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패스벤더와 제임스 맥어보이는 동료 이상이다. 함께 달리고, 함께 분노한다. 그들이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이후 런던의 한 펍에서 다시 만났다. 영웅, 셰익스피어, 안젤리나 졸리와의 진한 키스, 로맨스의 의미가 술안주였다.
1. 진실, 거짓말, 그리고 홍보 활동
마이클 패스벤더 누구나, 뭐 전부는 아니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든 난민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순간이 와요. 고등학교에 가면 어떤 사람은 안경을 쓰고, 어떤 사람은 특정 종교를 믿기도 하고, 성적 정체성이 다른 사람도 있죠. 이유가 뭐든 간에, 사람들은 외면당했다는 기분을 느껴요. 난 ‘엑스맨’ 시리즈가 이런 부분에서 멋지다고 생각해요. 소외감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거.
패스벤더가 술을 홀짝이는 동안 2억 달러짜리 최신작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 함께 출연한 제임스 맥어보이가 새 영화의 매력을 설명한다. 둘은 친구다. 아주 친한 친구다. 이 영화는 이미 성공 궤도에 오른 이 두 배우에게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런던 북부의 로드 스탠리에 있다. 시간은 아직 이르지만, 맥어보이는 술집에서 설교를 늘어놓는 사람들답게 곧 자신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제임스 맥어보이 저한테 물어보는 사람이 많아요. “왜 요즘 슈퍼히어로 영화가 그렇게 인기를 끄는 거야?” 그리고 “요즘 슈퍼히어로물에 어떻게 깊이가 생긴 거야?” 같은 거요. 난 “아니”라고 해요. 인간들은 수천 년 동안 슈퍼히어로 이야기를 해왔어요. 북유럽 신화, 빌어먹을 그리스 신화, 로마 신화. 헤라클레스? 울버린이랑 다를 게 뭐가 있어요? 인간은 언제나 슈퍼히어로, 악당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어요. 요즘 유난히 유행이라서 우리가 열심히 팔아먹는, 그런 소재가 아니라고요.
패스벤더 말 잘했다. (박수를 친다) 경의를 표한다.
맥어보이 어제도 홍보 투어를 열심히 다녔거든.
패스벤더 난 빠졌는데.
맥어보이 홍보 활동을 하다 보면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잘 알게 되지.
패스벤더 요점을 잘 짚게 되지.
맥어보이 그렇다니까.
인터뷰어 그런 날카로운 말 한마디, 더 알려줄 수 있어요?
맥어보이 난 열네 살 때부터 ‘엑스맨’ 만화를 봤어요. 엄청난 팬이에요. 아, 빌어먹을, 이걸 어제 4백만 번쯤 되풀이해서 이야기했던 것 같네요.
패스벤더 “맙소사, 내가 이 이야기를 벌써 몇 번째 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 땐 내 자신에게 괜히 화가 난다니까. 내가 진실되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사실 나로선 정직한 대답을 찾고 있을 뿐인데…. 기만적이라든가, 미리 뭘 짜고 말하는 건 없어요. 최소한 나로서는.
맥어보이 내가 솔직하지 않은 순간은, 내가 없는 이야기를 지어낸다든가 모면하려고 딴소리를 하는 때…. 어떤 질문을 받았을 때냐 하면….
패스벤더 네가 싫어하는 사람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맥어보이 그거지. 그럴 때는 나는 거짓말쟁이 개새끼가 되지. 이런 식으로 말한다니까? “마이클은 정말 괜찮은 친구죠.”
패스벤더 “걔는 정말 끝내줘요.” 이렇게.
2. 퍼스트 클래스 우정
사람들이 원하는 것처럼 인생이 시詩적이었다면, 이들은 2000년에 톰 행크스와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HBO 시리즈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 신병 G.I.로 함께 등장했을 때 친해졌어야 했다. 하지만 둘은 그때 단 한 장면도 함께 찍지 않았다. 둘의 우정은 10년 후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를 찍을 때에야 피어났다. 둘의 이력서도 꽤나 길어지고, 서로 상대에 대한 존중도 키운 다음이었다. “난 마이클을 만나기 전부터 이미 마음을 터놓을 준비가 돼 있었어요. 난 ‘이 친구 정말 훌륭하군’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네 비위 맞추려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내가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를 하게 돼서 신났던 이유 중 하나는 너랑 같이 작업을 한다는 거였어.” 맥어보이가 말한다.
“난 먼발치에서 흠모해왔지.” 패스벤더는 오디션을 치르면서 그들의 사이가 명확해졌다고 말한다. 매튜 본 감독은 찰스 자비에 역으로 맥어보이를 먼저 선택했다. 맥어보이는 최적의 화합을 찾기 위해 에릭 렌셔, 즉 매그니토 역을 맡을 배우들을 다 테스트했다. “스크린 테스트를 하려고 나랑 제임스가 같은 방에 들어갔어요. 그때부터 우리 사이엔 존중과 친밀함이 있었죠. 나아갈수록 더 깊은 신뢰가 생겼고, 서로가 상대를 뒷받침해주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그러면 믿음은 더 깊어지고, 그러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가 있지요.” 패스벤더가 말한다.
두 사람은 쪽지를 주고받는 것으로 시작해 서로의 대사를 고쳐 써주고, 맥어보이가 “편안하고 정직하고, 친구로서 마주 앉아 ‘넌 이걸 어떻게 생각해?’라고 거리낌없이 물어볼 수 있을 정도”라고 표현하는 관계에까지 이르렀다. 이 영화가 대박 블록버스터가 되고 전 세계적으로 3억 5천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는 데 맥어보이와 패스벤더(찰스와 에릭) 사이의 형제애가 기여했다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이들의 우정은 깊고 변함없지만, 삶엔 차이가 있다. 30대 남자를 규정하는 두 가지 방식이기도 하다. 맥어보이는 조용한 크라우치 엔드에서 가족과 함께 아늑하게 살고 있다. 결혼한 지 8년이 된 아내 앤-마리 더프, 이제 네살이 된 아들과 함께다. 패스벤더는 지금도 수년간 살아온 너저분한 독신자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그는 20대 때 이사한 해크니 한구석의 아파트를 멋지게 꾸미겠노라 수년째 벼르고 있다. 공통점이라면 둘 다 쉽지 않은, 평탄치 않은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문자를 주고받고 동영상을 보내며, 함께 일을 할 때는 단짝으로 지낸다. 몬트리올에서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를 찍을 때도 그랬다. 그리고 영화를 찍지 않을 때는, 이렇게 펍에 와서 맥주잔을 기울인다. 지금 술을 마시는 곳은 로드 스탠리라는 이름의 펍. 음식이 맛있기로 유명한데, 지리적으로나 다른 의미로나 이 두 친구 사이의 중간쯤이다.
오늘의 술자리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또 하나 있다. 오늘이 패스벤더의 서른일곱 번째 생일이다. 그는 저녁 약속이 있긴 하지만 서두르지는 않는다. 타블로이드에 보도되는 것처럼 늘 클럽에서 슈퍼모델들과 술을 마시며 흥청거리는 사람도 아니다. 그는 술을 마시는 중간중간에 코코넛 워터를 홀짝였다.
“우리 사이에 부자연스러운 건 아무것도 없어요. 전 이 친구를 정말 좋아해요.” 맥어보이가 패스벤더를 돌아본다. “난 너보다 못한 녀석들이랑 일할 때면 네가 내 옆에 없다는 사실이 정말 슬프게 다가와.”
3. 시상식과 화장실
패스벤더 아, 진짜. 나 너 없으면 불안해지는데.
맥어보이 괜찮을 거야.
패스벤더 넌 아마 “짜증나, 망했네!” 그럴걸.
맥어보이 전화할게. “내가 흥분된다고 했던 거 기억나? 흐흐흐….”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다음 술잔을 기다린다. 술이 나오자 최근에 영화화된 <맥베스>에 패스벤더가 나왔던 이야기도 따라 나온다. 패스벤더와 맥어보이는 <맥베스>의 대사 몇 줄을 가지고 의견을 나누고, 셰익스피어를 연기하는 것, 그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어두운 맥베스를 표현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이야기한다. 맥어보이는 작년에 웨스트 엔드에서 연극 <맥베스>의 주연을 맡아 올리비에상 후보에 올랐다. 영국의 토니상이라고 할 만한 상이다.
맥어보이 네. 그래도 상을 타지는 못했죠.
패스벤더 네가 탔어야 하는 거 아니야?
맥어보이 못 탔다니까? 내가 졌어.
패스벤더 그래 그래, 진정해.
맥어보이 씁쓸한 건 아냐, 씁쓸하지 않아.
패스벤더 그냥 화났을 뿐이지.
맥어보이 씁쓸한 비터 맥주를 마시고 있지. 그냥 더럽게 열 받을 뿐이야. 아니, 이것도 농담이야.
패스벤더 그게 농담?
맥어보이 아니, 잘 들어봐. 상을 타고 말고는 중요한 게 아니고, 난 일을 할 때는 상 따위는 안중에도 없어. 하지만 대기실에 앉아 있으면 내 옆 사람보다는 내 이름을 불러주면 훨씬 좋겠다는 생각이 들거든. 그건 당연한 거지. 내가 마더 테레사라도 돼서 “난 정말로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이 다 이겼으면 좋겠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니까.
패스벤더 우린 모두 승리자야, 우린 모두 승리자라고. 젠장, 정말이야!
맥어보이가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서며 친구의 등을 툭툭 두드린다. <셰임>에서 괴로워하는 섹스 중독자 역을 맡고 6개월 동안 오스카 캠페인을 펼쳤던 패스벤더는 업계에서 보기 드문 순수한 면을 보였다. 후보에 오르지 못해 실망했다며 오스카 기간의 홍보 캠페인은 그만하겠다고 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의 발언을 아카데미상을 타기 위해 로비하는 사람들에 대한 일침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패스벤더 캠페인은 5~6개월 정도가 걸려요. 그건 괜찮지만, 난 영화를 만들며 또 다른 이야기를 하는 편이 더 좋아요. 내가 했던 말의 뜻은 그게 전부였어요. “젠장, 정말 짜증나, 못 해 먹겠어”라는 건 아니었어요. 전혀 그런 뜻이 아니었고, 홍보를 하는 사람들을 깎아내리는 것도 절대 아니에요.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요. 우리는 지금 정치적으로 올바른 시대에 살고 있다고 난 생각해요. 그런데 오스카 캠페인은 다시 50년대가 찾아온 것 같다니까요. 사람들은 누가 말 한마디만 했다 하면 잽싸게 달려들어 평가를 내려요. 사실은 상을 타느냐 못 타느냐가 나한테도 영향을 줘요. 왜냐하면 누구나 인정받는 건 좋아하니까요. 그게 인간의 천성이고, 영향이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죠. 제임스 말대로, 내 이름이 불리면 기분이 좋아요.
인터뷰어 그러면 <노예 12년>으로 스티브 맥퀸 감독과 함께 무대에 올라갔던 건 인정을 받은 경험인가요?
패스벤더 물론이죠. 아까도 했던 말이지만, 동료들에게 인정받는다는 건 늘 즐거운 경험이에요. 난 누구나 살면서 그런 걸 원
한다고 생각하는데, 음…. ‘인정받는다’는 말보다는 ‘축하받고 유명세를 누린다’는 말이 어울릴 것 같네요. 적당한 말인지 모르겠지만요.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거죠.
인터뷰어 남우조연상 수상자 이름이 들어 있는 봉투가 열리던 순간에 불안하거나 초조하셨나요?
패스벤더 아카데미 시상식 때는 그런 느낌이 없었어요. 느긋한 분위기였죠.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알았기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겠네요.
인터뷰어 자레드 레토가 상을 탈 거라고 예측했을 수 있겠지만, <노예 12년>은요? 루피타 뇽이 여우조연상을 탄 건요?
패스벤더 사실 그것도 어느 정도 예측했어요. 최고작품상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루피타가 상을 받을 거라는 것도요. 진짜 난 루피타가 상을 받으리라 확신했어요. 실제로 상을 받게 돼서 정말 기뻤고요.
인터뷰어 루피타는 수상 소감에서 당신을 언급했죠. 기억에 남았어요. 당신을 두고 자신의 ‘록rock’이라고 말했잖아요.
패스벤더 근데 나는 거기 없었어요!
인터뷰어 뭐 하고 있었는데요?
패스벤더 화장실에 가려고 나와 있었어요.
인터뷰어 오줌을 누고 있었다고요?
패스벤더 네. 오줌 누고 있었어요. 몰래 보드카 토닉도 한 잔 마셨고요. 시상 순서가 한참 남아있는 줄 알고 나왔던 건데 딱 걸렸어요. 그리고 다시 들어가지 못하고 광고가 나오는 시간까지 기다려야 했죠. 그래서 백스테이지에서 수상 장면을 봤어요. 꽤나 부끄러웠어요.
맥어보이 (바로 이 순간에 마침 맥어보이가 오줌을 누고 돌아왔다.) 무슨 이야기하고 있어?
패스벤더 오스카. 루피타가 상 타는 장면을 내가 놓쳤잖아. 그래서 (시상식에 함께 참석한) 우리 엄마 옆에 다른 사람이 대신 서 있었어. 브래드 피트가 나중에 말해주더라, 사람들이 “마이클 패스벤더? 마이클 패스벤더는 어디 갔어?”라고 하더라고. 내가 타이밍을 잘못 잡았어.
4. 록스타의 코미디
패스벤더 정말 흉했어요. 이쪽은 짧고 이쪽은 곱슬머리였죠. 난 머리를 뒤로 묶고 다녔기 때문에, 밴드를 풀기만 하면 휙 넘어가서 아주 꼴불견이었죠. 그래도 운이 좋아서 여자친구는 있었어요. 어떻게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여드름도 많았거든요.
젊은 메탈 팬 예술가의 초상은 스쳐 지나갔던 스냅샷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패스벤더는 지금도 가끔 촬영장에서 AC/DC, 슬레이어, 메가데스를 들으며 기합을 넣는다. 아일랜드의 킬라니에서 자란 그는 한때 록 스타의 꿈을 품기도 했다. “실력이 별로였다는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딱 두 명이었어요. 둘 다 리드 기타를 치고, 둘 다 노래를 불렀죠. 뒤로 물러서려는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베이시스트도, 드러머도 구할 수가 없었어요. 동네가 작았어요.” 그가 그 친구와 함께 <저수지의 개들>을 연극으로 만들자 상황이 달라졌다. 파스벤더는 거기서 미스터 핑크 역을 맡았다. 그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출연 당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에게 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아주 재미있어 하던데요. 난 수익금을 전부 자선금으로 냈다는 걸 강조했어요. 타란티노의 작품을 가져다 돈을 번 게 아니라고요!” 10대 시절 패스벤더는 노던 아일랜드 출신인 어머니가 차린 식당에서 웨이터로 일했다. 독일 출신인 그의 아버지가 주방장이었다. 하지만 그는 바텐더 일을 더 좋아했다. “웨이터로 일할 땐 정신없이 돌아다녀야 하지만, 바 뒤에 있을 땐 그 공간은 내 공간이 되죠. 손님들도 바텐더가 와서 주문을 받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잖아요.”
연기학교에 지원했을 때 그는 메소드 연기를 배울 수 있는 수업들을 찾아 들었다. 그때 받은 훈련이 그의 출세작 <헝거>에서 IRA 소속으로 단식 투쟁을 하는 바비 샌즈 역을 맡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가 스티브 맥퀸과 처음으로 작업한 영화다. “<헝거> 이후로 계속 듣는 말이 있어요. 언젠가는 죽어서 사라질 운명인데, 그냥 모든 걸 다 내걸고 일을 하면 되지 않느냐? 나자빠질 걱정은 하지 마라,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니까. 때로는 네가 찾아내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배우로서는 스스로를 위태위태한 상황에 집어넣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노예 12년>에서 농장주 에드윈 엡스를 연기할 때, 그는 팻시 역을 맡은 루피타 뇽을 강간하는 장면을 찍은 뒤 정신을 잃은 적이 있다. “과호흡을 하고 의식을 잃었어요. 고작 몇 초였지만요. 강간 장면이었고, 유쾌한 장면은 아니었죠. 엡스라는 캐릭터의 내면에서는 여러 가지 상충되는 감정들이 잔뜩 있었어요. 그런 일이 가끔 있어요. 실제로 전 그렇게…격한 감정을 느끼지는 않아요. 스티브가 거기에 대해서 별 말 안 하고 넘어갔으면 좋겠어요.” 8월에는 매기 질렌할과 함께 출연한 인디 코미디 영화 <프랭크>가 개봉된다. 그는 변덕스럽고 수수께끼 같은 가수 역을 맡았다. 패스벤더가 자신의 가벼운 면을 보여줄 기회를 덥석 문 것이 놀랍지 않다. 그는 생각에 잠겨 이렇게 말한다. “코미디 영화를 더 많이 하고 싶어요. 좀 그럴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5. 기사는 부드러워
패스벤더 ‘엑스맨’에는 이안과 패트릭이 있어요. ‘엑스맨’ 시리즈를 전부 끌고 나가는 사람도 있고요. 울버린 역의 휴 잭맨처럼. 제목이 함축하듯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여러 시간대를 넘나든다. 휴 잭맨은 울버린으로, 제니퍼 로렌스는 미스틱으로 등장한다. 찰스와 에릭은 두 명씩 등장한다. 물론 그중 한 커플이 패스벤더와 맥어보이고, 패트릭 스튜어트와 이안 맥켈런도 있다.
패스벤더 이안과 저는 정말이지 밤에 스쳐 지나가는 두 척의 배같이 지냈어요. 내 트레일러에 쪽지를 남겼더군요. 내가 쓰기 전에는 이안이 쓴 트레일러였던 모양인데, ‘아, 저들은 우리가 만나지 못하기를 염원하는가 봐’라고 적었더군요. 그는 ‘우리가 아직도 만나지 못했다는 게 참 안타까워’라고 했어요. ‘코믹-콘’ 전시회에서 만났는데, 정말 좋았어요.
맥어보이 내가 이안의 트레일러 앞으로 지나간 적이 있는데, 그때가 아마 17시간 동안 가발 분장을 받고 난 다음이었을 거예요.
패스벤더 그 머리 말이야?
맥어보이 응, 여기까지 내려오는 머리였어.
패스벤더 아직 안 잘랐어?
맥어보이 긴 머리를 하고 이안의 트레일러 앞을 지나가는데, 이안이 “제임스, 제임스, 들어오게나. 맥어보이 씨?”라고 부르는 거야. 그래서 들어가서 앉았는데….
패스벤더 (이안을 흉내 내며) “제에에이임스?”
맥어보이 응. 갔더니 패트릭이랑 이안이 앉아 있었어. 숙이고 들어가서 계단에 앉았더니 “피시 케이크 좀 들겠나, 제임스?”라고 묻길래 “아뇨, 피시 케이크는 괜찮습니다”라고 했지. 아무튼 그렇게 거기 앉아서 두 사람이랑 이야기를 나눴어. 두 사람 다 정말 사랑스러웠어. 둘 다 늘 내게는 사랑스러운 사람들이야. 하지만 이안이 내 얼굴에 손을 얹더니, 계속 대고 있는 거야. 아아아아아주 오랫동안. 그리고 2분 30초 정도 내 얼굴을 쓰다듬더라. (패스벤더가 옆에서 웃는다.) 난 그냥 가만히 있었어. 그건 마치….
패스벤더 이안은 기사잖아!
맥어보이 이안은 기사지, 그리고 갠달프고, 매그니토잖아. 멋진 배우잖아! 근데 피시 케이크가 익어가는 냄새가 났어. 그가 내 얼굴을 쓰다듬는 동안 일어난 일이야. 그리고 패트릭은 그냥 조용히 앉아 있고. 괴상했어.
패스벤더 널 가지고 장난친 거야. (웃음) 분명해. 네가 트레일러에서 나가자마자 아마도 둘이서 배를 잡고 웃었을걸.
6. 현실의 히어로
맥어보이 연기를 시작하고 나서 처음 5~7년 동안은 내가 스코틀랜드 출신이란 걸 아무도 몰랐어요. 다들 내가 그냥 영국인 배우려니 했죠. 스코틀랜드 사람들조차 그렇게 생각했단 말이죠. TV나 영화에서 내가 했던 역들이 다 그랬어요.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 코스튬을 입고 나오는 작품들, <비커밍 제인>, <어톤먼트>. 내 경력을 만들어주는 작품들이 어렸을 때 나를 그토록 화나게 했던 놈들을 연기하는 거라는 게 정말 웃겼어요.
부모님이 서로 악다구니를 쏟아 부으며 이혼한 후, 그는 글래스고의 가난한 드럼채플 지역의 공영 주택에서 조부모의 손에 자랐다. “우린 주변의 몇몇 사람을 NED라고 불렀어요. 교육 못 받은 채무자들non-educated delinquents이라는 뜻이었죠. 가끔 나도 NED일 때가 있었어요. 간당간당했죠.” 고등학교 때 그는 미술과 음악 선생님들에게 홀딱 반했다. “난 곧바로 NED 행세를 그만두고, 가식을 떨기 시작했어요. 울 조끼를 입고 제대로 된 알도 없는 안경을 쓰기 시작했죠.” 맥어보이는 해군에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열다섯 살에 우연히 캐스팅된 것을 계기로 연기자가 되었다.
9년 후, 그는 BBC의 오리지널 버전 <쉐임리스>에서 근사한 영국 신사 역을 맡았다. 그리고 여자친구 역으로 출연한 앤-마리 더프를 만나게 되고, 후에 둘은 결혼한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그의 아이폰에 그녀의 사진이 뜬다. “좋았어. 아, 미안해요. 나 지금 좀 들떠 있어요. 집에 카펫을 깔았거든요. 한참 동안이나 집에 카펫이 없었는데…. 3년 동안 외풍이 많이 들어오는 집에 살았어요. 이것 좀 봐요.”
서른다섯 살의 맥어보이는 행복하게 꾸린 자신의 가정을 끊임없이 자랑한다. “스물네 살쯤부터 정착을 한 셈이죠.” 그와 더프는 상대가 일하는 동안 번갈아가며 아들을 돌보고, 유명인들이 빠지기 쉬운 덫을 피하는 데 각별히 신경을 쓴다. 그들의 삶과 관계를 공공연하게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는 뜻이다. “사적인 영역으로 두고 싶은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선택하는 거죠. 그런 걸 싸게 팔아넘기면, 내 자신도 싸구려가 되어버려요.”
하지만 맥어보이가 늘 성실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는 짬이 나면 자동차와 모터바이크 경주를 하고, 가끔 술에 잔뜩 취하기도 하고, 정신병자 악당 연기를 즐길 때도 있다. 이번 여름에는 그의 그런 뒤틀린 면이 미국 전역의 극장에서 공개된다.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은 어빈 웰시의 소설을 영화화한 <필스>에서 광기에 빠져드는 스코틀랜드 경찰 역을 연기했다. 그런데 정작 그는 2008년, 흥행에서 재미를 본 액션 영화 <원티드>에서 주연을 맡았던 걸 아직도 뿌듯해한다.
맥어보이 정말이지 근사했어요. 아주 신이 났죠. 젠장, 안젤리나 졸리랑 키스를 했다니까요. 네, 아주 진하게 했어요.
패스벤더 (웃음) 한 번 더 해, 제임스! 한 번 더!
인터뷰어 브래드 피트는 그 키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맥어보이 분명히 전혀 아무런 위협도 느끼지 못했을 거고, 아무런 영향도 없었을 거예요. 어쩌면 저의 남성성을 재확인한 게 다일지도 몰라요.
7. 조준
맥어보이 두 번째 영화는 첫 번째 영화보다 훨씬 더 느긋하게 만들었던 것 같아. 첫 편을 만들 때는 걱정이 많았지. 우리가 블록버스터에 익숙한 건 아니었잖아.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를 찍을 땐 스트레스가 좀 많았어.
패스벤더 맞아, 그랬지, 그랬어.
맥어보이 그런데 이번에는 이런 식이었잖아. “괜찮을 거야. 우린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거지만, 피눈물 흘려가며 하지는 않을 거야.”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어?
패스벤더 응. 나 오줌 좀 누고 올게. 근데, BB총! BB총 이야기도 해야지.
맥어보이 아, 우리 같이 BB총을 사기로 했어요. 열두 자루 정도를 사서, 저랑 젠이랑….
인터뷰어 제니퍼 로렌스랑요?
맥어보이 네. 젠은 완전 악마예요.
인터뷰어 일반적으로요? 아니면 BB총을 쏠 때만 악마가 되는 건가요?
맥어보이 걘 그냥 악마예요. 주먹도 제대로 날릴 줄 알고, 총도 잘 쏘고, 술도 잘 마셔요. 정말 제대로예요. 난 걔가 참 좋아요.
인터뷰어 그래서, 당신과 마이클, 그리고 제니퍼, 이렇게 셋이 가장 친했나요?
맥어보이 네. 또 닉 홀트. 둘 다 끝내주는 친구들이에요. 그리고 걔네랑 다른 사람들까지 몇 명 더 해서, 두 달 동안 BB총 전쟁을 계속했어요. 트레일러 밖으로 나갈 때 조심하지 않으면 얼굴에 바로 총을 맞는 거예요. 피부가 터지기도 하고요. 마이클이 자기 트레일러에 있는데, 나랑 젠이 문을 따고 들어가려고 했던 적도 있어요. 천장으로 들어가려고도 했고. 그러니까… 네, 이번 영화는 처음 영화에 비해 훨씬 더 느긋하게 만들었어요. 굉장히. 성공도 했고.
패스벤더 나도 조금 미친 것 같긴 하지만, 제임스도 정말 완전히 돌았어요.
맥어보이 아냐, 내 생각엔 내가 나의 미친 기운을 평소에 억누르고 있는데, 어쩌다 한번 터져나오면 그렇게 되는 것 같아.
8. 약속을 잡다
패스벤더 ‘엑스맨’ 첫 편을 찍을 때, 처음으로 스튜디오에서 나와 베이스캠프까지 골프 버기를 타고 갔던 일이 기억나요. 제임스가 주차장을 지나가면서 차들을 아슬아슬하게, 몇 밀리미터 간격으로 비켜가더군요. 난 뒤에 매달려서 ‘우와, 이 친구 운전 좀 하는데!’라고 생각하고 있었죠. 알고 봤더니 그게 아니라 그냥 미친 거였어요. 서 있는 렉서스 뒤를 그대로 들이받았어요.
맥어보이 3미터 정도 튕겨져나왔어요. 마이클이 운전석에 앉아 있던데요.
패스벤더 전 뒤에 탔는데, 운전석까지 날아가서 핸들에 머리를 부딪쳤어요. 그럼 운전석에 있던 제임스는 어디 있지, 생각한 순간 땅바닥에서 누가 “어이, 너 괜찮아?”라고 묻더군요.
맥어보이 음, 너 그때 일로 흉터도 남았지.
패스벤더 (팔뚝의 흉터를 보여준다. 그리고는 바지를 걷어 정강이에 있는 2~3센티미터 크기의 흉터도 보여준다.) 이 흉터가 더 커요. 난 자랑스러워요.
맥어보이 두 개나 있구나. 오오.
곧 맥어보이는 아들을 돌보러 집에 가야 한다고 수선을 피운다. 하지만 그전에 둘은 다음 모험을 할 날짜를 잡는다. 모터사이클 레이스를 할 계획이다. “우린 두 바퀴는 잘 타요, 네 바퀴를 잘 못 타는 것뿐이지.” 패스벤더가 말한다. 패스벤더가 아일랜드에 갔다가 돌아오는 대로 만나기로 둘은 합의한다.
맥어보이 재미있을 거야.
패스벤더 물론이지. (인터뷰어가 자리를 비우자) 야, 우리 그냥 가버릴까? 화장실 갔다 와 보면 우린 없고 녹음기만 덩그러니 있을 거 아냐.
맥어보이 (웃음) 너 혹시 담배 있어?
패스벤더 담배 없어. 우리 하는 이야기 여기 다 녹음되는 거 알지?
맥어보이 우리 굉장히 쿨해 보일 거야.
- 에디터
- Alex Bhattacharji (글)
- 포토그래퍼
- Robbie Fimmano