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셉 고든 레빗은 계속 달린다. 그렇게 얻은 명성을 연료 삼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 프로덕션 회사를 차리거나 인터넷에서 노래를 부르고, 자신이 쓴 영화를 감독한다. 영화 속에만 영웅이 있는 건 아니다.
조셉 고든 레빗이 <솔로몬 가족은 외계인>에서 소년의 몸에 갇힌 괴팍한 노인 역을 맡은 게 언제였더라? 하나 둘 세다 보면 어느새 20년이 다 되어간다. 하지만 조셉 고든 레빗은 여전히 신선하고 매일이 즐겁다. 세스 로건과 함께 투병 영화를 웃음이 나오는 영화로 만들고, 인터넷에서 노래를 부르고,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포함한 수없이 많은 영화에 출연했다. 토끼처럼 폴짝폴짝 필모그래피를 쌓고 있는 조셉 고든레빗과 함께 길을 떠났다.
“야, 임마.”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조의 고향 페르난도 밸리에서 회색 2005년형 혼다 어코드 하이브리드가 급하게 유턴했다. 우리는 그의 모교인 반 누이스 고등학교를 찾고 있었다. “우습네요. 오랜만이라.” 그는 우회전했다가 좌회전, 다시 우회전하면서 말했다. 빨간 원이 그려진 흰 티셔츠와 회색 치노 팬츠, 먼지 묻은 반스 운동화, 사각턱에 살짝 자란 까칠한 수염, 왼팔 손목에 두른 빨간 플라스틱 시계. <50/50>, <인셉션>, 올여름의 배트맨 시리즈 <다크 나이트 라이즈> 등 다양한 영화에 출연했던 이 배우는 자기 나이로 안 보인다. 그는 사실 서른한 살이다. “제가 방향 감각이 정말 별로거든요. 이제 제대로 된 길로 들어선 것 같은데요?” 그는 차를 몰고 가면서 열 살때 풋볼을 했던 공원을 보여줬다. 어머니와 함께 오디션을 보러 갈 때 매일 다녔던 길도 지나갔다. 차에서 내려선 자기 선글라스를 들고 있어달라고 부탁하더니, 영화에서 자주 보여주는 우아한 몸놀림까지도 보여줬다. 텀블링, 뒤로 껑충 도약하고 뒤로 공중제비를 돌았다.
한 번 실수하고 씩 웃고는 다시 시도했다. 두 번째는 성공했다. 모호크 머리를 한 스케이트보더가 옆을 지나갈 때, 조는 스케이트 보드 타는 학생들을 업신여기던 때가 있었다고 말한다. “보더들은 거의 다 짜증나는 놈들이었거든요. 그래도 저 친구는 꽤 쿨해 보이네요.” 졸업 파티에도 가는 학생이었느냐고 묻자, 그는 멋쩍어하며 고개를 저었다.
“전 좀 심각한 꼬맹이였어요. 잘난 척했죠. 전 제 또래 여자 애들이 아주 별로라고 생각했어요. 콤팩트 거울이나 들여다보고, 뭐 그러잖아요. 그게 사악하다고 생각했다니까요.” 그는 당시 자신이 “비전 없는 명문대 얼간이가 될” 위험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지금은 좀 더 관대해졌어요. 나를 보며 웃을 때도 많아요.”
우여곡절 끝에 반 누이스 고등학교에 도착하자, 정문의 경비원이 우리를 교무실로 가라고 했다. 조는 그에게 알겠다고 말했지만, 복도를 걸어가며 속삭였다. “교무실은 가지 맙시다.” 오른쪽으로 꺾자 햇살이 내리쬐는 안뜰에서 학생 수백 명이 우글거렸다. 그들은 종이 치기 전에 교실로 가려고 서두르고 있었는데, 티셔츠, 치노 팬츠, 반스 차림인 아이들이 많다는 걸 조가 먼저 눈치챘다. “꽤 멋진데요.” 조가 씩 웃으며 말한다. “제가 옷을 딱 맞춰 입고 왔네요.”
우리의 정신없는 모교 탐방은 몇 시간 전, 선셋 스트립의 샤토 마르몽 호텔에서 시작됐다.“ 요즘 여기 자주 왔어요. 미팅하기에 좋은 곳이거든요. 요즘 영화를 감독하는 중인데, 그러려면 미팅을 많이 해야 돼요.” 그 영화는 조가 직접 쓴 성장 영화다. 우리는 호텔에서 나와 낡아빠진 그의 자동차에 탔다. 하이브리드 차인데 조는“ 자동차가 친환경이라는 건 가짜”라고 말했다. 그는 자동차 제조사와 모델명을 기사에 넣지 말아달라고 했다. 넣을 거라고 하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냥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다닌다고 하면 안 돼요?”
조의 필모그래피는 탄탄하고 꾸준하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 이후 자전거 액션물 <프리미엄 러쉬>가 개봉 예정이고, 뒤이어 어드벤처물 <루퍼>도 기다리고 있다. 12월에는 <링컨>도 개봉하는데,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16대 대통령 링컨을 연기하고 조는 아들 역을 맡았다. 그 역할을 조에게 맡기자고 제안한 사람이 바로 다니엘 데이 루이스다. 조와 함께 일해본 감독들은 그의 협동 정신과 다재다능함을 칭찬한다. 코미디 영화에 교활한 지성을 가미하거나 (2010년 <히셔>), 심지어 암마저도 우스운 것으로 만든다 (2011년 <50/50>). 느와르도 할 수 있고 (2005년 <브릭>) 오락영화도 해낸다 (2009년 <지.아이.조 : 전쟁의 서막>). 주이 디샤넬과 듀엣으로 불러 유튜브에 올린 노래까지 더하면, 조는 타고난 쇼맨처럼 보일 때가 많다.
조의 필모그래피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통점이 하나 발견된다. 그가 출연한 영화에는 시간을 왜곡하는 장치들이 잔뜩이라는 점이다.그는 앞뒤로 시간을 오가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2000년작 스릴러 <메멘토>를 열렬히 좋아해서 <인셉션>에 출연하기 위해 로비를 했을정도다. 2010년작인 <인셉션>은 기억과 인지에 대한 복잡하고 어지러운 영화로, 과거와 현재를 설계한다. 그는 2007년, 영화 <룩아웃>에 출연해 교통 사고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야 자신을 찾을 수 있는 스포츠 스타를 연기했다. 생각해보면 주이 디샤넬과 함께 출연한<500일의 섬머>도 만난지 488일째 되는 날에서 시작해 다시 첫날로, 그러다 다시 시간이 뒤로 흐르는 식으로 간다. 올 10월 개봉하는 <루퍼>에서도 시간은 중요한 요소다. 조는 마피아 밑에서 일하는 저격수 역을 맡았는데, 자신이 제거해야 할 타깃 중 하나가 미래의 자신임을 알아차리게 된다. 조는 이 영화를 위해 매일 세 시간을 투자해 얼굴에 분장을 했고 푸른 콘택트 렌즈를 꼈다. 모두 두 캐릭터 ‘조’(조)와 ‘나이 든 조’(브루스 윌리스)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더 그럴듯하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젊은 로버트 포스터 같은 느낌이 나지만, 그 얼굴이 생경해 가끔은 조가 이 영화에 출연하기는 했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그 말을 들은 조가 박수를 치며 흥분했다. “바로 그 말이 배우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당신이 맞나 알 수 없었어요’라는 그 말이요!”
“조에겐 엉뚱한 면이 좀 있지요.” 2001년 <매닉> 촬영장에서 조를 처음 만난 주이 디샤넬은 그를 이렇게 묘사했다. “아주 지적이에요. 아주, 아주 진지하고요.” 당시 열아홉 살이던 조는 연기를 그만두고 콜롬비아 대학에 가서 나보코프를 읽기로 막 결심한 뒤였다. 한편 디샤넬은 배우가 되려고 대학을 막 그만둔 참이었다.
“제가 ‘너 영화 싫어하는구나’ 하면 조는 ‘넌 책 싫어하는구나’ 그런 식이었죠. 무슨 말을 하면, 조는 ‘그게 무슨 뜻이야?’ 하고 되물었죠. 단 한 단어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어요.” 분석적이고 ‘범생이’ 같은 조의 면모는 일을 하면서 달라졌다. “<500일의 썸머>에서 다시 만났을 때 조는 많이 변해 있었어요. 훨씬 더 생각과 태도가 열렸다고 할까요?” 조가 공중제비를 도는 걸 봤다고 하자, 그녀가 웃었다. “물론 그랬겠죠. 조는 뒤로 공중제비 도는 걸 굉장히 좋아해요.”
<솔로몬 가족은 외계인>에서 조를 만났던 존 리스고우에게도 그에 대해 물었다. “그때 조가 어린 소년의 몸에 들어간 노인을 연기했다는 건 참 기이한 일이에요. 왜냐하면 당시 조는 실제로 좀 그랬거든요. 굉장히 성숙한 아이였어요. 새 골프장을 만드는 걸 보고는 환경 파괴에 대해 이야기하던 게 기억납니다. 어느 꼬마가 그런 걱정을 하나요? ”
<루퍼>를 쓰고 감독한 라이언 존슨도 이렇게 말했다. “조는 일과 놀이를 합치는 능력이 있어요. 그는 자기의 유명세를 연료 삼아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것들을 추진하는 방법을 찾아냈죠.” 요즘 조는 영화 <돈 존의 중독>의 감독에 도전하고 있다. 여기에 전력을 다하기 위해 쿠엔틴 타란티노의 <장고 : 분노의 추적자>에서 도중 하차했을 정도다. 현재 촬영 중인 이 영화에서 조는 이기적이고 막돼먹은 포르노 중독자로 나온다. 스칼렛 요한슨, 줄리언 무어, 토니 댄자도 출연한다.
조가 운동장를 걷다 말고, 최근엔 전통적인 할리우드가 무너지고 있다는 말을 꺼냈다. “지금과 같은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는 오래 가지 못할 거예요. 예술가가 등장해 스스로 작품을 만들 거고, 청중에게 가 닿을 거예요. 중간에 끼는 사람이 필요없어지는 거죠. 스튜디오나 에이전트 같은.” 그는 인터넷이 우리를 문화의 황금시대로 몰아가고 있으며 큐레이션이 21세기의 예술 형태라는 이야기도 했다. 그는 미국의 지적재산권 법을 심하게 비난하며 현재 할리우드의 재난을 차가 발명되었을 때 대장장이들이 느꼈던 감정과 비교했다. 또 ‘오리지널리티’보다 ‘퀄리티’가 중요하다는 말도 줄줄이 이었다.
“전 어렸을 때부터 늘 비디오 카메라를 가지고 놀았어요.” 할리우드의 구조적 변화에 대해 자신이 내놓은 대답 같은 사이트인 히트레코드(hitRECord)를 설명하며 조가 말했다. 이 사이트는 조가 사비 50만 달러를 쏟아부은 프로덕션 회사다. 사이트 이용객들이 자기 영상을 업로드하면 다른 사람들이 편집하고 이리저리 합칠 수 있게 해준다.
오프라인 모임이 열리면 조는 유명한 친구들을 종종 데리고 온다. 예를 들면 최근에 조와 프랑스어로 듀엣 곡을 부른 앤 해서웨이 같은 친구들 말이다. 조는 이 사이트를 형인 댄과 함께 만들었다. 사진사이자 파이어 스피너(불덩어리를 돌리는 곡예를 하는 사람)이었던 댄은 ‘불타는 댄 ’이란 별명으로 불렸는데, 2년 전에 돌연 사망했다. 조는 “사고였어요” 라는 말 외에는 하지 않았다. 최근 히트레코드가 발매한 묶음집 RECollection은 책 한 권, 단편 영화 DVD 하나, 음악 CD 하나로 구성되어 있다. 조는 이 묶음집을 댄에게 헌정했다.
한때 미적분을 공부했다는 교실 쪽으로 걸어 가고 있는데, 갑자기 조가 말했다. “우리 잡힐지도 모르겠는데요.”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도 전에 여학생들이 사방을 둘러쌌다. 그중 몇 명은 비명을 질렀다. 조는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댄 채, 사진은 찍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리곤 먼저 악수를 청했다. “만나서 반가워. 그런데 난 조용히 일하고 싶어.” 소녀들이 흩어지자 우리는 다시 재빠르게 걸었다.
- 에디터
- 에이미 월러스
- 포토그래퍼
- NATHANIEL GOLDBE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