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날 좀 괴롭혀줘요 1

2012.05.24GQ

조여정은 자신을 괴롭혀 달라고 했다. 모든 걸 버렸으므로.

검정색 드레스는 로베르토 까발리, 황금색 팔찌는 마이클코어스.

검정색 드레스는 로베르토 까발리, 황금색 팔찌는 마이클코어스.

<후궁>의 김대승 감독이 노출 장면에서 짜증 한번 안 부렸다고 칭찬했다. 솔직히 말하면, 투정 부릴 위치가 아니라서 그랬겠다 싶었다. 맞다. 영화를 제대로 할 수 있는데, 파이팅 말고 뭐가 또 필요하겠나. 막 여배우 놀이를 할 수 있는 위치도 아니고.

20대에 스타가 될 수 있었다. 메이저리그 중계 때, 이닝 사이마다 타월 광고 모델로 나왔다. 신드롬처럼 남자 팬이 꽤 생겼다.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맞아떨어졌다. 사실, 그 광고가 부각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연기하면서 너무 힘들 때였다. 배우에게 대표작이 없으면 어깨가 처진다. 대표작 하나 없는데, 광고를 많이 한다는 건 자랑이 아니다. 그러니 괴로울 수밖에.

광고만 많이 찍는 여자 연예인 많지 않나? 돈 많이 버는 거 좋다. 너무 좋은데, 치열하게 작품으로 할 얘기가 있을 때 광고를 하고 싶다. <방자전> 이전에는 사생활로 관심을 받는다든지 광고로 튄다든지 이럴 뿐이었다. 작품을 통해 이미지가 만들어져서 대중에게 팔려야지 단발성으로 관심 받는 것이 너무 속상했다. 난 배우가 되고 싶다.

여지껏 배우이지 않았나? 열아홉 살부터 줄곧 연기를 해왔다. 그렇게 생각해주면 고맙다. 하지만 나는 작가주의 배우이고 싶다. 악보가 좋아야 노래가 좋듯이, 뛰어난 연기는 뛰어난 시나리오에서 나온다. 메시지나 시나리오가 중요하다. 나도 모르는 부분을 감독이 끄집어내 주고, 그것들이 쌓이면서 좋은 배우가 된다고 생각한다.

좋은 배우, 라는 말은 너무 막연하다. 역시 상 같은 걸 받아야 자신이 제대로 배우가 되었구나 싶을까?
영화제엔 초대받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레드 카펫에 선다는 것만으로도 4, 5등은 했다는 증거니까. 내가 배우가 되었다고 느낄 땐 제대로 된 작품을 했을 때다. 언제 올지 몰라 항상 기다릴지는 몰라도 그게 배우라는 직업 같다.

영화 제작자나 감독들은 준비된 여배우가 없다고 말한다. 그런가? 승부욕이 생긴다.

그들이 조여정을 주목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진부하게 들리겠지만, 난 모든 것을 버렸다. 노출이 오랫동안 빛이 들지 않던 배우가 기회를 잡기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난 항상 오픈마인드였다. 아무도 내게 노출이 있는 시나리오를 주지 않을 때도 <색, 계>를 보며 이런 게 들어오면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 했다. 지금 사람들이 또 노출이야? 이러면서 걱정을 하지만.

그런 걱정들이 모여 왜곡된 이미지를 만들 수도 있다. 정말 그렇게 될 수도 있다. 어쩌면 다음 작품을 더 오래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방자전>을 하기 전까지 십 년을 기다렸다. 내 경쟁력은 두려움이 없다는 점이다.

다음 작품도 그럼…. 그렇지는 않을 거다. 왜냐하면 두렵지 않다고 이미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건 아니다. 모든 이미지를 불사하고 <후궁>을 선택한 건 이 영화가 분명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겐 명분이 있었다. 발랄한 현대극인 <로맨스가 필요해>를 끝내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여자를 연기하고 싶었다.

만약 <색, 계> 같다면? <색, 계> 말고 뭐가 있나? 그 영화는 궁극이다. 노출이 있는 시나리오를 계속 넣는다면 용감한 거다. 날 설득하려면 <방자전>이나 <후궁>보다 노출의 명분이 확실해야 한다. 그러긴 쉽지 않을 거다.

귀여운 이미지 때문에 다양한 역할을 맡지 못한건 아니었을까? 그런 이미지를 벗기 위해 노력했나? 노력 안 했다. 만약 노력했다면 성형했을 거다. 내 얼굴이 조금만 더 밋밋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주변상황이 문제일 뿐이지, 외모 문제는 아니다.

잘 안 될 때, 화가 나진 않았나? 너무 화가 났다. 십 년 동안 TV를 못 봤다. 나는 TV에 나와야 되는 사람이니까. TV 볼 시간에 다른 걸 했다. 책 한 장 더 읽고, 영화 한 편 더 보고. 누군가가 각광을 받는다면 왜 저렇게 잘될까 하고, 공부하는 마음으로 봤다.

    포토그래퍼
    윤석무
    스타일리스트
    박지석
    메이크업
    손주희(정샘물 인스피레이션)
    어시스턴트
    하지은, 유미진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