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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교환 "뭔가 숨겨놓는 걸 좋아해요"

2020.10.23GQ

농담 반 진담 반, 약간의 웃음과 적당한 우연. 구교환의 오묘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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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틀넥, 환영. 니트 톱, 에이치 블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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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틀넥, 환영. 니트 톱, 에이치 블레이드. 팬츠, 레이블리스. 부츠, 오디너리피플.

서울에서 애착 가는 동네가 있나요? 명동, 밀리오레 앞. 아주 추운 겨울이었어요. 그 당시 길거리에서 울리던 음악까지 기억나요. “너의 모습을 처음 봤을 때···.” 이 노래가 김현정의 ‘혼자만의 이별’ 맞죠? 이제는 저작권 때문에 사라진 문화인데, 거리에 대중가요가 울려 퍼진다는 게 기분이 좋았어요. 요즘은 길거리에서 캐럴도 듣기 어렵잖아요.

명동에는 왜 갔나요? 고등학교 때 혼자 옷을 사러 갔어요. 메인 거리에 있는 가게 대부분은 비싼 옷을 팔아서 못 들어갔고, 저는 돌아다니다 주로 보세 옷을 득템했어요. 그리고 마지막 코스로 극장에서 영화를 한 편 보고 집으로 복귀했죠.

‘교환 학생’은 어떤 사람이었어요? 조용할 때도 있었고, 어느 땐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는 재미있는 사람도 됐다가. 왔다 갔다 했던 것 같아요.

구교환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 시절 증명사진을 누가 쭉 모아놓은 걸 우연히 본 적 있어요. 영화 속에 잠깐 소품으로 등장한 장면을 누군가 포착한 것 같은데, 얼굴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더라고요. 특히 표정과 갈매기 눈썹. 아버지가 사진관을 하셨어요. 시간이 지나도 아버지가 바라보는 제 얼굴은 변하지 않나 봐요. 사진 속 제 얼굴이 똑같아 보일 수 있는 건 아버지가 찍어줬기 때문 아닐까요? 감독님이 카메라로 보는 제 얼굴은 전부 다르잖아요.

<반도>의 서대위, <꿈의 제인>의 제인, <메기>의 성원, <4학년 보경이>의 덕우, <연애다큐>와 <거북이들>의 교환. 기억에 남는 캐릭터를 하나씩 떠올려보니 정말 그렇네요. 구교환의 필모그래피는 긴 머리와 짧은 머리로 나뉘는 것 같기도 해요. 원래 장발을 좋아하세요? 오랫동안 머리를 길러서 묶고 다니는 걸 좋아했어요. 헤어스타일을 깔끔하게 매만지는 방법도 잘 모르고, 그래서 그게 제일 편했던 것 같아요. 본의 아니게 긴 머리일 때 영화를 더 자주 찍었던 것 같긴 하네요. 짧아지면 또 작품을 잠깐 쉬었고. 단순한 우연인 것 같아요.

우연과 유머. 만나면 이 두 가지에 대해서는 뭐든 꼭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유머 좋아해요.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고요.

오늘 촬영하다 툭툭 떨어지던 구교환표 유머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주워 담고 싶었는데, 글로 옮기면 별로 안 웃길 것 같아요. 저도 어느 순간 알게 된 건데, 사람들이 웃긴 걸 봐도 꼭 다 웃진 않아요. 너무 재미있는데 안 웃기도 하더라고요. 창작자 입장에서는 중요한 포인트예요. 제가 생각했을 땐 재미있는 장면인데 관객들이 웃지 않으면 혼자서 이렇게 오해하죠. ‘다들 속으로 웃고 있구나. 극장 매너가 좋아서 웃음을 참고 있구나.’ 예전에는 제가 만든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되면, 사실 뒤에서 영화를 보는 게 아니라 관객들의 얼굴을 봤어요. 그때도 웃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영화가 끝나고 나서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이런 장면이 “재밌었다, 웃었다”는 반응을 들으면 꼭 웃음이 소리로만 발현되는 건 아니구나 하고 생각하죠. 지금 재미있지 않으세요?(웃음)

다른 사람을 웃게 만드는 건 가장 고차원적인 기술인 것 같아요. 어떤 유머 코드를 갖고 있어요? 각자의 개그 주파수가 있을 텐데, 저는 좀 넓은 편이에요. 재미있는 건 너무 여러 가지 모습으로 찾아오더라고요. 스탠딩 코미디부터 슬랩스틱 코미디까지, 다 좋아해요. 채플린, 버스터 키튼도 좋아하고. 버스트 키튼은 거의 애크러배틱을 했죠.

또 어떤 배우를 좋아하세요? 로버트 패틴슨을 좋아하고 있어요. 섹시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계속 궁금해지는 사람인 것 같아요. 퇴폐미 있는 얼굴, 필모그래피, 행보가 매력적으로 느껴져요. 특히 <굿타임>이란 영화를 흥미롭게 봤어요. 연기의 스펙트럼이 너무 넓어서 메이저와 인디 신의 영화를 자유롭게 넘나들죠. 킬리언 머피, 빌 머레이도 그렇고요. 뭐라고 정의하긴 어려운데 그 배우들을 좋아하게 된 매력 포인트는 정확한 것 같아요.

구교환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따라가다 보면 매력적인 배우를 발견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한테는 최고의 칭찬입니다. 러브레터를 보내듯이 좋아하는 배우와의 만남을 꿈꾸며 작업을 하기도 해요. <걸스온탑>은 천우희 씨, 이주영 씨와 작업하고 싶어서 시작한 영화였으니까요.

<연애다큐>와 <거북이>, 두 편에 어머니인 정향춘 배우를 캐스팅했어요. <메기>의 유명한 대사, “입금은 스위스 은행으로 부탁해”도 어머니의 목소리였고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을까요? 어머니라서 캐스팅한 건 아니고, 다른 배우들을 캐스팅한 이유와 같아요. 어머니가 그 역할에 잘 어울리는 배우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연기라는 것이 훈련되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그 사람 자체의 매력으로 프레임을 채울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전문 배우, 비전문 배우로 나눠서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요. <플라이 투 더 스카이>에 출연한 조성환 배우도 사실 연기를 해본 사람은 아니었어요. 이를테면 지금 기자님을 기자 역에 캐스팅할 수도 있는 거예요. 물론 출연을 거부하시겠지만.

시켜주신다면 저도 해보고 싶습니다.(웃음) “우연한 순간들이 모여 즐겁게 만든 영화”를 지향한다고 말한 적 있는데,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기막힌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건 뭔가요? 제가 배우가 된 것. 어렸을 때부터 남들 앞에 나서는 걸 좋아했으니까 배우가 됐을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죠. 그런데 제가 어떻게 배우가 됐는지 그 최초의 기억은 흐릿해요. 물론 저도 나름의 노력을 했겠지만, 배역을 만난다는 건 우연의 힘이 작용해야 가능한 일 같아요. 이를테면 어떤 감독님께서 유튜브를 보다가 우연히 제가 출연한 단편 영화를 보실 수도 있잖아요. 그러다 어느 날 시나리오를 쓰는데 갑자기 제가 생각날 수도 있는거고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에서 군무이탈 체포조 조장 한호열 상병으로 캐스팅됐어요. 류승완 감독의 신작 <모가디슈>에서도 만날 수 있고요. 궁금한 게 많은데. 저도 입이 근질근질한데 비밀투성이라 아직은 작품에 대해 자세하게 말할 수가 없네요. <D.P.>는 얼마 전에 첫 촬영을 끝내고 두 번째 촬영을 기다리고 있어요. 캐릭터에 대해서 하나둘 알아가는 과정이죠. 현장에서 그 인물과 마주해야지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요즘도 틈틈이 뭔가를 계속 쓰고 있나요? 쓰지는 않고 상상만 해요. 간단한 상황을 생각하는 걸 좋아해서 영화에 이런 장면이 있으면 재밌겠다, 그 신을 어떤 이야기에 넣을까? 그런 생각은 종종 해요.

<반도> 이후로 좀비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나요?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의 존재라는 것이 재밌어요. 저는 강시도 매력적인 존재라고 생각해요. 초자연적인 것들을 좋아해요. 세상엔 말로 설명 안 되는 것들이 분명히 있잖아요. 그런 걸 상상하고 믿을 때도 있어요.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야기가 있나요? 신선한 충격을 전해준. 지금 생각나는 영화는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저한테는 의미가 크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혹시 보셨나요? 특별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특별할 수 있는지···. 이 영화는 대가의 이야기인 것 같아요. 일상의 자연스러운 순간에 낯선 관계나 사건이 생기는 것을 좋아해요. 이야기에 관심이 많아서 배우를 하는 것 같아요.

영화의 편집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던데, 편집의 묘미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관객들이 보지 못한 비 컷을 볼 수 있다는 점요. 비 컷이 에이 컷이 될 수 있다는 쾌감이랄까요? 영화를 만들 때 스크립트 북이 있잖아요. 거기에 NG라고 적지 않아요. 촬영한 소스를 다 보는 편이에요. “레디, 액션”을 외칠 때 배우의 액션 전 표정을 굉장히 좋아해요. 배우에게 동의를 구하고 그 장면을 쓰기도 하고요. 저는 액션 전의 적당한 긴장감이 좋아요. 비 컷을 보고 있는 쾌감, 그래서 편집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2015년 각본, 감독, 배우로 참여한 <플라이 투 더 스카이>에서는 CG 작업에도 참여했던데. 영화를 여러 번 봐도 어떤 부분인지 찾기 어렵더라고요. 그런 장면이 있어요. 성환이 도로를 걸어가고 있는데 길 위에 ‘41 스트리트’라는 텍스트가 새겨져 있어요. 제가 시각특수효과로 박아놓은 거예요. 당시 41회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식을 위한 영상으로 만든 단편 영화였거든요. 저 혼자만 알아볼 수 있도록 영화 속에 뭔가 숨겨놓는 걸 좋아해요.

<꿈의 제인>에 이런 대사가 있어요. “태어날 때부터 불행이 시작돼서 그 불행이 안 끊기고 쭈욱 이어지는 기분. 근데 행복은 아주 가끔 요만큼 드문드문 있을까 말까?” 사실 행복이 뭔지 잘 몰라요. 뭔가에 대해 정의하는 게 조심스럽고요. 절 기분 좋게 만드는 건 있어요. 5킬로미터 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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