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MEN OF THE YEAR – 이준

보기에, 이준의 연기가 참 좋았다. 그 간결한 사실로부터 모든 걸 안심하기도 했다.

1-2 연장
얇은 셔츠는 톰 크롬 by 프로젝트 Rue, 니트 스웨터는 프리모디알 이즈 프리미티브 by 프로젝트 Rue.

일어난 지 얼마 안 된 얼굴이네요. 자다가 왔어요.

오늘이 낮잠 자기 좋은 날씨긴 했죠. 제가 평소에는 잘 못 느꼈는데, 올해는 좀 가을을 좀 탔어요. 엄청 외롭고, 우울하고 좀 그랬어요. 영화 촬영하고 있고, 별다른 스케줄도 없고, 그냥 평상시처럼 똑같이 살고 있는데, 뭔가 좀 외롭더라고요. 늘 몸이 아팠는데, 올해는 어디 아프지도 않았거든요? 내가 마음이 편해서 그런가? <풍문으로 들었소>를 꽤 오래 했잖아요. 그거 끝나고 단막극도 찍고 또 바로 영화 시작해서 지금 거의 막바지거든요? 근데 촬영이 매일 있지 않으니까 쉬는 날이면 좀 어색해요. 그 어색함을 외롭다고 느끼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계절을 탓하기로 합시다. 언제부터 겨울이라고 생각해요? 계절에 따른 변화는 사실 뭐 좋다, 싫다 이런 건 없어요. 촬영할 때 추우니까 걱정은 하죠. 겨울이 되면 몸이 경직되고.

입도 얼고. 네, 입도 얼고 진짜 전체적으로 악조건이 많은 거 같아요. 제가 핫팩 붙이는 걸 싫어해요. 핫팩을 붙이면, 붙인 곳만 드문드문 따뜻하니까 집중이 안 돼요. 제가 따뜻하려고 애쓰는 사람 같아서 싫어요.

<풍문으로 들었소>도 겨울에 시작했죠? 파카를 입고 한강으로 뛰어들던 모습이 떠오르네요. 1월부터 찍었어요. 근데 추운 느낌이긴 한데, 악조건이었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다른 때와 달랐나요? 한강에 뛰어들어봤자 한 신이었고, <풍문…>은 일단 제 기억에 ‘실내’라는 느낌이 더 강해요. 그리고 아주 타이트하게 찍었죠. 이삼 일에 2회분을 다 찍는 식으로 했어요. 이틀 고생하고 나머지는 아예 확 쉬어버리는 시스템이었어요. 그러니까 하루에 한 회씩 찍는 셈인데, 그조차도 막 밤을 새면서 찍진 않았어요. 그러니까 고생이라기보다는 긴장이 심했어요. 롱테이크가 많아서.

그런 촬영이 생소했나요? 처음이었어요. 보통은 다 이어서 붙이잖아요. 근데 <풍문…>은 전체적인 그림을 꽉 짜놓고 롱테이크로 가니까 그냥 완벽해야 했어요. 한마디라도 틀리면 처음부터 다 같이 다시 해야 하는 거라서.

연극하듯이. 맞아요. 맞춰보고 또 맞춰본 뒤, 무대에서 한 번에 보여주는 느낌으로 했어요.

나중엔 혹시 재미가 붙었나요? 끝나고 나서 알았어요. 거기에 너무 재미가 들려 있더라고요. 롱테이크의 가장 좋은 점은 자연스러움인 거 같아요. <풍문…>을 하고 나서, 다른 배우의 연기에서도 자연스러움을 중점적으로 보게 되더라고요. 어떤 배우가 나왔는데, 화장도 깔끔하고 눈썹도 잘 그렸고, 머리도 정갈하면 그 자체가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연스럽게 원 신 원 컷으로 하면 보기 좋고요. 이런 버릇은 버려야겠죠.

<풍문…>이 그렇게도 영향을 줬군요. 확실히 전보다 편해진 건 있어요. 물론 여전히 문제점이 많지만 전보다 마음가짐이 편해진 건 사실이에요. 자신감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순발력.

<풍문…>에서 본 이준이라는 배우의 매력도 어떤 순발력이 아닐까 합니다. 대사를 안 외운 사람 같았달까. 상황에 툭 던져진 것 같은. 흔히 연기력이니 연기파니 하는 것과는 좀 다른 연기였죠. 아, 저도 공감해요.

‘나 지금부터 연기한다~’ 하는 식으로 연기하지 않았죠. 그렇다 보니 <풍문…>의 이준은 어느새 지워진 것 같아요. 지워졌다는 게 어떤 말씀인지….

질리지 않았다, 쓱 지나갔다, 어느새 깨끗해졌다, 특정한 이미지에 붙박이지 않았다, 지금 다시 무엇을 해도 좋다…. 그렇게 보셨으면 정말 감사하죠. 저도 그런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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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츠는 드리스 반 노튼, 바지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좋은 배우는 그래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이미지에 발목잡힌 배우도 많잖아요. 하필 연기 잘한다는 배우는 거의 그렇고요. 그냥 생으로 갔죠. 대본이 촬영 직전에 나오면 방법이 없었어요. 대본을 잘 외우는 편도 아니라서, 계속 붙들고 있다가도, 막상 들어갈 땐 에라 모르겠다 하는 거죠.

애드리브가 많았다는 얘기는 아니잖아요. 네. 근데 정성주 작가님 대본의 지문이 참 좋았어요. 그걸 보면 그냥 이해가 됐어요. 보통은 이해가 안 가면 감독님께 뭔 말이냐고 물어보는데, <풍문…> 때는 그랬던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딱 보면 그냥 답이 나와 있는 느낌. 그냥 대본대로 연기하면 되는. 시간이 부족한 건 괴로웠지만, 막상 찍어놓고 보니 생각보다 제 연기가…. 제가 잘했다는 건 아닌데.

잘했어요. 그냥 그럴듯한 거예요 이게.(웃음) 요즘 보면, 점점 연습을 안 하려는 쪽으로 가요. 대본을 보고 이게 뭘 말하고자 하는지만 제대로 파악한 다음에는, 그냥 즐거운 마음만 가지고 촬영장에 가요. 뭔가 준비할수록, 연습할수록 저는 부자연스럽게 느껴져요. 몸을 경직시켜요. 그런 식으로 에너지를 소진시킬 필요도 있겠지만, 될 수 있으면 편안한 마음을 가지려고 해요. 제가 연기를 오래 한 건 아니지만, 예전에는 옷도 멋있는 거 입고 싶고, 머리 스타일도 멋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풍문…>이 많은 걸 바꿔놓은 것 같아요. 이제는 뭔가 제 몸에 부자연스러우면 일단 거부반응이 나요. 분장하기 싫은 거죠. 영화 때문에 요즘은 발톱을 엄청 길렀어요.

그런 사람일 것 같아서? 네. 혹시나 앵글에 잡힐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저는 원래 손톱 발톱을 정말 딱 깎아서 완전 깔끔하게 하는 편인데, 요즘 엄청 불편해요. 게다가 액션도 해야 해서.

그는 발톱이 길어도 액션이 괜찮은 사람일 테니까? 네. 연습을 좀 안 해요.(웃음) 그냥 평소 제 행동이나 남들이 하는 행동이나 그런 걸 기억하려고 해요. 연기에서는 사소한 버릇 같은 게 굉장히 중요한 소스라고 생각하거든요. 풀샷을 찍으면 몸이 심심해 보이는데, 그냥 심심한 대로 좀 맞다고 생각해요. 항상 뭔가를 보여준다기보다는 1부터 10까지 있으면 6까지는 그냥 가고 7에서 한번 뭔가 하는 느낌으로요. 계속해서 표현하려고만 하면 굉장히 부담스런 연기가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어떨 때는 연기를 너무 안 해버린 거예요.(웃음) 감독님이 그건 좀 너무 루스하다 하시면 다시 가기도 하고. 연습을 안 한다기보다, 계산을 아예 안 해요. 액션도 거의 감정대로 따라가고요.

젊은 배우의 특권이지요. 네, 맞아요. 지금은 이런 걸 추구하지만 내년엔 또 다를 수 있고요. 아직 뭐 어리니까 생각을 쌓다 보면 풍부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젊음의 에너지. 그냥 달리기만 해도 되는 거. 모든 걸 에너지가 커버하죠. 젊음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순수함의 문제죠. 이준은 좋은 배우인가요? 글쎄요, 좀 더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해요. 가상의 인물처럼 보이기 싫어요. 이런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주려면 정말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보는 시야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껍데기를 하나씩 벗긴다는 생각도 들고요. 이런 면도 있고, 갑자기 이런 면도 있을 수 있는.

오늘 스튜디오에도 갑자기 불쑥 들어왔죠? 네.(웃음)

쇼핑백을 들고 있기에 뭘 샀나보다 했더니 거기서 주섬주섬 도시락을 꺼냈어요. 그러고는 혼자서 그걸 먹었어요. 하하, 떡갈비 뭐 어쩌고를 시킨 건데, 잘못 골라서 밥은 없고 떡갈비만 일곱 개 들어 있는 거였어요. 전 원래 혼자 먹어요. 거의 같이 먹는 법이 없어요. 별 생각 없이 그랬어요.

그러니까요. 컨셉트로 하는 행동이 아니더라고요. <풍문…>에서 연기했던 ‘한인상’ 같기도 했고. 인상이는 저랑은 다른데, 학생 때 정말 더 뜨거운 사랑을 할 수가 있잖아요. 감정이 굉장히 풍부하다고 생각해요. 엄청 예민하고. 그런 인물을 연기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죠. 이제 저는 서른이에요.

서른이라는 자각이 있어요? 좀 별론 거 같아요 이게. 몸이 예전 같지 않고 그럴까 봐.

생활하는 느낌으로 보면 몇 살쯤인 것 같아요? 이십 대 초반?

아직 어리다고 생각하면 안도감이 있나요? 네. 아직 갈 길이 머니까.

갈 길이 멀다고 느끼면 행여 지치기도 쉽지 않을까요? 어차피 기억도 안 나요.(웃음) 힘들게 사나 덜 힘들게 사나 시간은 가고, 자고 일어나면 다 없어지잖아요. 그게 자연스럽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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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KOREA 피처 디렉터] 곧 두 번째 책을 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