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를 품은 거대한 날개의 비상.

살펴보자. 한국형 방위산업(이하 방산)의 골격이 언제부터 설계됐는지. 시작은 1970년대였다. 한국전쟁 이후 남과 북이 숨 고르기에 들어갔던 시기이자 물밑에선 팽팽한 정보전을 펼치던 시기. 이때 북한은 소련제 단거리 미사일을 대거 사들여 그것이 방패인지 창인지 모를 쓰임을 궁리하며 한반도에 먹구름 같은 공포감을 조성했다. 반면 대한민국은 주둔하던 미군 일부가 철수하면서 국방력과 안보 상황에 변수가 생겼고, 행인지 불행인지 이에 따른 ‘자주적 방위 역량’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방위산업과 방위 기술력에 대한 연구가 빠르게 실행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탄생한 첫 번째 결과물이 바로 ‘백곰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당시 대외적으론 해외 협력, 안으로는 비밀 연구 시설을 가동하며 긴박하고 치밀하게 운영됐는데, 결과적으로 1978년 9월, 사거리 1백80킬로미터의 탄도 미사일이 시험 발사에 성공하면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7번째로 자체 탄도 미사일을 보유한 국가가 된다. 이때 개발한 탄도 미사일 ‘백곰’은 미국 레이티온사가 개발한 장거리 고고도 대공 미사일(지대공), 나이키 허큘리스 Nike Hercules Missile를 지대지용으로 개조한 형태였고, 이러한 ‘백곰’의 개발은 이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핵심 미사일 전력, ‘현무’ 시리즈 개발의 토대가 된다.
이후 대한민국은 가파른 경제 성장을 거듭하며 꾸준한 국방 예산 증가, 우주·과학·방위 기술의 고도화, 나아가 한미 동맹을 토대로 한 양국 간의 긴밀한 군사 정보 협력을 바탕으로, 2026년 현재 GFP(Global Fire Power) 기준 세계 군사력 5위를 기록하며 세계 최상위 수준의 방위 기술력을 확보했다. 더욱 놀라운 건 1953년 한국전쟁의 휴전 이후 불과 70년여 만에 세계 상위권의 군사력을 구축했으며, 한때 내수 중심에 머물렀던 한국 방산의 작은 몸집이 이제는 수출 주도용 산업으로 크게 성장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단순한 군사적 성취를 넘어 산업적, 경제적, 역사적 관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변곡점이다. 그렇기에 1953년 휴전 이후 대한민국의 주요 도시와 산업 등 국가 기반 대부분이 사실상 전무한 수준으로 무너진 상태에서 이룩한 지금의 결과가 얼마나 대단한 성과인지, 현시점에서 한 번쯤 짚어볼 필요가 있다. 단순 숫자로만 살펴봐도 작년 기준, 우리나라 방산 수출 수주액은 무려 1백54억4천만 달러로, 한화로 환산하면 약 22조 7천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경제적 가치를 창출했으니, 이만 보더라도 그 가팔랐던 변화의 과정이 절로 궁금해진다. 이에 방위산업 전문가인 최기일 교수는 지금의 K-방산 이전에 정부 주도로 움직였던 산업적 배경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최 교수는 우리나라 최초의 방위산업학 박사이자 현재 상지대학교 군사학과의 학과장으로 재직 중이다. “당시 소총과 탄환조차도 만들지 못하던 방산 불모지에서 불과 반세기 만에 글로벌 방산시장을 선도하는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냈습니다. 이는 정부가 주도한 중화학공업, 그리고 이를 토대로 병행 육성한 여러 산업 지원 정책들이 수반됐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한국전쟁 이후 실전에 즉각 투입 가능한 재래식 무기 체계의 대량 생산을 자의든 타의든 빠르게 구축해야 했던 배경도 직접적인 도움이 됐지요. 당시 분단 상황이라는 극적인 현실 때문에 긴박하게 출발했던 방위산업이 결과적으로 ‘지속적인 성능 개량(PIP, Product Improvement Process) 사업’으로 이어지면서 K-방산의 초대 품질과 성능 향상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었거든요.”

우리나라의 첫 방산 수출 사례는 1975년, 필리핀에 M1 소총탄을 수출한 것이 공식 기록이다. 하지만 대외적으로 보다 본격적이면서 가시적인 규모의 성과를 낸 건 2015년, 폴란드와 맺은 K9 자주포 계약이다. 당시 삼성테크원이 폴란드 정부와 체결한 계약을 살펴보면, 금액 규모는 3억 1천만 달러, 한화로 약 3천4백억원 수준의 전무후무한 성과였고, 내용은 2022년까지 K9 자주포 1백20문의 납품이었다. 당연하게도 기동하며 포사격이 가능한 ‘자주포’는 현대전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기반전력이자 핵심전력이다. 그렇기에 이미 미국과 러시아, 독일과 프랑스, 영국 등에서 제작한 성능이 입증된 모델은 차고 넘치는 상황. 그럼에도 당시 비교적 후발 주자였던 K9 자주포가 폴란드에서 수주 계약을 따낼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 답은 앞서 최기일 교수가 언급한 ‘지속적인 성능 개량 사업’에 들어 있다. “우리나라는 현존하는 유일한 분단 국가죠. 우리는 실존 위협에 대비한 ‘실전에 즉각 투입될 수 있는’ 재래식 무기체계의 대량 생산 구조를 이미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는 결국 지속적으로 무기의 성능 개량 사업을 추진해왔다는 얘기이고, 다시 말해 무기의 품질과 기능 개선, 그리고 성능이 안정적으로 발전해왔다는 근거이기도 합니다. ‘무기’라는 제품의 특성상 거래 시 최우선으로 검토해야 하는 부분은 당연히 성능의 신뢰성과 품질에 대한 안정성이겠죠.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방산은 이 부분에선 이미 검증이 완료됐다고 볼 수 있는 겁니다. 여기에 가격 경쟁력까지 한몫했고요.” 실제로도 그랬다. 2015년 K9 자주포의 폴란드 수주 이후, K-방산의 수출 규모는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2017년 31.2억 불(2018년 27.7억 불, 2019년 30.8억 불, 2020년 30억 불)에 이어 2021년에는 72.5억 불로 수주액이 크게 뛰면서 전 세계 상위 10개국 중 가장 큰 폭으로 방산 수출액이 증가한 국가가 되기도 했다. 놀라운 건 당시의 기록을 단 1년 만에 경신하며 2022년에는 무려 1백70억 불이라는 역대급 방산 수출액을 기록했다는 점이다. 이쯤 되면 K-방산이 이토록 호황인 이유가 슬슬 궁금해진다. 여기에는 여러 배경이 존재하지만 가장 힘을 실어준 건 예상 가능하게도 2022년 2월 24일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하 러-우 전쟁)일 것이다. 장기전으로 치달은 두 나라의 전쟁은 서서히 국제 정세를 뒤흔들었고, 전운은 도미노처럼 쏟아지며 주변 국가들을 덮쳤다. 특히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핀란드의 경우 확전 가능성에 대비한 사실상 준전시 체제에 가까운 긴장 국면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는데, 이런 안보적, 군사적 불안감은 올해 5억 4천만 유로(약 9천4백억원) 규모의 K9 자주포 1백12문을 도입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해당 수주가 더욱 의미 있는 건, 핀라드는 이미 지난 2017년에 K9 자주포 96문을 구입해 실전 배치 중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는 재구매 상황. 정보 전략상의 이유에서라도 한 국가의 무기를 두 번이나 대량 구매하는 건 흔치 않은 경우라서 특별한 의의를 가진다. 이에 대해 대한민국 방위사업청은 “K-방산의 안정적인 납기 이행에 따른 신뢰와 실전 운용 경험에서 파악된 우수한 성능에 대한 결과”로 평가하기도 했다.

배경은 더 있다. 여기에 중동 정세의 불안정성도 사실상 K-방산의 성장에 힘을 더했다.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인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침공하면서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결국 이스라엘과 이란의 직접적인 충돌로 번졌고, 이는 다시 미국의 군사적 참전으로까지 이어졌다. 이처럼 국제사회 곳곳에서 연쇄적으로 발발한 전쟁과 그에 따른 국제 정세의 불안은 각국이 안보 역량을 강화하는 계기로 이어졌고, 결과적으로 나토 NATO를 중심으로 한 유럽 국가들의 재무장 움직임을 가속화시키는 예측 불가의 위험한 불씨가 됐다. 결국 이 커다란 군사, 안보 재편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K-방산의 대규모 수주로까지 직결된 것이다.
그럼 여기서 드는 궁금증 하나. 이토록 긴박한 국제 정세를 고려했을 때, 관계 우호적인 국제적 방산시장에서 비교적 분리되어 있는 대한민국의 방산이 주목받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최기일 교수는 몇 가지 의견을 내놨다. “먼저 한국산 무기는 국제 방산시장에서 매력적인 가격 경쟁력으로 이미 입소문이 나 있습니다. 우수한 무기 성능이야 당연히 입증됐고요. 중요한 건 이 대목입니다. 구매국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정부의 지원 정책과 종합적인 군수 지원들이 함께 수반되면서 다른 국가에 비해 비교적 안정적인 납품 환경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가 유럽 및 중동 국가들 사이에서 돌게 된 거죠. 이런 조건들이 K-방산을 압도적인 경쟁 우위로 끌고 간 겁니다.” 그럼 현재 각국이 수주하려는 무기 체계에 관한 내용은 어떨까. 최근 일어난 몇몇 전쟁의 모습만 보더라도 드론과 미사일을 활용한 현대전의 양상은 이미 학습이 끝났을 것이다. “맞아요. 2022년 러-우 전쟁을 시작으로 2026년 현재 미국-이란 전쟁까지, 글로벌 국제 정세는 말 그대로 ‘신냉전(New Cold War)’으로 불릴 만큼 어느 때보다 긴장감이 팽배합니다. 이런 불안정한 정세는 당연하게도 자국의 군사력 확보를 위한 ‘군 현대화 사업’에 열기를 더했죠. 세계 각국은 여전히 재래식 무기 체계에 대한 의존도가 높습니다. 문제는 여기에 지상 화력 무기를 중심으로 하는 초장사정화와 초정밀화된 타격 체계까지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는 과제를 떠안게 된 거죠. 이 외에도 군용 항공 전력과 해군력 강화 움직임도 굉장히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맹점은 여기에 있어요. 세계 정세는 이런 급박한 상황인 반면, 지금 전통적인 군사 강대국들, 그러니까 미국과 유럽의 무기 생산 능력은 이미 현저하게 떨어져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당분간은 한국산 무기가 유일한 대안이 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타당하죠. 외신도 ‘K-방산이 글로벌 방산시장의 메이저 리그에 이미 진입했다’는 얘기를 하고 있고요.” K-방산이 메이저 리그에서 통한다면, 그건 과연 ‘무엇’ 덕분일까. 최기일 교수가 분석한 K-방산의 진짜 전력이 궁금해진다. “일단 글로벌 무기시장의 메커니즘은 기본적으로 정찰제 시장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정해진 규칙이 없어요. 그래서 결국 가격 경쟁력 요건과 우수한 성능을 갖춘 무기를 제때 공급할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예요. 좋은 가격에, 좋은 제품을, 제때 전달하는 것. 그런데 K-방산은 이 3박자를 모두 갖추고 있죠. 이것이 방산 수출의 독보적인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는 겁니다. 이뿐만이 아니에요. 방위산업은 제조업을 기반으로 하죠. 제조업은 다시 주변 산업들과 그 기술적, 인적 역량을 필요로 하고요. K-방산은 이런 인프라도 이미 전부 갖추고 있어요. 이건 세계 최강으로 꼽히는 우리나라의 조선업 환경만 봐도 알 수 있어요. 이런 인프라 환경도 분명 경쟁력으로 작용했을 겁니다. 참, 지난 한-미 회담 이후의 상황을 기억하시나요? 군사력 초강대국인 미국마저도 해군력 강화를 위해 신규 군함 건조뿐만 아니라 MRO(유지, 보수, 운영)까지 대한민국에 맡겼죠. 이건 러브콜이 아니에요. 제작해달라고 SOS를 보낸 거죠.” 그렇다. 이처럼 세계 방산시장에서 한국형 무기가 항공과 군함, 미사일 등 다양한 체계로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은 미래 경쟁에서 더욱 안정적인 저변을 확보할 수 있다는 분석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한국형 무기 체계의 다양성이 주목받게 된 배경에는 비교적 오랜 시간을 두고 이루어진 단계적인 성장, 그리고 국가 간 외교적 신뢰의 축적이 있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럼 그동안 얼마큼의 구매가 이루어졌는지 세계 각국의 장바구니를 살펴보자. 굵직한 경우만 추려보면 이렇다. 2011년 인도네시아가 T-50 계열의 항공기 16기를 구입한 데 이어, 2014년에는 필리핀이 FA-50 경공격기를, 2015년에는 앞서 언급한 폴란드가 K9 자주포를 대거 구입했다. 이후 2017-2018년에는 각각 노르웨이와 인도가 K9 자주포를 구입 및 현지 생산을 시작했고, 2021년엔 UAE가 천궁2를 약 35억 달러 규모로 구입하며 한국형 방공 시스템의 첫 수출이라는 역사적인 거래가 성사되기도 했다. 또 2022년 폴란드는 천무 다연장 로켓을 총 2백18문 규모로 구입했으며, 2023년과 2024년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라크가 천궁2를 각각 32억 달러, 28억 달러 규모로 사들이면서 한국형 방공망이 세계 곳곳에서 펼쳐지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의 K-방산 열풍은 앞으로 어떤 긍정적인 파급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더 있어요. 최근에는 페루에 K-2 전차 54대, K-808 차륜형 장갑차 1백41대 등 총 1백95대의 지상 장비 공급에 합의하는 총괄합의서가 체결됐죠. 수출 규모는 약 20억 달러(약 2조 9천억원) 안팎으로 예상됩니다. 이번 합의가 이행될 경우 중남미 지역 최대 규모의 방산 수출이라는 또 한 번의 기념비적인 기록을 세우게 된다는 거죠. 이런 성과가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곧 K-방산을 향한 평가와 전망의 바로미터가 되기 때문입니다. K-방산이 좋은 평가를 받으면, 이는 세계 투자 확대로 연결되고, 투자 확대는 자연스럽게 산업의 확장, 일자리의 창출로 이어지죠. 특히 방위산업은 고도의 최첨단 무기 체계를 필요로 하는 특징을 갖습니다. 현대전에서는 더 그렇고요. 이는 곧 방위산업이 기술 선도적인 하이테크 산업을 급속도로 끌어올리는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걸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안보는 물론 국가 경제와 산업력 확장에 있어 미래의 신성장 동력으로 이만한 산업이 없다는 얘기예요. 현 정부가 방산 수출 4대 강국 진입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미래 전장의 핵심은 첨단 무인 전력일 것이다. 앞으로는 로봇이나 인공지능 같은 첨단 과학 기술이 무기에 결합되는 형태로 발전할 테다. 최 교수는 그렇기에 앞으로의 방위산업은 더욱 섬세한 접근이 필요할 것이라고 조언한다. “K-방산은 이제 뉴 노멀 시대에 안보와 경제, 기술이 융합된 ’뉴 디펜스‘와 ‘뉴 스페이스’를 맞이하게 될 겁니다. 결국 여기에 걸맞은 기민한 대응이 필요할 수 밖에 없을 거예요. 그래서 하이테크 기술을 통한 ‘밀리테크 Mili-Tech 4.0’의 실현을 서둘러야 합니다. 지금의 좋은 분위기를 십분 활용해야 돼요.”
정부는 작년 K-방산의 육성과 혁신을 주요 국정 과제로 채택했다. 방산 4대 강국 진입을 목표로 기술 고도화를 빠르게 추진 중이다.

K9 자주포 155mm, 52구경 자주포. 최대 사거리 40km, 분당 최대 6-8발 연사. Shoot & Scoot, 사격 후 즉각 이동과 같은 뛰어난 기동성을 갖췄다.
주요 수출국 | 폴란드, 핀란드, 노르웨이, 인도 등
KF-21 보라매 다목적 전투기. 최고 속도 마하 1.8, 공대공 전투, 공대지 타격, 정밀 폭격의 기능을 수행한다.
주요 수출국 | 인도네시아
FA-50 경전투기이자 경공격기. 최고 속도 마하 1.5, 공대지 공격 및 요격, 근접 항공 지원 역할을 수행한다.
주요 수출국 | 필리핀, 이라크, 폴란드, 말레이시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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