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최초로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이 홍콩에서 열렸다.
ON THE SCENE
‘50 베스트’의 하이라이트인 시상식 현장에서 발견한 얼굴들, 그리고 순위로부터 감지한 변화하는 미식 신
다이내믹한 미식의 격전지 홍콩에서 열린 시상식에선 확실히 최근 몇 년과는 또 다른 활기가 감지됐다. 올해의 결과를 두고 ‘중화권의 반란’ 이라는 이야기도 돈다. 2021년 1위에 오른 뒤 이름처럼 또 다시 왕좌에 오른 ‘더 체어맨’을 비롯해 윙, 밋더번드, 링롱 등의 성과는 토착 식재료, 중국 간 지역 요리의 다양성이 재조명되는 계기가 되었다. 본디 지역성이 강한 구조인 중국 요리는 본질을 따르는 그 자체로 동시대적인데, 거기다 과거로 회귀하는 대신 지금의 시선에서 재해석하고 발굴하려는 노력에 시대와 커뮤니티가 빠르게 반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왜 이 요리가 지금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지금의 중국 요리 신에 잘 담겨 있었던 것이다. 더 체어맨의 대니 입, 윙의 비키 쳉처럼 ‘왜 나는 이 요리를 하는가’가 납득할 수 있게 요리로 드러나고, 그 요리를 받아든 이가 접시를 거울 삼아 자기 자신을 볼 때 또 다른 변화는 일어난다. 전통적인 미식 도시 도쿄의 상대적인 약세는 이 어워드가 미쉐린 가이드와 다른 점을 시사한다. 여전히 도쿄는 완성도와 테크닉적인 면에서 월등하나, 서사의 중심이 새롭게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미식은 정체성을 찾는 단계에서 여태 찾아온 정체성을 고도로 표현하려는 단계로 옮겨가는 중이다. “이것이 한국”임을 증명하는 시대는 지났다. 맛의 구조는 더 정교하고 서사는 절제되며, 과시하지 않고 정제해 보여주는 밍글스가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귀환한 모수는 한국 미식과 한식은 다른 것임을, 그리고 여전히 유효함을 증명한다. 온지음의 조은희 방장이 ‘올해의 여성 셰프’로 꼽힌 맥락도 상징적이다. 왜 지금 조은희인가? 그는 개인이 빛나는 스타 셰프라기보다는 연구, 아카이빙, 전통 복원에 몰두해온 셰프다. 나 개인의 요리가 아닌 전통과 시스템을 매개하는 역할로서 존재해왔다. 결국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해온 미식 세계에서도 새로움을 위한 새로움보다, ‘어디에서 왔는가’가 더 중요한 메시지가 됐음을 알 수 있다. 무엇이 우리에게 판타지를 선물할 것인가? 이 시대의 럭셔리는 무엇인가? 대체할 수 없는 것이 곧 럭셔리이며, 각자의 정체성 그 자체가 파인 다이닝의 핵심이 되었다는 사실. 순위는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우리는 우리다워야 한다.”
INTERVIEW
50 베스트 레스토랑 한국 의장 최정윤에게 물었다. ‘50 베스트’로부터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지금 한국 미식 신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두 셰프, 안성재와 강민구 셰프가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도시 ‘홍콩’에서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시상식이 열립니다, 드디어.
홍콩에서 시상식이 열린다는 건 단순한 장소 선택이 아니라, 아시아 미식의 흐름이 어떻게 재편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해요. 아시아 미식 허브인 홍콩에서 두 셰프가 레스토랑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것은, 한국 미식이 로컬을 넘어 아시아라는 거대한 구조 안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죠. 한국 미식이 어느 레벨에서, 어떤 시스템으로 경쟁하고 있는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으로 다가와요.
두 셰프는 50 베스트의 연장선으로 각각 자신의 레스토랑에서 의미 있는 협업 행사를 열기도 했죠.
두 컬래버레이션은 굉장히 흥미로운 대비를 보여주었어요. 강민구 셰프의 ‘한식구’에서는 온지음, 솔밤, 밍글스 등 한국 안에서 한식이라는 장르를 깊이 있게 파고들며 확장해온 셰프들이 모였어요. 이는 ‘한식 장르의 진화와 확장’이 얼마나 치열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자리였죠. 반면, 안성재 셰프의 ‘모수 홍콩’에서는 프렌치나 이탤리언 등 서로 다른 다이닝 장르를 기반으로 활약하는 한국 셰프들이 함께했어요. 이는 특정 카테고리를 넘어선 ‘한국 셰프의 글로벌 확장’을 보여주는 구조였죠. 이 두 흐름을 보며 느낀 점은, 지금의 한국 미식 신이 내부적으로는 고유의 장르를 깊게 만들고, 외부적으로는 장르를 넘어 확장하는 ‘두 개의 축’이 동시에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에요. 이번 행사는 단순한 협업이 아니라, 현재 한국 미식이 과연 어떤 방식으로 진화하고 확장되고 있는지를 직관적으로 보여준 실험이었다고 생각해요.
그 과정에서 새삼 발견한 의외의 케미가 있었다면요?
셰프 개인의 호흡보다도 ‘도시와 도시의 케미’가 흥미로웠어요. 서울은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진화하는 도시이고, 홍콩은 오랜 시간 축적된 문화적 레이어가 두꺼운 도시죠. 이 두 환경, 굉장히 다른 속도를 가진 두 도시가 만났을 때 생기는 기분 좋은 긴장감이 있어요. 요리가 단순한 결과물을 넘어 두 도시의 시간 감각이 충돌한 결과처럼 보였다는 점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저는 늘 질문을 받습니다. 50 베스트 레스토랑이 미쉐린 가이드와 다른 점이 뭔가요? 이번에는 의장의 언어로 제가 들어보고 싶어요.
많은 분이 ‘50 베스트’를 랭킹으로 이해하지만, 실제로는 ‘글로벌 미식 커뮤니티가 대화하는 플랫폼’이에요. 절대적인 평가 기준을 강제하기보다, 각 지역의 시각과 다양성을 반영하는 열린 구조를 지향하죠. 숫자보다 중요한 건 방향이에요. 지금 미식의 흐름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그래서 1위가 누구냐는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시대에 어떤 이야기들이 가장 중요하게 논의되고 있는가”예요. 50 베스트는 평가 시스템이라기보다 글로벌 미식의 흐름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미식 라이브 스트리밍 플랫폼이자 지도’에 가까워요.
시상식이 열릴 때 도시 전역에서 행사가 열리는 기분이 들기도 해요.
맞아요. 웰컴 디너, 셰프스 피스트, 베스트 토크, 시그니처 세션, 밋 더 셰프 등 약 3박 4일 동안 업계 사람들이 교류할 수 있는 행사가 계속돼요. 네트워크 플랫폼을 제공하자는 게 취지예요. 가령 페루와 아프리카 셰프가 만나서 친해져 협업을 할 수도 있고, 서로에게 영감을 얻어 다른 변화를 만들어내죠. 변화가 없다면 50 베스트가 존재할 이유가 없어요.
‘50 베스트’가 유독 ‘동시대적’이라고 평가받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동시대성이라는 것은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다양한 시선을 편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가, 즉 ‘감지 능력의 문제’예요. 각 지역의 아카데미 멤버들이 현장의 새로운 움직임을 지속적으로 투표에 반영하기 때문에, 중앙에서 결정한 경직된 기준보다 훨씬 유연하고 빠르게 시대의 맥락을 짚어낼 수 있어요.
차기 미쉐린 스타를 먼저 발견하기도 하고요.
빠르고 트렌디하기 때문에 떠오르는 별, 숨은 진주를 먼저 찾아내는 거죠. 정식당도, 밍글스도 50 베스트가 먼저 발굴한 스타예요. 조희숙 셰프님도 한식 공간으로 미쉐린 스타 받기 전에 ‘베스트 여성 셰프상’을 받으셨고요.
‘다양성’도 큰 차별점 중 하나로 볼 수 있겠죠?
본앤브레드가 순위에 든 것만 봐도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죠. 이번에 부산이 처음 진입한 것처럼, 제주, 전라도, 강원도 음식으로 확장될 수도 있죠. 파인 다이닝에서 제일 중요한 건 판타지라고 생각해요. 한국 레스토랑이 다양하게 진입한다면 그만큼 한국 미식에 대한 전체 이미지도 상승하겠죠. 오디언스를 설득하기 위해 이제까지 ‘한식’이라는 표현을 했지만, 결국은 ‘한국 미식’이라는 단어가 맞다고생각해요. 한식당만 순위에 있는 건 아니니까요.
올해의 순위 리스트로부터 감지되는 의미 있는 변화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피오또가 부산의 첫 순위권 진입의 문을 열었고, ‘비움’의 등장도 의미 있죠. 비건에다 사찰 음식도 파인 다이닝이 될 수 있네? 굉장히 중요한 메시지거든요. 다양성이 생기게 되니까요. 그리고 ‘원 투 워치’에 꼽힌 산. 원 투 워치에 선정된 뒤로 50위권에 못 올라간 곳은 한 곳도 없었어요. 산은 ‘뉴 커머’이면서 굉장히 기반이 단단하죠. 50위 안에 든다는 건 커뮤니티의 지지를 받았다는 거예요. 단 몇 명의 평가단만 투표하는 게 아니니까요. 업계 사람들이기 때문에 더 ‘Picky’한 부분도 있어요.
“순위에 들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시나요?
여기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할 수 있는 말이 없어요. 다만 저라면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투표 시스템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먼저 볼 것 같아요.
어제 각 지역 의장들끼리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다고 들었습니다. 공유한 화두는 뭐였나요?
저희는 항상 ‘넥스트’에 대해 이야기해요. 그래서 우리가 어떠한 방향으로 갈 것인가? 어떻게 이 커뮤니티에 기여할 것인가? 그 ‘다음’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우리가 지금 여기 있는 이유죠.
TASTE THE STAY
세인트 레지스 홍콩에서 즐기는 맛있는 하루 종일
DRAWING ROOM | THE ST. REGIS BAR
매일 아침 다채로운 조식이 펼쳐지고, 매일 오후 5시 30분에는 샴페인 사부라주가 벌어지는 곳. 누군가에게는 꿈같은 일들이, 일상처럼 매일같이 벌어지는 곳. 세인트 레지스 홍콩의 얼굴이자 첫인상, 드로잉 룸과 더 세인트 레지스 바 이야기다. 특히 더 세인트 레지스 바는 애주가라면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세련된 참새방앗간이다. 광둥 문화에 헌정하는 시그니처 칵테일 ‘칸토 메리’를 맛보기 전까지는 이곳을 안다고 하지 말기를. 진피, 카오룽 간장, 중국식 오향 향신료를 담은 더 세인트 레지스 방식의 블러디 메리는 아침을 깨우기에도, 밤을 잠재우기에도 좋다.
RÙN
얇고 부드러운 피를 통과해 퍼지는 따뜻한 김을 뿜는 은은한 새우의 단맛, 깊은 감칠맛의 돼지고기, 옥수수의 부드러운 단맛의 딤섬 트리오가 미각을 깨운다. 맑고 깊은 풍미의 오늘의 탕이 입안을 감싸고, 바비큐 돼지고기와 바삭한 두부는 서로 다른 박자로 하모니를 낸다. 간장 향이 밴 새우 요리는 다시 한번 바다의 뉘앙스를 초대하고, 특제 소스로 볶은 닭고기는 달콤, 짭짤, 깊은 향신료로 긴 메아리를 남긴다. 맑은 국물에 담긴 채소는 잠시 들른 숲의 찬가 같고, 관자와 달걀흰자로 잘 볶은 볶음밥은 입자 하나하나가 제 목소리를 낸다. 전통 디저트와 달콤한 탕은 몸속 깊숙이 스민다.
L’ENVOL
올리비에 엘제 셰프의 우아한 프렌치 오트 퀴진을 맞이할 시간. 렝볼에서는 한국인 셰프 황병현이 팀의 일원으로서 섬세한 미식 경험에 또 다른 결을 더한다 ‘캐비아 크로니클스’라고 적힌 편지 같은 메뉴에는 오세트라 캐비아, 로얄 벨루가, 바에리 캐비아 주제의 요리들이 나란히 적혀 있다. 옐로 테일과 피스타치오 오일로 산뜻하게 시작해, 농밀한 해산물과 날카로운 시트러스의 균형을 맛보고, 그루퍼와 본 마로우에서 깊이의 정점을 맞이하는 그윽한 여정. 피날레로 샴페인과 캐비아 에멀션이 잔잔한 그림자를 남긴다. 섬세한 산미와 바다의 맛이 리듬처럼 교차하는 렝볼만의 교향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