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읽고 싶은 책, 곁에 두고 싶은 물건

2014.12.26GQ

긴 겨울 밤, 아무 페이지나 펴 읽고 싶은 책. 그리고 그 곁에 두고 싶은 물건.

[ JAMIESON’S ]

태어나서 가장 처음 읽은 소설, 그러니까 전래동화처럼 교과서에 나오는 것 빼고 직접 꺼내 들어 보기 시작한 첫 번째 소설은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쯤이었던 것 같다. 운동회날 점심 시간, 여기 저기 퍼져서 도시락을 먹었다. 부모님과 함께 들어간 곳이 공교롭게도 도서관이었는데, 거기서 <셜록 홈즈>를 발견했다. 낡고 닳은 그 책의 질감과 냄새가 아직도 생생하다. 조잡한 삽화 같은 것도 있었던 것 같고. 대사와 묘사만으로 나만의 셜록 홈즈, ‘클래식’한 남자의 전형을 그리기 시작했다. 헌팅 캡과 담배 파이프는 그야말로 남자의 물건. 언젠가부터 남성 복식에서 유행이라 불리기 시작한 ‘클래식’은 사실 유행에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다. 옛날부터 있었고, 여전히 가치 있는 것. ‘패션’이라기보다는 ‘옷’에 가까운 것. 수많은 클래식이 남겨진 시대에 태어난 것을 축복으로 여긴다. 페어아일 베스트를 버튼다운 셔츠, 울 스웨트 팬츠, 반스 어센틱, 챔피언 후드, 폴로 더플코트와 함께 입는 것으로 축복을 기념한다. 박태일

 

[ MAKER’S MARK ]

돈 드릴로를 알게 된 건, 몇 년 전 재퍼슨 핵이 그의 단편에 빠져 산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다. <화이트 노이즈>는 내용이 흥미롭긴 하지만 단편도 아니고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유의 소설은 아니다. 그래서 1부 ‘파동과 방사’까지만 읽고 점점 잊었다. 그런데 얼마 전 인터뷰에서 아담 브로디는 돈 드릴로의 모든 책은 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데, 그의 다른 책은 잘 모르겠고 <화이트 노이즈>만큼은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고 말했다. 그 후로 2부 ‘유독가스 공중유출 사건’을 읽기 시작했다. 이 소설의 매력은 어떤 사건을 따라가기보다, 복잡하고 분방하지만 꽤 깊숙하고 끈끈한 미국식 가정 그리고 이들이 사는 집과 전형적인 미국의 대학가, 차 안에서 오가는 가족들의 대화가 영화처럼 쉽게 그려지는 데 있다. 절대 입에 대지도 못할 것 같았던 위스키의 매력을 알게 된 것도 이쯤이다. 위스키가 쓴맛이 아니라는 걸 켄터키 버번 메이커스 마크를 맛보고 알게 됐다. 물론 얼음을 가득 넣고, 진저에일도 함께 섞어야 하지만. 김경민 

 

[ VILEBREQUIN ]

하와이에 갈 땐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를 챙긴다. 이 책은 다무라라는 소년이 작정하고 집을 뛰쳐나오는 게 시작이지만, 고양이와 조니 워커 같은 기억하기 쉬운 단어를 빼면 그 뒤의 내용은 정확히 생각나질 않는다. 하루키의 수많은 글 중에서 개인적 우선순위를 매기자면 아주 상위권에 들진 못하지만, 하와이와 하루키와 해변이라는 단어가 주는 환상과 안락함과 해방감 때문에 꼭 챙기게 된다. 얼마 전부터 서머 크리스마스를 조심스럽게 기대하며 <해변의 카프카>와 빌브레퀸의 순록 트렁크를 번갈아가며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지만, 아직 아무런 진전은 없다. 갑자기 지난 휴가가 끝날 때쯤 발견한, 가슴을 후벼 파는 책 속 한 문장이 생각난다. “원래의 장소로 돌아가서 잘살아야 해.” 그 페이지를 주욱 찢어서 잘근잘근 씹어먹을 테다. 박나나

[ LOUIS VUITTON ]

<낯선 승객>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가 스물다섯 살 때 쓴 그녀의 데뷔작이다. <태양은 가득히>로 영화화된 덕분에 하이스미스 작품 중에선 리플리 시리즈가 제일 유명하지만, 개인적 기호로는 이 책이 제일 좋다. 아침 아홉 시부터 술을 마시는 습관, 난폭하고 배타적인 성격, 혐오와 연민, 동정과 원망이 뒤섞인 타인과의 관계. 그녀를 지배한 이 모든 것이 의자 모서리에 앉아서 쓴 것처럼 불안하고도 아름다운 문장의 원천이었다. 미국 남부로 향하는 기차 안, 젊은 건축가 거이 하인즈는 매끈한 한량 찰스 브루노 옆자리에 앉는다. 우연히 만난 낯선 사람이 인생을 얼마나 천천히 고통스럽게 바꾸는지, 느릿한 전개와 상대적으로 ‘크리스피한’ 문장의 불균형에 매혹되면서 읽는 내내 온몸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브루노는 끌리면서도 피하게 만드는 이상한 매혹을 지닌 악인으로 등장하는데 옷차림이며 지닌 물건들이 모두 탁월하다. 그가 기차를 탈 때, 가방 하나를 든다면 루이 비통의 이런 건 어떨까. 강지영 

 

    에디터
    GQ 패션팀
    포토그래퍼
    정우영
    ILLUSTRATION
    KWAK MYEONG JU
    COURTESY OF
    LOUIS VUITTON, VILEBREQU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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