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파뉴의 축복을 담은, ‘돔 페리뇽 빈티지 2018’ 공개의 밤

2026.06.26.전희란

돔 페리뇽 ‘레 벨라시옹 2026’의 그날 밤, 내가 들이켠 어떤 징조.

레벨라시옹이 열린 구겐하임 미술관 빌바오.

징조였다. 빌바오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이끌리듯 ‘센티멘탈 밸류’를 보았고, 구겐하임 미술관 빌바오에서는 에두아르도 칠리다의 ‘Embrace(포옹)’이라는 이름의 작품을 한참 바라보았다. 나는 여전히, 베일에 쌓인 ‘돔 페리뇽 빈티지 2018’을 만나기 위한 시간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2019년, 돔 페리뇽의 ‘셰프 드 카브’로 공식 임명된 뱅상 샤프롱은 ‘레벨라시옹 Révélations’ 이라는 이름으로 매해 새로운 와인을 공개하는 여정을 마련해왔다. 그리고 미스터리가 마침내 ‘구현 Reveal’으로 옮겨갈 장소를 매해 신중히 선택해왔다. 여섯 번째인 올해는 스페인 빌바오에서 열렸다. 매해 새로운 와인을 공개하는 자리이니 특별하지 않은 해는 없겠지만, 이번에는 조금 더 특별했다. 뱅상 샤프롱이 포도 수확부터 참여한 첫 빈티지, 돔 페리뇽 빈티지 2018를 공개하는 해인 까닭이다. 그리고 와인 애호가라면 ‘2018’이라는 숫자 앞에 설레지 않을 수 없다. 말하자면 상파뉴에 ‘대운’이 깃든 축복의 해이니까. 매해 행사에 참석해온 기자들은 뱅상이 이토록 들뜬 모습은 처음 본다며 자신들마저 들떠 있었다.

PLACE. 올해 그들은 ‘장소’에 대해 거듭 말했다. “우리는 종종 장소를 공간과 시간이 교차하는 지점이라고 말해요. 공간과 시간이 만나는 순간, 비로소 감정이 탄생하게 되죠.” 돔 페리뇽 빈티지 2018을 만나기 전, ‘프리 아상블라주 2025’를 공개하는 자리에서 뱅상은 이렇게 말했다. 그에 따르면 2025년은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는 해”였다. 일찌감치 프리 아상블라주 2025를 마신 프랑스 아티스트 클로딘 드라이는 곧장 시를 썼다. 그리고 아름답게 심어진 단어들은, 우리가 연결된 장소에서 목소리로 피어났다.

대지의 심장에서 솟구치는 분출 / 하늘을 향하여 / 하나의 폭발 / 지구가 터뜨리는 불꽃놀이 / 수많은 파편들로 이루어진 분절 / 하나의 심장 / 현실이면서도 상상의 것 / 붙잡아두면서도 동시에 놓아준다 / 마치 터져 나오며 / 여러 요소들을 솟아오르게 할 것처럼 / 두 세계 사이의 한 세계.

베일을 벗은 돔 페리뇽 빈티지 2018.

프리 아상블라주 2025를 시와 함께 삼키는 동안, 그들이 거듭 말하는 ‘장소’라는 개념이 머리 이전에 몸으로, 마음으로 스민다. 돔 페리뇽 빈티지 2018을 만날 채비를, 이제는 마친 것 같았다.

“포옹보다는, 포용의 느낌이죠.” 장소를 바꾸어 구겐하임 미술관 빌바오의 작은 전시장에서 돔 페리뇽 2018을 마침내 입에 들인 기자들에게 뱅상은 포옹과 포용의 차이를 제스처로 설명했다. 그러곤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덧붙인다. “Tender”. 도슨트의 설명을 듣고 나서 다시 작품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한 모금을 더 끼얹는다. 마치 입안의 평수를 넓히듯 공감각적이며 부드럽고, 동시에 구조감 역시 탄탄한 이 와인을 마시며, 수많은 땅의 시간들을 가장 아름다운 형태로 병 안에 붙잡아둔 마음 앞에 자못 왈칵한다.

틸다 스윈튼과 올리비에 사이야르의 퍼포먼스, ‘House of Gestures’.

틸다 스윈튼은 이번 레벨라시옹을 위해 오래 함께 작업해온 패션 역사학자 올리비에 사이야르와 ‘House of Gestures’란 이름의 퍼포먼스를 준비하며 이렇게 설명했다. “퍼포먼스를 통해 우리는 진실하고 독창적인 무언가가 일어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경험이 되기를 바라요. 위대한 샴페인은 이러한 생각과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죠. 둘 다 재현이나 해석이 아니라 공간과 진정한 존재감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죠.” 같은 소재, 다른 형태의 옷을 끊임없이 갈아입는 무언의 퍼포먼스를 하는 틸다는 몸의 일부를 떼어낼 듯 때로는 처절했고, 옷과 하나가 된 듯 대담했고, 용감했고, 어떤 때는 새침했고, 한번은 사람이 맞나 싶게 서늘했다. 다음날 퍼포먼스를 한번 더 보았을 때, 즉흥성이 이 극에서 얼마나 주요한지 깨달았다.

틸다가 입은 옷의 거대한 버전 같은 구겐하임 빌바오의 구조.
한껏 들뜬 표정의셰프드카브뱅상샤프롱.

샴페인은 살아 있는 풍경이며, 와인은 우리를 그 풍경 속에서 인식하도록 한다. 장소라는 개념은 단지 추상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다. 레벨라시옹 2026을 통해 돔 페리뇽 빈티지 2018을 만나는 일은 상파뉴에서 가장 큰 규모의 그랑 크뤼와 프리미에 크뤼 포도밭을 지닌 돔 페리뇽의 175개 핵심 포도밭과 작은 구획 ‘Lieu’의 이름을 소리 없이 부르는 일이고, 기억하는 일이며,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이었다. 시간이 놓이는 장소가 있다면, 그것을 가장 적확하게 캡처하는 것이 바로 돔 페리뇽이 하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그 모든 것과 연결되기에 레벨라시옹은 탁월한 광경이고, 여정이었다. 가늠할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이 교차되는 지점에서 살아 있는 풍경을 만드는 샴페인,그리고 틸다의 제스처. 이 모든 것이 하나의 내러티브처럼 감정의 형태로 다가왔다.

레벨라시옹의 디너 현장은 돔 페리뇽 보틀의 깊은 펀트처럼 보였다.

레벨라시옹 2026 직후의 인터뷰에서 “돔 페리뇽 빈티지 2018을 어떤 예술 작품에 비유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뱅상과 자크는 “하나의 고정된 예술로 단정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도, ‘제임스 터렐’이라는 이름 앞에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몇 년 전 나오시마에서 본 제임스 터렐의 작품이 떠올랐다. 눈을 뜬 채로 캄캄한 공간을 더듬듯 들어간 뒤에 천천히 어둠이 잦아들던 순간.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던 것이 서서히 드러나 선명해지던 경이의 체험. 그리고 어제 들이켠 돔 페리뇽 빈티지 2018, 그리고 샴페인이 되는 여정 가운데 있는 프리 아상블라주 2025를 떠올린다. 감은 눈앞에 어떤 빛이 현현했다.

경고 | 지나친 음주는 뇌졸중, 기억력 손상이나 치매를 유발합니다. 임신 중 음주는 기형아 출생 위험을 높입니다.

전희란

전희란

피처 에디터

전희란은 노포부터 파인 다이닝에 이르는 미식 전반과 술, 삶과 여행, 사람을 취재하는 'GQ KOREA' 피처 에디터입니다.

더보기
Sponsored by
Dom Pérignon
Photo
©Harold de Puymor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