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통역 그 이상의 통역가

2020.03.25GQ

통역의 역사에서 이렇게 주목받은 통역가가 또 있었던가? <기생충> 신드롬의 정점에 서 있는 샤론 최를 둘러싼 흥미로운 언어 이데올로기.

<기생충>의 오스카 레이스는 한국어 화자로서는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미국의 ‘로컬’ 영화제일 뿐이지만, 영화 산업을 상징하는 할리우드에서 주요 부문의 상 4개를 한국어로 된 영화가 차지했다는 것. 모든 수상 소감이 한국어로 발화되고, 자막도 읽기 싫어하는 미국인들이 한국어에 귀를 기울이고, 또 그를 옮겨주는 통역사의 말을 기다렸다는 것. 그리고 그 통역가가 일약 스타의 자리에 올랐다는 것. 영화제 이후 <뉴욕타임스>, <CNN>을 포함한 주요 언론들이 샤론 최(최성재)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돌렸을 때 사람들은 생각했다. 통역의 역사에서 이렇게 주목받은 통역가가 또 있었던가?

역사적으로 번역 혹은 통역가는 보이지 않는 존재로 여겨졌다. 번역학자 로렌스 베누티의 책, <The Translator’s Invisibility>에서 언급된 표현으로, 번역된 텍스트는 원저작자의 문체와 언어 사용 방식을 보여주되 목표어를 사용한 번역가의 언어적 특성은 “투명”해야 한다는 통상의 믿음에 대한 말이다. 번역과 통역은 문어와 구어, 동시성이라는 면에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통역가 또한, 그간은 어느 정도 비슷하게 그늘에 가려져 있을 것이 요구되었다. 샤론 최가 지난 2월 18일 <버라이어티> 지에 기고한 에세이에서 “Business Attire”라고 표현한 그의 검은 의상도 투명한 통역가의 역할을 고려해서 결정한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휘황찬란한 영화제의 의상 속에서 샤론 최의 검은 옷과 침착한 태도는 한층 두드러졌다.

샤론 최의 존재가 가시화된 것은 그해 말 봉준호 감독과 함께 <더 투나잇 쇼 스타링 지미 팰런>에 출연한 직후인 듯하다. 통역사를 대동한 한국어 화자 영화감독의 출연도 흔치 않지만, 유려한 통역사를 목격하는 경험도 미국 시청자들에게는 흔한 일이 아니었다. 이후, 1월 2일 자 <가디언>에서 샤론 최에 대한 단독 기사를 내며, 여러 유명한 영화제 통역가들과 비교하면서 그에 대한 관심이 점점 드러난다. 이 기사에서는 SNS의 반응을 전하면서 “양방향 언어 전문성, 무시무시한 기억력, PR의 재능”을 주목할뿐더러, “올블랙 의상과 귀여운 해리 포터 안경”까지 함께 언급했다. 그 이후 <기생충>이 미국 내에서 수상 목록을 늘려가면서 샤론 최의 조용한 존재감도 커져갔다.

영화제 통역가로서 샤론 최의 가시성 Visibility을 둘러싸고는 여러 언어 이데올로기를 발견할 수 있다. 남다른 능력을 갖춘 화자는 늘 매력적이지만, 단순히 그것만은 아니다. 그에 대한 열광 중 한 가지에는 “완벽한 이중언어 화자 Perfect Bilingual”라는 이상이 깔려 있고, 이에 대해서도 한국어가 모국어인 화자와 영어권 화자의 태도가 모호하게 다르다. 국가의 폐쇄적인 경계 안이 아니라 글로벌화된 세계에서는 다수가 다중언어 화자 Multilingual의 스펙트럼 위에 서 있다. 많은 사람이 2가지 이상의 언어로 기능하며 생활에 필요한 여러 활동을 해낼 수 있지만, 사람들이 ‘바이링구얼’이라고 할 땐 이 스펙트럼의 가장 극단에 서 있는 완벽한 이중언어 화자뿐이다. 이 사람은 두 언어를 동등하게 균형 잡힌 형태로 해내며, 각각의 언어로만 봐도 문해력 수준이 무척 높아야 한다. 이런 사람은 현실에서 극히 드물다. 어차피 한 가지 언어만도 제대로 쓰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 샤론 최가 나타났다. 이 스마트한 여성은 <기생충>이라는 영화에 대한 예술적 담론에서 양쪽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한다. 혹은 그런 것으로 판단된다. 명료한 발음, 지나치게 복잡하지 않은 적절한 숙어와 적확한 표현을 찾는 어휘력, 짧은 시간 내에 완결 문장을 만들어내는 통사적 구성력, 머뭇거림이나 재시작이 없는 유창성과 같은 언어적 스킬뿐 아니라, 영화라는 전문 주제에 능통한 지식까지도 겸비했다. <버라이어티>지의 에세이를 보면 은유와 묘사를 사용하는 문학적 표현력까지도 풍부하다.

이는 한국에서 영어 교육이 시작된 이래로, 늘 갈망해왔던 이상적인 한국어-영어 사용자의 모습이었다. 아카데미 시상식 이후 한국에서 영어를 연구한다는 유튜브 계정들에는 샤론 최의 통역 모음 동영상이 다투어 올라오며 그의 영어를 분석했다. “현지인에게 인정받는” 한국인 영어 화자가 등장하면 늘 그렇듯이 학습 정보가 엄마들의 단톡방에서 퍼져나간다. 이미 샤론 최가 외국에 몇 년 체류했으며, 무슨 외고를 다녔고, 강남 대치동의 무슨 영어 학원에 다녔는지는 싹 다 알려졌다. 내용 지식과 일정 이상의 뛰어난 문해력은 학원에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지만, 한국의 학원에서는 팔지 못할 게 없다.

그러기에 샤론 최에 대한 열광은 통역 그 자체라고만은 하기 어렵다. 여기에는 영화계를 포함, 세계 산업의 공용어인 영어의 상징성, 한국어와 영어 사이의 비대칭성에 대한 은근한 함의가 있다. 가령 이것이 정확히 이중언어의 문제라면 한국어에서 영어로의 변환 능력뿐만 아니라, (봉준호 감독을 유일한 청자로 한) 영어에서 한국어의 변환 능력도 조망되어야 하지만 그 부분은 상대적으로 적게 보인다. 연합뉴스 에이전시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계정 ‘Korea Now’에서는 샤론 최의 신드롬적인 인기를 보도하면서 “샤론 최의 영어는 미묘한 뉘앙스까지 잘 전달함으로써 대한민국과 서구 국가 사이의 문화적 차이를 좁혔다는 격찬과 인정을 받고 있다”라며 영어에 방점을 찍어 평가했다. 봉준호 감독도 수용적 기술로 영어를 사용하는 데는 문제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목격할 수 있는 통역 프로세스도 한국어보다는 영어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런 질문도 있다. 대체로 한-영 이중 화자인 한국인들이야 알 수 있다고 쳐도 영어 화자들은 어떻게 좋은 통역인지 알 수 있는가? 한국인들이 영어를 아는 만큼 한국어를 아는 영어권 화자가 많을 리는 없다. 피통역자와 통역자 간의 호흡, 질문-대답 사이의 문맥, 영어 표현의 수준으로 판단할 수는 있지만, 그 또한 영어적 관점일 뿐이다. 이전 영화 <버닝> 통역 시, 이창동 감독의 복잡한 구어를 빠른 시간에 정리해내는 샤론 최의 한국어 능력에 대해 의심은 전혀 없지만, 그를 듣는 영어 청자들의 태도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가정은 늘 쓸모없지만, 동일한 수준의 언어 능력을 가진 서양인 통역가라면 그들의 태도는 어땠을까, 라는 생각은 든다. 즉, 외국어로서 한국어 능력이 몹시도 뛰어난 영어 모국어 화자라면, 한국에선 확실히 유튜브 스타가 되긴 했겠지만 지금처럼 그의 이중언어에 서구 언론이 관심을 보였을 것인가, 라는 질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도 이번 <기생충>의 해외 프로모션은 통역과 관련하여 또 다른 중요한 이슈를 남겼다. 이에 대해서 실제로 통역 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두 명의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명은 동시통역 대학원을 졸업한 전문 통역가이고, 다른 사람은 샤론 최처럼 해당 분야를 공부한 전문가로서 콘퍼런스 통역을 맡고 있다. 통역가로서의 포지셔닝은 다르지만, 둘 다 흥미롭게도 공통적인 감상을 말했다. 통역 과정에서 피통역자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했다는 것이다. 봉준호 감독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사람이라는 것이 초점이 아니라, 통역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오랫동안 함께하며 유대를 쌓은 연사라는 점이 핵심이다. 전문 통역가든, 전문가 통역가든 대체로 일하는 당일이나 전날 해당 연사를 만나기에 특성을 파악할 시간이 없고, 통역가가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적절한 트랜지션 유닛으로 문장을 나누어 담화를 구성하는 연사도 흔치는 않다. 무엇보다 봉 감독이 오스카 시상식 직전과 직후의 인터뷰에서 보여주었듯 통역가에게 보여준 신뢰야말로 희귀한 것이다. 또한 <버라이어티>의 에세이에서도 보이듯이 통역가 본인도 이 산업의 일원이라는 의식이 확고하고 프로모션 캠페인에서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자각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는 인물들의 앙상블이 돋보이는 영화인 <기생충>의 구성과도 맞아떨어지는 측면이 있다. <기생충>이 전 세계에 알려지는 과정은 유능한 화자와 그를 전달할 의욕, 지식과 기술이 있는 번역자와 통역자, 그리고 웬일인지 이에 귀를 기울일 용의가 있는 청자 사이에서 잘 맞아떨어진 게임과도 같은 흥분감이 있었다. 통역도 결국은 팀플레이이다. 물론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적 정의가 그렇다. 글 / 박현주(번역가)

    피쳐 에디터
    김아름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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