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에 가는 마음이 다 같진 않겠지만, 이런 날 이런 곳에선 한마음일 수 있을 것이다.
우산을 사서 걸어야 했던 밤이었다. 굵은 비가 저녁부터 오락가락했다. 클럽 파티에 놀러 가기엔 참 안 어울리는 날씨라고 생각하면서, 종종 일하러 들르는 찻집 옆을 지났다. 토요일 밤 10시 40분이었다. 파티는 11시에 시작하기로 되어 있었다. 술보단 차가 어울릴 주말 밤.
“이번 파티 콘셉트가 <GQ>와 잘 맞을 것 같아 메일 드리니 그냥 친구 분들과 놀러 오셔도 되고 취재 형태로 오셔도 됩니다.” ‘섹스토이’를 주제로 열리는 파티의 초대 메일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다시 말해 ‘바이브레이터’, 노골적으론 ‘자위기구’다. 속으론 포르노 박람회 같은 그림을 그렸다. 입은 둥 마는 둥 춤추는 모델들이 있고,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2층 VIP룸에선 짝지어 즐기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점점 은밀해졌다. 초대 받은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비공개 파티일지도 모른다. 눈빛만으로 ‘스리섬’이 되기도 하는, 가면을 쓴 남자와 여자가 나체로 즐비한 <아이즈 와이드 셧>의 비밀스런 파티. 살이 땀으로 범벅이 되고, 모두가 짝짓는 데 열중인. ‘아, 그건 불법인가?’ 생각할때, ‘섹스토이들은 플로어 한쪽에 진열하는 수준’이라고, 파티 호스트는 강조했다. 노골적이지도, 부담스럽지도 않을 거라는 말. 편하게 얼굴 보고 술 한잔 하자는 말. 거짓말은 아니었지만 이제와 믿기는 싫은말. ‘그런’분위기에선 누구라도,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니까. 이날 클럽 파티는 어떤 곳보다 ‘섹스’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곳엔 남자, 여자, 음악, 술이 있었다. 네 가지 요소 앞에 ‘어떤’이라는 말을 붙이면, 그땐 모든 게 취향의 영역으로 넘어갈 일이다. 따라서 이 중 어느 것 하나라도 거슬릴 때, 흥이 깨지는 덴 어떤 미련도 없을 것이다. 몸을 움직이는 음악은 따로 있다. 마음을 여는 술도, 여자도, 남자도 따로 있다. 하지만 이날은 섹스토이가 한 쪽에 있었다. 모두 거짓말처럼 관대한 날. ‘웃통’을 벗거나, 바지를 내리고 ‘끈팬티’를 드러내거나, 검정색 가죽 가면을 쓰거나, 채찍을 (물론 가짜로) 휘둘러도 웃는 날이었다.
한쪽 모퉁이에 놓여 있을 거라던 섹스토이들은 어느 순간 어떤 여자의 손에 들려 있기도 했다. 진동 버튼이 눌려진 채, 징징거리면서 바닥을 기기도 했다. 작은 물건을 손에 쥔 여자는 데킬라와 보드 카에 취해 있었다. 그 손이 다른 여자의 바지 위에 가까워질 때, 뒤에 있던 남자의 환호성이 들렸다. 짧은 청반바지 위로 진동을 느낀 여자는 웃는 얼굴로 춤을 추었다. 일단, 새벽 1시였다.
11시 정각엔 한산했다. 음악도 틀기 전이었다. 디제이 테이블 뒤에 설치된 화이트 스크린엔 새로 나온 바이브레이터의 광고 영상이 반복 재생됐다. 아이팟과 연결해 쓰고, 음악에 따라 진동하는 신제품이었다. 아이팟을 활용하는 가장 섹시한 방법이랄까? 혼자 와 다리를 꼬고 앉은 어떤 남자는 그 영상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나를 초대한 팀장이 회사 사장을 소개했다. 우린 보드카를 섞어 마시면서 한국 잡지 시장과 성인 용품을 향한 일말의 호기심, 구매자들의 취향에 대해 얘기했다. “의외로 여성구매자가 많아요. 가격이 높다 보니 주로 직장인이고요.” 파티 기획자는 “곧 파티 분위기를 끌어 올려줄 ‘크루’들이 온다”며 한산한 분위기를 걱정하고 있었다.
11시 반엔, 몸 좋은 남자들과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들이 한 무리 들어왔다 나갔다. “이따 올게요”하고 손을 흔들었다. 기획자가 말했던 ‘크루’였을까? 30분쯤 후에 다시 등장한 이들은 자리에 앉을새도 없이 춤을 추고 놀았다. 곧 초대 받은 사람과 혼자 온 사람, 크루를 구분할 수 없었다.
두 명의 여자가 눈에 들어온 것도 이 즈음이었다. 검정색 미니원피스를 입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여자 A는 분주했다. 청바지를 입고 등과 브래지어 끈을 드러낸 여자 B는 가장 활달하게, 어쩌면 모든 남자의 목에 팔을 감고 춤을 추었다. 나는 처음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동석했던 관계자가 (술에 취해) 말했다. “저 여자 어때? 재밌게 놀아야지, 여기서 뭐 해?”
말을 놓을 사이는 아니었다. 그가 내 팔을 잡고 여자들 곁으로 끌고 갔다. 그러더니 엉덩이로 내 몸을 그 여자들 엉덩이 쪽으로 밀었다. 파티에서 응당 그럴 법한 살가움과 불쾌함, 막 오르기 시작한 취기사이에서 여자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라고. 웃는 얼굴로 가까워진 여자가 당연한 수순이라는 듯이 내 몸을 훑기 시작했다. 그 여자의 등과 어깨를 쓰다듬다가, 얼굴이 가까워질 때쯤 눈으로만 인사하고 멀어졌다. 자리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뭔가, 어그러졌다.
“또 앉았네?”아까 그 관계자가 다시 왔다. 입에서 술 냄새가 훅 풍겼다. 혀는 꼬여 있었다. 음악 때문에 아무 말도 안 들렸지만, 반말로 말했다. “난 여기서 놀 테니까 가서 저 여자 꼬셔봐.” “누구?” “저기 어깨 넓고 가슴 드러낸 여자. 아까부터 당신 보고 있잖아.” 마침 옆을 지나 계단을 올라가는 여자 A를 따라갔다. 검정색 미니 원피스 밑으로 뻗은 다리가 곧았고, 허벅지엔 보기 좋은 잔근육이 붙어 있었다. 브래지어를 입지 않았다는 건 진작 알았다.
2층은 조용해서 살 것 같았다. 1층이 내려다보이는 난간이 있었고, 안쪽엔 소파와 테이블이 있었다. 여자는 안쪽에 앉았다. 나는 난간에 서서 생수를 마셨다. 파티를 지배하는 분위기는 어떤 본능과 억지가 반반이었다. 그때도 B는 플로어를 휘젓는 중이었다. 면바지에 수수한 셔츠를 입은 한 남자가 입으로 ‘호우! 호우!’소리를 내면서 추는 춤엔 색기가 넘쳤다. 이들의 움직임은 본능이었다. 야하게 입은 여자들과 어떡해서든 엮어보고 싶은 남자들의 투박한 몸사위가 억지였다. 어느 쪽에도 섞일 수 없다고 생각할 때, 갑자기 옆으로 다가온 여자 A가 말했다.
“오늘 파티 너무 재미없어요!” “그래요? 전엔 어땠는데?” “전엔 훨씬 좋았죠. 클럽 안에 풀장 만들어놓고 맥주로 채워놓고 다 같이 들어가 놀았으니까. 오늘, 놀 줄 아는 사람이 없어.” “저기, 다들 웃통 벗고 노는데도?”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즈음 남자들은 윗도릴 벗고 놀기 시작했다. 한 남자가 다른 남자를 어깨에 들쳐 업었는데, 바지 아래로 끈팬티가 보였다. 손으로 입을 가린 여자들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이때 얼굴이 상기된 기획자가 2층으로 올라왔다. 그는 아예 끈팬티만 입고 있었다. “두분 같이 있었네요? 얘 가슴 한번 만져봐요. 만져봤어요? 뭐 새로 나온 기술인데, 실리콘도 아니고 체지방도 아니래요. 근데 진짜 같애.” “만져보…. 네?” 생수를 마시다 말고 여자를 봤다.“ 원래 꽉 찬 A컵이었는데, 지금은 C컵이에요.”그러면서 검정색 원피스의 가슴께를 열었다.“ 괜찮아요, 만져봐요.”
나신의 기획자가 먼저 손을 넣었다. 과장되게 황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곤 소파에 앉아 있던 젊은 여자들과 놀았다. 네 명 중 가장 예쁘다고 생각했던 한 명의 무릎 위에 앉았다. 여자의 입술에 남자의 살이 닿았을까? 옆에 있던 세 명의 여자애들은 “꺅, 꺅”소리를 질렀다. 누군가 사진을 찍을 때, 브이자를 그리면서.
여기서부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게 진짜 C컵이었는지, 두사람은 언제부터 알던 사이였는지 생각할 틈도 없이 밑을 봤다. 2시간 전과 같은 모양으로 춤추는 사람들. 다만 살색이 짙어졌다. 혼자 왔다는 날씬한 단발머리 여자와 내내 같이 춤추던 마른 남자는 2층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곧 손을 잡고 나갔다.
파티는 4시에 끝날 예정이었다. 세수를 하려고 화장실에 갔을 땐 남자 하나가 변기에 앉아 고개를 꺾고 잠들어 있었다. 화이트 스크린 뒤에서 환호성이 들리기에 가봤더니, 기획자가 무대 위에서 아까 그 차림 그대로 춤을 추고 있었다. 여자애들이 밑에서 보고 있었다. 뒤에서 바람 같은 움직임이 느껴졌는데, 여자 B였다. 그녀의 눈높이는 춤추던 기획자의 하체와 직선이었다. 그의 팬티를 손으로 내리고, 뭔가를 입 속에 넣었다. 그녀의 머리가 앞뒤로 움직일 때, 구경하던 여자애들은 놀라서 소리도 못 냈다. 새벽 4시 반. 음악도 꺼진 후였다. 테이블에서 대화했던 관계자들은 언제 자리를 떴을까? 이젠 어지럽지도 않았다. 놀다 지쳐 의자에 앉은 남자들은, 그때까지 남아 있는 여자에게 돌아가면서 말을 걸었다. 목소리들이 파편처럼 날렸다. “오늘 꼭 같이 있고 싶은데…” “부모님이랑 같이 살아요”같은. 막 찍은 스냅사진 같은 기억엔, 서사가 없었다.
손엔 여자의 등과, 어깨와, 언제 C컵이 됐는지 알 수 없는 가슴의 감촉이 남아 있었다. 클럽 문은 무겁게 열렸다. 비는 그쳐 있었다. 이런 날은 혼자인 게 낫다고, 택시에서 생각했다.
- 에디터
- 정우성
- 아트 디자이너
- Illustration/ Finger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