻게 결정하는지 묻고 싶어요. 예를 들어 서펜타인 갤러리에 있는 수많은 기둥의 두께와 기울기 등, 고심하고 결정하기에는 고려할 사항이 너무 많고 까다로운 것들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궁금합니다. 조명을 만들면서 이 작은 조명에도 결정할 요소가 너무나도 많은데 건축은 어떻게 할까 하는 순수한 궁금증이 생겼어요.

당신에게 예술이란 무엇입니까? 누군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는 모든 것. 예술이란 사람이 감동을 느끼는 데서 완성된다고 생각해요. 창작자 자신이라 할지라도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만들어냈고, 그 완성품이 감동을 준다면 무엇이든 하나의 예술인 것 같습니다.

그것을 공간 디자인으로 구현해내기를 상상해본다면요? 기억 전시장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해왔어요. 관람객이 각 공간에서 자신의 기억을 끄집어낼 수 있도록 유도한 공간을 나열한 전시장입니다. 공간에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가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물건은 아무것도 없고 향기만 있을 수도 있죠. 오브제로 작용하는 그것들은 관람객이 자기 자신 혹은 같이 온 누군가와 공유하는 추억을 꺼낼 수 있는 트리거가 됩니다. 예술가가, 공간 창작자가 의도적으로 무언가를 느끼게 유도하기보다는 사용자가 생각해내는 추억과 기억으로 인해 생기는 감정이 제가 원하는 감동에 가깝기 때문에 이런 상상을 해왔어요. 어떻게 구현해내야 할지는 앞으로의 경험이 아이디어의 발판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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