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에 로퍼 신는 남자 없지? 지금부터 여름내 신기 좋은 신발 추천 12

2026.06.02.이란영, Charlie Sosnick

신는 순간 남자를 근사하게 만들어 주는 신발 중 로퍼만 한 게 없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내가 로퍼를 버리기로 결심한 이유다.

Kelsey Niziolek; Getty Images

새벽 3시, 멕시코시티의 우버 안에서 나는 블랙 로퍼를 단칼에 끊어내기로 결심했다.

그날 밤 바에는 미국 각지에서 놀러 온 다섯 명의 남자가 모여 있었다. 28세에서 30세 사이의 우리에겐 몇 개의 뿔테 안경과 울프컷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담배를 피우러 밖으로 나왔을 때 발밑을 내려다본 나는 또 하나의 소름 끼치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우리 다섯 명 모두 거의 똑같이 생긴 가죽 로퍼를 신고 있었던 것이다. 다섯 남자의 발끝이 완벽하게 통일된 그 광경은 솔직히 받아들이기 힘든 충격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로퍼의 망령에 시달렸다. 마치 길거리에서 우연히 트럼프 카드를 한 장 발견한 뒤부터 온 사방에 카드가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쉽게 벗어날 수는 없었다. 최근 여자친구와의 저녁 데이트에는 둘 다 블랙 로퍼를 신고 나갔는데, 브루클린 북부 기준으로는 거의 커플 조던을 맞춰 신은 꼴이었다. 이번 달 뉴욕에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자마자, 아슬아슬하게 짧은 반바지에 블랙 로퍼를 매치한 남자들이 매미처럼 떼 지어 출몰하기 시작했다. 배우 폴 메스칼처럼 쿨해 보이고 싶었겠지만, 내 눈엔 그저 영국의 조지 왕세자처럼 보일 뿐이었다. 올봄 어느 결혼식에 갔을 때는 내 발에 신겨진 것을 포함해 무려 수십 켤레의 블랙 로퍼를 목격했다. 좋게 봐줘도 내 스타일을 무자비하게 약탈당하는 기분이었다. 대체 이 수많은 인간이 어떻게 나와 똑같은 신발을 신고 여기 모여 있는 걸까? 하지만 뼈아픈 자기반성 끝에 인정해야 했다. 내가 게을렀던 것이다. 도시의 흔해 빠진 남자들과 똑같이 입고 있던 건 결국 나 자신이었다.

사실 블랙 로퍼라는 덫에 빠진 걸 자책할 필요는 없다. 너무 완벽하게 태어난 로퍼의 죄도 아니다. 모두가 멕시코시티 여행길에 로퍼를 챙겨온 이유는 똑같다. 걷기에 충분히 편하고, 대충 입은 아웃핏도 단숨에 드레스업해 주며, 무엇보다 모든 옷에 다 잘 어울리니까. 실제로 지큐 역시 최근에 ‘로퍼를 신는 26가지 방법’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론상으로는 누구나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기에 충분한 가이드다. 하지만 내가 마주한 현실은 그저 똑같은 신발을 신은 너드 다섯 명의 정모였을 뿐이다.

시간을 조금 되돌려보자. 로퍼의 역사를 보면 이 신발이 왜 맥가이버 칼처럼 다재다능한지 알 수 있다. 영국 브랜드 와일드스미스의 주장에 따르면, 1926년 국왕 조지 6세가 시골 별장으로 사냥을 다녀온 뒤 신을 편안한 신발을 주문했고, 그 결과물이 ‘모델 98’ 로퍼였다고 한다. 반면 노르웨이 브랜드 아울란스의 이야기는 다르다. 원주민들의 신발과 이로쿼이 부족의 모카신에서 영향을 받아 탄생했다는 설이다. 어찌 됐든 이 대륙 횡단형 신발을 플로리다 팜비치의 멋쟁이들이 신기기 시작하면서, 1936년 지에이치바스가 노르웨이인을 뜻하는 ‘위준’이라는 페니 로퍼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후 90년 동안 페니 로퍼는 아메리칸 스타일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테이크 아이비’ 속 대학생들이 신었고, 백악관의 JFK가 신었으며, 마이클 잭슨이 문워크를 출 때도 로퍼를 신었다.

그리고 이번 세기, 오래된 모든 것이 다시 새로운 트렌드가 되었다. 와일드스미스가 로퍼를 팔기 시작한 지 정확히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로퍼의 정점과도 같은의 시대에 살고 있다. 클래식 프레피 스타일을 격하게 껴안은 남성 패션계의 트렌드 덕분이다. 노아와 제이크루를 이끄는 브렌든 바벤지엔은 뉴욕 멀버리 스트리트에 해양 세일러 무드를 가져왔고, 그 건너편에선 에메 레온 도르가 팀버랜드 보트슈즈를 팔기 시작했다. 덕 부츠와 백팩으로 유명한 114년 전통의 메인주 브랜드 엘엘빈마저 소호에서 팝업스토어를 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 영원한 클래식이어야 할 신발이 지나치게 유행의 피크에 도착해 버린 느낌이다. 애초에 유산을 트렌드로 소비한다는 개념 자체가 모순적이다. 왜 우리는 할아버지 옷장에 있던 옷들을 새로운 아이디어랍시고 비싼 돈을 주고 다시 사야 하는 걸까? 게다가 지나친 트렌디함은 클래식 특유의 타임리스한 멋을 해친다. 내추럴 와인 바에서 흰 양말에 무릎까지 오는 데님 쇼츠, 시겔만 스태블 모자를 매치한 로퍼 룩에서 사냥용 오두막이나 피오르드 낚시터의 뿌리를 찾아내기란 꽤나 어려운 일이니까.

어쩌면 이 ‘로퍼의 르네상스’는 우리가 지난 20년간 본질에서 얼마나 멀어졌었는지를 방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스트리트 웨어, 놈코어, 패스트 패션, 그리고 미국인들의 삶을 지배한 스웨트팬츠의 습격 이후, 우리는 다시 기본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었다. 프레피의 부활은 할머니 댁에 갈 때 베이프 샤크 후드티 대신 카키색 면바지에 셔츠를 입으라고 등짝을 때리던 엄마의 손길과 같다. 결혼식 하객의 절반이 나와 같은 신발을 신고 있는 걸 보는 게 괴롭긴 했어도, 차마 눈 뜨고 봐주기 힘든 ‘드레스 스니커즈’ 군단을 보는 것보단 백번 나았으니까.

내가 가장 좋아했던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이런 말을 했다. “코카인을 절대 시작하면 안 되는 이유는 그게 너무 좋기 때문이다.” 로퍼 역시 마찬가지다. 첫 로퍼를 들여놓는 순간, 당신은 더 이상 신발 고르는 데 뇌를 쓸 필요가 없어진다. 훌륭한 스타일은 힘을 뺀 부드러움에서 오고, 남자가 신어서 이만큼 쉽고 멋 부리기 좋은 신발은 없다. 심지어 신발끈을 묶는 수고로움조차 없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하거나, 매번 안전한 정답만을 맞추기 위해 옷을 입는 게 아니다. 하물며 바에 있는 다른 모든 남자와 완벽하게 똑같은 옷을 입기 위해 멋을 부리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쉽게 말해, 내가 아무리 멋져 보여도 옆 사람의 생각과 100% 일치했다면 그건 더 이상 멋진 게 아니다.

진짜 스타일리시한 남자라면 자신이 트렌드를 쫓아다닌다는 사실을 결코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 들어오고 나가는지 예민하게 감각하면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꿋꿋하게 고집하는 것이 멋쟁이들의 방식이다. 즉, 영리한 트렌드 매매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남들이 거들떠보기 전에 새로운 스타일, 신진 디자이너, 혹은 다시 돌아오는 빈티지 아이템을 저점에서 매수해야 한다. 그리고 시장이 과열되었다 싶을 땐 고점에서 과감하게 매도하고 걸어 나와야 한다.

그렇다면 킥은 하나다. 로퍼 같지 않은 로퍼를 찾는 것. 자라 매장에서는 절대 팔지 않는, 타임리스하게 쿨한 대체재를 발굴해야 한다. 나는 최근 1983년 어거스타에서 인질극에 대응하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경호원들 사진에 꽂혀 있다. 우지를 들고 있는 요원들의 발끝을 보라. 덕 부츠, 보트 슈즈, 카우보이부츠··· 무엇을 고르든 꽤나 신선한 시작이 될 것이다. 아니면 입생로랑처럼 모로코식 바부슈를 신고 여름을 나거나, 남부 플로리다의 84세 노인처럼 화이트 드라이빙 슈즈를 나만의 시그니처로 삼아보는 건 어떨까? 안 될 것도 없지 않나.

멕시코 시티에서의 마지막 날, 나는 수공예 마켓으로 향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종류의 신발을 새로 장만하기 위해서였다. 자동차 타이어를 재활용해 밑창을 만든, 손으로 짠 가죽 ‘우아라체’ 슬리퍼. 로퍼처럼 슥 밀어 넣으면 되고, 모든 옷에 잘 어울리며, 수명도 지독하게 길다. 문화적 서사 역시 쿨하다. 멕시코 원주민들이 수 세기 동안 만들던 신발을 잭 케루악과 비치 보이스가 이어받아 신었으니까.

하지만 내 신발장에 박혀 있는 블랙 로퍼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내 주변에 이 신발을 신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이란영

이란영

어시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