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음주로 간과 신장이 기능을 멈췄고, 걷는 것조차 불가능했던 썸41의 보컬 데릭 위블리. 그런 그가 인생 최고의 컨디션을 누리게 된 것은 의외로 스프린트 훈련과 이런 식단이었다.

데릭 위블리는 말 그대로 술 때문에 죽을 뻔했다. 2014년, 전설적인 팝 펑크 밴드 썸41의 프런트맨인 그는 과도한 음주로 간과 신장이 기능을 멈추면서 병원에 실려 갔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회복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기타 연주마저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현재 46세인 위블리는 건강 관리의 모범생 같은 삶을 살고 있다. 냉수욕을 즐기고, 역류성 식도염을 피하기 위해 식단을 조절하며, 록스타에게도 수면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한때 패리스 힐튼과 공개 연애를 했고 에이브릴 라빈과 결혼식을 올렸으며 호텔 체크인 시 이름을 ‘잭 다니엘스’라고 적을 정도였던 그는 이제 자신의 방탕했던 시절을 매우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2024년에는 회고록 ‘워킹 디재스터’를 출간하며 캐나다에서 한부모 가정에서 자란 이야기부터 워프드 투어 시절의 난폭한 생활까지 모두 털어놓았다.

그동안 겪은 건강 문제들을 돌아봤을 때, 지난 12년 동안 가장 결정적인 순간, 그러니까 ‘와, 정말 큰일 났구나’라고 느꼈던 순간이 있었나요?
사실 제 건강 문제라고 할 만한 건 하나뿐이었어요. 과도한 음주로 인한 간부전이었죠.
몸이 완전히 망가졌을 때, 기억나는 순간을 하나 꼽아본다면요?
기억나는 순간이 딱 하나 있어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날은 제 인생 최고의 날이기도 했어요. 너무 많은 감정이 얽혀 있어서 지금도 아주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마치 어제 일처럼 느껴져요. 벌써 12년 전, 2014년 4월의 일입니다.
분명 그 사건은 제 삶의 모든 것을 바꿔놓은 계기였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더 좋은 방향으로 바뀌었어요. 당시에는 인생에서 가장 힘든 일이었죠. 제가 겪어본 것 중 가장 힘든 경험이었습니다. 고통스러웠고, 끔찍했고, 가능한 모든 면에서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일이었어요.
무엇보다 저는 거의 죽을 뻔했습니다. 장기들이 기능을 멈췄죠. 그런 상황이 있었어요. 육체적으로 저는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의료진이 저를 살려냈고, 그 상태에서 회복하는 과정은 정말 긴 여정이었습니다. 육체적인 측면만 놓고 얘기해볼게요. 심한 음주와 신경병증 때문에 오랫동안 제대로 걸을 수조차 없었습니다. 발의 신경이 손상됐거든요. 적어도 1년 동안은 걸을 때 극심한 통증이 있었고, 처음 몇 달은 아예 걷지도 못했습니다. 신경 손상에 더해 근육도 크게 위축됐어요.
신경 손상은 극복했지만, 이미 운동 기능은 완전히 망가진 상태였습니다. 제대로 된 문장을 말할 수도 없었어요. 한동안은 한 음절씩밖에 말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제가 마지막으로 의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도 잃어버렸죠. 기타였어요. 기타는 언제나 제게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거든요. 그런데 기타를 집어 들었는데 연주를 할 수가 없더라고요. 손가락을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머리는 분명 손가락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데, 그걸 손가락에게 전달할 수가 없는 거예요.
몸이 이렇게 무너졌는데 정신이 멀쩡할 수 없었죠. 수치심, 죄책감, 자책, 창피함, 혼란, 두려움이 한꺼번에 밀려왔어요. 당시 제 삶에서 좋은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긍정적인 것이라고는 살아남았다는 사실뿐이었어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좋아, 나는 살아남았어.” 적어도 붙잡을 수 있는 한 가지는 있었으니까요. 죽지는 않았다는 것. 이제부터는 회복하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병원에 있을 때 의사들은 제게 솔직하게 말했어요. “상황은 반반입니다. 저희가 당신을 살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실제로 상태가 다시 악화돼 중환자실로 돌아간 적도 몇 번 있었습니다. 몇 주 동안 병원에 있으면서 이제 회복되는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장기 기능이 다시 나빠지면서 피를 토하기 시작한 거예요. 그런 일이 몇 차례 반복됐습니다. 그래서 의사들은 계속 말했죠. “여기서 살아 나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병원을 나갈 수만 있다면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겠다고 스스로에게 맹세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뒤돌아본 적이 없습니다.
술을 가장 많이 마시던 시절에도 마음 한편에서는 ‘나는 록스타니까. 원래 이렇게 사는 거야. 지금 내 커리어를 제대로 즐기고 있는 거야’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나요?
네, 있었죠. 사실 저는 죽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렇게까지 건강이 나쁘다고도 생각하지 않았고요. 물론 술을 지나치게 많이 마시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줄여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요. 하지만 동시에 아주 큰 부분에서는 ‘이게 바로 나다’, ‘이게 내 정체성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당시에는 제가 스스로 만들어낸 어떤 이미지에 정체성을 완전히 묶어두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이미지가 저를 덮어버린 거죠.
이런 건 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에요. 누구도 “좋아, 나는 앞으로 술을 달고 사는 록스타라는 정체성을 만들겠어”라고 계획하지 않잖아요. 그냥 술을 좋아해서 마시다 보니 그 안으로 빠져들고, 결국 그런 사람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그런 순환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커지고 굳어져요. 그러다 보면 그 이전의 자신이 어땠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게 됩니다. 저도 병원에 실려 가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어요. 그런데 병원에 누워 있으면서 깨달았죠. ‘세상에. 나는 누군가 만들어낸 이미지 속에 나 자신을 가둬두고 있었구나.’
술을 끊기 전까지는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사실 그 결론도 제가 스스로 내린 건 아니었어요. 당시 저는 극심한 공포와 수치심, 혼란 속에 있었고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래서 음악 업계에서 비슷한 일을 겪어본 사람들에게 연락하기 시작했어요.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이기 팝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모든 걸 겪어봤잖아요. 모든 걸 봤고, 경험했고, 목격한 사람이니까요.
어려움에 빠졌을 때 가장 먼저 이기 팝에게 연락했어요. “스스로 널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당장 잊어버려. 그리고 진짜 네 자신으로 돌아가.” 그 짧은 한마디가 마치 얼굴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세상에, 맞아. 나는 내가 누구라고 믿었던 어떤 존재를 만들어냈구나. 그런데 그건 진짜 내가 아니었어. 내가 나라고 착각했던 존재였을 뿐이야.’
어린 나이에 성공한 것도 영향을 줬을 것 같아요. 썸41이 크게 성공했을 때가 스무 살 무렵이었죠? 첫 앨범이 나왔을 때도 겨우 스물한 살 정도였고요. 그 나이에는 누구도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잖아요.
맞아요. 앨범이 나왔을 때 제가 막 스물한 살이 됐을 거예요. 녹음할 때는 스무 살이었고요. 우리는 원래부터 엄청나게 노는 밴드였습니다. 멤버 전부가 그랬어요. 사실 십 대 때는 오히려 더 심했을지도 몰라요. 그런 생활 방식은 제가 서른 살 정도가 될 때까지 계속됐습니다.
정말 상황이 무너지기 시작한 건 서른두세 살 무렵이었어요.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변명하고 싶지는 않아요. 결국 그 길을 선택한 건 저 자신이니까요. 하지만 당시 제 삶에는 여러 가지가 동시에 무너지고 있었고, 저는 그것들을 견디기 위해 스스로를 약물과 술로 치료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좋은 이유는 아니죠. 오히려 끔찍한 이유였어요. 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감정적인 고통 때문에 술을 마셨지만, 나중에는 육체적인 고통도 컸어요. 몇 차례 큰 부상을 입었거든요. 특히 허리를 심하게 다쳤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새 앨범이 막 나와서 투어가 시작되는 시점이었어요. 집에 돌아가 병원을 다니며 부상을 치료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됐죠. ‘술을 마시면 통증이 별로 느껴지지 않네.’ 저는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늘 통증 속에서 살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파티를 하는 시간이 아닌 낮에도 술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점점 더 이른 시간부터요. 처음엔 나름대로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신나게 마실 땐 마시되, 그건 적절한 순간에만 하자.”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오전 10시인데 허리가 너무 아파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상황이 된 겁니다.
그렇게 중독 문제로 이어진 거군요.
제 머릿속에서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이번 투어만 버티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병원에 다니면서 치료를 받아야지.’ 저는 이전까지 중독을 느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늘 이렇게 생각했죠. ‘나는 중독될 사람이 아니야. 나는 그런 성향이 없어.’ 그런데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게 있었습니다. 정신적으로 중독되지 않더라도 술을 너무 많이 마시면 몸 자체가 술에 의존하게 된다는 사실이었어요. 바로 그게 저에게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당시 모습은 어땠나요? 매일 밤 무대에서 만취 상태였고, 공연이 끝나면 더 심하게 마셨던 건가요?
공연 전에는 정말 조절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무대에 오르기 전에 만취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공연은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였으니까요. 하지만 공연이 끝난 뒤에는 확실히 통제 불능이었죠. 술 말고도 문제가 더 있었어요. 저는 늘 수면 부족 상태였고, 정신이 몽롱했어요. 그래서 공연하는 일이 점점 힘들어졌습니다. 진짜로 하루에 10분밖에 못 잔 것 같은 날들도 있었거든요. 관객들 중에는 제가 취했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을 거예요. 공연도 엉망이었고 제 모습도 흐트러져 보였을 테니까요.
인스타그램에 본인의 혈관 상태가 16세 수준이라고 올리셨더라고요. 의사는 아니시지만, 어떻게 그런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하시나요?
말했듯이 병원에서 나온 뒤 저는 삶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물론 바로 된 건 아니에요. 시작하기까지 시간이 걸렸죠. 하지만 몸이 허락하자마자 물리치료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집으로 찾아오는 트레이너도 있었고, 영양사 도움도 받았어요. 먹는 것부터 생활 습관까지 모든 걸 개선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제 루틴은 점점 더 건강해졌고요.
특별한 비결이 있는 건 아닙니다. 정말 중요한 건 꾸준함이에요. 일단 물을 정말 많이 마십니다. 하루 거의 3리터 정도는 마시는 것 같아요. 가능하면 최대한 자려고 해요. 보통 7~8시간 정도는 자려고 노력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생녹즙을 마시는 겁니다. 매일 밤 직접 만들어 두기 때문에 아침에 바로 마실 수 있어요. 그리고 냉수욕도 합니다. 사실 그건 신체적인 효과보다는 정신적인 이유가 더 큽니다. 정말 하기 싫은 일이거든요. 특히 아침에 눈뜨자마자 차가운 물에 들어가는 건 더더욱요. 그런데 저는 일부러 그런 일을 합니다. 너무 힘들고, 전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먼저 해내는 걸 좋아해요. 왜냐하면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면 그 뒤에 찾아오는 다른 일들이 훨씬 쉬워 보이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일을 먼저 끝내버리는 건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하죠.
맞아요. 저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하는 편이에요. 스스로와 협상하는 걸 싫어하거든요. 발끝만 살짝 담가보거나 물 온도를 확인하지 않습니다. 그냥 걸어 들어가서 차가운 물에 몸을 던져요. 밖이 아무리 춥고 바람이 불어도 그냥 합니다.
그 다음에는 헬스장에 가요. 하루에 운동을 몇 번 하기도 합니다. 엄청난 수준은 아니지만 여러 종류를 나눠서 하죠. 아, 그리고 명상도 합니다. 어떤 날은 세 번 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한 번만 하되 아주 길게 합니다. 이런 것들이 저에게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가장 큰 효과를 준 습관들이에요. 그리고 매일 아침에는 꼭 책을 읽거나 팟캐스트를 듣습니다. 뭔가 배울 수 있는 내용이요. 어떤 날은 창의적인 활동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일기 같은 글을 쓰기도 하고, 그냥 머리를 움직이기 위해 무언가를 적기도 하죠.
저는 스토아 철학을 정말 좋아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스토아 철학을 조금씩 접하는 걸 즐겨요. 제 몸이나 정신에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하지 않는 날은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운동만 하거나 강도 높은 자기계발을 하는 건 아니에요. 작은 행동들을 10년 넘게 꾸준히 반복해온 결과가 지금의 저를 만든 겁니다. 지금은 기분이 정말 좋아요. 스무 살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더 강하고, 더 활력이 넘치고, 삶이 더 기대됩니다.
사실 저는 20대 때보다 지금이 더 젊게 느껴져요. 그걸 진짜 실감한 건 혈액 검사를 받기 시작하면서였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검사 결과가 조금 두려웠어요. 과거에 제가 했던 행동들을 생각하면 그럴 만했죠. 하지만 생물학의 놀라운 점은 손상을 되돌릴 수 있다는 겁니다. 특히 간은 재생 능력이 있잖아요. 고등학교 때도 배우는 내용이죠. 그리고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제 경우에는 몸 전체가 먼저 셧다운되면서 더 큰 손상이 발생하기 전에 멈춰버렸다는 거예요. 마치 몸이 “이 녀석이 이제 진짜 큰 사고를 치기 직전이네. 그냥 전원을 내려버리자”라고 판단한 것 같달까요.
마치 몸이 방어한 셈이네요. 축구의 수비수처럼요.
맞아요!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의사들이 그러더라고요. “당신은 운이 좋습니다. 장기적으로 남은 손상이 거의 없습니다. 지금은 완전히 정상입니다. 건강하게만 지내면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과 다를 게 없습니다.” 그 후 저는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했고, 인간 심리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정말 흥미롭거든요. 사실 모든 건 심리학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왜 어떤 사람은 처음 만난 순간부터 너무 잘 통하는지, 반대로 어떤 사람은 특별히 무례한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같이 있는 게 불편한지, 어떤 사람은 왜 반대로 매력적이게 느껴지는지, 그런 것들이 정말 흥미롭습니다.
한마디로 ‘바이브의 과학’이네요.
맞아요. 어떤 사람은 처음 만났는데도 “세상에, 우리는 원래부터 절친이었던 것 같은데?”라는 느낌이 들잖아요.

운동 이야기도 해보고 싶어요. 실제로 어떤 운동을 하시나요? 웨이트인가요, 유산소인가요, 아니면 둘 다인가요?
저는 몇 가지 부상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들을 관리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허리 디스크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운동의 상당 부분은 코어 강화, 신체 회복력, 저항 운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게다가 어린 아이 둘을 키우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늘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만들죠. 갑자기 번쩍 안아야 하거나 이상한 자세를 취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트레이너와 저는 이런 근육들을 ‘보여주기 위한 근육’이 아니라 ‘실제로 쓰는 근육’이라고 부릅니다. 소위 ‘쇼 머슬’은 따로 있죠. 그런 건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만드는 근육들이고요. 하지만 제 관심사는 그게 아닙니다. 저는 삶과 여행, 육아 같은 현실적인 요구를 견딜 수 있을 만큼 강한 몸을 만드는 데 더 관심이 있어요. 물론 근육량을 늘리는 건 장수와 골밀도 유지에도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웨이트 트레이닝도 많이 합니다. 다만 의도적으로 ‘운동만 하는 사람처럼 보이는 몸’은 원하지 않아요.
그냥 강한 몸을 원할 뿐입니다. 유산소 운동도 많이 합니다. 일립티컬, 자전거, 수영, 러닝머신 등 다양하게 하고요. 특히 전력 질주를 좋아합니다. 노래를 부르는 데 필요한 폐활량을 키우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고 느끼거든요. 무대 위에서 공연할 때를 기준으로 보면 짧고 강한 스프린트만큼 효과적인 운동은 없었습니다.
오, 제가 사람들에게 자주 하는 질문이 있어요. ‘마지막으로 전력 질주한 게 언제인가요?’라고요. 어떤 사람들은 ‘4년 전쯤?’이라고 답하더라고요.
정말 그래요. 일상에서 전력 질주할 일은 거의 없으니까요. 처음에 트레이너가 스프린트를 하자고 했을 때 저는 “전력 질주요?”라고 되물었습니다. 그는 “그래요. 짧게 몇 번만 뛰면 돼요”라고 했죠. 저는 “내가 그걸 왜 해야 합니까? 그게 무슨 효과가 있다고요?”라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예전에도 투어를 앞두고 폐활량을 키우려고 일립티컬을 45분씩 탄 적이 있어요. 6주 동안 그렇게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무대에 올라가면 “운동을 하나도 안 한 것 같은데?”라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반면 스프린트를 단 3일만 해도 그 어떤 유산소 운동보다 효과가 좋았습니다.
먹고 마시는 습관은 어떻게 바꾸셨나요?
제 경우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가수이다 보니 목 상태에 영향을 주는 음식은 많이 피해야 합니다. 그게 좀 짜증나는 부분이죠. 제가 좋아하는 음식들이 많거든요. 심지어 건강에 나쁜 음식도 아닌데 못 먹는 경우가 많아요. 제 식단을 설명하자면 지중해식 식단에 가까운 페스코 베지테리언 식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역류성 식도염을 유발하지 않는 조건이 추가돼요. 즉 산성이 강한 음식은 먹지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양파도 안 되고, 마늘도 안 되고, 후추도 안 됩니다. 위산 역류를 일으킬 수 있는 음식은 전부 피하고 있어요. 그렇게 산 지 꽤 오래됐습니다.
금주 후 첫 1~2년 동안은 의사들이 고기를 먹으라고 권했습니다. 저는 20대 중반부터 채식을 했는데, 특별한 이유라기보다는 고기가 소화가 잘 안 됐기 때문이에요. 맛은 좋아합니다. 그런데 먹고 나면 몸이 무겁고 피곤해지고, 속도 불편했어요. 그래서 피하게 됐죠. 하지만 병원에서 나온 직후에는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의사들 권유대로 다시 고기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몸이 회복된 뒤 지금의 지중해식·저산성 식단으로 전환했어요. 그 이후로는 정말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양파와 마늘 같은 맛있는 음식들을 못 먹는 건 아쉽지만, 몸 상태만 놓고 보면 지금이 가장 좋습니다.
효과가 있다면 그걸로 된 거죠. 나이가 들수록 그런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 같아요. 저도 단 음료를 끊었습니다.
맞아요. 저한테도 술보다 초콜릿이 훨씬 어렵습니다. 술은 아예 생각도 안 나요. 병원에 실려 갔을 때 바로 깨달았거든요. ‘이건 더 이상 내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끊는 건 의외로 어렵지 않았습니다. 반면 초콜릿은 정말 힘들어요. 그래서 초콜릿 맛 단백질 파우더 같은 걸 활용하면서 욕구를 달래려고 합니다. 조금 더 건강한 방식으로요. 대신 디저트나 설탕, 피자, 맥도날드 같은 음식들은 피합니다. 어쩌면 제가 먹는 것보다 먹지 않는 것들이 지금의 건강에 더 큰 영향을 준 것 같아요.
사실 건강 전문가들이 몸에 안 좋다고 말하는 것들은 거의 다 맞습니다. 어릴 때는 이해가 안 되잖아요. “일주일에 세 번 맥도날드를 먹으면 왜 안 되는데?” 그런데 나이가 들면 깨닫게 됩니다. 그 사람들이 다 맞았다는 걸요. 정말 짜증나는 일이죠. 며칠 전에도 친구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어요. 친구가 “대체 뭘 하길래 그렇게 건강한 거야?”라고 묻더군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답했어요. “사실 다 알고 있는 것들이야. 우리 몸에 뭐가 안 좋은지는 이미 알고 있잖아.”
술을 마시던 시절에는 주변 사람들이 물을 마시는 걸 보면 오히려 약해 보인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하루에 잭 다니엘스 한 병을 마셨고, 물을 보면 거의 화가 날 정도였어요. ‘잭 다니엘스 안에도 수분은 들어 있잖아.’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통증이 없나요?
네. 지금은 통증 없이 살고 있습니다. 물론 허리 디스크는 언제든 다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는 문제예요.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저는 주변 근육을 충분히 키워서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농구를 해요. 원하는 만큼 자주 하지는 못하지만요. 집 앞에 농구 골대가 있다면 훨씬 더 자주 했을 거예요. 문제는 어딘가로 가야 한다는 거죠. 집 근처에 사는 친한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는 펑크 밴드 오프스프링의 베이시스트입니다. 우리는 정말 오래된 친구예요. 그 친구도 농구를 좋아해서 둘 다 투어가 없을 때면 함께 농구를 하려고 합니다.
예전 공연 계약서에 들어가던 요구사항, 그러니까 배달 요청에는 뭐가 있었나요? 잭 다니엘스가 1순위였나요?
말했듯이 우리 모두 엄청난 파티광이었어요. 각자 취향은 달랐지만 기본적으로는 술이 중심이었습니다. 맥주도 엄청 많았어요. 재밌는 건 밴드 멤버 중에 맥주를 즐겨 마시는 사람은 거의 없었는데도 항상 잔뜩 준비해뒀다는 거죠. 이런 걸 준비해달라고 했던 것 같아요. 큰 잭 다니엘스 한 병. 큰 보드카 한 병. 큰 테킬라 한 병. 와인 네다섯 병에서 여섯 병. 그리고 엄청난 양의 맥주. 한동안은 정말 좋았습니다. 더 무서운 건 그게 실제로 도움이 되기도 했다는 사실입니다. 몇 잔 마시면 공연도 더 잘됐어요. 모든 게 조금 더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지는 느낌이 있었죠. 그런 경험이 있으니까 계속 마시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으면서 양은 점점 늘어나고요. 그러다 어느 순간 보이지 않는 선을 넘어버립니다. 그때부터는 술이 나를 돕는 게 아니라 방해하기 시작하죠. 그런데도 머릿속에서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술이 나를 도와주고 있어.’ ‘아마 조금 더 마시면 괜찮아질 거야.’ ‘내가 충분히 안 마셔서 그런 거야.’ 문제는 이런 판단을 이미 취한 상태에서 내리고 있다는 거죠. 저는 원래 굉장히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말수가 적은 편이에요. 그래서 술을 핑계로 삼기도 했습니다. ‘이걸 마시면 좀 더 적극적이 될 수 있어.’ ‘내 껍질을 깨고 나올 수 있어.’ 그런 식으로요.
지금 하는 일들 중에 21살의 데릭이 봤다면 엄청 놀렸을 것 같은 게 있나요?
전부요. 정말 전부 다요. 21살의 제 눈에 지금의 저는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는 사람일 겁니다. 그 나이에는 성공한 록스타로서 매일 파티를 하며 살고 있었잖아요. 그때는 진짜 영원히 그렇게 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내가 왜 변해야 하지?’ ‘난 평생 이렇게 살 거야.’ 정말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누군가 비건이라고 하면 그것만으로도 엄청 충격적인 일이었죠. “뭐라고? 쟤 비건이래?” 하고 놀랄 정도였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