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걸 모을 필요 없다, 수집의 세계에서도 맥락이 가장 중요하다

2026.06.01.조서형, Oren Hartov

전설적인 시계 장인 조지 대니얼스가 직접 개조한 데이트저스트 이야기.

Photos courtesy FutureGrail

만약 누군가 롤렉스에 50만 달러, 약 6억8천만 원을 지불했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아마 대부분은 데이트저스트를 떠올리지 않을 것이다. 데이트저스트는 롤렉스 안에서 그렇게 비싼 편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폴 뉴먼’ 데이토나라면 그럴 수 있다. 완벽한 출처와 이력을 갖춘 희귀한 ‘밀섭’ 서브마리너라면 당연히 가능하다. 하지만 흰색 다이얼과 쥬빌리 브레이슬릿을 장착한 스테인리스 스틸 롤렉스 데이트저스트라고 하면? 서류상으로는 지나치게 평범하게 들린다.

그런데도 겉보기에 소박한 롤렉스 데이트저스트 Ref.16220이 퓨처그레일의 5월 경매에서 구매자 수수료를 제외하고 52만 달러, 약 7억1천만 원에 낙찰됐다. 이는 경매 전 예상가였던 10만~20만 달러를 크게 웃도는 금액이며, 고(故) 조지 대니얼스가 개조한 롤렉스 시계 가운데 새로운 기록을 세운 결과다.

이 사례는 수집의 세계에서 맥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보여준다. 이 시계가 중요한 이유는 롤렉스이기 때문이 아니라 조지 대니얼스가 손을 댔기 때문이다.

조지 대니얼스는 20세기 최고의 시계 제작자 가운데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현대 시계 제작 역사에서 거의 신화적인 존재다. 영국 출신의 그는 케이스와 다이얼, 무브먼트까지 모든 부품을 직접 손으로 제작해 시계 한 점을 완성할 수 있었던 마지막 장인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는 이 제작 방식을 정리한 책까지 직접 집필했다. 오늘날에도 브랜드와 시계 제작자들은 이를 ‘대니얼스 방식’이라고 부른다.

이 데이트저스트가 흥미로운 이유는 정반대에 가까운 두 세계가 만나기 때문이다. 손으로 정교한 시계를 만드는 독립 시계 장인 가운데 가장 전설적인 인물과, 스위스에서 가장 상업적이고 가장 많이 팔리는 럭셔리 시계 브랜드의 대표 모델이 결합한 것이다.

이른바 ‘대니얼스 데이트저스트’에는 그가 남긴 가장 중요한 발명품 중 하나가 담겨 있다. 수십 년 동안 대니얼스는 기계식 시계가 오랫동안 안고 있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바로 이스케이프먼트 내부에서 발생하는 마찰이었다. 이스케이프먼트는 무브먼트에 전달되는 동력을 일정하게 조절하는 핵심 장치다.

그의 해결책은 코액시얼 이스케이프먼트였다. 이는 부품 사이의 미끄러지는 마찰을 획기적으로 줄여 장기적인 안정성을 높이고 윤활유 의존도를 낮춘 혁신적인 구조였다. 실질적으로는 정비 주기가 길어지고 오랫동안 정확한 시간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대니얼스의 시스템은 현대 기계식 시계 역사에서 등장한 몇 안 되는 진정한 혁신으로 평가된다. 그는 수년 동안 스위스 시계 업계를 설득하려 했지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그 기술을 받아들인 브랜드는 오메가였다. 오메가는 이 기술을 대량 생산 체계에 적용했고, 1999년부터 브랜드 정체성의 핵심 요소로 삼았다.

오늘날 오메가의 마스터 크로노미터 무브먼트는 모두 대니얼스의 코액시얼 이스케이프먼트를 산업화한 버전을 기반으로 제작된다. 이번 퓨처그레일 경매에 나온 데이트저스트는 초기 코액시얼 오메가보다도 더 희귀하다. 왜냐하면 조지 대니얼스가 직접 개조한 시계이기 때문이다. 1988년경 생산된 이 시계에는 대니얼스가 직접 제작하고 장착한 코액시얼 이스케이프먼트가 탑재돼 있다. 시기는 아마도 1990년대 중반으로 추정된다. 그의 기술이 본격적으로 상용화되기 전이다.

말하자면 이 시계는 전통적인 롤렉스 시계 제작 방식과 현대 시계 기술의 가장 중요한 혁신 가운데 하나를 연결하는 다리와도 같은 존재다. 52만 달러라는 낙찰가는 현재 시계 시장의 활기를 보여주기도 한다. 최근 시계 시장 관련 기사들은 투기적 성격이 강한 현대 모델들의 가격 약세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진정으로 희귀하고 역사적 의미가 있는 시계에 대해서는 여전히 강력한 수요가 존재한다.

최근 몇 시즌 동안 주요 경매사들은 계속해서 높은 낙찰가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필립스 경매에서는 최고급 파텍 필립, 롤렉스, 독립 시계 제작자들의 작품들이 치열한 경쟁을 이끌어내고 있다. 실제로 필립스의 최신 제네바 시계 경매인 ‘제네바 워치 옥션 XXIII’는 총 7,480만 스위스프랑, 약 1,030억 원의 낙찰 총액을 기록했다. 이는 단일 시계 경매 역사상 최고 기록이다. 40개국 이상에서 참가자를 끌어모았고 100% 낙찰률을 달성한 것으로 알려진 퓨처그레일 경매 역시 같은 흐름 속에 있다.

데이트저스트에 50만 달러를 지불했다는 이야기는 얼핏 들으면 터무니없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시계는 사실 단순한 데이트저스트가 아니다. 현대 시계 제작의 역사를 영원히 바꾼 발명가의 손길이 닿은 롤렉스이자, 손에 쥘 수 있는 시계 역사 그 자체다.

조서형

조서형

디지털 에디터

조서형은 아웃도어와 건강, 기후 위기, 인물 등을 다루며 웹 콘텐츠를 만드는 'GQ KOREA' 디지털 에디터입니다. 경희대학교에서 무역학을 전공하고 일본의 데이터 분석 회사에서 근무했으며 'GO OUT KOREA', '볼드저널', '일점오도씨' 및 브랜드 매거진을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2년간 한겨레신문 토요판 커버스토리를 작성하며 사회 문제와 트렌드 등을 취재했고, 2024년에는 사계절 시리즈 에세이 '여름이 너무해'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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