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길이라는 사람.

GQ 타투가 있는지 몰랐어요.
NG 헤나예요. 내일 뮤직비디오 찍는데 콘셉트가 이런 타투 있는 인물인데 저는 없으니까. 그래서 어제 헤나를 했어요. 한 2주 간대요.
GQ 자연스러워서 그간 왜 못 봤지 했어요. 어때요? 타투 좀 해봐야겠다 싶어요?
NG 배우 직업으로는 별로. 아무것도 없이 있어야 되니까. 배우 직업이 아니었으면 해봤을 것 같긴 해요. 삶에 특별한 의미를 두는 타투보다는 그냥 가볍게.
GQ 바이크는 여전히 즐겨요?
NG 아우, 그럼요. 어저께도 타고 외곽 카페 다녀왔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바이크 매력에 더 빠지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요번에 <트리거> 홍보 끝나고 휴가철도 좀 지나면 바이크 타고 전국 투어 가보려고 계획하고 있어요.
GQ 개인적으로요? 유튜브나 프로그램 촬영 아니고요?
NG 네. 그런 건 아닌데 지금 듣고 보니까 어, 영상을 찍을까? (홍보 담당자를 보며 웃는다.) 아니 누군가 따라오라는 건 아니야. 나한테 카메라를 주면, 바이크에도 요만한 카메라 장착할 수 있거든요. 찍으면 좋겠다 싶네요. 왜냐하면 바이크에 대해 사람들이 속도 내는 것만 아는데, 제가 타는 이유 중 하나는 자연 바람 맞고 풍경이랑 가까워지는 게 좋거든요. 차 창문 열어놓고 손 내미는 것과는 또 달라요. 몸에 즉각적으로 반응이 온달까? 더운 날씨에는 그 더운 온도가 좋고, 또 시원할 땐 시원한 대로. (바이크 타는) 우리끼리 얘기로 “물 건너 바다 건너 산 너머” 그냥 그렇게 혼자 정해진 거 없이 전국 투어 가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더 늦기 전에 한번 가보려고요. 올해 계획하고 있어요.

GQ 어쩐지 세세하게 계획을 짤 것 같진 않아요.
NG 않아요. 맞아요. 저도 촬영이 없을 때나 가니까 이번에 한 보름 정도는 갔다 오고 싶은데, 같이 갈 사람들이 직장 다니거나 자영업 하시는 분들이라서 빨리 갔다 빨리 오자고 하시더라고요. “바이크만을 위한 전국 투어는 너무 그렇잖아” 했더니 “그럼 너 길게 가고 우리는 포항 정도에서 만나” 이렇게 된 정도? 그냥 러프하게. 우리나라는 바이크로 고속도로는 못 타고 국도를 타야 해요. 국도가 갖고 있는 매력이 또 있어요. 제천, 문경 이런 데 차 타고 촬영하러 갈 땐 몰랐는데 바이크 타고 가면 도심 안에 있는 걸 좀 자세히 들여다보게 돼요. 낮은 건물들, 사람들, 큰 도시가 아니어도 북적거리면서 살고 계시는 그런 모습들. 그런 걸 보는 게 좋더라고요. 그래서 바이크 타고 위로는 속초부터 저기 끝자락까지 해안도로 따라서 가보면 좋겠다 싶어요.
GQ 여전히 바이크를 즐긴다니 반갑네요. <뭐라도 남기리>를 즐겁게 봤거든요.
NG 어, 지난주에도 상윤이랑 같이 바이크 타고 춘천 갔다 왔어요.(<뭐라도 남기리>는 배우 이상윤과 김남길이 2023년에 바이크를 타고 떠난 MBC 로드 다큐멘터리다.) 제 나름에도 그 프로그램이 되게 좋았어요. 그때 바이크 타고 다니며 만난 섬 집배원 선생님, 왕진 의사 선생님···, 그 뒤에 제가 하는 시민단체와 다른 프로젝트를 더 하기도 했는데, 여하튼 세상이 돌아가고 지탱되는 건 그분들이 꾸준하게 본인 삶을 살아주시고 계시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들 시대에 진짜로 열심히 피나게 사셨고, 그래서 시간이 지나 또 다음 세대에 물려주시고, 그런 일상들이 존경스럽다는 걸 또 한 번 느꼈어요.

GQ 그간 김남길 씨가 여러 자리에서 자주 언급했다고 느껴지는 게 있어요. 뭐일 것 같아요? 내게 크게 자리해서 나도 모르게 자꾸 꺼내게 되는 가치나 개념.
NG 뭐가 있을까? 가치···, 개념···. 기본. 가장 기본적인 걸 중요하게 생각하긴 하죠. 그리고 상식? 뭐 거창하거나 그런 게 아니라 그냥 기본적으로 다 같이 잘 사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요. 뭐였어요, 기자님이 생각하실 때?
GQ 사람.
NG 사람! 맞아요. 사람을 좋아해서 그런 게 힘들 때가 있죠.
GQ 힘들 때가 있어요? 그게 궁금했거든요. 사람이 웃게만 하는 게 아니라 울게도 하는데 이 사람은 왜 맨날 사람을 좋아한다고 말할까.
NG 아으, 짜증나죠.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저는 생각하기에, 혼자 사는 건 좀 힘드니까. 사회적인 동물이잖아요, 사람은. 사람이 상처받는 것도 사람 때문이기는 한데 희망을 보거나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나 용기의 시작도 사람 같아요. 그게 근본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우리가 지켜야 하는. 예전에 어디서 본 것 중에 진정한 강자는 태어나기 전부터 있어 왔던 세상, 세계에 대한 질서를 거부하지 않는대요. 물론 개척하고 개선해야 하는 잘못된 것 말고, 기본적인 질서 있잖아요. 서로에 대한 이해나 배려 그런 것. 그런 기본을 거부하지 않고 그 질서 안에서 무언가 찾아가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봤는데 맞는 말이구나 싶더라고요. 저한테 사람이라는 건 그런 사회적인 질서라고 해야 할까요,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왜, 우리가 연기할 때도 그렇고, 기자 일도 그렇고, 결론적으로는 사람을 이해해야 할 수 있는 거잖아요. 모든 일이.

GQ 인간은 다 혼자이지 않나, 결국 인간은 다 섬이지 않나 생각했는데 말이에요.
NG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 생각 안 하지 않아요. 인간은 어차피 혼자 사는 거 아니야? 상처받을 때 그런 생각을 제일 많이 해요. 경쟁에서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야 내가 그 자리에 서는 거 아니야? 그런데 그걸 좀 더 어른스럽게, 현명하게. 예를 들어 컵을 이렇게 두 개 놓고 “시작!” 하고 누가 먼저 잡는 게임을 해서 어떤 이득을 얻는다든지 한다면 저는 가끔 경쟁심이 엄청 강한데, 친구들과 가위바위보 해서 밥을 사거나 농구 게임할 때는 그렇게 경쟁적이지 않아요. 지면 지는 대로, 내가 내야 되면 내는 대로. 그런데 내 친구들인데도 눈에 불을 켜고 하는 애들이 있어요. 흐하하하. 저도 그런 생각해요. ‘다 필요 없어’ 이런 생각할 때도 있는데, 그런데 그러면 외로워지는 건 자신 같아요.
GQ <뭐라도 남기리> 후 시민단체와 더 진행했다는 게 이거죠? <배우 김남길의 대화집 – 뒷:) 담화>. 방송에서 만난 분들을 다시 찾아가서 더 나눈 대화.
NG 어! 흐흐흥, 맞아요. 방송은 아무리 편하게 해도 그분들한테는 어려운 거라. 그래서 나중에 하고 싶었던 얘기, 물어보고 싶었던 것들 물어보러 다시 갔죠. 향문 스님 또 뵈러 가야 하는데. 스님이랑 가끔 연락하거든요. 전화로 “언제 와?” 연락하시면 “가야죠, 예” 하는데. 사실 스님이 저보다 한 살 어리신데···.
GQ 남길 씨는 존댓말해요?
NG 주지 스님이시니까!(웃음) 종교적인 걸 떠나서 마음이 편안해져서 예전에도 템플스테이를 많이 했어요. ‘향문 스님네로 가야지’ 했는데 아직 못 갔어요.

GQ 제게는 이게 위로가 됐는데, 특히 스님과의 대화를 여러 번 읽었어요. 이런 거. “자극받지 않고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 왜 응흐흥 웃어요?
NG 그게 잘 안 되니까. 어떻게 자극을 안 받아.
GQ 역시, 어려운 거죠? “즉, 아무리 뜨거운 것도, 아무리 차가운 것도 놔두면 평균 온도로 돌아가는 그 지점을 찾아야 한다”던 말이 그래도 좋았어요.
NG 저도 좋았어요. 어렵더라고요. 못 찾았어요, 그 온도···. 그런데 한편으로는 제가 배우 하면서 가장 고민되는 게 그 지점이거든요. 저는 인생 새옹지마라고 생각하거든요. 좋은 일이 있으면 항상 안 좋은 일이 같이 오고, 안 좋은 일이 있으면 그 뒤에 좋은 일이 오고. 그래서 좋아도 막 “와!” 안 하고, 실망해도 막 깊게 파고들어서 ”하···” 이런 걸 안 해요. 그냥 저는 항상 딱 중간 지점을 잡고 가요. 그게 익숙한데 배우로서는 뭐가 걱정되냐면, 우리는 감정을 표현하는 직업이잖아요. 좋을 때 ‘너어무’ 좋아하고 그런 게 좀···, 그런 부분에서는 내가 공감 능력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GQ 어떤 면에서요?
NG “남길 씨, 대학교 합격했어요. 신나는 거 한번 할게요”, “네. 와···.(덤덤하게 박수 친다.)”. “남길 씨, 너무 가고 싶은 대학교에 합격한 거죠. 되게 행복하게 한번, 슛.”, “(덤덤한 얼굴로 박수 친다.)”, “저···, 행복한 건데”, “꼭 (“와!” 호들갑 떨며) 이래야만 행복한 건 아니잖아요”라고 핑계를 대지만, 그게 누구나 보는 가장 일반적인 상황이잖아요. 그런 게 불편해지는 거? 배우 직업이 아닌 자연인 김남길로서는 아까 향문 스님이 말씀한 온도를 찾았다기보다도 내가 그렇게 컨트롤해왔어요. 좋아도 ‘뒤에 안 좋은 일이 오겠군’,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얼마나 좋은 일이 있으려고 이러나’. 그러다 보니까 어느 순간 제 연기가 되게 드라이해지기 시작한 것 같은 거예요.

GQ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고 체득한 거네요.
NG 항상. 어릴 때 제가 <나쁜 남자>(2010) 하고 군대 가서 느낀 거거든요. 올라간 지 얼마 안 됐는데 내려오라고 하네?
GQ 아.
NG 그러면 잘 내려가자. 음···, 그래서 예전에 일할 때는 잘돼야 한다, 잘되고 싶다는 게 강했으면, 사람이 다 다른 것처럼 배우들 색깔도 다 다르고, 다른 쪽의 경쟁을 하자라고 그때, 어릴 때 마음을 먹었는데, 그렇게 지금까지 계속 훈련해온 것 같아요. 그게 그렇다고 쉽지는 않죠. 내 거 아니면 다 망했으면 좋겠고, 내 것만 잘돼야 한다고 생각도 하고, 하하하.
GQ <나쁜 남자>가 <선덕여왕>의 비담으로 급부상한 후에 한 작품이죠. 그 시기 군대 간 일에 대해서 성숙해질 수 있었다고, 거만해질 뻔했는데 차라리 잘됐다고 덤덤하게 말한 걸 봤는데, 속으로는 아무래도 시끄러웠군요.
NG 사람들은, 당연히 말을 안 했으니 몰랐겠지만,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났죠.
GQ 어···.
NG 왜냐하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 거예요. 여태까지 힘들었다가, 예를 들면 이제 효도를 해보려고 돈을 좀 벌어야지 했는데 다시 도돌이표가 된 것 같다든지. 그런데 똑같거든요? 못해도, 못해서 시나리오가 다섯 개 들어오면 거기서 진짜 좋은 거, 내가 너무 하고 싶은 건 한두 개예요. 잘됐을 때는 시나리오가 백 개 들어오거든요? 그중에도 내가 하고 싶고 좋은 건 두세 개밖에 없어요. 그런 차이인데, 잘되면 주변이 사람을 막 세상을 다 가진 것같이 만들어요. 본인은 몰라도, 차분해지려고 노력한다 해도 잘 안 돼요. 그런데 군대라는 게 갑자기 내가 어디로 뛰쳐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2년이란 시간이 정해져 있는 상황 안에 가둬지면서, 그 속 시끄러움을 나 스스로 훈련하지 않으면 안 됐어요. 그 상황을 빨리 받아들이고 그러면서 좀 편안하게 생각하게 됐죠.
GQ 있기를 다행인 시간이라고 해야 할까요, 남이 하는 태평한 소리겠지만요.
NG 아니, 그게 맞아요. 단 한순간도 허투루 주어지는 시간은 없는 것 같아요. 가끔 사람들한테 그래요. 네가 서 있는 자리는 네가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있는 거야. 물론 그중 운이 덜 좋고 더 좋은 것도 있겠지만 제가 맨날 하는 얘기, “꾸준함을 이길 수 있는 건 없어. 뭐든지 꾸준하게”. 그냥 하루하루 열심히. 그래서 한 11시, 12시면 침대에서 기절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자.(웃음)

GQ 아무리 뜨거워져도, 아무리 차가워져도 찾을 수 있는 평정의 지점에 대해 오히려 배우로서는 고민이라고 했는데 그럼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해야 돼요?
NG 그게 참 어려운 게···, 왜냐면 연기는···, 흔히 얘기하는 연기 잘하는 대명사 선배들, 물론 저도 잘하는 부분이 있고 더 돋보일 수 있는 부분들이 있겠지만, 그래도 그들을 표현할 수 없는 건 그들이 나보다 그만큼의 경험과 삶이 있어서예요. 연기는 그런 거잖아요. 3개월 교육 통해 “발성은 과학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그 삶을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연기에 나오는 거라서. 그래서 그런 고민이 드는 거예요. 내가 이렇게 드라이하게 살면···. 그래도 온오프를 잘해야지 생각하다가도 “울어주세요”(하면), “근데···, 여기서 눈물이 나요?” 하죠.
GQ 그런데 진짜 큰일이 닥치면 오히려 눈물 안 나지 않아요?
NG 응.(웃음) 기자님 말씀처럼 그래서 저도 그러죠. “감독님, <병원 24시> 봤어요? 그럴 때 사람들이 얘기하면서 울어? 되게 덤덤하게 얘기하는데 그걸 보는 사람들은 오열하는 거지. 그러니까 여기선 울면 안 돼요.” 그러면 감독님들이 다 그래요, “음···, 맞는 얘기 같은데”. 그런데 감독님들이 원하는 감정을 보여주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니까. 그 간극에 대해 계속 그냥 찾아가야죠.

GQ 개봉한 지 딱 10년 됐더라고요, 영화 <무뢰한>.
NG 너무 좋은 기회였죠, 진짜. 행운이었죠.
GQ 언젠가 인터뷰 때 지금 찍으면 더···.
NG 어, 지금 찍는다면 더 자신 있어요. 확실히 그래요. “연기가 그때보다 늘어서” 뭐 그런 게 아니라, 지금 보면 ‘어렸어’ 이런 생각이 들어요. 뭔가를 표현하지 않아도 낼 수 있는 그 분위기라는 게 있잖아요, 사람이. 그렇게 살아온. 예를 들면 <나쁜 남자>나 <선덕여왕>, <열혈사제>(2019, 2024)는 그 나이에 딱 맞는 연기를 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지금 하는 것보다 그때 하는 게 훨씬 더 반짝반짝했고, 더 빛났고, 더 좋았어. 지금 “<나쁜 남자> 다시 할래?” 그러면 아이, 그건 자신없어요. 그런데 <무뢰한>은 자신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아쉬움인 거예요. 지금 나이에 찍었으면 그때보다는 조금 더 경험, 삶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더 잘한다’라기보다 다른 느낌을 낼 수 있을 것 같은 거예요. 그게 너무 아쉬워서 욕심이 드는 것 같아요. 너무 좋아했던 영화이기도 하고.
GQ 보는 사람으로서도 그래요. 사실 이제야 <무뢰한>을 봤어요. 만약 개봉한 10년 전에 봤다면 나 이 영화 이해 못 했겠다, 지금 봐서 다행이다 싶었어요.
NG 음! 오! 소름 돋았어. 맞아요, 맞아요. 그렇죠?
GQ 지금이라서 이 영화 장르가 사랑이라는 걸 알지 않을까 싶어요.
NG 저도 그런 생각인 거죠. 그래서 사실 <무뢰한>은 한 30대 후반부터 40대···, 아니, 20대여도 진짜로 막 치열하게, 미친 듯이 가슴 후벼 파는 사랑을 해본 사람들이 본다면 “오늘 소주 한잔해”, 그런 거거든요.

GQ 보통 그때가 최선이었다 하는데 지금 더 잘할 수 있다던 말이 신선했어요.
NG 버거웠어요 사실, 그때 당시에는. 심지어 엔딩 대사도 버겁고. “새해에는 복 많이 받아라, XXX아.” 아···, 이게 무슨 의미일까? 그래, 머리로는 알겠어. 무슨 느낌인지 알겠어. 그때는 또 어떤 강박증이 있었냐면, 대중 예술이니까 모든 사람이 이해해야 한다는 게 있었는데, 이제는 너무 알겠는 거죠. 아까 얘기한 것처럼 다른 작품들은 그때가 제일 반짝였어요. 그런데 <무뢰한>은 “잘할 수 있다”기보다는 당시보다 더 많은 걸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좀 아쉬운 거예요. 그래서 지금은 그런 걸 한 번 더 해보고 싶어요. 흔한 표현으로는 하드보일드? 누아르 멜로? 힘 빼고. 막 의욕에 앞서서 “(이 악물고) 내가 잘할 수 있습니다” 말고 좀 기운을 빼고.
GQ 지금이라면 어떤 장면이 달라졌을까요?
NG 마지막에 도연 누나(김혜경)가 “그 말 진심이야?”라고 얘기했을 때 그 망설임. 그리고 제가 차에서 혼자 나와서 성웅이 형을 총으로 쏘잖아요. 그때 차 안에서부터 이걸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하던 그 고민. 성웅이 형 잡을 때 그 표정. 그리고 거기까지 혜경이를 옆에 태우고 가면서 혜경이가 하고 온 귀고리를 보는 표정···. 앞 상황들에서 능글맞게 “예리하시네?” 말하던 그런 장면은 그때가 제일 좋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뒤의 상황들은 지금 하면···. (장난스런 얼굴로)“어? 귀고리 하고 왔네?” 그러려나? (혜경이처럼 말하며)“나랑 같이 살고 싶다 그런 거 거짓말이었죠?”, (눈물을 참으려는 듯 눈을 크게 뜨며)“아 물어보지 마요, 대답할 수 없으니까! 앞만 볼 거예요. 가세요, 가세요, 빨리 내려요!” 그러려나? 하하하하. 그때는 그 상황에 내가 너무 치이는 것 같았어요. ‘이렇게 표현해야지’, ‘이런 상황이야’, 이런 것에 너무···.
GQ 그랬구나.
NG 조금 더 그냥, 조금 더 덤덤하게. ‘귀고리를 했구나’ 덤덤하게 보고, 고민하고, 더 눈을 바라보고, 망설이고, 그런데 능청맞게 아무렇지 않게 구는 느낌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 거예요. 그리고 뒤에 혜경이를 다시 찾아갔을 때 장소 문제로 그 표현이 잘 안 됐는데, (정재곤이) 빗속에서 몇 날 며칠을 기다렸던 거거든요. 제 생각에 그때는 비에 젖은 생쥐 같은 느낌이라면, 지금이면 상처받은 어떤 야수, 야생 늑대 같은 분위기, 그러니까 뭐랄까, 추위에 떠는 게 아니라 비겁한 걸 알지만 나 자신은 어쩔 수 없다는 그런 표현들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래서 마지막에 “새해에는 복 많이 받아라” 하는 것도 조금 더···. 그게 사랑이었고, 칼에 찔렸고, 그때의 모습을 더 잘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GQ 10년의 삶이 쌓였네요.
NG 응, 그동안 또 사람에 대한, 관계에 대한 고민들을 계속해왔을 거잖아요. 다시 찍고 싶다.(웃음) 잘할 수 있는데.

GQ 김남길 씨는 스스로 말을 많이 한다고 표현하지만, 그간 보면 그 말이 타인을 포용하고 위하는 이야기인 경우가 많다고 느꼈어요.
NG 저는 “너는 괜찮아?”라고 물어보면 “나는 아무래도 괜찮아”가 제일 많이 하는 얘기예요. 나는 괜찮아. 긍정적이기도 하고, 글쎄, 나는 다 괜찮아요.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의 힘듦 아니면 다른 사람들과의 문제에서 오는 관계의 불편함들이 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나는 다 괜찮아”라고 얘기하는 것 같아요. 난 진짜 괜찮아, 너만 괜찮으면. 엄마만 괜찮으면 나는 괜찮아, 그런 게 좀 많아요.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게 이럴 때 가끔씩 쓰이기도 하고.
GQ 그건 안 괜찮은 거 아니에요?
NG 아니에요, 저 그런데 되게, 어떤 부분에선 ‘되에게’ 단순해서 진짜 금방 잊어버려요. “대본은 어떻게 외우니?”라고 할 정도로 잘 까먹어요.
GQ 김남길이 김남길을 위로하는 방법은 뭐예요?
NG 결국엔 사람. 사람과 얘기를 많이 해요. 지금도 이렇게 얘기하면서 조금 더 정리가 돼요. 내 감정들이 명확해지고, 그래서 원래 연기할 때도 사람들과 여러 시선을 나누는 게 중요하거든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만약 내가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그걸 혼자 생각하면 내가 좁아지거든요? 그 안에 가둬두게 되니까. 그런데 사람들과 대화 나누다 보면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구나’, 그렇게 여기게 돼요. 나를 위로하거나 나를 컨트롤하는 방법은 단순하게 “바이크 탈 때 너무 좋아요” 이런 것도 있지만 그런 거 말고, 그리고 바이크는 탈 때는 좋지만 돌아오면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아···’ 이렇게 되니까, 제가 에너지를 얻는 건 결국 사람 같아요. 아이러니한 게 다른 곳에서 상처받아도 또 다른 곳에서 치유가 돼요. 그러면서 (상처 준) 이 사람들까지도 품을 수 있는 상황이 와요. 그리고 어떻게 사람이 늘 평온하겠어요. 휘둘리고 왔다 갔다 그러지. 누군가한테 기대하면 실망하는 법이고, 기대하는 것 자체도 내 욕심이에요. 모든 건 나로부터 시작되잖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