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트와이스 VS 레드벨벳

2016.10.29GQ

싸우면 누가 이길지 궁금한 사람들이 있다. 끝내 결과는 알 수 없겠지만, 그 구도가 지금에 관해 말하는 게 있다.SM의 첫 걸그룹인 SES의 바다는 해체 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동 당시의 고충을 토로 했다. “SES는 사람이 아닌 요정이었어요. 그래서 먹지도 자지도 않고 화장실도 안 가는 콘셉트였죠.” 기초적인 생리 욕구조차 숨기고 참아야 할 만큼 SM에서 콘셉트는 팀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수단이다.

레드벨벳이 포털 검색어 순위에 처음 오른 건 전부터 ‘레드벨벳’이라는 이름을 써온 인디 밴드와의 분쟁이었다. 같은 논란을 겪고 사과 후 21에서 2NE1으로 이름을 변경한 YG와 다르게 SM은 레드벨벳이라는 이름을 고수했다. 이름을 짓기 전에 동명의 음악가가 있는지 찾지 않은 무성의함 또는 동명의 밴드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거대 기획사로서 크게 신경 쓰지 않은 안일함 모두 비난받았다. 결과적으로 원만하게 해결됐다고는 하지만 갓 데뷔하는 걸그룹에 결코 좋은 출발은 아니었다.

레드벨벳이라는 이름을 고수한 이유는 뭐 였을까. 슬그머니 힌트를 내민 건 SES의 곡을 리메이크한 두 번째 싱글 ‘Be Natural’에서다. 첫 싱글 ‘행복’을 통해 제목처럼 발랄한 트로피컬 댄스곡으로 데뷔한 그들은 아무 예고 없이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무채색 알앤비를 부르는 그룹이 됐다. 어리둥절함이 해소된 건 시간이 조금 흐른 후다. 레드벨벳은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정답을 불러주듯 자신들의 콘셉트를 “강렬하고 매혹적인 컬러 레드와 클래시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벨벳에서 연상되는 감각적인 이미지를 동시에 표현”하는 것이라고 정확히 밝혔다.

매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건 대중음악의 생리다. 레드벨벳은 이를 아수라 백작처럼 극단적인 형태로 표현한다. 레드 콘셉트에서 레드벨벳은 주로 복잡한 템포의 밝은 댄스곡을 부른다. 대체로 f(x)가 처음 등장했을 때처럼 신선하지만 어렵다는 평이다. 벨벳 콘셉트일 때는 멜로디가 선명한 느린 템포의 알앤비를 부른다. 대중이 걸그룹에게 ‘어두움’을 기대하지 않기 때문일까. 벨벳 콘셉트는 레드 콘셉트에 비해 인기가 없다. 이와 함께 콘셉트를 드러내기 위해 멤버의 개성은 거세되고 도구처럼 쓰인다. 이들의 극단적인 콘셉트에 연예 웹 매거진 < ize >는 레드벨벳의 음반이 발매될 때마다 ‘좋아요 VS 싫어요’ 기사를 이례적으로 세 번이나 발행했다.

레드벨벳은 그간 SM이 해온 실험의 연장선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가사와 파격적인 곡을 내세운 f(x)부터 모든 멤버가 초능력을 사용하는 세계관의 엑소, 앨범 제목을 < Sherlock > 이라 붙인 후 두 개의 곡을 합쳐 하나의 완성된 곡을 들고 나온 샤이니까지. 민희진 이후의 SM은 팬 대신 게임에 로그인할 유저를 원하는 것 같다. 각 앨범은 새 미션이고 팬들은 길드처럼 서로의 정보를 교환하며 스테이지를 클리어한다. 회사 뒤에 붙는 표현 그대로 SM은 아이돌을 중심으로 도시(타운)라는 최소 단위의 공간을 건설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곳에는 SM의 숙제를 기꺼이 풀 마음이 있는 적극적인 시민들이 가득 차있다. 도시의 형상은 미궁같다. 다음 길을 예측하기도, 빠져나오기도 어렵다.국가(네이션)을 표방하는 곳답게 JYP는 ‘국민’이라는 표현이 붙는 스타와 히트곡을 꾸준히 양산했다. 2007년 JYP에서 데뷔한 원더걸스는 ‘국민 걸그룹’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첫 걸그룹이다. 동명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데뷔 과정을 공개한 원더걸스는 교복을 응용한 옷을 입고 어반 알앤비 스타일의 노래 ‘아이러니’로 데뷔했고, 좋지 못한 성적표를 받았다. 이후 콘셉트를 바꿔 발표한 ‘Tell Me’는 ‘후크송’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대중적으로 크게 성공한다. ‘대중적’이라는 건 불특정 다수의 광범위한 선호를 충족시킨다는 얘기다. 원더걸스 역시 이것을 의식하고 ‘Tell Me’의 코드인 복고를 내세워 ‘So Hot’, ‘Nobody’를 연달아 내놓고 성공을 이어간다. 미국 진출로 팬덤의 상당수가 빠져나가고 멤버도 음악도 바뀌었지만 여전히 발표한 곡이 1위를 할 수 있는 건 원더걸스의 대중 친화적인 점 때문일 것이다.

음원 순위의 ‘역주행’은 계기를 바탕으로 생긴다. 골반 춤을 추는 하니의 영상이 화제가 된 EXID나 빗속에서 공연을 하며 몇 번이고 넘어져도 일어나 노래를 부른 유주의 영상으로 역주행한 여자친구가 대표적이다. 2015년 10월에 발표한 트와이스의 데뷔곡 ‘OOH-AAH하게’는 음악 방송 프로그램에서 1위 후보에는 올랐으나 1위는 하지 못한 애매한 데뷔전을 치뤘다. 음원 순위에서도 눈에 띄지 않았다. 하지만 한 달 반의 활동을 끝내고 떨어질 거라 생각했던 음원 순위는 꾸준히 올라 멜론 6위까지 차지하는 이변이 벌어졌다. 활동을 끝낸 지 얼마 되지 않아 재기했다. EXID나 여자친구의 경우와 달리 눈에 띄는 특별한 계기 없이 일어난 일이었다.

함께 주목해야 할 건 유튜브에 업로드된 ‘OOH-AAH하게’ 뮤직비디오의 재생 수다. 초반부터 높은 기록을 세운 ‘OOH-AAH하게’ 뮤직비디오는 2015년에 2천만 재생 수를 돌파하면서 그해 데뷔한 K-POP 남녀 신인 1위 재생 수를 기록했다. 그 후로도 숫자는 꾸준히 늘어 트와이스는 한국 걸그룹 데뷔곡 중 가장 높은 유튜브 재생 수를 기록한 팀이 됐다. 누적된 인기는 5월에 발매된 두 번째 앨범 < Page Two >의 싱글 ‘Cheer Up’에서 폭발적인 결과로 나타났다. ‘Cheer Up’은 발매되자마자 음원 순위 1위를 차지하고 489시간 동안 지키며 2016년 최장 시간 1위에 오른 곡이 됐다. 이후에도 ‘Cheer Up’은 17주 연속 톱 10을 기록했다. 유튜브 영상은 여러 종류의 ‘역대 걸그룹 최단기간 돌파’ 타이틀을 갱신하며 현재 기준으로 재생 수 9천만대를 기록하고 있다. 기록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원고를 끝낼 수 있을 만큼 트와이스가 ‘Cheer Up’으로 거둔 성공은 이례적이다. 해외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않은 트와이스가 이런 기록을 세운 건 걸그룹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고의 상황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다. 열혈 팬덤이 형성돼 트와이스의 음원과 비디오를 수차례 중복 소비하고 그 외에도 정말 많은 대중이 멤버 사나의 ‘샤샤샤’ 영상부터 곡까지 자연스럽게 이들의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다.

트와이스의 인기 비결은 레드벨벳의 반대편에 있다. 비밀로 가득 찬 레드벨벳과 달리 트와이스의 세계는 솔직하고 투명하다. 곡은 대중적이며 멤버는 밝고 사랑스럽다. 대중이 기대하는 아이돌의 본령에 충실하다. ‘Cheer Up’ 뮤직비디오에서 멤버는 각자 자신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영화 캐릭터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다른 멤버가 주인공일 때 그 세계의 조연으로 등장하는 것도 마다치 않는다. 개성과 팀워크를 모두 강조하는 연출이다. 이는 시즌 3까지 방영된 V앱의 < 트와이스 TV >와 엠넷의 < 트와이스의 우아한 사생활 > 등 리얼리티 방송에서도 재현된다. 곡이 좋아서 또는 멤버 중 누군가 맘에 들어 트와이스를 좋아하게 된 이들에게 다른 멤버의 매력까지 엿볼 수 있는 심화학습 코너가 친절하게 준비돼 있다. 어떤 층위에서도 트와이스를 소비하는 건 손쉬운 일이다.

2016년, 걸그룹의 경쟁은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엠넷의 여성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 < 프로듀스101 >의 성공은 연이어 파생 걸그룹을 탄생시켰다. 여자친구와 러블리즈처럼 명확한 콘셉트와 디테일을 추구하는 팀이 등장해 안정적인 인기를 누리고, 기존에 활동했던 팀이 안일한 시도로 전과 같은 인기를 누리지 못하거나 파격적인 시도를 하는 모습도 보인다. YG는 8년만에 걸그룹 블랙핑크를 데뷔시켜 최단 기간 1위 기록을 세웠다. 경쟁은 치열하고 V앱, 인스타그램, 케이블 리얼리티, 행사,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까지 매스 미디어, 소셜 미디어, 뉴 미디어,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활동해야 하는 채널도 늘어났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레드벨벳이 9월에 발표한 앨범 < Russian Roulette >은 이를 의식한 듯 보인다. 과거의 앨범이 제목부터 레드와 벨벳으로 명확히 나뉘었던 것에 비해 < Russian Roulette >은 두 콘셉트가 혼재되어 있다. 타이틀 곡 ‘러시안 룰렛 역시 분류하자면 레드에 가깝지만 랩이 사라지고 멜로디는 쉬워졌다. 뮤직비디오에서 체육복을 입은 장면으로 로리타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처음으로 언론에서 레드벨벳에게 ‘대중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동시에 레드벨벳에게 다른 걸그룹과 ‘다름’을 기대하고 있던 팬은 실망스럽다는 표현을 주저하지 않았다. ‘러시안 룰렛’은 지금껏 레드벨벳이 발표한 곡 중 가장 좋은 음원 성적을 거뒀다.

얼마 전 공개된 티저에서 트와이스는 ‘Cheer Up’ 무대가 끝난 후 장난스러운 대기실 장면을 보여줬다. 지금까지 곡을 쓴 블랙아이드필승의 곡으로 복귀한다는 내용이 기사에 실렸다. < GQ > 11월호가 발간되었을 때 나올 트와이스의 신곡은 기존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고 무난하게 히트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원더걸스부터 AOA까지. 대중적인 곡과 친화력으로 히트한 걸그룹 대부분 비슷한 세 곡의 히트를 기점으로 출구를 찾지 못했다. 트와이스는 여기서 어떻게 자신들의 색을 만들어 다음 단계로 나아갈까. 독특한 콘셉트를 유지하다 방향을 조금 선회한 레드벨벳은 어떨까. 기존의 팬덤과 차별점을 유지하며 꾸준히 인기를 유지할 수 있을까.

소녀시대와 원더걸스 등장 후 잠깐의 유행으로 끝날 거라 했던 걸그룹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 대중음악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공과를 모두 논하기에 충분한 시간. 10년이라는 시간만큼 생태계 내부는 건강하고 다양해졌을까? 긍정과 부정이 모두 떠오르는 한편, 걸그룹 지형도에서 상반된 역할을 차지하는 레드벨벳과 트와이스가 지금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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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장우철, 손기은, 정우영, 유지성
    하박국 (영기획YOUNG,GIFTED&WACK 대표)
    일러스트레이터
    조성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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