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월드컵 여정이 32강 진출 실패로 끝났다. 역대급 처절했던 월드컵에서 ‘실패하는 팀장의 조건’을 발견했다. 아, 물론 특정인을 겨냥한 건 아니다.
스스로 구원자가 된 듯 행동하라
“직장인한테 월급이랑 승진 빼면 뭐가 남겠냐.” 드라마 ‘미생’의 대사다. 회사가 고액의 연봉을 지불하는 건 그만큼의 퍼포먼스를 요구한다는 뜻이고, 그 이상의 이윤을 돌려달라는 계약이다. 그런데 간혹 그 사실을 외면한 채 스스로를 구도자처럼 포장하는 리더가 있다. “나는 하기 싫었지만, 이 팀을 위해 희생하는 거야. 한국 축구를 위한 마지막 봉사야.“ 봉사는 아름다운 말이지만, 팀은 구원자를 원하는 게 아니다. 실력 있는 리더를 원한다. 자기희생 서사가 앞서는 순간, 팀장은 스스로 나르시시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좋은 리더가 되고 싶다면, 내 안에서 꿈틀거리며 나오는 그 무언가를 잠시 눌러주시길.

과거의 성공에 집착하라
성공한 플레이어가 곧 성공한 감독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 축구뿐 아니라 어떤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팀의 에이스로 승승장구하던 사람이 관리자가 되는 날은 반드시 온다. 그리고 그 둘의 역할은 분명 다르다. 직접 뛰는 것과, 뛰는 사람을 설계하는 것은 전혀 다른 기술이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썼던 감독의 리더십에 반복적으로 따라붙은 단어는 ‘투혼’이었다. 하지만 2026년의 선수들에게는 고리타분한 구호에 불과하다. 지금의 팀원들이 원하는 건 감동적인 과거 회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전술 설계다. 내가 잘나갔던 시절의 방식이 지금도 통할 것이라는 믿음, 그게 조직을 가장 빠르게 낡게 만든다.

유연함을 버려라
현대의 월드컵은 데이터의 싸움이다. ‘중동 선수는 신을 위해 뛰고, 남미 선수는 쉽게 흥분한다’라는 식의 주먹구구식 분석은 구시대의 유물이다. 서로 다른 스타일의 상대에게 승리하려면 그에 맞는 유연한 전략이 필요하다. 포메이션도, 경기 스타일도 다른 세 나라를 상대하며 단 하나의 전술만 들고 왔다는 건, 클라이언트를 고려하지 않고 똑같은 마케팅 전략을 고집하는 것과 같다. 시장이 변하고 고객이 변하는데, “원래 하던 대로 하겠다”라고 버티는 순간, 팀은 이미 경쟁에서 뒤처진다. 플랜 B가 없는 리더는 플랜 A가 무너지는 순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벤치에 조용히 앉아 있는 것 말고는.

실패의 원인을 모른 척하라
경기 패배 후 인터뷰가 특히 인상적이다. “왜 이런 경기력이 나왔는지 코치진도 당황스럽다”, “선수들이 조급해진 것 같다”, “준비에 문제는 없었다”라는 식의 메시지. 패배의 원인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는 모습 자체가 충격적이다. 시스템, 전술 선택, 타이밍, 선수 기용까지 모두 리더의 책임 영역인데, “원인을 모르겠다”라는 태도는 가장 근본적인 무능을 드러낸다. 결국 팀 전체가 무엇이 잘못됐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다음 프로젝트로 떠밀려 간다. 직장에서도 같은 장면이 있다. 프로젝트가 실패했을 때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하는 팀장. 매출이 떨어진 원인 분석 회의에서 “시장이 안 좋았다”, “팀원들이 좀 더 치고 나갔어야 했는데”라는 말만 반복하는 리더. 원인을 모른다는 건 다음에도 같은 실수를 한다는 뜻이다.
‘모든 책임은 나에게’를 말로만 끝내라
가장 교묘한 조건이다. 사퇴 기자회견이나 공식 석상에서 “모든 책임은 팀장인 제게 있습니다. 국민께 죄송하다”라고 말끔히 정리한다. 듣는 사람은 순간적으로 ‘저 사람은 책임감이 있구나’라고 느낀다. 하지만 그 말 뒤에 실제 행동(근본 원인 분석, 솔직한 반성, 후임에게 도움이 될 만한 구체적 피드백)이 없다면? 그건 책임이 아니라 책임의 외양일 뿐이다. 진짜 책임 있는 리더는 실패 후에도 “내가 이렇게 판단했고, 이런 부분에서 데이터와 현실을 놓쳤다”라고 구체적으로 밝힌다. 팀에 도움이 될 만한 멘토가 되려고 노력한다. 말로만 모든 책임을 지는 리더는 팀의 실패를 반복하게 만들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