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오상진과 박신혜

2010.05.03정우영

아나운서 오상진은 배우 박신혜와 유명인으로 사는 미묘한 마음을 터놓는다. <GQ>는 그들 옆에 앉아서 들었다. 그리고 여기에 기록해두었다.

한참 푸념을 늘어놓다 가도 앞날을 떠올리며 빙그레 웃는 것. 짝궁이란 말은 배우와 아나운서, 20대와 30대 사이에도 있었다.

(오상진)요즘 어때? (박신혜)드라마 끝나고 한동안 많이 힘들었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왜? <미남이시네요> 캐릭터가 조금 셌잖아요. 내 평소 모습을 연기한 게 오히려 후유증이 크더라고요. 촬영장 분위기가 몸에 배어 있던 터라 많이 외로웠어요. 그게 나였는지 아니면 지금 이게 나인지 헷갈렸고요.

내가 네 나이 때는 사실 일로 고민한 적이 없었어. 막연히 어떻게 행복해질까 생각하고 있었고, 이런저런 장애물이 있어도 시행착오의 과정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희망만 가졌을 나이에 넌 이미 그 일을 하고 있잖아. 행복하니? 데뷔하기 전에는 지금보다 더 큰 꿈을 꿨어요. 그런데 이제 성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꿈보다는 책임감이 커요. 행복하단 생각은 하지만, 이런저런 고민이 많네요.

널 지켜보는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지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내가 너만 할 때는 오늘 하루 어떻게 때울까, 정도가 최대 관심사였는데 말이야. 네 나이 때의 일상적인 생활을 겪어보지 못한 데 대한 미련은 없니? 워낙 어릴 때 데뷔 했잖아? 물론 있죠. 이를테면, 친구들이랑 카페나 식당에 가서 떠들고 놀면 사람들이 “박신혜 목소리 되게 크다” 한다고요. 다른 젊은 친구들이 좀 시끄럽게 노는 건 자연스럽게 여길 텐데 말이죠. 친구 집에 가서 자는 것도, 친구들하고 근교에 놀러가는 것도 힘들어요. 저녁에 친구 좀 만나고 온다 해도 부모님께서 걱정하시니 말이죠.

내게 연예인은 동료긴 하지만, 경쟁자는 아니잖아. 그래서 좀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알아갈수록 화려한 순간보다는 그 이면에 가진 어두운 면이 더 잘 보여. 우리나라에서 연예인은 말실수도 없이 사치도 없이, 그저 바르게 살아야 하잖아. 근데 사람이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사는 게 가능하니? 사고도 좀 칠 수 있고 그런 거지 뭘. 연예인에게 화려함과 즐거움을 바라는 동시에 도덕적인 엄격함을 요구하는, 이중 잣대를 들이댄단 말이야. 앞에서는 와 예쁘다 멋지다, 하다가도 제가 없는 자리에서는 뭐야 예쁜 척만 하고, 지들이 뭐 그렇게 대단해, 그러더라고요. 악플 같은 것도 그래요. 정말 심한 경우에는 못 참겠어서 미니홈피에 대놓고 반박한 적도 있어요.

선배님들은 다들 옛날이 연예인 하기 좋았다고 그러시더라고. 사람들이 나에 대해 무슨 욕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건 알 수가 없었다는 거야. 그래서,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니? 몇 번 있었죠. 문제는 언제나 사람들과의 관계였어요. 앞에서는 한없이 달콤한 사탕발림을 하는데, 돌아서면 다르고. 연예인이 힘든 게 그런 부분인 것 같아요.

연예인들이 사기를 제일 잘 당한데. 연예인이 되면 나도 나지만, 친구나 가족의 문제가 되는 경우도 많아요. 내가 피해 받는 것도 억울한데, 제 가족이나 친구들까지 피해를 보면, 이게 다른 사람을 피해주면서까지 해야 될 정도로 그렇게 가치 있는 일인가?, 싶은 거죠.

아나운서는 직장인이다, 하는 인식이 많이 있어서 그렇게 불편하진 않은데. 방송국이라는 조직에 속해 있다 보니 보호되는 부분도 있고. 연예인을 직업으로 받아들이기엔 일상이 너무 극단적이에요. 극단적으로 행복했다가, 극단적으로 외로워지죠. 그래서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많이 의지하려고 해요.

고등학생 땐 시집 빨리 간다고 그러더니. 일단 남자친구부터 좀 만들어보고요.

기획사에서 뭐라고 안 할까? 만나면 뭐라 할걸. 그렇겠죠. 전혀 신경 안 쓰는 것 같아도, 막상 또 누군가 만나면, 배우라는 게 이미지가 있으니까. 솔직히 만나고 헤어질 수도 있지. 그런데 A가 B랑 만나다 헤어지면 A를 봐도 B가 생각나는 거 있잖아. 그건 연기자한테도 드라마에서도 절대 플러스가 아니니까. 어렸을 때 많이 만나보는 게 좋기는 한데. 사람 나이 먹으면 간사해진다. 근데 뭐랄까, 공적으로 만난 사람하고 관계를 유지하는 건 좀 어려운 일 같아요. 격식을 갖춰야 하는 게 싫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고, 오히려 좀 더 다가가고 싶을 때도 그 사람이 딱 벽을 세워버리면 어떻게 할지 모르는 상태가 돼버려요. 사람들이 가지는 어떤 편견이 있잖아요. 어떤 배우랑 드라마 같이 하면 쟤네 사귀는 거 아니냐 하는.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가능성이 높은 게, 배우는 엄청난 수의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어요. 그걸 뚫고 나와서 만나는 건 현실적으로 너무 어려워요.

그래도 넌 성격이 좋아서 두루두루 다 친해지는 편이잖아? 막상 작품이 끝나면 선뜻 연락하기 어려워요. 워낙 나이 차가 큰 분들과 작품하다 보니 더 그렇더라고요.

하긴 네 나이 때 친구들을 만난 건 <미남이시네요>가 처음이었지? 늘 띠동갑 이상이었어요. 나이대가 맞으니까 아무래도 좀 더 편하더라고요. 근데 오빠도 그렇지 않아요? 제 주변 분들이 다 상진 오빠는 엄숙한 아나운서 안 같다고, 친근하다고 그러던데.

아나운서가 그런 거 같아. 옆에 있는 사람들을 올려주는 역할. 오늘 사진만 해도, 신혜만 예쁘게 나온다면 나는 괜찮다고, 생각해. 오빠는 9시 뉴스 진행해보고 싶진 않아요?

하면 좋겠지만, 아직 하겠다는 생각이 없다. 한참 모자라고, 헛된 욕심이지 뭐. 너는 어떻게 되고 싶다 하는 꿈 없니? 당장 그렇게 큰 꿈은 없어요. 좀 길게 봐요.

전원주 선배님처럼? 화려한 스타덤에 오르는 것도 물론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연기자로서 점점 상승 곡선을 그리는 거요.

그러니까 이를테면 소설가에게 ‘어떤 소설가가 되고 싶으세요?’ 라고 물으면 “저는 마지막 작품이 최고의 걸작이 되는 작품을 쓰는 소설가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하는 소설가 인건가? 신혜가 그런 배우가 되면 좋겠네. 예, 제 목표도 그런 거예요. 시청자 분들과 함께 늙어가고 싶어요. 고두심 선배님처럼. 그리고 마지막은 아이들과 함께 있고 싶어요.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거니? 오드리 헵번이구나. 초등학교 3~4학년 때부터 제가 직접 애기 기저귀도 갈고 그랬어요. 애기가 너무 예뻐서, 정말로.

하긴 네가 <환상의 짝꿍>때 정말 잘했지. <환상의 짝궁>에 나오는 좀 얄미운 애들도 결국에는 사랑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면 나중 말고 지금 제일 하고 싶은 건 뭐야? 기차여행 해보고 싶어요. 국내 배낭여행.

나도. 여행가고 싶다. 책을 한 30권 정도 사서 파리 같은 데서 책 보면서 한 달 정도 있다 오면 좋겠어. 우리 둘 다 하고 싶은 게 너무 소탈하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별로 크지 않죠. 나는 ‘우주정복’, 이럴까 봐요.

맞다. 어렸을 때 꿈은 가수이지 않았나? 원래 가수 준비했죠.

춤도 잘 추잖아. 에이, 오빠 이젠 다 굳었더라고요.

근데 가수건 배우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직업은 다 똑같은 것 같아. 늘 거기에 따르는 어두움이 있잖아. 오빠도 그래요? 오빠는 조명 들어오면 어떤 기분이 드는데요?

덥다. 하하.

일단 너무 뜨겁고, 공기도 안 좋고, 대한민국 제작 환경이 너무 열악한 거지. 방송사 직원으로서 나도 반성해야 할 부분이지만.. 오빠도 거기에 책임감을 느껴요? 그럼. 나도 책임감과 애사심이란 게 있다고. 하긴, 오빠랑 같이 할 땐 안정감이 있었어요. 제동 오빠가 판을 벌려놓으면 오빠가 하나씩 하나씩 쓸어 담잖아요.

왜 <환상의 짝궁>할 때, 진짜 밉상인 애 나와서 다들 신경 날카로워졌던 거 기억나니? 그때 너만 그 아이 챙기고 따뜻하게 대해줬던 거. 그거 보면서 나는 어른으로 보는데 얘는 같은 눈높이로 보는구나, 참 누나 같은 마음이구나, 했어. 너 보면서 반성 했다고. 저도 울컥하긴 마찬가지 였지만 참자 참자 했어요. 애가 나쁜 건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요.

네가 그렇게 마음을 쓰니까, 나도 항상 너를 주변에 두고 도와주고 싶은 동생으로 여기는 거야. 앞으로가 더 힘들다. 이제 시작이다. 저도 이제 시작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내가 어디쯤은 왔구나, 라고 생각할 때가 또 시작이더라. 나도 이 정도면 방송 경험이 꽤 쌓였구나 하면서 자신감 있게 라디오에 도전했는데, 이건 또 새로운 세상이더라고. 매번 새로운 시작인 거지. 저도 라디오 해보고 싶어요!

    에디터
    정우영
    포토그래퍼
    김종민
    스탭
    스타일리스트/서수경
    기타
    오상진이 입은 그레이 수트는 루비암, 하운드 투스 블레이저는 보다, 하늘색 스트라이프 셔츠는 E.H.S, 버튼다운 화이트 셔츠와 네이비 트윔 팬츠는 이스트하버 서플러스, 타이는 타이유어타이, 포켓스퀘어는 브레이, 모두 샌프란시스코 마켓 제품. 박신혜가 입은 블랙 원피스는 모스키노, 화이트 민소매 원피스는 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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