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제 시작이야!

GQ 오늘 “신기하다”는 말을 정말 많이 한 거 알아요?
YJ 맞아요, 왠지 현실감이 없다고 해야 하나? 계속 운동만 했지 이렇게 화보를 찍는다는 걸 생각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래서 계속 신기했어요.
GQ 패럴림픽 이후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이런 ‘신기한’ 시간이 꽤 많았을 것 같아요.
YJ 감사하게도 많이 불러주셨어요. 촬영이나 방송, 인터뷰도 몇 번 했고요. 매번 어색하고, 신기하고, 낯설고 그랬어요.
GQ 오늘 보니까 어색해하지 않고 잘만 하던데, 왜요.
YJ 으에, 아니에요. 아니에요. 하지만 이런 기회가 한편으론 저희 종목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이기도 하니까, 그렇게 생각해보면 또 잘해야겠다는 마음도 들고 그랬어요.
GQ 맞아요. 윤지 선수를 통해서 새로 알게 된 것이 정말 많아요.
YJ 고맙습니다. 아무래도 동계 스포츠이기도 하고, 또 그 중에서도 바이애슬론이나 크로스컨트리가 잘 알려진 종목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요즘 저희 종목을 재밌다고 해주시는 분도 많고, 또 새로 알게 돼서 좋다고 해주시는 분들도 있어서 그 부분이 정말 기뻐요. 제가 좋아하는 걸 주변에서도 좋아해주시면 저는 또 그게 너무 좋거든요.
GQ 예쁜 말이네요. 내가 좋아하는 걸 주변에서도 좋아해주면 나는 그게 또 너무 좋다.
YJ 네.(미소)
GQ 요즘 인터뷰도 많다고 들어서요. 나눴던 이야기 중 어떤 내용이 좀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어요?
YJ 사실 정말 많은 질문을 주셨는데요, 그중에서 장애 학생들에 관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 내용이 좀 기억에 남았던 것 같아요.
GQ 어떤 내용이었어요?
YJ 음, 이를테면 장애 학생들이 체육 수업에서 배제되는 경향이 좀 있거든요. 그렇다 보니 스포츠를 접할 기회가 점점 사라지게 되는데, 그런 아쉬운 부분들을 잠깐이지만 이야기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이번에 저희 경기 중계를 많이 해주셨거든요? 그래서 이런 스포츠도 있다는 걸 알릴 수 있는 정말 좋은 기회가 됐던 것 같아요. 실제로 ‘배워보고 싶다’고 DM 주신 분들도 있었고요. 결과적으로 여러 인터뷰를 통해서 장애인 스포츠를 조금이나마 홍보할 수 있어서 뿌듯했어요.

GQ 아까 연맹 관계자분과도 잠깐 이야기를 나눴는데, 비장애인분들과 훈련장을 같이 쓰신다고요. 그러면 아무래도 제약이 좀 있겠어요.
YJ 네, 큰 부분은 아니지만 언덕 같은 경우엔 서 있는 스탠딩 선수에게 맞춰져 있다 보니까 차이가 좀 있긴 해요.
GQ 해외의 경우는 어때요? 북유럽처럼 동계 스포츠가 활성화되어 있는 곳은 아무래도 전용 훈련장도 잘되어 있을 테고요.
YJ 맞아요. 스키를 탈 수 있는 코스나 규모 차이가 좀 있어요. 짧게는 2킬로미터, 길게는 10킬로미터까지 탈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1킬로미터가 채 안 되거든요. 비시즌엔 따로 탈 수 있는 곳이 없어서 도로에서 롤러를 끼고 훈련을 하기도 하고요.
GQ 이런 이야기를 방송이나 인터뷰, 간담회 같은 자리를 통해서 나눴던 거죠? 윤지 선수가 정말 큰 역할을 하고 있네요.
YJ 아니에요. 많이 불러주셔서 감사했습니다.
GQ 처음 스키를 시작한 게 2020년이었다고요.
YJ 네, 2020년 겨울.
GQ 그때 수영 선수로도 활약하고 있었고요.
YJ 네, 수영하다가 동계에 이런 종목이 있다는 소개를 받았어요. “스키도 타고 총도 쏠 수 있는 종목이다”라는 설명을 듣다 보니까 너무 멋있는 거예요.(웃음) 그래서 캠프를 갔죠? 그런데 저는 그 캠프가 이 종목을 배우러 가는 건 줄 알았는데, 막상 가보니까 이게 시합을 뛰기 위한 합숙이었던 거예요. 그렇게 뒤통수를 맞았죠.(미소)
GQ 아니, 누가 거짓말을 한 거야.
YJ 그러니까요.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막상 속인 사람은 없었던 것 같고. 신비한(?) 캠프였어요.(웃음) 아무튼 그렇게 배우게 됐는데 처음 접한 이 종목이 저는 굉장히 재밌었어요. 스키를 타는 내내 즐거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고요. 근데 그해 코로나로 예정돼 있던 경기가 취소됐거든요? 그래서 시합은 다음 해에 나가게 됐어요.
GQ 그럼 첫 시합은 그다음 시즌이니까.
YJ 네, 2021-2022 시즌이었으니까 첫 시합은 2022년 2월쯤이었어요.
GQ 첫 시합 결과는 어땠어요? 2022년이면 막 고등학생이 되던 해였죠?
YJ 네, 운이 좋게도 1등을 했어요.
GQ 와! 그러고 보니 모든 타이틀을 첫 출전에서 땄네요? 처음 나간 대회에서 1등을 하고, 이번 패럴림픽도 첫 출전이었는데 금메달 2개, 은메달 3개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고요.
YJ 운이 좋아서.
GQ 에이, 5개의 패럴림픽 메달을 운으로 가질 순 절대 없죠. 그럼 이번 패럴림픽은 어땠어요? 첫 출전이니 경험에 무게를 두었을지, 아니면 어떤 뚜렷한 목표가 있었을지, 어느 쪽이었어요?
YJ 사실 첫 대회다 보니 경험 많이 쌓고 오자는 생각이 더 컸던 것 같아요. 코치님도 경험 쌓으러 간다고 생각하라고 말씀하시면서 긴장을 풀어주시기도 했고요. 목표라고 한다면, 첫 대회에서 어떤 후회도 남기고 싶지 않다는 그런 마음? 그런 다짐은 늘 했어요. 그래서 결과를 떠나 최선을 다하자고, 다하기로 저랑 약속도 했고요. 그런데 이 마음은 사실 대회 준비할 때부터 늘 가지고 있었어요. 꼭 메달이 아니더라도 최선을 다해보고 싶었거든요. 나중에 이 시간을 돌아봤을 때 ‘좀 더 해볼걸’ 같은 후회가 안 들도록.

GQ 멋지네요! 지금 포털에 김윤지 선수를 검색하면 ‘최초’랑 ‘최다’라는 수식어가 전부 붙어요. 이번 대회를 통해서 ‘최초’로 이룬 기록과 ‘최다’로 설명되는 결과 모두를 얻었죠.
YJ 너무 감사하지만, 사실 ‘최초’와 ‘최다’라는 타이틀은 저한테 그렇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에요. 왜냐하면 ‘최초’로 연결되는 기록들은 사실 제가 아니더라도 후배나 다른 선수들도 충분히 이룰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최다’라는 기록도 저희가 다른 종목에 비해 경기 수도 많아서 메달을 많이 가져가기에 좀 유리한 부분이 있고요.(미소) 저는 그보다 이렇게 좋은 결과를 얻게 돼서 좋았던 건, 제 경기를 보고 ‘관심이 생겼다’, ‘종목에 재미를 느꼈다’, ‘저도 이 종목에 도전해보고 싶다’ 같은 반응들을 만날 수 있어서, 그게 정말 기분이 좋더라고요.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구나, 어떤 영향을 전할 수도 있구나, 하는 그런 느낌이 들어서 응원을 받았지만 되레 제가 더 감사했어요.
GQ 어떤 영화에서처럼 경기 끝나고 폰을 확인했더니 응원들이 셀 수 없이 막 쏟아져 있었죠?
YJ 네, 사실 계속 시합을 뛰고 있어서 몰랐는데, 다 마치고 봤을 때 DM으로 정말 많은 축하를 보내주셔서 놀랐어요. 감사했죠. 아, 그리고 제일 신기했던 건 그 사이에 제 이름으로 나무위키가 생겼더라고요? 저는 그게 제일 신기했어요.(미소)
GQ 저는 윤지 선수 경기를 보면서 스프린트 할 때가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그 긴 코스를 통과하면서 체력은 체력대
로, 멘털은 멘털대로 극한일 텐데, 무엇이 윤지 선수를 붙잡아주고 있는 걸까, 또 그게 무엇이기에 윤지 선수는 힘을 받아 저렇게 꿋꿋하게 나아갈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YJ 음, 큰 다짐은 아닌데요, 더 보여주려고 하지도 말고 덜 보여주지도 말자, 딱 훈련했던 만큼만 하자고 생각하면 마음이 좀 편해지더라고요. 결과는 그 이후의 일이라고 생각했고요. 최선을 다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췄던 것 같아요. 물론 경기 중에 불쑥불쑥 힘들 때가 있긴 하지만 그럴 땐 또 우리 스태프분들, 코칭스태프분들이 곁에 계시니까 그분들하고 같이 뛰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또 힘을 얻고 그랬어요. 스태프분들이 새벽부터 저희 경기 준비를 해주시거든요? 스키 테스트도 해주시고, 왁스 테스트도 해주시고 정말 고생을 많이 하시는데, 그렇게 해주시는데 제가 먼저 포기하면 안 되잖아요. 그런 감사한 마음들 떠올리면서 지금 진짜 힘들지만 이렇게 으쌰, 으쌰 탔어요.(미소) 이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당연히 이루지 못했을 결과라고 생각해요.
GQ 팀 코리아.
YJ 맞아요. 팀 코리아.
GQ 저는 이 부분도 정말 신기했어요. 그렇게 최대치로 스프린트를 하면 숨이 엄청 찰 텐데 사격할 땐 또 순간 고요하게 가다듬고 툭, 툭, 쏘는 거죠. 이 호흡도 조절을 하는 거죠?
YJ 네, 사실 사격 들어오면 살짝 정신이 없긴 하지만(웃음), 최대한 집중하려고 하죠. 저희가 막 들어오면 심박수가 180정도 되거든요? 좀 떨어지면 170. 그러니까 170에서 180 대의 심박수를 갖고 들어와서 사격하는 건데,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나면 타이밍이 딱 한 번 있어요. 딱 좋은 타이밍. 그 순간에 사격을 하는 거죠. 그리고 이제 다시 나갈 때 보면 심박수가 한 160 정도로 떨어져 있어요. 많이 떨어졌을 땐 150?
GQ 오.
YJ 그래서 저희 바이애슬론 선수들이 그 심박수를 순간적으로 낮추는 거에 좀 특화돼 있다고 하더라고요.

GQ 최근 방송에서 ‘수영’ 이야기를 하면서 “새로운 길을 안내해주는 이정표 같았다”고 했는데요, 그럼 스키는 어떨까요? 윤지 선수에게 스키는 어떤 의미가 있어요?
YJ 지금은 이제 ‘제가 가야 할 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음, 좀 뚜렷한 길?
GQ 같은 질문을 5개의 메달에 가져와 보면요?
YJ 아! 이건 메달마다 달라요. 제가 처음 딴 메달이 12.5킬로미터 스프린트 좌식 금메달이었는데, 이게 제 첫 패럴림픽 메달이기도 하고 또 저희 대한민국 바이애슬론의 첫 금메달이기도 해서 너무 소중한, 그런 의미가 있어요. 그다음 메달은 크로스컨트리 스프린트에서 딴 은메달인데, 이 메달이 좋은 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경기를 펼친 후에 얻은 결과였거든요. 제가 보여줄 수 있었던 최고의 경기였다고 생각했는데 은메달까지 받게 돼서 너무 기뻤어요. 그리고 그다음이 10킬로미터 인터벌 스타트 좌식 경기였는데 이때 제가 뭔가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오버 페이스를 했어요. 은메달을 얻긴 했지만 그래도 마음 한편엔 아쉬움이 좀 남았거든요? 그런데 정말 감사하게도 이 경기에서 얻은 배움 덕분에 마지막 20킬로미터 크로스컨트리 인터벌 스타트 좌식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었어요. 오버 페이스 했던 결과를 보완해서 탔더니 좋은 결과로 이어져 이 금메달을 받았을 땐 정말 짜릿했어요! 퍼슈트 Pursuit(스프린트 추적 좌식)에서도 은메달이나 받을 수 있어서 정말 좋았고요. 아, 그리고 사실 저는 은메달이 예뻐서 금보다 은메달을 더 좋아해요.(웃음)
GQ 지금 제 앞에 앉아 있는 분은 대한민국 스포츠의 새 역사를 쓴 대단한 사람이 분명한데, 방금 대답은 또 열아홉 살다운 귀여운 고백이네요. 은메달이 예뻐서 더 좋다.(미소) 그런데 정말, 윤지 선수는 쉴 때 뭐 해요? 무얼하며 보내는 시간을 가장 좋아해요?
YJ 뭐 특별할 건 없어요. 친구들 만나는 거, 만나서 맛있는 거 먹고, 노래방도 가고, 보드게임 카페도 가고, 사진도 찍고 그렇게 노는 거 좋아해요.
GQ 태극 마크가 없으면 평범한 딱 열아홉 살 학생이네요. 그럼 맛있는 건 뭘 좋아해요?
YJ 저 한식파예요. 김치찌개 가장 좋아하고요. 카레도 좋아하고. 할머니가 만들어주시는 만두도 좋아해요. 고기 만두!
GQ 저는 윤지 선수를 ‘최초’이자 ‘최다’ 타이틀을 전부 갖고 있는 국가대표로 마주하고 있으니까 아무래도 짐작이 잘 안 돼서요, 친구들은 평범한 ‘학생’ 김윤지를 향해 주로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궁금해요.
YJ 음, 친구들 사이에서는 음, 밥 잘 사주고 그런 약간 언니롤? 크크크크크. 친구들한테 포켓몬 모다피 닮았다는 얘기도 많이 들어요.(웃음)
GQ 모다피? 이따 꼭 찾아볼게요.
YJ 있어요. 눈 똥그랗고 입술도 동그란 애.(웃음)
GQ 아까 무슨 얘기하다가 놓친 질문이 있어서요, 이걸 마지막 질문으로 할까 봐요. 저도 너무 궁금하기도 하고요. 이렇게 우뚝한 윤지 선수도 롤 모델이 있어요?
YJ 저희 어머니요. 어머니가 언제나 굉장히 밝게 웃으시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